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75화 (175/345)

# 175

-송호영, 이 개 같은 새끼. 감히 나의 목을 쳐?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말해, 이 개새끼야!

그 말을 듣자 상대가 누군지를 알 수 있었다.

“최진수냐?”

-그래, 이 새끼야.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네 신상 정보는 이미 퍼질 대로 퍼졌어! 너는 이제 ○ 될 일만 남은 거야. 이 병신 새끼야!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망나니로 유명한 최진수가 호영의 정체를 알아차리다니.

최진수가 알 정도라면 재벌들 중에 호영의 존재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디냐고 물었지?”

-이 새끼, 무게 잡고 말하는 거 봐라? 네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거냐? ○ 될 일만 남았다는 내 말이 농담 같아?

당장 찾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살기등등한 목소리였다. 그의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살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봤자 최진수는 최진수일 뿐이지.’

하지만 호영은 최진수의 협박이 우습다는 양 조소를 짓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답지 않게 말이 왜 그렇게 기냐?”

-허. 어이가 없네. 송호영, 너 진짜 죽고 싶냐?

“시끄럽고, 일단 만나지.”

-…….

“왜 말이 없어? 나를 보는 게 두렵나? 너의 목을 친 사람이라서?”

-시발. 어디야? 당장 말해, 이 개새끼야.

“아직도 영등포에 살지? 내가 갈 테니, 장소 정해서 기다리고 있어.”

-두고 보자. 만나면 뒈질 줄 알아라.

마치 삼류 악당의 전형적인 대사 같았다.

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윤원목을 호출하였다.

“윤 이사, 경호원들이랑 차 준비시켜.”

“어디 가십니까?”

“친구를 만나러 간다. 아주 질 낮은 친구를 말이야.”

“그렇다면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굳이?”

“사장님의 친구를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누구를 만나는지 대충 예상했나 보군.’

하기야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경호원들을 준비시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윤 이사가 생각하는 거창한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오고 싶다면 와도 상관없다.”

“가겠습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호영은 피식 웃고는 원목과 함께 영등포로 향하였다.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원목이 그의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두려울 게 없었다.

* * *

창밖을 바라보던 최진수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족히 4, 5억은 될 법한 벤츠 차량 두 대가 가게 앞의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런 가게에 벤츠가 들어온다고?’

당연하겠지만 최진수는 벤츠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재벌로 살아온 그에게 벤츠란 비싸서 못 타는 것이 아닌, ‘노땅’처럼 보일 것 같아서 타지 않는 차량이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벤츠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진수가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은 대학 시절에 동기들이랑 간혹 갔던 조그만 고깃집이었다.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고깃집.

호영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식사를 함께한 가게이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고깃집 가게에서 두 사람은 ‘이소희’라는 여자를 두고 처음으로 충돌하였다.

호영의 여자 친구였던 이소희를 최진수가 가로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아무튼, 최진수가 이 가게를 선택한 이유는 호영의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함이지 숨어 있는 맛집이라서든가와 같은 거창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날 찾아온 것인가?”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차량이니 최진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가게의 문이 열리더니 벤츠처럼,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내들이 등장하였다. 건장한 체격에 정장을 입은, 마치 경호원처럼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하민수, 전현민!”

사내들 중 한 명이, 최진수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을 불렀다. 하민수, 전현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호원들은 그 부름에 크게 움찔하였다.

“여,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경호원으로서 온 거야.”

“상사님이 경호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전역한 지가 언제인데 상사야? 아무튼, 지금은 로열 가드라는 곳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어. 그리고 여기 있는 이분이 우리 회사 사장님.”

최진수는 경호원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경호원들을 자신의 손발로 여겼고 당연히 자신의 손발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버럭 신경질을 내려던 순간, 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호영입니다. 여기 있는 최진수와는 대학 친구 사이죠.”

증오스러운 목소리. 최진수는 이빨을 빠드득 갈며 말했다.

“너, 이 새끼…….”

“새끼라니, 말이 조금 험하다?”

호영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분위기가 싸늘해졌음에도 개의치 않은 모습이었다.

“얼마 만이지?”

“…….”

“아, 센추리에서 봤으니 얼마 안 됐나?”

최진수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성질을 부리지는 못하였다. 경호원도 경호원이지만, 귀태가 흐르는 호영의 외양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벤츠도 설마 이놈 건가?’

센추리에서 엄청나게 잘나가고 있으니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최진수는 여전히 송호영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예전의 그 볼품없던 흙수저 시절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진수는 호영의 파격적인 등장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호영에게 화내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센추리에서 있었던 일은 뭐, 미안하게 됐어.”

“그게 끝이냐? 나를 죽여 놓고?”

호영이 건성으로 사과하자 최진수가 사납게 따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당혹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의 성질머리가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래도 나라를 경영해 봤으니.”

“돈 좀 벌었다고 내가 우습게 보이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습게 보지 않는 이상, 나에게 그따구로 말할 수는 없을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

최진수는 순간 움찔하였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되묻는 호영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움찔한 것이다.

‘이 새끼는 여기가 센추리인 줄 아나.’

하지만 최진수는 이를 악물었다. 센추리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그가 갑이자 승리자였다.

경호원에 벤츠까지 가졌다지만 재벌 3세의 최진수와 비교하면 그저 돈만 많은 졸부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서 조금 잘나간다고 뭐가 된 것 같아? 너는 그래 봤자 좆도 아니야. 네가 센추리에서 만들어 낸 국가도 나 정도면 언제든지 빼앗을 수 있다고! 이소희를 빼앗았을 때처럼 말이야.”

“…….”

“왜, 이제 알 것 같아?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를?”

“해 볼 수 있으면 한번 해 봐.”

“뭐?”

“신호 그룹의 망나니인 네가 나의 것을 빼앗는다고? 아직도 옛날인 줄 알아? 네가 빼앗을 수 있다면 진즉에 다른 대기업에게 빼앗겼을걸.”

“이 새끼가…….”

“너도 이제 알잖아, 센추리에서 잘나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서 센추리에 그토록 집착한 거 아니야?”

최진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센추리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정한다면 과거 일들은 다 덮어 둬. 나도 네가 과거에 했던 일들을 전부 잊을 테니까.”

“이제 와서 친하게 지내기라도 하자는 거냐?”

표독스럽게 물으니 호영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안 될 건 없잖아. 센추리에서도 잠깐이나마 동맹 관계였고 말이야.”

“개소리하지 마라! 네놈이 나를 죽인 거,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복수할 거라고!”

“그랬다간 너의 가족이 위험할 텐데?”

“미쳤냐? 너 따위가 감히 우리 가족을 가지고 협박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히 재벌을 상대로 협박하다니! 절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호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신호 그룹을 아주 개떡으로 아네? 재벌이 우스워? 네가 센추리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현실의 권력은 우리 재벌들에게 있어! 네 따위는 하루아침에 파멸시킬 수 있다고!”

“현실의 가족 말고, 센추리의 가족을 말하는 거야.”

“……센추리?”

“너도 아직 센추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잖아? 아마 다음 회 차를 노리고 있겠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혈통이 끊어지면 새로운 아바타로 다시 시작해야 돼. 업적 점수도 초기화되고 말이야.”

“업적 점수가 초기화된다고?”

“모르고 있었어? 원래 시스템이 그래. 아무리 네가 이번 회 차에 엄청난 활약을 했어도 100년의 시간 동안 혈통이 끊어지면 업적 점수는 완전히 초기화되는 거지. 뭐, 너의 경우는 100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만. 내가 명령만 내리면 너의 최씨 가문은 단숨에 사라지게 될 테니까.”

“……시발.”

최진수는 저도 모르게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센추리는 그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일부였다. 이번 회 차에 실패했다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꼴 보기 싫은 호영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했던 이유도 사실 호영의 손을 빌어서라도 다음 회 차에 재기하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그는 센추리에 미련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만큼 호영의 협박은 유효할 수밖에 없었다. 센추리에 남아 있는 최진수의 혈통은 그야말로 인질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최진수로선 센추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호영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초보자의 섬에서만 플레이한다고 해도 업적 점수를 잃지 않기 위해서 호영의 말을 따라야 하였다.

“나는 이미 현실에 기반을 쌓아 놨어. 뭐, 재벌 회장이 나선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네가 나선다고 흔들릴 위치는 아니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말했잖아, 과거의 일은 다 덮어 두고 새롭게 동맹을 맺자고.”

“동맹?”

“센추리에서는 내가 압도적이고, 현실에서는 네가 우위에 있지. 우리 둘이 동맹을 맺는다면 서로에게 엄청난 이득이 될 거야.”

예상치 못한 호영의 제안에 최진수는 입술을 닫았다.

그는 진지하게 호영의 제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송호영과 내가 동맹을 맺는다고?’

과거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영을 흙수저라고 한참이나 낮잡아 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확실히 나쁘지는 않다. 대한 길드와 대한국을 가진 송호영이 나의 편이 되어 준다면 최명헌을 꺾어 내는 것도 가능할 거야.’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송호영이 가지고 있는 힘은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재력만 따져도 웬만한 재벌 못지않았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만약 동맹을 맺는다면 후계 경쟁에서도 상당히 유리해질 것이 분명하리라.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 테지. 올해가 가기 전까지는 기다려 줄게. 뭐, 올해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남았지만 말이야.”

호영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최진수는 고민을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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