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60화 (160/345)

# 160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친위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백밖에 안 되는데…….”

“아니, 저는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전하나 친위대의 무공이라면 적의 대비가 단단해도 언제든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친위대만 데리고 가겠다는 호영의 말에 찬반이 나뉘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친위대가 보여 준 업적이 있어서인지 찬성이 조금 더 많았다.

호영은 그런 간부들을 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군에는 기병이 없다. 그 말은 친위대를 추격할 수 있는 병과가 없다는 뜻이지.”

물론 3대 낭사조가 참전하였다면 친위대만큼 기동력이 뛰어난 무인들이 추격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호영은 그렇기에 더욱더 야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회전을 치르기 전에 적군의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준기가 함께라면 위기가 발생해도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을 거다.’

* * *

스케모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로그아웃 금지 명령을 내려놓기를 잘하였군.”

대한군이 야습할 가능성은 절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대비해 놨는데 새벽이 되기 무섭게 대한군이 야습을 시도하였다.

만약에 야간전투를 대비하지 않았다면 제법 큰 피해를 보았을 터.

하지만 스케모토는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졌고 거기에 대한국을 극도로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일본군으로서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 준 셈이었다.

“그런데 전투 시간이 왜 이렇게 길지?”

적도 아군이 야습을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지금쯤 군을 물려야 정상이었다. 야습이란 실패하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말은 적군이 퇴각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

그리고 간간히 전해지는 보고들도 하나같이 부정적이기 그지없었다.

마치 무방비한 상태로 야습을 당한 것 같았다.

“왜지? 분명히 대비하고 있었는데?”

“이유야 뻔하지 않소?”

스케모토가 의문을 느낄 때 루조가 불쑥 다섯 명의 조장들과 함께 스케모토의 지휘소에 등장하였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었다.

‘신선조를 상대로 호위가 의미 없다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신경을 써야겠군.’

스케모토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루조에게 물었다.

“어떤 이유를 말하는 것이오?”

“무인들이오.”

“무인?”

“병사들이 무기력하게 당하는 이유야 그것 말고 또 있겠소?”

“으음, 그렇다면 신선조가…….”

“안 그래도 우리가 나설 생각이었소. 조센징들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하였으니 말이오.”

루조의 자신감 어린 목소리에 스케모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처럼 대한국이 무인들을 동원하여 야간공격을 시도한 것이라면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선조뿐이었다.

“부탁드리겠소.”

“대신 조건이 있소.”

“이 급박한 상황에서 조건이라? 분명 계약 조건이 나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 준다는 것도 포함되었던 걸로 기억하오만?”

“계약한 것은 어디까지나 하급 루닌들뿐이지 않소? 뭐, 우리 신선조의 주력이 도와주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조건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이오.”

스케모토는 순간 짜증이 났지만 애써 억눌렀다.

애초에 루조가 지휘소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삼의 목적이 있음을 짐작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성정대로라면 통보도 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출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건이 무엇이오?”

“내일 있을 전투에서 지휘권을 행사하고 싶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제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조건까지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루조는 스케모토가 분노하는 모습을 봤음에도 뻔뻔한 얼굴로 같은 주장을 반복하였다.

“총대장 휘하에는 무공을 익힌 이가 열 명도 안 되지 않소? 내일 있을 조센징들과의 전투는 무인들의 전투가 될 것이오. 무인도 아니고 무인을 지휘해 본 적도 없는 총대장보단 신선조의 조장인 내가 지휘권을 행사하는 게 여러모로 이치에 맞소.”

“주장은 나, 쇼니 스케모토요. 신선조의 고용주도 바로 나고!”

그 말에 루조는 가소롭다는 양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고용주께서 우리 신선조를 믿고 맡겨 달라는 것이오. 전투는 총대장보다 우리가 훨씬 자신 있으니까.”

“들어줄 수 없는 제안이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나는 쇼니가의 당주요! 아무리 신선조의 조장이라지만 이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지 않겠소.”

“내가 말을 어렵게 했나? 아니면…… 신선조가 우습게 보이는 것인가?”

루조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인들도 버티기 쉽지 않은, 엄청난 살기였다.

당연하겠지만 무인들도 버티기 어려운 살기를 조금 단련된 일반인에 불과한 스케모토가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크윽……!”

무릎 꿇으려는 것을 간신히 제어한 스케모토는 분노 어린 눈빛으로 루조를 노려보았다. 눈빛만 보면 루조 이상의 살기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그러자 루조는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기세를 누그러뜨린 채 말했다.

“총대장, 마지막으로 제안하겠소. 지휘권을 나에게 넘겨주시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다이묘인 나를 이리 대한다면 일본에서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신선조는 어디까지나 대일본을 위해 존재하오. 실제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우리에게 입지나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대일본의 미래. 그리고 우리 신선조의 국장께서는 조선이…… 대일본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소.”

“그렇다면 신선조가 조선 정벌군에 참여한 것도?”

“대한국이라는 나라가 머지않은 미래에 일본을 위협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대한국이 아무리 조선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나 석고가 100만 석도 안 되는 나라다! 제국은커녕 왕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소국인데 그런 나라가 어찌 대일본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말이냐!”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소. 하지만 국장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을 나보고 어쩌란 거요?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되도록이면 신선조의 행사를 방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소. 지휘권도 당연히 우리에게 넘겨주고 말이오.”

스케모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죽어도 들어주고 싶지 않은 요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병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저항해 봤자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의 생사여탈권은 신선조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다. 뜻대로 하게 해 주겠다.”

“현명한 선택이오.”

루조는 씩 웃으며 물러났다. 협박이 성공하자 곧장 반격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다.

그런 루조의 뒷모습을 보며 스케모토는 갑자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꿍꿍이인가 궁금했더니, 예상했던 그대로였군. 그래, 신선조. 너희들은 너희가 바라는 대로 일본을 위해 싸워라. 나는 나의 쇼니 가문을 위해 싸울 것이니까.’

음모를 꾸미는 것은 신선조뿐만이 아니었다.

* * *

호영은 수도 없이 많은 적군을 베다가 갑자기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쉽다고?”

어두컴컴한 새벽이라 적군은 물론이요, 아군까지 전투에 제한이 생겼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최소 수백 명은 죽인 것 같았다.

많아 봐야 2,500 정도밖에 안 되는 군대를 상대로 무려 수백 명이나 살상한 것이었다.

이건 뭐로 보나 대회전에서의 승리보다 훨씬 값진 승리라고 볼 수 있었다. 일단 아군의 피해가 극소수에 불과하였고 사기 면에서도 엄청난 효과를 거둔 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이 같은 성과에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의아해하였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그는 일본군에도 무공을 익힌 자가 최소 수백은 될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럴듯한 정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규모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증가한 만큼 병력의 질 역시 증가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호영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일본군도 나름대로 야습을 대비한 것 같기는 하지만 무공을 익힌 친위대를 상대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친위대원들은 하나같이 심법을 익히고 있어 환한 대낮까지는 아니어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으로는 보였기에 사지 멀쩡한 일반인이 눈 뜬 장님을 상대하는 격이었다.

물론 전투력의 수준도 차원이 달랐고 말이다.

“지친 사람 있나?”

공격하던 진영이 갑자기 불로 인해 밝아지자 호영은 잠시 군을 물리고는 친위대에게 물었다.

그러자 친위대원들은 멀쩡한 기색으로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호영은 피식 웃으며 ‘그렇다면 계속 싸울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친위대원들은 이번에도 기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침이 될 때까지 싸울 수 있습니다!”

“작정하면 해가 뜨기 전에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지친 사람도 있었겠지만 분위기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참에 일본군을 몰살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원래라면 슬슬 물러나야 하겠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 더 싸워 볼까.’

전체적인 전황을 보았을 때 전투를 이어 가도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호영이 결정을 내리고 명령을 내렸다. 아니, 내리려고 하였다.

“전하, 잠시 저쪽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준기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적진을 바라보니 갑자기 분위기가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혼란이 급속도로 안정되었는데, 그때 적진 중앙에서부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안정된 발걸음과 맹렬하게 피어오르는 기세, 그리고 어둠 한가운데에 서 있는 아군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시선까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병력이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저런 자들이 있었다면 진즉에 나섰어야 할 일인데?’

호영은 그 무리를 보고 의아해하였다. 극심한 피해를 본 이후에 나타난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퇴각하라.”

“충.”

싸운다고 질 것 같지는 않지만 호영은 무리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이번 야습에서 얻어야 할 것은 전부 얻은 상황이었다.

일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무엇보다 낭사조의 전력으로 보이는 무인들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 정도의 수확을 얻었는데 굳이 미련을 둘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친위대가 물러나자 일본 무사들이 다급하게 추격하였다. 하지만 친위대는 속도에서 밀리지 않았고 결국 무사히 복귀에 성공하였다.

* * *

“우와아아아아!”

“대한국 만세! 진왕 전하 만세!”

아침이 되자 동맹군의 진영은 환호로 가득하였다. 어제 있었던 엄청난 승리에 크게 고무된 것이었다.

특히 신라군의 함성 소리가 요란했다. 연패를 거듭하던 신라군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라 병사들이 대한국을 연호하고 있습니다.”

“전하를 연호하는 의병들도 보입니다.”

“감축드립니다!”

간부들이 웃음기로 가득한 얼굴로 호영에게 말했다. 그들도 어제의 승리에 사기가 고무된 것이었다.

“나보다는 친위대원들이 고생하였다. 지난 전쟁에서 활약하지 못한 게 아쉬웠던지 아주 맹렬하게 싸우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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