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61화 (161/345)

# 161

호영의 너스레에 간부들이 크게 웃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격려의 말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지휘부는 충구의 한마디에 다시 진지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적군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당연히 추격전을 펼치게 되리라 예상하였는데 그 전에 대회전부터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군이 새벽에 입었던 손실을 생각하면 차라리 군을 뒤로 물려 경상도 북부의 2군단이나 후방에 배치된 예비대와 합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최소 삼백이 죽거나 다쳤다. 단 한 번의, 그것도 야간전투로 인해 일본군의 10퍼센트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이다.

만약에 동맹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다면 아직까지도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터.

그런데도 일본군은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대회전은 피할 수 없게 된 셈이었다.

“대회전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게 낫겠군.”

“그렇습니다. 적군이 조금이라도 위축되어 있는 지금이 선제공격을 가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간부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동소이한 답변이 들려왔다.

“신라의 국왕과 장수들 그리고 의병장들을 불러와라.”

선제공격하기로 결정한 호영은 동맹군의 장수들을 지휘소로 불러들였다.

가장 먼저 뜨거운 눈빛을 하고 있는 의병장들이 들어왔고 그다음에는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라의 영주와 장수들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신라의 국왕 최진수였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주인공이라도 된 듯, 위풍당당하게 지휘소로 들어섰다.

“모두 왔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우리 군은 지금 바로 선제공격을 할 것이오.”

갑작스러운 호영의 말에 신라군의 장수들은 크게 당황해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당황한 것은 아니었는지 최진수의 심복으로 보이는 이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수비를 포기하고 평지에서 싸우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일본군은 사기를 잃은 상태요. 더군다나 일종의 기병 같은 전략적인 쓰임을 가지고 있는 아국의 친위대가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서도 넓은 땅이 필요하오. 성에 틀어박혀서는 친위대의 활동이 아무래도 제한되니 말이오.”

“오백 명도 안 되는 친위대를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성을 포기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야간공격에서 일본군 삼백을 죽인 게 바로 친위대요. 숫자는 이백 명밖에 안 되지만 그 어떤 군대보다 정예하지.”

“…….”

일본군을 삼백이나 죽였다는 말에 사내도 할 말을 잃었다. 야간전투에서 그만한 활약을 보였다면 대회전에서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대한국의 국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 당장 출정하는 걸로 합시다.”

그때, 최진수가 말했다. 야전을 하겠다고 말이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그런데 정말 병력 배치는 어제 말씀하신 것처럼 가는 겁니까?”

호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최진수가 왜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제 호영은 만약 일본군과 야전을 치르게 될 시에 신라군과 의병대는 예비대로서 활용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즉, 전방은 대한군, 후방은 신라군으로 진영을 편성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최진수로선 이 같은 요구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최진수가 야전에 동의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피해를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한군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피해는 당연히 우리 군대가 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약간의 피해를 보는 대신, 명분과 인심을 얻게 될 것이다.’

전쟁 이후를 생각하면 사소한 피해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호영은 미소를 지우고는 최진수에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오늘의 전투는 우리 대한국의 군대가 주도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일본군을 무찌릅시다.”

최진수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부들에게 출정 명령을 내렸다. 출정 명령이 떨어지자 대한국의 군대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대한군은 출정 준비를 완료한 채 성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일본에게 패배하여 역적이 되겠는가, 일본군을 무찔러 영웅이 되겠는가!”

성 위에 올라선 호영이 그렇게 외치자 병사들이 동시에 대답하였다.

“영웅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겨라. 이번 전쟁은 질 수 없는 전쟁이다. 무조건 싸워 이겨 이 나라의 영웅이 되어라!”

“우와아아아아!”

호영은 그대로 성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앞장서서 진군하였다.

병사들은 그런 호영의 뒷모습을 존경심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호영의 뒤를 따라 걸었다.

* * *

예상대로 일본군은 대회전을 피하지 않았다. 동맹군의 공격에 그대로 반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역시 일본은 일본이군요.”

충구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간공격으로 큰 피해를 봤음에도 사기를 잃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아군이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일본군이 정예야.”

“그냥 정예인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무슨 임진왜란의 일본군과 조선군의 전투를 보는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일본 주제에 활은 왜 저렇게 잘 쏘는 겁니까? 검만 잘 쓸 줄 알았더니.”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기도 우세하였고 병력도 아군이 훨씬 많은 만큼 전투도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막상 겪어 본 일본군의 저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무술의 달인처럼 느껴졌고 조직력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를 연상케 하였다.

그야말로 최정예 군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로열패밀리 소속의 장수들이 분전해 주지 않았다면…… 완전히 밀렸을 것 같습니다.”

“비록 친위대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돌격대 이상의 무공 실력은 가지고 있으니까. 통솔력도 대단하고 말이야. 그러니 당연한 결과겠지.”

최정예 군대를 상대로 오합지졸에 가까운 동맹군이 버텨 낼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동맹군을 지휘하는 장수들이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로열패밀리, 즉 호영의 휘하에 있는 무인들은 1분기 때까지만 해도 친위대원이 되거나 준기처럼 수련에 집중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초보자의 섬에서 활동하였다.

2회 차 때부터 호영과 함께하며 충성심을 증명해 온 로열패밀리가 3회 차가 되고 나서도 호영의 측근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도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마침내 그들은 지휘관으로서 호영을 보좌하게 되었다. 지금 전쟁 용병들을 지휘하고 있는 장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아무튼 이대로 간다면 치열한 전투가 될 것 같은데요?”

“각자 가지고 있는 비밀 무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겠지.”

“음, 신선조라고 했죠? 그들이 어떤 시점에 끼어들지가 관건이겠군요.”

비밀 무기란 다름 아닌 무인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를 말하였다.

아군의 경우는 친위대가 바로 그 특수부대였고 일본군의 경우는 신선조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먼저 꺼내 드는 쪽이 불리할 거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그보다는 무공 수준을 조금이나마 관찰할 수 있으니 말이야. 무인들의 싸움에서 상대의 수준을 알고 싸우는가, 모르고 싸우는가의 차이는 의외로 커.”

호영이 하는 말에 충구가 반색하는 얼굴로 적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군이 유리하겠군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호영이 바라보니 새벽에 마주했던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적군이 보였다.

신선조로 추측되는 무리였는데, 확실히 등장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일단 검술 실력부터가 그랬다. 대부분의 무인이 ‘쾌검’을 구사하였는데 일반 병사는 그들의 공격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선두에 선 이도류의 무인은 그야말로 ‘신속’은 이런 검술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목을 부여잡은 채 쓰러질 정도였다.

무공을 익힌 장수들만이 그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다. 물론 그조차도 다른 무인들의 합공에 의해 순식간에 죽어 나갔지만 말이다.

“더 이상 지켜보다간 탈영병이 생겨나겠군. 장수들도 많이 죽겠고 말이야.”

창을 든 호영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적의 실력은 확인하셨습니까?”

“그래.”

“승산은 어떻게 보십니까?”

“당연히…… 필승이다.”

호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친위대를 불러들였다.

친위대가 집결하자 호영은 단 한마디만 하였다.

“출정한다.”

“충!”

적의 실력은 이미 준기가 파악해서 친위대원들에게 알려 주었을 터. 호영이 할 일은 그저 앞에서 듬직한 모습만 보여 주면 되었다.

* * *

대비하고도 막아 내지 못했던 야습 때문에 아침까지만 해도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일본군이다.

장수들 사이에서도 퇴각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였을 정도로 일본군 전체가 혼란스러웠다.

만약 적군이 선제공격을 가해 오지만 않았다면 퇴각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만큼 일본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적군이 수성을 포기하고 평야에서의 대회전을 선택하면서 일본군은 역설적으로 사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하였는데 적군의 모습이 한눈에 봐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진영은 마치 오합지졸처럼 엉성했고 발걸음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병과가 창병 하나뿐이었는데 방패도 별로 없었는지 대부분의 병사들이 맨몸으로 화살 공격을 받아 낼 정도였다.

일본에서는 이제 전쟁을 할 때 여러 병과를 거느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구의 전쟁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병과의 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전쟁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자칭 사무라이 유저들은 활과 검, 그리고 방패와 창까지 웬만한 무기는 곧잘 다루었다.

지금 조선 정벌군에 가담하고 있는 사무라이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하나같이 전쟁의 달인들이라 같이 모여서 훈련한 것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완성된 군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완성된 군대인 조선 정벌군의 입장에서 창병밖에 없는 대한국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팔을 비트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굳이 신선조를 이끌고 있는 루조가 나설 필요도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설마 무공을 익힌 자들이 초전부터 참전할 줄이야. 조센징들은 무술가로서의 긍지도 없나? 야간 습격에 나선 것도 그렇고, 무술가보다는 군인에 가까운 놈들이군.’

일본군의 지휘부는 오합지졸 같은 적군의 모습을 보고 승리를 확신하였지만 전투는 의외로 엎치락뒤치락,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처음 화살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혔고 병사들 간의 전투에서도 큰 이득을 보았다. 적군의 외양을 보고 예상했던 대로 양군의 전투력 차이는 어마어마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적군을 지휘하는 소수의 지휘관들에 의해 어느 순간부터 막상막하의 접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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