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심지어 수뇌부 중 한 명은 사극 드라마의 조연으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원래 무명 배우였는데 친위대에서 배운 무술로 드라마의 조연이 된 경우였다.
“대한 길드의 길드장 같은 경우는 ‘척준경’이라 불립니다. 최강의 무술가라며 네티즌들이 무척이나 열광하고 있습니다.”
충구가 여기까지 설명하자 호영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 길드의 인지도를 이용한다면 매니지먼트 사업은 무조건 성공한다!
이 생각에 호영 역시 동감하였던 것이다.
경비 업체를 인수하라는 설명 또한 납득하였다. 친위대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들 중에는 군 출신과 운동계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이 중에는 현역 경호원도 적지 않게 있었다. 안 그래도 무술을 잘하는 사람들 천지인데 직업까지 경호 업체에 관련된 이들이 많으니 성공은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나는 돈도 많으니 인수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돈이 있고 사람이 있는데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사실 사업이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애초에 사업을 하려는 목적 자체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얻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충구는 돈이 남으면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의 지분도 어느 정도는 인수하라고 조언하였다. 직접 업체를 차리는 것도 영향력을 얻는 데 효과적이지만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의 대주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말이다.
‘유력 정치인들을 후원하라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어느 당이 여당이 되고 어느 정치인이 권력가로 끝까지 살아남는지 알고 있잖아?’
여기에 ‘혼인’으로 인맥을 얻으라는 충구의 마지막 말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호영의 반발을 걱정해서인지 소극적으로 주장하는 충구였지만 호영으로서는 정략결혼이 영향력을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정략결혼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대상자가 없어 나중으로 미루어야겠지만 말이다.
“정말 좋은 생각들이군. 안 그래도 돈을 어떻게 쓸지를 고민했는데, 너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
칭찬에 인색한 호영이 감탄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기에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호영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충구의 얼굴은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센추리에서라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으스댔을 것인데 말이다.
“제 말대로 하실 것이라면 하루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 길드와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다르지 않습니까? 거기에 재벌들이 대한 길드의 간부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나마 친위대 특유의 전우애 때문인지 배신하는 사람이 아직은 없는 것 같지만 재벌들이 제대로 달려들면 전우애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 역시 맞는 말이었다. 친위대 유저들이 호영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지만 현실에서 접근해 온다면 배신하거나 이적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절대적인 충성심을 얻으려면 충구가 하는 말처럼 매니지먼트를 인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돈과 명예를 쥐여 줘야 했다.
법적으로 묶어 둘 필요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면 또 두 그룹 간의 분열이 생기게 되는데.’
안 그래도 어제 원목의 보고로 대한 길드의 간부들을 부러워하는 친위대 소속의 유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한국과 대한 길드 간에 분란의 여지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만약 호영이 매니지먼트를 인수하여 대한 길드의 간부들을 연예인으로 만든다면?
친위대 소속의 유저들이 단체로 반발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친위대에서 탈퇴하여 초보자의 섬으로 도망칠 수도 있고 말이다.
호영은 충구에게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될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충구는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친위대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친위대에 들어가게 하고 대한 길드에 들어가고 싶으면 대한 길드에 들어가게끔 말입니다.”
“……쉽게도 말하는군. 지금 어떤 식으로 순환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야? 대한 길드의 간부 자리는 전장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 자리야.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이걸 선택하게 만든다면 누가 친위대에 남겠어?”
호영이라도 친위대와 대한 길드의 간부 자리를 놓고 선택하라 한다면 대한 길드의 간부 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이유야 단순했다. 누가 봐도 어디가 편하고 어디가 고생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친위대원의 경우는 사실 마냥 좋기만 한 자리가 아니었다. 스킬이야 공짜로 받는다지만 게임 하는 입장에서 가혹한 훈련을 반복하는 게 좋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전쟁이 일상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게임이라 해도 전쟁이란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법이었다.
현실에서처럼 소총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직접 창을 들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더욱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대한 길드의 수뇌부는?
스트레스가 생길 여지조차 없었다. 전쟁? 간혹 다른 길드의 도발이나 몬스터를 사냥해야 할 때가 있었지만 전쟁을 수없이 겪은 친위대원들에게 있어 그것들은 시시한 장난에 불과하였다.
거기에 호영이 없으니 수련을 강요할 사람도 없었고 제자만 수백 명씩 두고 있어서 대접받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의 의무란 호영에게서 받은 무공들을 찔끔찔끔 가르쳐 주며 회비를 걷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환상 같은 곳이 있는데 누가 친위대에 남는 선택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충구는 당당하게 말했다.
“남는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사장님의 밑에 있어야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
그 말에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위대 유저들은 특히 그랬다.
애초에 군대 특유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는 친위대에 들어오려는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게임인데 불구하고 고생을 자처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어쩌면 나는 수하들을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오직 그만이 진지하다고 생각하였었다. 미래가 얼마나 암울한지 모르는 다른 유저들이 절박함이나 진지함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친위대원이나 다른 유저들도 호영만큼은 아니지만 진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훈련이나 전쟁에 임할 때도 필사적이었고 평시에도 진지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정확히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필사적인지는 호영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의지를 폄하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었다.
‘그래. 충구의 말대로 선택은 유저들에게 맡기자. 수하들을 한번 믿어 보는 거야.’
이참에 확실히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과 끝까지 함께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끝과 시작
2회 차가 끝나기 전, 마지막 접속을 한 호영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아쉬움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현리를 왕국으로 만들었고 인구는 5배 이상 증가시켰다. 영토 역시 서울 전역을 넘어 경기도 일부까지 확장시켰고 말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것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와 소수의 일족들이 군림하던 사회구조를 뿌리째 바꾸어 능력 있는 자들이 통치하게끔 만들었으며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일족들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또한 현리를, 아니 인간 전체를 위협하던 수인족을 왕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외부의 위협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요, 수인족의 강력한 힘이 그대로 아군의 것이 되었다.
주변과의 교역을 확대시킨 것도 어마어마한 변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교역의 확대로 필요한 물자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었으며 주변 부족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상승하였다.
그 외에도 법제라든가, 행정 개혁이라든가, 군제 개편이라든가 하나같이 엄청난 변혁들을 이루어 냈다.
호영의 혼잣말처럼 이번 회 차는 아쉬움을 느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한 채 안주할 수는 없다. 대한국의 역사는 이제 막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니까.”
물론 그의 역사도 이제 막 시작된 것이고 말이다.
“전하.”
호영이 집무실에서 혼자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원재였다.
“망년회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공신들은?”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그 말에 호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연! 지금 내성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NPC들은 그저 한 해가 끝나 가는 것을 기념하여 축하연을 여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호영의 속내는 달랐다.
한 해의 끝이 아닌 2회 차의 끝을 기념하는 연회였던 것이다.
‘진짜 끝났구나.’
잠시 씁쓸함을 느낀 호영이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내성 한곳에 마련되어 있는 연회장으로 향하였다.
마지막이니만큼 웃는 얼굴로 헤어지고 싶었다.
* * *
다음 날이 되어 센추리에 접속하니 익숙한 문구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플레이어의 업적을 결산 중입니다.
결산의 날! 오늘이 바로 업적 점수를 결산하는 날이었다.
호영은 기대된다는 얼굴로 결산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을 거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어!’
1회 차 때 받았던 업적 점수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유저들과 비교하면 아쉬운 점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가 1회 차 때 이룬 업적이라고는 부족의 규모를 몇천으로 확장시킨 것과 거인 둘을 죽이고 하나와 동맹을 맺은 것뿐이니까.
뭐, 그 외에도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중국이나 미국의 유저들이 수백 단위의 전쟁을 벌인 것을 생각하면 그리 대단할 것은 못 되었다.
점수도 결국 20만 점 정도밖에 받지 못하였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회 차에는 고평가 될 요소가 많이 있었다.
일단 그는 한반도 지역에서 최소 100년 동안 나오지 않을 ‘시스템이 인정한 왕국’을 개국한 건국왕이었으니 말이다.
중국처럼 곳곳에 왕국이 존재한다면 모를까, 볼모지에서 왕국을 건설한 것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업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호영은 오크족을 북방으로 밀어낸 것도 고평가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의 판단 기준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세상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쳤는가.’라는 기준이 있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
오크족의 경우는 3회 차부터 거대 왕국을 만들어 낼 정도로 역량 있는 종족이기에 그들을 북방으로 이주시킨 것은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었다.
여기에 수인족의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1회 차가 오크와 거인족의 세상이었다면, 2회 차는 오크와 수인족의 세상이었었다. 한반도의 경우는 오크보단 수인족의 세상에 가까웠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수인족을 흡수한 호영의 업적은 고평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스케일의 차이가 크다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