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만약 일본군이 활개 치는 것을 방관한다면 대한국은 한국 유저들에게서 엄청난 지탄을 받게 될 것이었다.
애초에 모험가 조합의 유저들부터가 반기를 들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호영은 예정보다 빠르게 군사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두 나라가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나서야겠어.”
“예,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대현 왕국의 해군은?”
가장 먼저 긴 시간을 들여 회유를 시도하였던 대현 왕국의 해군에 대해 물으니 충구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답변하였다.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언제든지 아국의 깃발로 바꿔 달 것입니다.”
회유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일단 그대로 대현 왕국을 따르는 척하라고 해. 괜히 혼란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 대현 왕국이 일본에 투항한다면 그때는 아국으로 넘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들도 일본에게 투항하는 것보단 우리에게 투항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충구의 대답에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명분은 어차피 대한국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왜 본래 역사와 다르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호영은 경상도에 상륙한 일본군을 전멸시킬 생각이었다. 대현 왕국의 해군을 포섭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육지에서 도망친다면 해상에서 몰살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 *
전라도를 정복하고서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대한국은 다시 출정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경상도가 목표였다.
그때 마침 신라 왕국에서 사신이 찾아왔다.
‘최명헌의 신라가 아니라 최진수의 신라여서 그런가? 본래 역사에서는 일본에 가장 협조적인 게 신라였는데 뜬금없이 대현은 항복하고 신라가 결사항전하는 쪽을 선택하는군.’
신라의 사신이 호영에게 말했다. 대현 왕국이 일본에게 항복하였다고. 그러니 대한국은 신라 왕국과 힘을 합쳐 일본군과 맞서 싸우자고 말이다.
호영으로선 무척이나 의외의 제안이었다. 본래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출정할 예정이었으니 명분 하나가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대한국의 병사들이여, 출정하라! 우리의 동맹국을 공격하는 일본군을 격퇴하러 가자!”
출정 명령이 떨어지자 원정을 떠나는 대한국의 병사들이 열렬한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쪽발이를 죽이자! 왜구 놈들을 죽이자!”
“대한국 만세!”
병사들은 마치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같이 들떠 있는 기색이었다.
김성근이 지휘하는 돌격대야 말할 것도 없었다. 대장을 닮아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던 친위대도 이 순간만큼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대일본전!
언제나 그랬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든 어디에서든 일본에게 이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다. 본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들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일본은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쳐들어왔다. 그러고선 온갖 패악을 저지르며 한국 유저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벌써 일본군의 손에 의해 죽은 유저 수만 천 단위였다.
비록 그들이 대한국의 유저가 아니라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인의 손에 의해 한국인이 당했다는 사실만 중요할 따름이었다.
“충청도나 전라도를 정복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인데요? 전의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기세를 보니 이번에는 탈영병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숫자가 1천 명 이상 차이가 나서 조금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참모나 장수들도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전의를 다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리라!
* * *
친위대 이백, 돌격대 오백, 전쟁 용병 2천.
대한국은 3천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경상도로 진입하였다. 전라도에는 1천의 중앙군과 삼백의 수인족을 남겨 둔 채였다.
그때 신라는 일본군과 대현 왕국의 공세에 퇴각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일본군은 진로를 세 개로 나누어 신라를 전 방위로 압박하였는데 신라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친정하여 대한군을 직접 지휘하던 호영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군사가 세운 전략대로 움직인다. 돌격대장.”
“소장을 부르셨습니까, 전하!”
“적이 아군의 등장 시기를 예상 못 하고 있는 지금, 돌격대가 본대에서 이탈하여 서쪽으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격퇴한다.”
“하하하하! 중요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쪽발이들을 모조리 무찌르도록 하겠습니다!”
충구의 전략이란 일종의 각개격파였다.
기동력과 전투력이 상당한 돌격대를 선봉으로 보내 세 개로 나뉜 적군 중 하나를 공략하려는 것이었다.
“단, 무리해서는 안 된다. 적의 군세는 1천이 넘고 무인의 숫자도 적지 않아.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격대는 유격전이 특기입니다. 적의 대비가 어떻든 간에 유기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난 척은 심해도 결코 허언은 하지 않는 김성근이었다.
호영은 그런 김성근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친위대를 비롯한 본대 병력은 신라의 수도인 김천으로 향한다.”
“경상도 북쪽 방면으로 진군하고 있는 일본군과 대현 왕국의 군대는 어찌하실 의중입니까?”
“포기한다.”
호영은 비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중을 밝혔다. 경상도 북부를 포기하겠다는 의중을 말이다.
‘구하고자 한다면 못 구할 것도 없지만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완전히 나의 땅이라면 몰라도, 아직은 신라의 땅에 불과한 지역을 구하겠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적의 본대는 2천이 넘었다. 대한국의 본대 역시 돌격대를 제외해도 2천은 되었지만 병력을 쪼개기에는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반 병사의 전투력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한국 유저들과 다르게 일본은 1회 차부터 전쟁으로 단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하, 차라리 친위대나 친위대장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상도 북부는 이대로 포기하기에 너무 아까운 땅인데.”
그래도 곧 있으면 대한국의 땅이 될 곳이라 생각해서인지 참모 중 한 명이 그런 의견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때 준기가 갑자기 발을 구르며 말했다.
“소장과 친위대는 전하를 지키는 검이오.”
“……그렇군요.”
김성근이었으면 공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출정하기를 원했겠지만 준기는 달랐다.
그에겐 공명심이라는 것이 없었다. 오직 호영의 곁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내였다.
물론 호영의 명령이 있다면 1분기에 반란군을 진압했던 것처럼 다른 임무를 맡게 될 수도 있겠지만 호영도 딱히 그에게 다른 임무를 맡길 생각이 없었다.
무려 일본과의 전쟁이었다. 충청도나 전라도에서 있었던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친위대가 그의 곁을 떠난다면 호영이라도 위험할 수 있었다.
‘특히 규모 면에서 회귀 전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게 마음에 걸려. 어쩌면 신선조처럼 무공을 익힌 낭인들도 쳐들어왔을지 몰라. 그리고 만약 그들이 쳐들어왔다면 친위대나 준기가 없이는 상대하기가 곤란해져.’
중국이 세가나 문파 같은 곳에서 무공을 독점하고 있다면, 일본의 경우는 일종의 용병 길드라고 할 수 있는 낭인들이 무공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신선조라는 이름의 낭인 무사 집단은 일본의 손꼽히는 무력 단체였다. 일개 낭인 무사 집단에 불과한데도 무공을 익힌 무인의 숫자가 일본 그 어느 세력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친위대나 준기에게 호위 이외의 임무는 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호영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전이었으니 말이다.
“친위대도 본대와 함께 움직일 것이다. 일본군은 지금까지 싸웠던 상대와는 전혀 다른 군대이니 경솔한 판단은 자제하도록.”
“죄송합니다.”
“자, 이제 지시했던 대로 움직여라. 본격적으로 일본군과 전쟁할 시간이다.”
호영의 말에 간부들은 신속하게 자신의 자리로 찾아갔다.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김성근이었다. 그는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돌격대를 소집하더니 곧바로 출정에 나섰다.
누구보다 빠르게 일본군을 쓰러뜨리고 싶어서 서두르는 것이었다.
돌격대가 출정에 나서자 용병들은 그런 돌격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장수들이 진격을 명하자 용병들은 흥분한 기색으로 진격하였다.
그들이 기다리던 일본군과의 전쟁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었다.
#신선조
쇼니 스케모토는 직접 조선 정벌군을 이끌고 있었다.
본래는 그의 가신이자 쇼니 가문의 용장으로 유명한 구키 요시타카를 정벌군의 수장으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정벌군의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그가 직접 지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5천!
수군까지 포함하면 조선 정벌에 참여한 병력의 규모가 무려 5천이 넘었다. 3회 차가 되면서 봉지의 석고가 20만 석 이하로 줄어든 쇼니 가문의 역량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총동원한 병력과 비슷한 규모의 병력이 이번 전쟁에 동원된 것이었다.
하극상이 일상이라고 볼 수 있는 일본에서 제아무리 총애하는 가신이라 해도 이만한 병력을 믿고 맡기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것도 조선이라는 머나먼 나라로 원정을 떠나는 군대를 말이다.
스케모토로서는 하극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친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한국의 군대라…….”
예정에도 없던 친정에 나서게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사고나 문제 같은 것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었다.
비록 스케모토의 무용이나 군략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지만 1회 차부터 쇼니가의 당주를 역임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대단하였고, 통솔력이나 판단력 또한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동백 왕국이나 대현 왕국의 군대는 예상보다 조금 더 강했을 뿐, 조선 정벌군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약했다.
이런 상대들과 전쟁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스케모토가 지휘하는 조선 정벌군은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연승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던 일본군의 연전연승은 어제가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난데없이 대한국이 참전하면서 연전연승이 깨지게 된 것이었다.
“구키가 이끄는 제1군단이 대한국의 군대에게 패배하였다고?”
“그렇습니다. 오백 정도에 불과한 군대였는데, 압도적으로 깨졌다고 합니다.”
총감독인 이시다 미츠나리의 말에 스케모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졌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계속된 승리에 방심해서 진 것은 아니냐? 구키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쯤 방심했을 것 같기는 한데.”
“대한국에서 보낸 오백 명의 병력 전부가 무공을 사용했답니다.”
“그렇다면 기사가 오백이 넘는다는 말이 아니냐!”
일본에서는 무공을 익힌 사무라이를 기사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말하는 기사란 시스템에서 인정하는 기사와 동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