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80화 (180/345)

# 180

“연왕을 잡는 사람은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

수백의 반란군을 보며 호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명분을 가지고 있건, 여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아바타가 폭군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유가 뭐가 되었건, ‘역적’은 용서할 수 없는 일.

호영은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두어 번 휘둘렀다.

서걱!

열 명이 넘는 반란군의 목이 하늘로 떠올랐고 다섯 명의 몸이 대각선으로 갈라졌다.

창을 고작 두어 번 휘두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크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영을 포위하고 있던 반란군의 비명이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어 갔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창을 휘두른 것이다.

모두가 경악한 눈으로 호영을 바라볼 때, 호영의 신형은 정면을 향해 섬전 같은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 막아! 막으란 말이다!”

“도망쳐!”

날아오는 호영을 보고 반란군은 패닉에 빠졌다.

원래였으면 포획해야 할 대상이 제 발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을 기뻐해야 정상이었겠지만 지금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무인조차 막아 내지 못하는 압도적인 무력에 반란군의 지휘관이며 병사며 가릴 것 없이 당황하였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서걱서걱!

하지만 호영은 그들의 사정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저 착실하게 창을 휘두르고 찌를 뿐이었다.

‘형편없군. 고작해야 이 정도 수준으로 반역을 도모했단 말인가?’

호영은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한심한 것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한심한 것들의 반란이 거의 성공할 뻔했다는 사실이 가장 어처구니없었다.

만약에 호영이 없었더라면?

대한국의 역사상 최초로 반정이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는 법.

만약 반정이 성공하는 사례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란을 시도하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 말은 결국 왕권의 신성불가침이 깨지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호영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잔혹하게, 최대한 무자비하게 진압하리라.’

독심을 품은 호영의 어마어마한 활약으로 궁성에 진입한 반란군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아직 궁녀로 여겨지는 여인들의 비명이 아련하게 들려왔지만 적어도 호영의 눈앞에서 무장하고 있는 반란군은 없었다.

수천가량의 반란군이 단 한 명에게 진압된 것이다.

“지존이시여!”

궁궐의 모든 병력이 경외하는 표정으로 바닥에 부복하였다.

반란군을 상대로 보여 준 압도적인 무력!

무인이라면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나라.”

호영은 경외를 받는 게 익숙하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친위대 조장, 윤건희에게 말했다.

“역적 수장, 안성희와 박영종은 잡았느냐?”

동기화를 하고서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호영은 이미 반란군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파악한 상태였다.

그 잠깐 사이에 현실에 갔다가 정보를 얻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경험이 워낙 풍부한 호영이다 보니, 언제 로그아웃하고 언제 로그인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았다.

“아무래도 반란에 실패한 것을 직감하고 도망친 것 같습니다.”

“추격은?”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윤건희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궁궐에 남아 있는 잔당부터 처리해라.”

“충.”

그 명령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은 윤건희지만 이내 명을 받들었다.

호영은 윤건희가 절반의 병력을 이끌고 물러나자 사색에 잠겼다.

‘나의 무력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다.’

수도 방위군 전체와 치안대 일부, 심지어 중앙군과 치안대까지 반란에 동조한 상황에서 호영은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마치 자만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만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이전의 아바타들처럼 무공 수준이 형편없어 마력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4회 차의 아바타, ‘대연’은 왕국 제일의 고수라 불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력 수치만 200을 넘어 300에 가까웠는데 이것은 대준, 대왕, 대진으로 이어지는 역대 아바타들보다 많은 수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호영의 무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3회 차에도 만부부당의 신위를 보여 주었던 호영인데 그때보다 강해졌으니 반란군 따위가 우습게 느껴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로열패밀리까지 합류한다면, 진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터.’

로열패밀리!

이제 본 게임에 참여하는 로열패밀리의 숫자는 2천 명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중에서 1천 명가량이 튜토리얼에서 좋은 성과를 보았다.

아바타의 신분이나 능력치가 굉장히 우수하다는 것이다.

이러니 반란군쯤이야 우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즉시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로열패밀리 수백 명만 동원해도 반란군 따위는 어렵지 않게 진압할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언제든 충원할 수 있는 대한 길드의 100만 유저들도 있었고.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기는 아쉽지. 숨어 있는 반역자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니까. 덤으로 적아를 가릴 수도 있고 말이야.”

호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침소로 되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롭게 말이다.

* * *

로테 제과의 회의실에서는 회사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바로 센추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한 길드의 독주에 반감을 가진 유저들이 대거 반란에 가담하면서 현재 반란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이 기회라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지금이 바로 정국공신이 되어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부하 직원의 말에 신유한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 게임을 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직원이 예를 들었던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 등을 생각하면 지금이 적기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대한국처럼 왕권이 강력한 나라에서 정권을 바꿀 기회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병사들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군. 군대의 규모가 커야 거사에도 성공하고 실권도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

반란에 성공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신유한의 목표는 대한 길드에 버금가는 업적 점수를 얻어 내는 것.

그리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정도의 업적 점수를 얻으려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업적 점수는 ‘세상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가.’가 가장 중요하였으니 말이다.

‘로열에 소속되어 있는 놈들은 필시 대한국의 왕권 세력이겠지? 만약 이번 반란으로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들도 더 이상 오만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주도권은 우리가 갖게 될 테니까.’

매출 규모가 중견 기업에도 못 미치는 로열사가 재벌들을 상대로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센추리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로열사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게 된 배경은 바로 그 어마어마한 영토에 있었다.

이제는 한국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토를 가지게 된 대한 길드.

일개 길드가 나라를 세워도 부족하지 않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으니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감히 재벌가를 상대로 싸움을 걸어왔다 이거지? 두고 보자. 네놈들의 무대라는 본 게임에서 응징을 해 주마.’

신유한이 이를 갈며 그 생각을 할 때, 인사 팀장이라는 이유로 유저들을 포섭하거나 육성하는 임무를 맡은 김규식이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유저들을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일 때문인가?”

김규식의 말에 신유한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자 김규식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하, 유저들이 숙청당한 게 우리의 잘못도 아닌데, 꼴이 아주 우습게 되었어.”

“저희의 편에 선 유저들의 아바타가 하나같이 숙청을 당했기에, 원한이 저희에게로 향한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 식으로 공격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우리 편에 섰다는 이유로 아예 멸족시킬 줄이야.”

로열사의 예상치 못한 반격을 떠올리며 신유한은 혀를 찼다.

3회 차가 끝나기 직전, 신유한은 엄청난 자금을 동원하여 본 게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유저들을 회유하였다.

회유된 유저들 대부분이 외국과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을 했던 전쟁 영웅들이었다.

신유한을 비롯하여 ‘반로열 동맹’에 속해 있는 재벌들은 이 유저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하였다.

그들이, 정확히는 그들이 얻게 될 업적 점수가 센추리 진출의 발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회 차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재벌의 편에 섰던 유저들의 가문이 너 나 할 것 없이 풍비박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신유한은 그 일로 인해 기대했던 영토를 얻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애써 포섭했던 유저들에게서 원망의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놈들은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영토를 얻었는데…….’

신유한은 아쉬움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신호 그룹처럼 NPC들을 끌어모을 방법은? 그자들은 NPC만으로 수백의 사병을 두고 있다는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아무래도…….”

“내가 평민이라 안 된다는 거군. 하! 재벌인 내가 가상 세계에서는 고작해야 평민에 불과하다니.”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4회 차에 처음으로 센추리를 시작한 신유한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센추리 세상은 진입 장벽이라는 것이 세워진 상태였다.

3회 차에서 대한국의 진영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4회 차에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은 ‘평민’ 또는 ‘노비’라는 신분적 제약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NPC들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NPC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다른 인격으로 변했다 하나, 한때 평민 또는 노비였던 이들을 따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NPC들이 안 된다면 결국 유저들밖에 방법이 없다는 건데……. 나를 싫어하는 놈들이 많으니 아무래도 돈을 제법 써야겠어.”

신유한은 마땅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입 장벽이 워낙 높아서 그런지 반란에 가담하겠다는 유저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평민이나 노비로 살아가느니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신유한의 경우 유저들에게 평이 좋지 않았다. 신유한 때문에 아바타의 가문이 풍비박산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돈으로 유저를 모집한다면 평균 시세보다 2~3배는 줘야 할 것이리라.

“경쟁자가 워낙 많아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모집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란에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만 여덟 군데나 돼서…….”

“쯧.”

김규식의 말에 신유한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제는 센추리에 진출한 기업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대기업이란 대기업은 전부 진출했다고 봐도 좋았는데, 본 게임에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진출해 있었다.

아마 이번에 일어난 반란에만 해도 최소 열 개 이상의 대기업이 개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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