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73화 (173/345)

# 173

#반로열 동맹

“그놈들은 어때?”

“누구?”

“로열이었던가. 그, 대한 길드의 진짜 주인이라는 놈들.”

신유한의 물음에 정현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똑같아. 여전히 강경하게 저항하는 중이야. 아무래도 우리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는 것 같은데?”

“쯧. 그놈들 안 되겠네? 간부 지위 정도는 인정해 주려고 했건만. 이렇게 된 이상, 대한 길드를 차지하고서 완전히 내쳐야겠어.”

두 사람은 재벌 3세였다. 그것도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의 자제들이었는데, 그들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일은 극히 드물었다.

어지간한 것은 돈으로 샀고,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은 사회 권력으로 강탈하였다.

‘대한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대한 길드를 벌써부터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쉽지는 않을 거야. 그자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대단해.”

“그래 봤자, 게임 폐인들이 세운 친목 길드 아니야?”

“길드원 숫자만 100만이 넘는다는데 단순히 친목 길드라고 볼 수는 없겠지. 현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도 영세하기는 하지만 그저 그런 중소기업 수준은 아니고 말이야.”

“세무조사를 때리면 되잖아. 아니면 금융사나 언론사를 이용하거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공격할 때 자주 쓰는 전략이 바로 그가 말한 것들이었다.

웬만한 기업들은 세무조사만으로도 망신창이가 되었고 세무조사를 버틴다 해도 금융권으로 압박하거나 언론으로 압박한다면 투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 해 봤어. 그런데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 변호사와 세무사가 얼마나 많은지, 샅샅이 조사를 했는데도 흔적 하나 찾을 수 없다던데.”

하지만 대한 길드를 소유한 로열사는 그렇게 만만한 회사가 아니었다. 세무조사를 해 봤지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고 대출을 받은 적이 없어서 금융권의 압박도 소용이 없었다.

“지들이 무슨 성삼 그룹이야? 그딴 조그만 회사에 변호사와 세무사라니.”

“길드원의 숫자가 100만이라잖아. 그 안에 ‘사’ 자 직업이 얼마나 많겠냐.”

“언론은? 그놈들 엔터 가지고 있잖아. 언론을 이용하면 타격이 클 것 같은데?”

“소용없어. 아주 돈지랄을 해 가면서 막아 내더라고. 애초에 현실의 기업들에서는 이윤을 얻어 낼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연예인들과 계약하는 거 보니까 B급 연예인조차 11 대 0으로 계약하더라고.”

“미친. 그 정도면 완전히 마이너스 옵션 계약 아니야?”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신유한은 황당했다. 일개 길드 따위가 이토록 완강하게 저항하다니.

상대의 신분이 대단했더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신유한이 듣기로 로열사의 사장, 송호영이라는 인물은 그 신분이 ‘흙수저’에 가까웠다.

“사장이 요리사 출신 아니었어?”

“나도 잘은 모르지만 요식업에 종사하기는 했대. 일개 직원으로 말이야.”

“허! 개천에서 용 난 졸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개천에서 용 난 수준을 넘어섰네?”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무색해진 시대였다. 이제는 용이라고 해 봤자 건물주가 한계일 정도였다.

물론 그룹을 창설하고 회장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계는 분명하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열사의 사장, 송호영이라는 자는 달랐다.

이미 마음만 먹으면 재산 순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천억대의 자산가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센추리의 흥행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송호영의 재산도 끊임없이 상승할 것이다.

수천억대의 자산가를 넘어서 수조, 어쩌면 수십조의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기존의 재계 1위를 넘어서는 신흥 부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주식에 묶여 있지 않은 현금 부자 말이다.

“돈이 통하지 않는다면, 물리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어. 대한 길드의 가치를 생각하면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야.”

아무리 상대의 저항이 완강하다 해도 신유한으로선 대한 길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질투심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흙수저 출신이 재벌들보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에 질투가 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대한 길드의 미래 가치였다.

‘세계 전체는 이미 센추리에 의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센추리에 진출하지 않은 기업들은 벌써부터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겠지. 우리 기업도 센추리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외국의 대기업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 거야.’

일개 게임에 의해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

재벌가의 일원이자 스스로가 기업가인 신유한으로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니, 놓쳐서는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면 재벌이라 해도 결국엔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물리적인 수단을 써도 소용이 없을 거야.”

“뭐?”

“이미 다른 기업에서 깡패들을 동원한 적이 있었어.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역으로 당했대. 완전히 박살 났다고 했던가. 내가 보기에 그들의 조직력은 외국의 카르텔 못지않아. 중국의 삼합회나 남미의 마약 카르텔과 비슷한 수준이랄까.”

“그 정도라고?”

하지만 신유한이 예상치 못한 것이 있다면 대한 길드와 로열사의 저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삼합회 수준이라니. 미친, 일개 요리사 출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대한 길드를 얕잡아 보던 신유한도 이제는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대기업에 버금가는 강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둘만으로는 안 되겠어.”

“맞아. 힘을 합쳐야겠지. 독점은 못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둘은 큰 결정을 내렸다. 바로 새로운 동맹을 구하는 것이다.

‘반로열 동맹이라 해야 되나? 아무튼, 이 나라의 재벌 전체가 힘을 합친다면 송호영이라는 작자도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겠지. 대통령이 나서지 않는 이상에 말이야.’

* * *

길드원의 숫자가 100만 명? 다단계성 마케팅 논란!

대한 길드의 갑질! 이대로 괜찮은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는 대한 길드!

로열사의 설립 자금 의혹! 불법 자금만 수백억이 넘는 것으로 드러나……

무공을 배우려던 여배우 A씨, 대한 길드의 고위 간부에게 성폭행당했다!

허영만이 건네준 신문 기사들을 보고 호영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대기업들의 견제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이 잘되는 건 죽어도 못 보겠다는 놈이 왜 이렇게 많은지.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대기업에서 먼저 공존을 꾀하였다면 호영도 딱히 대기업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무슨 대통령처럼 재계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 해서 재벌들의 기득권을 빼앗을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호영은 그저 센추리라는 가상의 영역에서만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센추리에서 계속 승승장구를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재벌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센추리에서 정당하게 승부를 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현실의 권력으로 강탈할 생각만 하니 호영으로서도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금 한숨을 내쉰 호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잘 막아 내더니, 대외 협력 팀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나 보군. 대기업의 사장급이 나서기라도 한 것인가?”

로열 그룹에는 대외 협력 팀이라는 부서가 있었다.

외부의 압력을 막아 내는 부서였는데 호영 휘하에서 일종의 금수저라 할 수 있는 유저들이 소속되었다. 물론 검사나 경찰 간부 출신도 있었고 말이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이 대외 협력 팀이 외부의 압력을 막아 내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정치인들의 뇌물 요구나 스폰 요구 같은 것을 막아 냈던 것이다.

하지만 대외 협력 팀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상대가 존재하였다.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들이 바로 그 존재들이었다.

“사장 급이라도 대외 협력 팀의 인맥을 총동원된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선 것이지?”

“무려 재벌들이 나섰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다섯 명의 재벌들이 말입니다.”

그 말에 호영의 표정이 구겨졌다.

한둘도 아니고 무려 다섯 명의 재벌이 나섰다니! 생각보다 일이 심각한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압력이 있었지?”

“현재 다섯 개의 대기업이 로열사를 전 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엔터 쪽은 광고를 취소하는 식으로, 경호 쪽은 계약을 취소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대한 길드와 대한국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들을 광범위하게 포섭하고 있습니다. 제법 많은 돈을 쓰고 있는데 단순히 돈만 쓰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위협하거나 지인을 이용해 협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넘어간 인원은 많나?”

“다행히도 윤 이사께서 시기적절하게 나서 주셔서 변절한 유저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공세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어떤 공격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 나라의 공권력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들이니 말입니다.”

그의 말에 간부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기업들이 로열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의 권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제 약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충구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언론과 사법계가 재벌들의 편입니다.”

“그래서요?”

“언론을 총동원한다면 대한 길드 같은 곳은 쉽사리 분열될 것입니다. 엔터 같은 경우는 연예인들이 전부 나가 버릴 것이고 말입니다.”

허영만은 씁쓸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사법계를 이용해도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싸움을 걸어온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쩌면 저희들은 법정으로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권력이라면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공격한다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면 그만 아닙니까?”

“……예?”

“우리의 기반은 어차피 센추리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압박한다고 우리가 굴복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솔직히 굴복해야 될 것은 우리가 아닌 대기업들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초보자의 섬에 있는 한국인 소유의 토지는 거의 다 우리 것이지 않습니까?”

패기 넘치는 충구의 모습에 간부들이 감탄하였다.

“오오.”

“그렇지. 우리를 무시하면 안 되지.”

간부들의 반응에 허영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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