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강경론이 들끓는 모습을 센추리 시간으로 일주일 정도를 가만히 지켜보던 호영은 마침내 행동에 나섰다.
원정군 모집!
왕, 아니 군부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서 난데없이 병력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용병으로 참여하시면 공헌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험가분들, 전쟁에 참여하여 대한의 영웅이 되어 주세요!”
“많은 공헌도를 얻으면 심법도 가질 수 있답니다!”
왕국 전역에 모집소가 세워졌고, 모험가 조합이 적극적으로 모병을 홍보하였다. 그러자 원정군, 정확히는 전쟁 용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용병의 대부분은 유저들이었다.
#남벌
“돌격대장, 이번에 모집한 돌격대원들은 어떤 것 같아? 통제에는 잘 따르나?”
“하하하! 뭐,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제 말을 안 따르면 어떻게 되는지 그들도 아는데 말입니다. 으하하!”
호영이 묻자 김성근이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호영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돌격대는 그런대로 통제가 잘되는 모양이군.’
현재 로열패밀리 대부분이 아바타로 연기하고 있는 까닭에 조합에서 호영의 손발이 되어 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 합해 봤자 겨우 스무 명 정도일까? 하지만 이렇게 숫자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조합을 통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숫자는 적어도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당장에 김성근만 해도 ‘의용군’의 돌격대를 수월하게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유저들은 내가 유저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 NPC라면 불만을 내세울 일도 유저라면 제법 잘 따라 준단 말이지.’
그렇기에 앞으로의 전쟁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비록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유저들이지만 전쟁이라는 대규모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그리고 보상을 얻기 위해 호영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자질이 괜찮은 이들은 있나? 돌격대의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아무래도 무력을 보고 뽑아야 할 것인데.”
통제가 잘된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다음 단계란 전쟁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을 말하는데 병력 모집이 거의 끝났으니 이제 이 병력을 조직화할 시기였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병력을 조직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지휘관이었다.
“뭐, 딱히 마음에 드는 놈들은 안 보였습니다. 솔직히 이전의 친위대와 비교하면 죄다 약골들뿐이라서.”
“그래도 몇몇 대원들의 자질이 제법 눈에 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그 두 놈을 말하는 겁니까?”
“맞을 거야. 순현이랑 윤수라고 했던가?”
호영의 말에 김성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눈여겨보았던 자들인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아는 그자들이 맞다면 둘 모두 엄청난 인재일 것이다.’
회귀 전, 천재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들 중에 순 씨 성을 가진 사람과 윤 씨 성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였다. 이름이야 회 차가 달라질 때마다 바뀌니 호영도 알지 못했지만 순현과 윤수라는 인물들의 재능을 보면 아마 호영의 예상은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재능이 뛰어난데 성까지 같은 것을 그저 우연으로 여기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확실히 특이한 놈들이기는 한 것 같습니다. 순현이라는 놈은 현실에서 검도를 했다던데, 그래서인지 병장기를 곧잘 다루더군요. 윤수라는 놈은 힘을 효율적으로 쓸 줄 아는 놈이고요.”
“조금 더 지켜보고 자질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백인대장으로 임명시켜.”
“엥? 돌격대의 백인대장 자리를 아무에게나 임명시켜도 되겠습니까? 소수 정예로 만들겠다면서요.”
호영의 비서이자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명회가 말한 대로라면 전쟁 용병은 대략 2천에서 3천 명이 모집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전쟁에 참여하는 병력의 수가 2천이 넘는다는 뜻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2천이 넘는 병력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현대의 군대처럼 중간 지휘관이 꼭 필요하였는데, 호영은 로열패밀리에 소속된 무인들에게 지휘권의 일부를 위임할 생각이었다.
장교나 부사관에 해당하는 자리를 로열패밀리 무인들에게 내려 준다는 뜻이었다.
이 또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로열패밀리의 무인들은 2회 차 때부터 친위대원으로서 전쟁을 수도 없이 겪어 본 전쟁의 달인들이었다.
더군다나 현실에서 군 출신인 경우도 많았고 무공 실력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가장 중요한 호영에 대한 충성심도 확실하였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 지휘권을 내려 주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영은 모든 간부를 로열패밀리에서 뽑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소수 정예군이 될 돌격대의 지휘관 자리를 새로운 수하들에게 하사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질이 뛰어난 이들에게 준다는 말이다.”
“흠, 그래도 백인대장 자리인데 충성심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충성심 같은 것은 백인대장 자리에 임명하고서 지켜봐도 돼.”
“그 말은 이너서클의 새로운 멤버를 모집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김성근이 그답지 않은 복잡한 표정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호영이 하는 말은 무척이나 민감하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로열패밀리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폐쇄성이 강한 로열패밀리였기에 새로운 동료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숫자를 늘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야.’
호영은 장차 대한국을 제국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호영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로열패밀리는 자연스럽게 제국의 지배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핵심 권력을 장악한 지배층 말이다.
그런데 지배층의 숫자가 고작해야 오백 명도 안 된다? 지금의 대한국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는데 미래의 제국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최소 몇 배 이상은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놈들을 조금 더 지켜보고 마음에 들면 백인대장으로 임명하겠습니다. 대신 백인대장으로 임명한 이후에는 사장님이 지켜봐 주십시오. 저는 충성심 같은 것을 알아볼 줄 모르니까.”
애매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김성근은 ‘다시 애들을 훈련시키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연병장으로 되돌아갔다.
호영은 그런 김성근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는 NPC와 유저뿐만이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충돌이 많겠어.’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상이 무슨 유토피아도 아니고 사람 사는 곳에서 분란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지도자로서 분란을 최소화할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었다. 호영이 있는 한, 로열패밀리를 비롯하여 대한 길드, 대한국, 그리고 로열이라 이름 붙여진 회사들이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리라.
* * *
전쟁 용병이 대규모로 모집되자 호영은 곧바로 지휘관들을 임명하기 시작하였다. 천인대장 이상의 지휘관은 모두 로열패밀리 소속이었고, 백인대장은 그동안의 훈련에 성과를 보인 유저들로 임명되었다.
물론 그들은 윤수나 순현처럼 자질이 뛰어난 유저들이었다.
그렇게 원정군의 조직력이 강화를 거듭할 때 왕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적으로 군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누가 봐도 ‘반역’에 해당하는 행위였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충구가 자신했던 대로 이때쯤 되니 진짜 ‘반역’을 저지르면 곤란해지는 게 왕실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왕족들로선 차라리 원정군이 하루빨리 남부로 출정하기를 원하였다. 원정군의 규모가 왕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숫자를 아득하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2천!
원정군, 즉 의용군에 가담한 전쟁 용병의 숫자가 무려 2천이었다. 왕국 심장부에 2천이라는 숫자가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왕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이 5천에 가깝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왕국 전역에서 병력을 총 동원해야 나올 수 있는 숫자였다.
수도 근처에서 모을 수 있는 숫자란 2천 명도 안 되었다. 그마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고 말이다.
이렇다 보니 왕족들로선 감히 호영의 행동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군부의 여론이라도 그들을 따라 준다면 모를까, 군부의 지지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네놈이 정녕 미친 것이냐! 왕세자가 있는데도 어찌 이같은 만행들을 저지르는 것이냐!”
다만 모두가 방관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난데없이 호영을 찾아와 호통을 쳤다.
호영의 입지가 달라진 이후로 그 누구도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패기 넘치는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수련에만 미쳐 산다더니,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렸군.’
난데없는 호통이었지만 호영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그저 웃기만 하였다.
그러자 중년 사내의 눈썹이 크게 치켜세워졌다.
“이제는 내 말까지 무시하려는 것이냐!”
사내에게서 광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강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기세였는데, 이게 바로 전대의 제일 고수라 불리던 친위대장, 대천의 기세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달라졌다더니 정말 달라졌구나. 감히 나를 놀리려 들다니.”
대천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살기까지 내뿜어대자 호영도 방금 전처럼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쿠오오오오!
현재 시점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마력 운용 기술로 대천을 압박하였다. 그러자 호영을 억누르려던 대천의 기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역으로 호영의 마력만이 남아 대천을 괴롭혔다.
“……이게 무슨!”
“숙부님만 강해진 것이 아닙니다. 저도 왕국 제일의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게끔 정진을 거듭하였습니다.”
“……!”
그 말에 대천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호영이 이토록 강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대천이 당황하는 것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말했다.
“저는 진심으로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적으로 군사를 모으고 있는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거라!”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법을 어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 나라의 왕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호영이 범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왕족들이나 권세가들이 사병을 모으지 않는 이유는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두렵기 때문이지, 법으로 사병 모으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호영에게는 유저를 통제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이미 그는 도적 떼나 주먹 패로 변모한 유저들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여러 번 유저들을 동원하였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규모가 압도적으로 차이 났지만 어쨌든 군사력을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명분상으로도 불리할 것이 없었다. 물론 자세하게 따져 보면 허점투성이 명분이었지만 말이다.
“아니면 왕세자가 있는 상황에서 군사를 모집한 게 잘못이라는 말씀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