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그에 따라 조합이 위치한 현리는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본래 치안대가 해야 할 일을 이 왕자인 그가 대신하였으니 백성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조합을 세운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 현리의 혼란을 잠재운 호영은 그 뒤로도 무법자들을 검거하겠다는 구실로 치안대의 영역을 곧잘 침범하였다.
마침 치안대는 지도층이 교체되는 시기라서 이같은 호영의 도발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야말로 속수무책 그 자체였다.
그 상태로 며칠이 더 지나자 현리의 치안은 어느덧 호영이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백성들조차 이제는 치안대보다 호영이 세운 모험가 조합을 더 신뢰하게 되었을 정도였다.
‘수도의 민심이 나에게로 향한다는 것은 왕이나 왕세자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야. 그러니 내가 강하게 나가면 그쪽도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을 텐데……. 후우, 그래도 충구의 말이니 한번 믿어 봐야겠지.’
아주 살짝 충구의 계획을 의심하였던 호영이지만 결국 충구의 말을 믿어 보기로 결정하였다. 어차피 다른 수도 없었고 말이다.
“조합장님, 어차피 문책을 받을 거라면 사고를 하나 더 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고를 치라고?”
음모라도 꾸미는 것처럼 짓궂은 얼굴로 의견을 꺼내는 사내를 보며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는 호영과 2회 차 때부터 함께하였던 인물로, 지금은 동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 왕족들을 견제하면서 추후 정권을 잡았을 때 도움이 될 만한 행동을 하는 거죠. 예를 하나 들자면…… 상단을 만드는 겁니다.”
“상단이라고?”
“지금도 상단이 존재하지만 솔직히 100년 전에 비하면 오히려 쇠퇴했다고 봐야 됩니다. 상인이라는 것들이 그저 편하게 독점으로만 이익을 보려 하니 쇠퇴할 수밖에 없지요. 아무튼 버러지 같은 상인들밖에 남지 않은 지금이 상계에 진출하기 딱 좋은 시점입니다.”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호영도 분점을 내 슬슬 지방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상계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전쟁의 달인은 실물 경제에도 밝다는데 아직 호영은 그 수준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걸 보니 동휘, 너의 가문이 본래 왕국 제일의 상인 가문 아니었나? 10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씨 가문이 그리 작아진 것이지?”
“뭐, 뻔한 이야기입니다. 제 후손들은 나약했고 그래서 기득권 싸움에서 패배하였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왕족의 승리입니다.”
호영이 묻자 동휘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상계에 진출하여 성공한다면 나름 복수했다고 볼 수 있겠군?”
“그렇기는 한데 복수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 주장한 겁니다.”
“알았다. 오해는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뭐, 오해가 사실이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대업에 사심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상계에 진출하는 것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려도 불만을 품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는 중요한 일을 진행할 때마다 항상 수하들에게 의견을 묻고는 하였다.
아직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많은 그였지만 오히려 스스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독단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독재자 특유의 고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소신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자금이 부족해져가고 있는데 상단을 만들면 여유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저는 돈도 돈이지만 모험가들의 일거리가 많아진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모험가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상단을 만들면 용병으로도 쓸 수 있고 상단 업무를 맡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일자리 창출에 아주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가장 먼저 명회가 긍정의 대답을 하니 다른 수하들 역시 찬성을 표하였다.
‘의외로 반대가 없군. 왕족들과 왕세자의 견제가 두렵지 않다는 건가?’
전원이 찬성을 표하자 호영은 오히려 의아해하였다. 동휘의 의견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왕족들에게 비난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마 고귀한 왕족이 장사치가 되었다며 공격을 걸어올 터.
안 그래도 치안대의 권한을 침범한 일이나 유저들과 관련해서 책잡힐 일이 많았는데 이는 비난거리를 스스로 만드는 격이었다.
호영은 곧바로 그 사실을 거론하였다.
“왕족들에게 공격받게 될 거야. 어쩌면 친위대장 같은 거물이 찾아와서 나를 압박할 수도 있어.”
“어차피 그들과는 이미 적이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동휘가 조소를 지으며 말하자 호영이 한마디를 더 하였다.
“극단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왕족들이나 왕세자나…….”
“그렇게 나오면 우리야 좋죠. 이참에 쓸어버리면 되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막말로 그쪽에서 극단적으로 나온다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제재하려면 진즉에 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 버렸습니다.”
수하들의 답변을 들으며 호영은 픽 웃음을 지었다.
‘나와 충구만 자신감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었구나.’
누구 부하라고 배포가 하나같이 장난이 아니었다.
#소왕국 동맹
정확히 나흘 뒤, 왕성에서 사람이 왔다. 예상했던 대로 왕세자의 호출이었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뜻이겠지.’
이미 초적 말고도 호영을 찾아왔던 고위 인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행정부 소속의 서기관부터 지체 높은 왕실의 웃어른까지.
왕국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왔었다. 호영의 과도한 권력 남용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호영은 그들의 경고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경고를 듣기는커녕 도리어 화를 내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왕세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강경함의 극치를 보여 준 것이었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 조합의 외형을 크게 확장시키고 상계로 진출할 준비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수준을 넘어 명백하게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왕세자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던지 호영을 불러들였다. 이게 바로 그가 왕성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왕세자 저하.”
왕궁 안에 있는 접대실. 주로 왕이 사용하는 이 접대실에는 30대 중후반의 미청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왕세자 대향. 바로 그가 접대실에서 호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와라, 나의 동생아.”
“그보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왕세자 저하?”
두 팔 벌리며 환영하는 왕세자를 향해 호영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마치 왕세자의 환대 따위는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대한국의 왕세자를 이런 식으로 대할 사람은 호영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왕세자의 지위는 그만큼 공고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호영은 거리낄 게 없었다. 어차피 적대 관계가 아니던가. 그는 왕세자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으로서 적을 필요 이상으로 예우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둘만 있으니 형이라고 불렀으면 좋겠구나.”
“왕국의 예법이 지엄한데 어찌 왕세자 저하를 그렇게 부른단 말입니까?”
“…….”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서로 바쁜 몸 아닙니까?”
“나는…… 우리가 너무 오래 보지 않아 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오해를 풀고자 하는 의미에서 왕궁으로 부른 것이다.”
“오해요?”
호영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왕세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물론 내가 진이 너를 의심하거나 오해한 적은 없다. 단지 우리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인사들이 너무 많아서…….”
“이간질할 것이 있었습니까, 우리 둘 사이에?”
순간 왕세자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로선 호영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질 것이었다. 본래 대진이라는 사내는 호호탕탕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둘 사이의 형제애는 꽤나 돈독했었지, 사사로운 고민조차 함께 나누었을 정도로.’
물론 호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확실히…… 오해가 아니었나 보구나.”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기다려라.”
“예, 말씀하시죠.”
“지금 하는 일, 그만할 수 없겠느냐?”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백성들을 선동하고 이계인들을 이용해 왕국에 혼란을 주는 행위 말이다.”
그 말에 호영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세자 자리를 넘기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
왕세자의 표정이 아연하게 바뀌었다. 야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왕세자 자리를 거론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진아, 너는 이 나라의 왕자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이 나라를 분열하게 만들 수 있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뭐, 잠깐은 분열할 수 있겠지만 결국엔 내가 하나로 만들 것이니.”
또다시 말문을 잃고 마는 왕세자였다. 그만큼 호영의 언사는 충격적이었다.
“아, 맞다.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왕세자가 침묵을 지킬 때 호영이 불쑥 말을 꺼냈다.
“지방도 현리 못지않게 소란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지방이 소란스러운 것도 모두 이계인들 때문이더군요. 그래서 아무래도 제가 지방으로 가 그자들을 혼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맡겨 놓은 것을 찾는 것처럼 당연하게 말하는 호영이었다.
반면에 왕세자는 충격을 먹은 듯, 입을 떡 벌리고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건 마치 혹을 때려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 아닌가.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혹을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왕국은 넓다. 조합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방까지 통제할 여력이 있겠느냐?”
아마 이런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견제나 방해 공작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영이 순식간에 조합의 체계를 세우고 유저들을 자신의 통제하에 둘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 2회 차를 겪었고 회귀라는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호영으로선 왕세자의 편견이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불가능할 게 뭐가 있습니까? 조합에 소속된 이계인들만 벌써 천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 이계인들은 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현리가 조용해진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처, 천 명……?”
“지금은 천 명이지만 열흘 안에 2배는 증가할 것입니다.”
결코 과장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저들의 합류 속도는 호영조차 놀랄 정도로, 열흘이면 2천이 모이고도 남을 것이었다.
‘로열패밀리까지 합치면 2,500명이 넘겠어.’
조합의 모험가들과 로열패밀리를 합치면 지금 당장은 1,500명, 열흘 내에 2,500명 정도가 그의 휘하로 들어온다.
물론 그들 모두를 호영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