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69화 (169/345)

# 169

이게 바로 작전의 요체이자 핵심이었다.

그렇기에 원정군은 통항 성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거점도 초토화시켰고 보급도 완료하였으니 이제 떠날 시간인 것이었다.

“출정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마침 원정군의 출정 준비가 끝이 났다.

호영은 곧장 말에 올라타고서는 원정군에게 명령하였다.

“출정하라!”

불과 3시간도 안 되어 통항 성을 함락시킨 대한국의 원정군은 다시 3시간도 안 되어 출정에 나섰다.

* * *

‘요동성이 코앞에 있다.’

원정군이 요동에 상륙한지 불과 사흘.

그동안 원정군은 전격전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겠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진격을 거듭하였다.

사흘 만에 요동국의 수도 인근까지 진격한 것이었다.

물론 이동한 거리는 100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기병이라면, 그것도 말을 두세 마리씩 끌고 다니는 기병이라면 하루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원정군은 단순히 이동만 한 것이 아니었다. 통항 성을 포함하여 무려 세 개의 성을 함락시켰고, 열 네 개의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식량 창고는 모조리 불태웠다.

병력으로는 대략 2천에 가까운 숫자를 살상시켰다. 요동군의 총병력의 20퍼센트 정도를 제거한 것이었다.

이만한 활약을 펼치며 불과 사흘 만에 요동국의 수도까지 진출하였으니 엄청난 속도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동군의 병력이 사방에서 좁혀 오고 있습니다. 이틀 안에 포위망이 완성될 것 같습니다.”

“대응 속도가 빠르군.”

그러나 요동국이라고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통항 성이 함락되기 무섭게 방어 태세를 갖추더니 곳곳에서 병력을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사흘 만에 요동국 전역에서 집결한 병력의 숫자만 무려 5천. 여기서 기병은 3천이나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과 무림이 힘을 합치는 경우는 드물다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도 된다는 양, 원정군이 지나치는 곳마다 중국의 무인들이 공격을 가해 왔다.

약간의 피해를 보며 모두 무찌르기는 하였지만 원정군의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요동군과 함께 대략 수백 가량의 무인이 원정군을 치기 위해 집결한 상황이었다.

“수도 방향에는 어느 정도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지?”

“기병으로만 2천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방향을 돌려야겠군.”

예상했던 것보다 적의 대응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자 호영은 계획을 조금 수정하기로 하였다.

이틀 안에 요동성을 함락시켜 전쟁을 끝내겠다는 계획을, 요동 전역을 초토화시켜 항복을 받아 내겠다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소모전을 치르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대한국의 입장에서는 병기나 식량의 소모는 전혀 없고 오직 친위대 같은 고급인력의 소모만 있겠지만 말이다.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련 성까지 함락시킨다면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호영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난데없이 선전포고를 하여 침략 의지를 드러낸 요동국.

대한국을 적대하는 태도를 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지만 다른 나라들이 감히 대한국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 * *

“정면에 위문 세가 무인 백 명과 요동군 보병 오백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친위대원의 보고에 호영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뚫어라.”

“충!”

명령이 내려지자 준기가 대열의 선두로 나섰다.

호영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무위를 보유하고 있는 친위대장 홍준기.

그를 바라보는 대원들의 시선은 ‘절대적 신뢰’였다.

호영의 시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압도적이겠군.’

준기가 나섰다는 이유로 압도적인 승리를 확신할 정도였다.

콰아아앙!

그리고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정군이 말에 올라타서 전력질주를 하고는 그대로 적군을 쓸어버린 것이었다.

전쟁 초반, 말 타고 달리는 것조차 어려워했던 원정군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제법 수준이 높다던 위문 세가의 무위도 고작 이 정도인가.”

원정군의 후미에 선 호영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위문 세가!

요동국에서는 명문 무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무력으로 따진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위문 세가도 원정군 앞에서는 일개 병사와 다를 게 없었다. 말에 치이면 죽고, 무기를 휘두르면 피하지도 못하는 그런 일개 병사들 말이다.

단순히 기병과 보병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정군은 말을 타지 않았을 때도 기병을 상대로 압도하였다.

기병이라서 유리한 것은 맞지만 그 이전에 실력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화북부터는 무공의 수준이 달라지겠지?’

검법이나 창법만 압도적으로 발전해 온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의 무공은 균등하게 발전해 왔었다.

심법, 도법, 창법, 권법, 각법, 보법, 수법, 신법, 심지어 장법이나 지법까지.

무공의 종주국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듯, 세계에 없는 온갖 무공들을 보유하고 있고 또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중국의 무공이라는 것은 결국 중원이라 불리는 중국 안의 중국, 화북과 화중 그리고 화남까지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동북, 서남, 서북, 내몽골 같은 소위 변방에 해당하는 지역은 무공의 수준이 대만, 일본, 한국만도 못하였다.

당연히 만주 지역에 근거하고 있는 위문 세가의 무공도 대한국 기준으로는 보잘것없는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끝났습니다. 대승입니다!”

순식간에 전투가 끝이 났다. 원정군의 승리였다.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추격 명령을 내렸다.

“패잔병들을 모조리 소탕해라.”

“충!”

그렇게 원정군의 앞길을 가로막던 적군을 분쇄하고 다시 진격을 개시할 때, 현실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취합하던 대원이 불쑥 말했다.

“전하! 희소식입니다!”

완승을 거둔 것보다 희소식이 있을까?

호영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어떤 소식이냐?”

“낙랑군을 초토화시킨 돌격대가 임진강을 건너 단동에 도달하였답니다!”

“……!”

과연 희소식이었다.

돌격대가 단동에 도착하였다니!

‘마침 원정군의 숫자가 줄어들어 화력이 예전만 못했는데 잘되었군.’

사백쉰 명이었던 원정군은 그동안의 전투로 꾸준하게 소모된 상태였다.

모든 전투가 압도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투에서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원정군의 숫자는 고작해야 삼백 명 정도. 친위대만 따진다면 대략 백마흔 명 정도였다.

호영이나 준기가 있어 아직까지는 전투력에서 큰 차이가 없었지만 거점을 파괴하는 속도나, 추격할 때 잡을 수 있는 적군의 숫자 따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일종에 화력이 약해진 셈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돌격대의 등장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기까지 얼마 안 남았구나.”

곧 있으면 요동국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요동국은 국가의 안위보다 지도자의 체면이 더 중요한 나라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손태에게 투항을 권고하는 신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항복하기에는 공손태의 자존심과 명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롄 성이 무너지고 요동국의 장정이 수만 명이나 학살당했을 때도 요동국은 오직 결사항전을 주장하였다.

대한국의 원정군을 모두 죽이느냐, 아니면 그 전에 요동국이 무너지느냐, 그런 싸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동쪽에 새로운 적군이 출몰한 순간, 요동국의 항전 의지는 급격히 사그라지기 시작하였다.

안 그래도 위태롭기 그지없었던 요동국이었다. 수천의 병력과 수백의 무인을 동원하여 온갖 수를 써봤지 만 원정군의 병력을 백여 명 줄이는 게 고작이었다.

포위해도 소용이 없었다. 원정군이 한쪽 방면을 집중 공격하면 결국 포위는 뚫려 버리기 때문이다.

원정군은 허를 찌르는 지략도, 절정에 오른 사기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렇게 대한국의 원정군은 요동군에게 엄청난 좌절감과 무력감을 심어 주었다.

고작해야 사백도 안 되는 숫자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원정군이 출몰한다면? 요동국으로선 더 이상 저항할 수가 없어진다.

병사들의 사기도 사기지만 현실적으로도 버틸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이미 식량이고 체력이고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는 없소이다. 요동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한국과 협정을 체결해야 하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고수들로 이루어진 수백의 군대를 어찌 이긴다는 말이오? 이번 전쟁은 이미 진 것이오.”

요동국의 관리와 장수들이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다.

항복을 논의하는 모임이었다.

현재 요동국에서는 왕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기기는커녕 싸움을 계속하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장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장수들은 대한국의 강력함에 오히려 두려움까지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왕에게 알리지도 않고 이런 모임에 참석한 것이었다.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소. 하지만 왕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이오?”

항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룰 때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태사의 직책을 가진 주무라는 이였는데 한때는 장자방이라 불렸을 정도로 지모가 뛰어난 이였다.

“설득하지 못한다면 요동국은 멸망하게 될 것이오! 우리도 모두 죽은 목숨이 될 것이고 말이오. 그러니 우리는 뜻을 한데 모아 왕을 설득해야 하오!”

“양춘이 죽었소. 대한국과의 협상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말이오.”

“…….”

“왕은 투항할 뜻을 가지고 있지 않소.”

주무의 부정적인 말에 중랑장 손립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태사께서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려는 것이오? 절대 아니 될 일이오! 그랬다가는 요동국이 빵즈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오!”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였다.

이미 요동국의 점령지였던 낙랑군이 대한국의 영토로 넘어간 상황.

낙랑군이 그런데 강 건너에 있는 요동국이라고 안전할 리가 없었다.

투항을 하지 않는다면 요동국도 언젠가는 대한국의 식민지화 되거나 합병되고 말 것이었다.

“나는 단지 왕을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만 말했소. 강화 협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나 역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 말도 결국엔 협정을 포기하라는 소리지 않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왕을 설득하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빵즈들과 협정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맞는 말이었다.

요동국에서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왕의 의사에 반하는 협정을 한다? 그것은 나 좀 죽여 달라고 시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꼭 설득할 필요는 없지 않소?”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요?”

“왕이 가만히 있던 사자의 코털을 뽑았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자의 코털을 말이오. 그리고 전쟁의 피해가 이렇게 커진 것도 전부 왕 때문이오. 진즉에 강화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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