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적군의 지휘관은 야습을 주도했던 무인들로 판단되었는데, 일반 병사가 상대하기에는 확실히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었다. 그 실력은 루조조차 인정했을 정도였다.
‘뭐, 긍지가 어떻건 자존심이 어떻건 간에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해 주지. 우리 신선조를 상대로 이렇게나 잘 싸우다니 말이야. 하지만…… 그것뿐이다. 우리가 나선 이상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루조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한국 유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혼신을 다한 도격을 무려 세 번이나 막아 낸 한국 유저였다.
물론 그 세 번의 공격으로 사지를 하나 잃고 말았지만 한국 유저는 여전히 투혼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 무사로서의 기백을 몸소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무술가들이 수백이나 있으니 쇼니 군이 기를 쓰지 못했던 거겠지. 무술가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술가뿐이니 말이야.’
루조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감탄했다는 목소리로 한국 유저에게 말했다.
“조센징 주제에 제법이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지? 내가 조선의 왕 이름은 몰라도 너의 이름은 기억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한국 유저는 일본어를 모르는 듯 대답 대신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쯧.”
루조는 자신이 인정한 한국의 무술가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차고는 도를 납검하였다.
“제법이었으나, 이제 그만 죽을 시간이다.”
서걱!
섬전처럼 빠르게 달려들어 자신의 특기인 발도술로 단번에 상대의 목을 베어 버린 루조.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전황을 바라보았다.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전투 양상은 신선조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조선 정벌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간간히, 루조가 방금 상대하였던 창술의 고수처럼 신선조의 공세를 잘 막아 내는 한국인들이 보였지만 한계는 명확하였다.
무공 수준은 비슷할지 몰라도 전투 경험은 신선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군다나 한국 유저들은 통일된 집단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슷한 초식의 창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적들도 창술가뿐이었는지 도나 기형 무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의 전투에서 신선조를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리라.
‘아니, 앞으로도 영영 우리를 이길 가능성은 없을 것이야. 일본 제국 시대에 그러했듯 너희는 다시 우리의 식민지가 될 것이니까.’
루조가 거만한 미소를 짓던 그 순간, 그의 귓가에 들려서는 안 될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헉!”
“음? 이노우에?”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번대를 책임진 신선조의 조장, 이노우에 겐자부로.
당연하겠지만 이런 전투에서 전사할 인물이 아니었다.
일본의 영웅 중에 한 명으로서 조선 정복을 끝내고 천수를 누려야 할 인물이었다.
“이노우에 조장이 어째서 죽은 것이냐!”
예상치 못한 겐자부로의 죽음에 루조가 분노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겐자부로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번에는 돌격 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도류의 달인이자 4번대 조장인 도도 헤이스케가 죽임을 당하였다.
그 역시 겐자부로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영웅이었는데 결코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을 인물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죽는다면 중국과의 전쟁이나 본토에서 악전고투 끝에 죽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말도 안 돼! 조장이 두 명이나 죽다니! 그것도 천연이심류의 달인인 이노우에와 니텐이치류의 달인인 도도가 조센징 따위에게 죽었다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루조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력으로든 서열로든 신선조 안에서 십 순위 안에 드는 것이 겐자부로와 헤이스케였다.
일반 병사는 백 명도 상대할 수 있었고 무인도 아까 상대하였던 한국 무술가 수준이라면 두, 세 명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검술의 고수가 바로 두 사람이었다.
루조로선 두 명의 조장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현실이었고 죽은 사람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신선조의 정예 멤버들 역시 대거 죽임을 당하는 중이었다.
‘무술가가 내 예상보다 많았다는 것은 그렇다고 쳐. 하지만 저놈들의 실력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지?’
신선조의 실력자들이 연이어 죽임을 당한 이유, 그것은 바로 적군에서 추가로 무인들을 파견했기 때문이다.
최소 수백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합류하였으니 신선조가 밀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장들까지 허무하게 죽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두 명의 무인. 어마어마한 무력을 가진 두 사람에 의해 조장이건 조원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네놈인가.”
“……!”
루조는 괴한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였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제아무리 소란스러운 전장이라지만 신선조의 1번대 조장인 루조가 적군이 이 정도로 근접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네놈이 우두머리가 맞는 것 같군.”
으드득!
여유롭기 그지없는 상대방을 보며 루조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상대로 여유를 부리다니? 본국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방심한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스르릉’ 하고 도를 뽑는 소리가 들리더니 루조는 어느새 상대의 목을 향해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어지간한 실력자라면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의 발도술이었다.
물론 이 공격에 반응할 수 있는 실력자라도 대개 큰 피해를 입기 마련이었고 말이다.
“뭣이?”
하지만 루조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건 상대방의 실력이 ‘어지간한’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는 뜻이었다.
어중간하게 뛰어난 실력이었다면 이어지는 공격에 사지 중 하나는 잃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자의 강함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루조는 충격에 휩싸였다. 휘두르고 또 휘둘렀지만 벨 수 있는 것은 오직 잔상뿐이었다.
마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기분이었다.
쾌검의 달인인 루조가 이 같은 경험을 겪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를 상대하던 사람들이라면 경험했을지 몰라도, 정작 루조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충격적이었다.
‘마귀다! 마귀가 분명해!’
어찌나 충격에 휩싸였는지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괴한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괴한의 반격을 보며 루조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아니, 이자는 마귀 따위가 아니야. 이자는…… 무신이다.’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그자가 바로 무신이리라.
루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팔을 늘어뜨렸다.
전의를 상실한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서걱!
신선조의 1번대 조장, 키요시 루조는 그렇게 죽었다.
#협상
친위대가 추격을 마치고 성으로 복귀하자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너 나 할 것 없이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국왕 전하.”
“대한국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한국 유저들을 대신하여 국왕 전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동맹군의 장수들이 호영을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번 전투는 누가 뭐래도 호영이 주역이었다. 의병장이나 신라군의 장수들로선 호영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오. 여기 있는 모두가 전쟁 영웅이지 않소.”
호영이 겸양을 떨자 의병장들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이미 대회전에서의 승리로 인해 호영을 존경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난 상황.
국왕이 몸소 솔선했다는 것도 존경의 이유였다.
그런데 그만한 대승을 이루어 내고도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그들로선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하하하하! 쪽발이 따위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그놈들은 군대가 아니라 왜구야, 왜구. 크하하하!”
저기, 신라의 왕 최진수만 해도 겸손은커녕 오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는 그럼 이만, 병사들을 챙기러 가겠습니다.”
호영은 그렇게 최진수와 대비되는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는 자신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피해는?”
“사상자는 모두 삼백일흔여덟 명으로 그중에서 예순한 명은 지휘관 피해입니다.”
총인원이 2천 명밖에 안 되는데 사상자가 사백 명에 가깝다니! 승리한 전투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피해였다.
일본군과의 전투는 그만큼 치열했다.
“지휘관들이 큰 피해를 입었군.”
“신선조가 지휘관을 주로 노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충구의 말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일찍 친위대가 나섰다면 지휘관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의미 없는 일이었다.
“포로는?”
“모두 사백스물일곱 명입니다. 참고로 부상을 입어 안락사 시킨 일본군은 제외한 숫자입니다.”
“전리품은?”
“장창은 1,138점, 도는 750점, 장궁은 297점 획득하였습니다. 투구와 갑옷은 모두 1,278점입니다. 물론 망가진 장비는 세지 않았습니다.”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고한 충구였다.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충구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이 되는 즉시, 추격에 나선다.”
“용병들에게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일본군을 경상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전까지는 휴식할 시간은 없을 거야.”
친위대가 직접 추격에 나서면서까지 일본군을 몰살시키기 위해 힘썼지만 최소 오백 이상이 생존하고 말았다.
아마 그 안에는 신선조의 무인들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돌격대가 맡고 있는 일본군의 1군단 병력도 최소 삼백 이상이 살아 있었고, 경상도 북부를 휘젓고 있는 2군단도 남아 있었다.
수군이나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병력도 적지 않게 있었고 말이다.
경상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을 전부 합치면 다시 2천 이상의 군대가 만들어질 터.
대현 왕국의 군대와 합치면 3천도 넘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루빨리 일본군을 몰아내 경상도를 안정시키고 그 이후에는 신라를 멸하리라.
“그렇다면 신라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추격에 동조하는 사람만 데리고 갈 생각이다.”
“오늘 별다른 활약이 없었지 않습니까? 억지로 데려가도 반발할 사람은 없을 텐데…….”
“우리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강압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너무 호구처럼 굴면 역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충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대한국은 어디까지나 동맹군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번 일본군과의 전쟁도 대한국과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도 동맹국으로서 실리를 챙기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국은 바로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 전투만 봐도 그랬다. 전쟁의 당사자는 신라인데도 피해는 오히려 대한국 쪽이 훨씬 더 컸다.
신라군은 안전한 후방에만 배치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외에도 영토나, 보급에 관해 아직까지도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