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물론 적군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겠지만…… 아마 쉽지만은 않을 거다. 정보전은 미래를 경험한 내가 한 수 위일 테니까.’
전쟁이 벌어지면 유언비어와 뜬소문으로 가득해진다. 호영은 바로 이 점을 노려 적들에게 역정보를 흘렸다.
아마 적군은 호영이 남하하고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호영은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이라는 역정보를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경들도 보고를 들어서 알겠지만 적군은 세 개로 나뉘었다.”
1군, 2군, 3군으로 나뉘어 진격하는 적군.
평택에서 출발한 1군은 화성 방향으로, 안성을 장악한 2군은 용인 방향으로, 본대에 해당하는 3군은 동부의 대한국군을 공략하기 위해 이천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병력은 모두 4천 정도로 본대가 2천이고 1군과 2군이 각각 1천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도 군을 세 개로 나누고자 한다.”
안 그래도 유리한 전쟁이었다. 굳이 3천에 달하는 전쟁 용병들을 한 번에 투사하려고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규모가 크면 그만큼 이동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법. 그렇기에 호영은 자신의 군대도 세 개로 나누고자 하였다.
적의 공격에 정면으로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돌격대장.”
군대를 나누기 위해 가장 먼저 돌격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김성근을 불렀다. 그러자 김성근이 실실 웃으며 대답하였다.
“흐흐, 말씀하십시오.”
“돌격대만으로 적의 2군을 상대할 수 있겠나?”
호영이 들떠 있는 김성근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으니 김성근이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돌격대는 대한국 최고의 부대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차기 친위대라 불리는 의용군의 돌격대. 숫자는 오백일흔네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수천 명의 유저들 중에서 가리고 가려 뽑은 정예 유저들이었다.
무인의 등급으로 따지면 D급과 E급 사이. 2회 차의 친위대보다 약간 부족한 정도였다. 하지만 숫자가 많았고, 장비도 무척이나 출중하기에 친위대보다 전투력이 우월하였다.
그들이라면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2군의 병력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돌격대가 2군을 맡는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김성근이 환희에 찬 얼굴로 호영의 명령을 받들었다. 그러고선 곧바로 자신의 돌격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호영은 그런 김성근의 뒷모습을 믿음직한 눈으로 바라봐 주고는 고개를 돌려 백면서생처럼 생긴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명회.”
“예.”
사내, 명회가 호영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너는 1군을 상대해라.”
“…….”
“할 수 있겠느냐?”
명회는 김성근과 달랐다. 승리를 확언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신에게 병력을 어느 정도나 주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가는 길에 견인 전사들이 있다. 숫자는 대략 삼백. 그들을 데리고 가라.”
100년 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한국의 왕실에 변함없는 충성심을 바쳐 오던 견인 전사들이 존재하였다.
대부분의 수인족이 강원도로 이주했음에도 여전히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던 그 견인 전사들은 이번에도 왕실의 수호자를 자처하였다.
호영과 전장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것이다.
‘철제 무기의 존재로 예전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수인들이라면 2인분 이상은 족히 할 것이다.’
그들이 보여 준 충성심만큼이나 호영은 그들의 전투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견인 전사들이라면 2배 이상 차이 나는 군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부족합니다. 상대는 1천 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명회는 호영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인지 견인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였다. 완벽주의자답게 숫자를 동등하게 맞추고 싶은 것 같았다.
“대한국의 병사들도 있을 것이니 그들을 동원하면 될 것이다.”
“그들이 소신을 따르겠습니까?”
“내 명령이라면? 과연 따르지 않을 것 같으냐.”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부족한 것은 없겠지?”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대답하였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자신감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호영은 잠시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굳이 너를 보내는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호영의 최측근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명회는 문사였다. 더군다나 NPC이기도 하고.
원래라면 호영의 곁을 보좌하는 것에 충실했어야 할 인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호영은 굳이 명회를 전장에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견인 전사들과 대한국 병사들을 통솔하라는 어려운 임무까지 떠맡기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아니, 아군이 생각하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일 것이었다.
“군사로서 견인 전사들을 적절하게 조율할 것 같다는 이유는 아닐 것이고……. 혹, 군공을 이계인들이 독점하지 않게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나 명회는 호영의 생각을 곧바로 맞혀 냈다.
승전 이후, 공적을 분배할 때 생기게 될 문제점을 사전에 정리하려는 취지임을 알아맞힌 것이었다.
“맞다. 그래서 대한국의 병사들과 견인 전사들을 너에게 보내려는 것이다. 이곳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 활약해 줄 필요가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유라고 볼 수도 있었다. 누가 이길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 이후를 걱정하는 셈이었으니.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군공을 적절하게 분배할 기회 말이다.
‘이대로 내가 왕이 된다면 공을 세운 적이 없는 NPC들은 권력에서 소외당하게 될 거야. 이후의 정치는 유저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고.’
NPC든 유저든 한쪽만 편애한다면 결과가 좋을 수 없었다. 2회 차 때도 그랬듯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명회를 이용해서라도 NPC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했다. NPC도 공신에 포함될 수 있도록 말이다.
‘뭐, 포상을 퍼 주기엔 파산할 것 같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크지만.’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너무 많은 보상을 내걸었다. 유저들이 공을 세우면 세울수록 손해를 보게 될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호영으로선 유저들의 활약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파산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주군의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적의 본대를 상대하는 것은 이계인들이니 결국 군공의 독점은 피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2군을 상대하는 것도 이계인들이고 말입니다.”
확실히 그의 말처럼 명회가 어떤 활약을 펼친다 해도 유저들의 활약과 비교하면 처질 수밖에 없었다.
적의 본대를 상대하는 것은 결국 유저들이기 때문이다.
“소왕국 동맹군의 본대 같은 경우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거기서 얻을 군공은 내가 독점할 것이니까.”
그 무심한 목소리에 명회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하지만 호영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군도 마찬가지야. 적의 2군을 상대하는 것은 돌격대지만 돌격대가 공을 세우기 전에 그보다 큰 공을 세울 이들이 존재한다.”
“……그게 누구입니까?”
“모험가들. 용병으로 가담하지는 않았으면서 전쟁에는 참여한 모험가들이 돌격대와 군공을 나누게 될 것이다.”
* * *
대한국의 국경 인근에 있는 이름 모를 산.
소왕국 동맹군의 진격로에 해당하는 이 이름 모를 산에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몸을 엄폐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왕을 잡으면 천 점을 준댔나? 그럼 세 명만 잡아도 제법 커다란 땅을 얻을 수 있겠네. 물론 땅보다는 무공이 더 탐나지만.’
몸을 엄폐하고 있던 사람들 중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여인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손에 활을 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숙련된 사냥꾼처럼 노련해 보였다.
여인의 이름은 박경선.
한때 ‘봉영’이라는 이름으로 호영의 밑에서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던 전설적인 여장부였다.
‘그나저나 대단한 양반들이야. 정치와 전쟁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조합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냈어.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경선은 전투 직전의 긴장감을 애써 억누르며 2회 차 때 자신과 함께했던 동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이었던 대한국, 그리고 그 대한국을 만들었던 2회 차의 동료들.
그때의 대한국은 한국의 모든 유저가 힘을 합쳐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강력했었다.
그리고 대한국에 소속되어 있던 유저들은 세상 전부가 덤벼도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막강하게 느껴졌었다.
그만큼 친위대 출신의 유저들과 대한국의 지도자였던 대왕이라는 유저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근데 그렇게나 무시무시했던 존재들이 3회 차가 되자 뜬금없이 ‘조합’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본래라면 왕국의 지도부를 장악하여 전면에 나섰을 그들이 마치 유저들을 위하는 것처럼 ‘길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모험가 조합의 실체를 알게 되니 그들은 2회 차 때처럼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왕국에게나 유저에게나 조합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특히 유저들에게 있어 모험가 조합은 절대적 권력을 넘어 없으면 안 될, 필수 불가결한 단체가 되었다. 조합이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으로 몰려들었었다. 유저라 해도 먹고 자는 것은 꼭 필요하였는데,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기관은 조합이 유일하였었다.
하지만 조합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충족하기 위해 조합을 필요로 하였다.
마법 보조! 몬스터 사냥! 용병 체험!
무미건조한 센추리의 일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운 임무가 가득하였다. 더군다나 보상도 나쁘지 않았다.
청소나 짐 나르기 같은 잡무들이야 하루 먹고살 정도의 현물을 지급해 주지만 몬스터 포획 같은 어려운 임무를 해결했을 경우, 상당한 현물에 무공이나 마법 지식의 일부를 지급하였다.
향사 이상의 가문들에게만 공유되는 무공과 마법에 관련된 지식이 지극히 제한적으로나마 보상으로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유저들의 입장에서나 NPC의 입장에서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NPC들이 모험가라 속이면서까지 조합에 가입하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모험가 조합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상황이었다.
‘모험을 떠나려던 나조차 결국 전장에 오게 만들었으니 뭐, 말 다 한 거지.’
여러모로 비범한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2회 차 때는 전면에서 왕국을 좌지우지하였다면 3회 차인 지금은 마치 비선 실세처럼 장막 뒤에서 왕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그 사람이 대단해. 마치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경선은 마지막으로 한 사내를 떠올렸다. 2회 차 때는 매서운 외모에 야수처럼 저돌적이었다면, 3회 차 때인 지금은 마치 꽃미남 같은 외모로 자신을 탐내던 그 사내를 말이다.
그 사내만 떠올리면 경선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두려움과 경계심, 그리고 경외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