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71화 (171/345)

# 171

왕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든 인파가 수만이나 되는 것만 봐도 수도의 민심이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수도 민심은 애초에 나쁜 적이 없었다. 대한국이 세워진 이후,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민심이 악화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유야 간단했다. 수도는 왕이 살아가는 도시로서 알게 모르게 특혜 아닌 특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영의 치세에서도 수도, 현리는 안정기를 누리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부유해졌고 말이다.

그러나 지방은 달랐다. 유저, 호족 중심의 반란이었다고는 하나 재작년에 경기도에서만 무려 네 차례의 반란이 일어났었고 충청도에서도 기근이나 소왕국 부흥 운동 때문에 세 차례의 반란이 일어났었다.

이처럼 지방, 특히 정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은 민심이 어지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상도 북부는 일단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으로 인해 인구가 많이 줄어든 상태여서 반란을 일으킬 여력조차 없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을 무찔러 주었기 때문인지 아국을 은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호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애초에 경상도 북부는 신라에게서 버림받은 지역. 그것도 갑작스러운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지역이었다. 그 넓은 땅의 인구가 10만, 젊은 장정의 인구는 1만도 채 안 될 정도였다.

워낙에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대한국의 지배를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 식량을 넉넉하게 풀어 식량난을 해결해 준 점과 든든한 병사들이 치안과 외세의 침공을 막아 준다는 점이 대한국의 지배를 반기는 대표적인 이유였다.

“전라도의 경우도 대체로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만약 요동국과의 전쟁에서 식량을 수탈했거나 병사들을 징집시켰다면 민심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전하가 이끄셨던 원정군의 활약으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세금을 감세해 주어서인지 아니면 물가가 안정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민심이 대단히 좋은 편입니다.”

“충청도 때처럼 부흥 운동을 시도하던 자들은 없었나?”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충청도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일단 정통성을 가진 나라들이 없었고 민심 또한 통치자에게 순응하는 경향이 강한 곳입니다.”

가장 우려하였던 전라도까지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하니 호영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전라도와 경상도 이외에도 새로운 점령지가 더 있었다.

“다만, 황해도나 평안도의 경우는 민심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 말에 호영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안색을 흐렸다.

“돌아올 때도 보이더군, 성에서 농성하던 반란군이.”

원정군이 본국으로 들어섰음에도 긴장감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던 대표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곳곳에서 발생한 반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황해도 지역은 대한국의 악명이 높은 곳이라 민심이 특히 안 좋습니다.”

재작년과 작년, 무려 2년에 걸쳐 북한 지역에 약탈을 시도한 대한국이었다.

아무리 북한 유저들을 따라 함경도나 만주 방면으로 이주한 이들이 많다고는 하나 남아 있는 인구도 적지 않았고 이들은 그대로 대한국의 불만 세력이 되었다.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4회 차, 즉 100년이 지난 이후에 정복을 시도하였다면 악감정이 많이 희석되었겠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낙랑군 백성들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황해도 지역이야 2년 동안 약탈을 시도하였으니 대한국에 대한 악감정이 생긴 것도 이상할 게 없다지만 이번에 새로 점령된 낙랑군의 경우는 딱히 악감정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요동국을 무찌르고 강제 점령한 것은 맞지만 분노의 방향은 요동국으로 향해야지 대한국을 향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중화사상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화사상이라……. 역시 그건가.”

어처구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중국은 유저건 NPC건 가릴 것 없이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중심은 중화이고 중화 이외의 나라는 모두 이적이라는 사상이었는데, 고작 3회 차밖에 안 되었건만 만주를 넘어 낙랑군의 백성들까지 중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지긋지긋하게 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신들은 모두 같은 민족이라고 뿌리 깊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만주, 티베트, 몽골 같은 지역은 중화사상이 약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3회 차부터 NPC들이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중국 정부는 정말 어마어마한 짓을 벌이고 있어.’

호영은 혀를 차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세력을 넓히려면 중국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는데 그들을 설령 이긴다 해도 정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낙랑군처럼 대한국을 야만족 취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골치 아프군. 피정복민 주제에 중화사상이라니.”

그가 곤란해하자 회의를 조용히 지켜보던 준기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친위대를 이끌고 감히 전하의 통치에 반하는 낙랑 것들을 응징하겠습니다.”

김성근이 생각날 정도의 호전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준기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리 유별난 반응도 아니었다.

준기는 호영과 관련된 것이라면 유독 날 선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응징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 응징하느냐가 관건이야.”

한반도는 영원히 그의 영역이 될 곳이다. 그러니만큼 민심을 장악하는 것은 필수 중의 필수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민족이었다.

만약 지금처럼 낙랑군의 백성들이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며 대한국을 야만인 취급한다면?

호영으로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하게 노예로 만들거나, 아니면 온건하게 대한국의 백성으로 회유하거나.

호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충구에게 물었다.

“너는 낙랑군의 백성들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 게 좋을 것 같으냐?”

“포용할 수 없다면 완전히 몰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충구의 말에 호영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괜히 내부에 불만 세력을 남겨 둬 후환을 만드는 것보단 차라리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니까.’

주어진 시간이 많다면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회유할 생각부터 했겠지만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 2년이었다. 3회 차도 벌써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회 차가 끝나고 100년의 세월 동안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만큼 낙랑군의 인구 전체를 강제 이주시키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어쨌든 후환거리는 차단한 셈이 되니 말이다.

그때 충구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그들을 이주시키면 평안도 지역에 사람이 없어져 불모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평안도를 빼앗으려 들 수도 있고 말입니다.”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것이냐?”

“끝까지 중국인으로 남겠다는 이들만 강제 이주시키십시오.”

“선택의 기회를 주라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충청도나 경기도의 빈농들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어떤 기회?”

“북방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말입니다. 많은 땅을 분배해 준다면 적지 않은 인구가 북쪽으로 이주할 것입니다.”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으로썬 아무리 생각해도 충구의 의견이 최선인 것 같았다.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는 낙랑 것들을 북한 유저들처럼 북쪽으로 완전히 몰아내서 만주를 조각조각 찢어 버려야겠어.’

낙랑군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결정을 내린 호영은 이번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본국의 사정은 그 정도면 다 파악한 것 같고. 다른 나라들은 어떻지?”

대한국은 단순히 군사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행정력이나 경제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왕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내정은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호영이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물론 들어야 할 보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급할 건 없었기에 호영은 내정보다는 외정에 집중하였다.

“일단 만주나 중국의 경우는 조용히 지켜보는 분위기입니다.”

호영의 물음에 답한 사람은 원재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일본은 경계하는 이들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의 반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신라의 경우는 명백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국이 위기를 넘겼으니 자신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틀린 생각은 아니군.”

안 그래도 신라를 정복할 순간만을 고대했던 호영이다.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신라 정복에 나설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은 이르지만.’

신라는 굳이 지금 당장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호영은 자신 있었다. 신라 따위는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까지야 명분이 없어 신라를 공격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둔 터라 신라의 유저들조차 대한국을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신라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지금 같은 시기에 신라와 전쟁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이 재침할 가능성이 크다. 회귀 전, 4회 차 때 대만을 상대로 했던 짓을 생각하면 반드시 재침할 거야. 회귀 전에도 사쓰마가 대만에게 완패를 당했지만 다른 가문에서 설욕전을 준비했었으니까. 그리고 만약 일본이 재침해 준다면 그때는 진짜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신라를 흡수하면 돼.’

지난번에야 갑작스러운 요동국의 선전포고로 인해 신라를 흡수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변수랄 것이 없었다.

아니, 중국이나 만주에서 또다시 변수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는 어떤 변수가 발생해도 강행할 수 있는 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올해는 함경도와 제주도를 정복하는 것에 집중한다.’

속으로 그 같은 결정을 내리고는 회의를 끝마쳤다. 들어야 할 보고를 모두 들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밀린 업무를 보는 것이었다.

* * *

4분기가 되자 호영이 예상했던 대로 일본이 재침하였다. 선봉군만 무려 1만이나 동원한 재침이었다.

일본의 공격에 신라 전역은 보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초토화되어 버렸다. 총병력 3만의 대군을 막을 수 있는 여력이 신라에겐 없었던 것이다.

대한국은 일본이 재침하던 그때 낙랑군의 중국인들을 밀어내고 충청도, 강원도의 수인족과 불만 세력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있었다.

제주도와 함경도는 작년에 이미 정복한 상태였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단숨에 정복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호영이 대군을 이끌고 경상도 남부에 도착했을 때는 무려 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주해야 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일본군을 무찔러 신라를 구원해 주십시오, 전하!”

불과 삼십도 안 되는 병력을 이끌고서 도주하던 최진수가 호영을 보고선 그렇게 외쳤다.

“선조를 따라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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