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48화 (148/345)

# 148

#양위 선언

적색 말을 탄 7척 거한이 자신의 방천화극을 손에 쥐며 외쳤다.

“모두 돌격하라!”

그 말을 외치고서 채찍을 하자 거한을 태운 적색 말은 바람처럼 내달렸다.

다그닥다그닥!

거한의 뒤에는 무려 수천의 기병이 따르고 있었다. 모두 거한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이었다.

“더러운 오랑캐를 죽이자!”

“중화 민족의 힘을 보여 주자!”

병사들은 저마다 한껏 소리를 지르며 용감하게 돌진하였다. 그들이 돌진하고 있는 정면에는 마찬가지로 수천의 기병이 달려오고 있었다.

금나라, 아구대의 전사들이었다.

양측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리고 이내 콰아앙,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접전이 시작되었다.

서로 비슷한 규모를 가졌기에 전투 초반은 무척이나 치열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적색 말을 탄 7척 거한의 활약에 기세가 넘어오기 시작하였다.

“내가 바로 요동국의 왕, 공손태다!”

인중여포, 마중적토!

마치 삼국지의 여포를 보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활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한이 적장의 목을 벰으로써 전투가 끝이 났다.

“아구대가 죽었다! 금나라의 수괴가 죽었다!”

사내, 공손태의 손에 금나라의 왕 아구대가 죽임을 당하자 금나라 기병들은 지금까지 보여 준 용맹함이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비루한 행동을 하였다.

자신의 주군을 죽인 적장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등을 돌리고 도망간 것이다.

공손태는 그런 금나라의 기병들을 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추격하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전투의 양상은 순식간에 추격전으로 바뀌었다. 4천 남짓의 금나라 기병들이 필사적으로 도주하였고, 그 뒤를 5천의 요동군 기병들이 바짝 쫓았다.

15킬로미터쯤 이어진 추격전 끝에 금나라의 3천도 안 되는 기병들만이 간신히 살아남은 채 공손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멈춰라!”

히이잉!

말의 고삐를 당기며 공손태가 그렇게 외치니 요동군의 기병들이 신속하게 말을 멈춰 세웠다.

“더 추격할 수 있습니다!”

“이참에 야만족들을 몰살시켜야 합니다!”

장수들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 시간 동안 전투를 치렀음에도 여전히 체력에 여유가 있는 모습들이었다.

“금나라의 수괴가 죽었다. 구심점이 사라졌으니 저들은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만 돌아간다.”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지만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재차 추격을 요구하는 장수가 있었다.

“조금만 힘을 내면 천 명은 더 죽일 수 있습니다!”

“이만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돌연, 공손태의 방천화극이 목소리를 높이던 장수의 목에 닿았다.

“내 명령을 듣지 못한 건가?”

장수는 두려운 표정을 한 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방천화극을 바라보았다.

공손태의 방천화극이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수차례 증명된 사실이었다.

만약 다시금 이견을 내세운다면 그의 목은 그대로 갈라질 것이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공손태를 향해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두 번은 없다.”

“감사합니다!”

“모두 말머리를 돌려라! 돌아간다!”

그답지 않은 관대함으로 수하를 용서해 준 공손태는 회군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요동국의 병사들은 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회군하였다.

“금나라는 왕이 죽었고 부여는 내분이 일어났다. 오크족은 수인족과 전쟁을 하느라 외부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행군하던 중에 불현듯 말을 꺼내는 공손태.

장수들이건 병사들이건 가릴 것 없이 눈과 귀를 활짝 열어 공손태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더 이상 우리의 후방을 귀찮게 할 존재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원으로 진출하는 것입니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올해 안에 요서를 정복하겠습니다!”

공손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수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중원!

만주를 변방으로 생각하는 요동국의 중국 유저들은 3회 차의 목표를 중원 진출로 정하였다. 그들이 위치한 만주를 일통하는 것이 아닌 중원을 진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는 남쪽으로 간다.”

“연나라가 아닌 낙랑입니까?”

장수 중 한 명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남쪽, 즉 낙랑으로 진출하는 것은 그들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후방을 안정시킨 이후, 요서에 근거지를 둔 연나라를 정복하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패배자들이 세운 낙랑 따위는 목표가 될 수 없다.”

“하면, 어디를 정복하실 의중이십니까?”

“한국을 정복한다. 이번 회 차의 최종 목표는 고려 봉자(高麗棒子)들을 나의 지배하에 두는 것이다!”

그 같은 공손태의 선언에 장수들은 희열에 찬 얼굴로 남쪽을 바라보았다.

한국! 공손태가 정한 이상 앞으로 그곳은 요동국의 땅이 될 것이었다.

5천, 그것도 기병만으로 5천 명의 군사력을 가진 요동국의 군사력을 한국 따위가 막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에서 받았던 굴욕, 본 게임에서 갚아 주마! 고려 봉자!’

야비하게 나무 위에서 화살이나 쏘며 어부지리를 취했던 한국인! 긍지 높은 자존심을 가진 공손태는 튜토리얼에서 겪었던 굴욕을 잊을 생각이 없었다.

중원 진출이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복수는 하고 마리라!

* * *

“다이묘! 도요타 왕국이 또다시 군사를 동원하였습니다. 오토모 가문을 완전히 끝장낼 기세입니다.”

“사쓰마도 오키나와 정복을 완료하였습니다. 이제 그들도 북벌을 하여 규슈 통일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규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전토가 전국시대를 재현하듯, 매일같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 쇼니 가문도 대세에 순응해야 합니다, 다이묘!”

막료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주전론을 펼쳤다.

현재 일본의 군주들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혼슈에서는 제국, 왕국, 전국대명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대규모 전쟁을 벌였고 홋카이도, 시코쿠에서는 수호대명, 바이신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소규모 전쟁을 벌였다.

규슈에서도 왕국이나 다이묘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연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오직 쇼니 가문만이 3회 차가 시작되고서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쯧쯧.”

쇼니 가문의 제11대 당주, 쇼니 스케모토는 막료들의 주전론을 듣고서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이묘들과의 전쟁은 1, 2회 차에도 지겨울 만큼 치렀었다. 네놈들이 하라는 대로 말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땠지? 2회 차에 분명 규슈의 북부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3회 차가 되면서 후쿠오카 지역을 모조리 빼앗기지 않았더냐? 우리가 관여하지 못했던 100년의 시간 동안 말이다.”

“전쟁을 치러서 세를 불렸기에 그나마 나가사키와 사가라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이묘시여! 세력을 넓히지 않으면 쇼니 가문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쇼니 가문의 미래를 위해 부디 대세에 순응하십시오!”

“맞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다른 다이묘들이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평화를 지키고 싶다면 오히려 싸워야 합니다!”

스케모토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막료들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전쟁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하였다.

“료타!”

그때, 스케모토가 갑자기 말석에 앉아 있는 사내를 불렀다.

“하이!”

“부네는 몇 척이 준비되었느냐?”

“세키부네 10척에, 아타케부네 1척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료타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의 대답에 스케모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면 쓰시마를 정복하기에 충분하겠어!”

“에에?”

뜬금없이 쓰시마를 정복하겠다는 스케모토의 말에 막료들이 기겁하였다.

“다이묘, 쓰시마라니요?”

“설마 규슈를 포기하고 외부로 진출하겠다는 뜻입니까? 아니 될 말입니다. 쓰시마를 정복한다고 해서 쇼니가에 득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다는 위험합니다! 태풍이나 해양 마물들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쓰시마를 정복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전쟁을 주장했던 막료들이지만 바다를 건너 쓰시마에 진출하는 것만큼은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바다는 무척이나 위험하였다.

쇼니 가문이 차지하고 있는 이키 섬과 쓰시마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고는 하지만 바다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함부로 진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진출해 봤자 그들에게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쓰시마는 불모지에 가까운 섬이었기 때문이다.

“오토모나 도요타, 사쓰마를 상대하는 것보단 덜 위험하다! 그리고 득 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쓰시마를 점령하면 다이묘들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스케모토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막료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바로 조선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음.”

“조선이라…….”

“……?”

막료들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 즉 한국을 공격한다고 어떤 이득을 본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 유저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지쳐 있다. 정확히는 지겨워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언제나 똑같은 상대,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니까.”

“그렇다면 조선을 치는 이유가?”

“정한론! 메이지유신 때 대두되었던 정한론을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지.”

“호오.”

“헉!”

스케모토의 말에 몇몇은 감탄하였고 나머지는 경악하였다.

국가도 아닌 일개 번의 영주가 조선을 정복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조선을 정복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야. 이번 회 차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가장 먼저 정한론을 외쳤다는 것이고, 이 정한론은 일본 유저들을 끌어모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 말에 경악하는 표정을 짓던 막료들도 탄성을 내질렀다.

충분히 현실성 있는 말이었다. 본 게임에 참여하는 일본 유저들 중에서는 극우에 해당하는 이들도 많았고, 제국주의를 신봉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현재 그들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으로 목숨이 소모되고 있었지만 쇼니 가문이 중국이나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방도를 만들어 준다면 단숨에 쇼니 가문으로 집결할 것이었다.

“묘책이십니다!”

“세력이 없는 유저들을 끌어모으기에 이보다 좋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센징들은 대한국이라는 나라를 제외하곤 아직도 미개한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다 하니 실제로 정복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스케모토의 주장에 과반 이상의 막료들이 찬성을 표하였다. 막료들도 다이묘들과 무의미한 소모전을 이어 가는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바다를 건너 한국을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정한론은 쇼니 가문의 대세가 되었다.

* * *

“빌어먹을 이 왕자 놈!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빼앗으려고 하다니! 이제 왕세자가 되었다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는 것인가!”

영세라는 이름을 가진 호족이 포문을 여니 집회에 참석한 다른 호족들도 이에 질세라 이 왕자, 대진을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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