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72화 (172/345)

# 172

호영이 대뜸 그렇게 물으니 최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임진왜란 때 수도를 버리고 도망쳤던 선조를 따라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전히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최진수를 향해 호영이 버럭 외쳤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면 목숨을 다해서라도 싸워야 할 것이 아니냐!”

“전하…… 제가 비록 대한국의 남작이 되었다지만 저는 여전히 신라의 왕입니다만.”

“왕이라면 더더욱 솔선수범해야 했다. 그런데 알량한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나라를 버리고 도망을 쳐? 네놈이 그러고도 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 이상의 무례는 저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를 악물며 그렇게 답하는 최진수에게 호영은 살기를 띤 얼굴로 말했다.

“용납이라? 영토를 모조리 빼앗긴 주제에 네놈이 아직도 신라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

“당장 이놈의 목을 쳐라! 고작 한 달을 버티지 못하여 수십만의 백성을 고통에 빠지게 한 자다!”

“헉……!”

최진수가 기겁하는 모습을 속으로 즐겁게 바라보던 호영은 곧바로 자신의 군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전군, 진군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3만의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 대한국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탓이다.

무려 6만.

일본군과의 전쟁에 동원한 병력이 무려 6만이었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군을 동원한 것이었다.

‘도요타 왕국이라……. 쇼니 가문에 이어 도요타 왕국까지 무너지면 그때는 일본도 깨닫게 되겠군. 일본 전체가 하나로 뭉치지 않는 이상 대한국에게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지금 이미 깨달았을지 모른다. 대한국이 육만을 동원한 시점에서 말이다.

* * *

경상도 남부를 점령한 일본군을 상대하기 위해 대한국이 내세운 전략은 지극히 단순했다.

인해전술!

즉, 숫자의 우위를 이용해서 적을 압도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일본군이 수비 태세를 갖추었다지만 경상도 남부에는 수만의 병력이 수성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수만은커녕 천 단위가 주둔할 곳도 별로 없는 상황.

각개격파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군은 대회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회전에서는 숫자로 압도하는 전략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무엇보다 대한국의 군대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작년에만 몇 차례의 대회전을 경험한 군대였고 장비의 질도 무척이나 좋았다.

2회 차부터 호영과 함께해 온 지휘관들의 자질도 꽤나 훌륭했고 말이다.

여기에 1년 반 동안 키운 2천의 기병까지 생각하면 전력상으로도 결코 일본군에게 밀린다고만 볼 수는 없으리라.

‘애초에 나와 준기가 있는 이상,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는 전쟁이다.’

수만의 대군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두 사람이었다. 특히 준기의 경우는 얼마 전에 호영의 실력을 기어코 넘어서고 말았다.

안 그래도 만부부당의 무력을 가진 준기였는데 이제는 진짜 만 명으로도 어쩔 수가 없는 괴물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전쟁은 대한국이 이길 수밖에 없으리라.

이 같은 호영의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불과 5천의 희생으로 일본군을 전멸시킨 것이었다.

“쪽발이 새끼들, 더 이상 재침할 생각은 갖지 못하겠지?”

“재침이라니. 이제는 우리가 공격해야 될 때 아니야?”

“맞아. 기병을 조금만 늘리면 일본 열도를 정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자 간부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일본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며 흥분해하였다. 그만큼 이번 전쟁에서 보여 준 대한국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호영은 그런 간부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손을 흔들고는 말했다.

“우리의 역할은 대마도를 점령하는 거까지다. 그 이후는 우리의 아바타나 후손들에게 맡겨야 해.”

그 말에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3회 차가 끝나기까지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

이제 유저들은 1회 차, 2회 차에 그랬듯이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다. 지금의 대한국이나 NPC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니 다른 간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3회 차가 벌써 끝나 간다니! 시간 비율이 1 대 4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확실히 시간의 흐름이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긴 해. 내가 회귀한 지도 벌써 4년째이니. 하지만 이번 회 차에서도 나와 대한국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어. 후회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영토 크기는 경기도 하나에서 팔도, 즉 한반도 전체로 확장되었고 수십만에 불과했던 인구는 225만으로 늘어났다.

기병이 생겼으며, 정규병으로만 8만이 넘는 대군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한 해의 소출량이 350만 석을 넘겼고, 모험가들의 던전 탐험으로 마법의 발전은 가속화되었다.

이 외에도 가축의 등장이나 상업의 발전, 마물 사육, 조합의 체계화 등등 모든 것을 따져 보면 대한국은 불과 4년 만에 50배 이상 강력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이니 호영으로선 아쉬워할 이유가 없었다.

* * *

본 게임에서 마무리 절차를 밟는 동안 초보자의 섬에서도 마지막으로 결산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길드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확장되었는지 추가로 샀으면 하는 부동산의 유형은 무엇인지…….

결산 과정은 거의 보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결과는 곧장 현실에 있는 호영에게 보고되었다.

“길드원이 거의 100만이라……. 엄청난 숫자군.”

호영은 대한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민건우의 보고에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하였다.

길드원의 숫자가 무려 100만이라니!

2회 차에서는 불과 10만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족히 10배는 늘어난 규모였다.

이 정도면 본 게임에서의 대한국이 발전 속도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일종의 다단계로 길드원을 모집하니 순식간에 규모가 커졌습니다. 물론 올해 들어 유저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말입니다.”

“길드원을 통제하는 데 문제는 없었나? 100만이라는 숫자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대한 길드에도 일종의 계급제도가 있는데 무공의 강약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터라, 사장님의 무공을 익힌 저희로선 높은 계급을 차지하는 것은 꽤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저희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니 아래는 알아서 정리되었고 말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100만의 유저를 통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하는 민건우.

실제 난이도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결과만 놓고 보면 확실히 대단해 보였다.

“대한 길드가 그 정도로 발전했다면 초보자의 섬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도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겠네?”

평소에는 초보자의 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김성근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민건우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그렇지. 모든 걸 새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특히 건설 쪽이 많이 커졌어.”

“건설이라면 누구 담당이더라?”

“용석이 아저씨.”

“아하, 좋겠네. 한 달에 백억씩은 벌려나?”

“센추리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워낙 세금이 세서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닐걸.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니 꽤나 기분이 좋은데? 거기에 내 지분도 조금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대한국이 발전한다고 해서 현실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의 전쟁으로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는 하였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돈을 벌 수 있다던가, 연예인급으로 인기를 얻는다든가 하는 것들은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초보자의 섬은 달랐다. 엄청난 규모의 경제활동이 벌어지는 곳이었기에 초보자의 섬에서 대한 길드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현실에서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건설업만 봐도 그렇다.

대한 길드에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건물로만 따져도 수백 채가 넘었다. 그리고 이 수백 채의 건물들은 대부분 중세 이전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당연하겠지만 수백 채의 건물을 현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권 사업이라고 볼 수 있었다.

건설업 이외에도 요식업이나 수렵, 광업, 임대업 등등 대한 길드가 소유하고 있는 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권으로 구분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하나같이 엄청난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이었기에 현실에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호영은 이 엄청난 이권의 일부를 자신의 수하인 로열패밀리에게 쥐여 주었다. 일종의 스톡옵션으로, 지분을 조금씩 떼어 준 것이었다.

이제 로열패밀리 개개인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억대가 넘었다. 천 명이 조금 넘는 사람 모두가 연봉으로 10억 이상씩 받는다는 것이었다.

로열패밀리가 호영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충성을 하면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현실에 있는 로열사의 발전도 나름 순조롭습니다.”

그때 유능한 CEO 같은 인상의 정장을 입은 사내가 다급히 말문을 열었다.

‘마음이 급해졌나 보군. 어떻게든 인정을 받고 싶다는 건가.’

갑작스러운 사내의 말에 호영은 곧장 질문을 던졌다.

“어느 정도로 발전했는지 자세하게 보고해 봐, 허 팀장.”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는 지시했던 대로 매출을 생각하지 않고 규모를 키우는 상황입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의 숫자가 백 명을 넘어섰고 이 중에 A급 이상은 다섯 명입니다. 로열 가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규모를 키우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규모만 보자면 작년 대비 3배 이상은 커진 상태입니다.”

사내, 허영만이 로열사의 발전에 대해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허영만은 호영의 휘하에 몇 없는 경영인 출신이었는데, 2분기 때 일본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자 그 이후부터 로열사의 경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직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직급은 팀장으로 두었지만 한때 잘나가는 사업가라서 그런지 능력은 확실히 대단해 보였다.

지금처럼만 해 준다면 계열사 한두 개 정도는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의 로열그룹도 순조롭게 성장 중이니 정말 모든 게 잘되어 가고 있군.’

아직 그룹이라고 칭하기에는 이를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현실에 있는 호영의 회사들은 1년 사이에 제법 성장하였다.

물론 대한국이나 대한 길드의 발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시간이 4배나 차이 나기도 했고 대한국이나 대한 길드의 발전은 지나치게 두드러진 편이었다.

하지만 대한국이나 대한 길드처럼 10배, 50배의 가시적인 성장까지는 아니어도 로열그룹 역시 회사 전체의 규모가 2배 정도는 성장하였다.

물론 순이익은 여전히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고? 어떤 것을 말하는 거지?”

“재벌 순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들이 우리를 노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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