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하기야 1~2억도 아니고 10억이라니. 소시민이라 할 수 있는 경호로선 믿기 어려운 단위였다.
‘나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워했었지.’
호영은 그런 경호의 모습을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회귀 전, 자신도 센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해하였던가.
몇 년 전부터 게임 BJ나 스트리머들이 억대 연봉도 우습게 벌어들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센추리의 유명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B급 연예인과 톱스타를 비교하는 것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
물론 지금 당장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이지는 않고 있었다. 유저의 수가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 유저들 중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호영의 수익만큼은 벌써부터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1억 이하는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단 말이지. 게임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돈을 이렇게 많이 벌어들일 줄이야.’
처음에는 주식으로 돈을 벌었었다. 딱히 주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없었지만 회귀라는 이점이 있어서 수익을 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때의 수익은 10억 이하였다.
그다음엔 센추리를 통해 수익을 냈다. 1회 차를 끝낸 이후 업적 점수로 구입한 부동산들이 엄청난 임대 수익을 얻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초보자의 섬은 현재 인구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 임대 수익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었다.
다음 회 차가 되면 섬의 면적이 다시 넓어지겠지만 어쨌든 이번 회 차에서는 꿀을 제대로 빨았다고 볼 수 있었다.
참고로 한 달에 벌어들이는 임대료만 70억이 넘었다. 시간 비율이 1:4다 보니 한 달에 임대료를 네 번 걷는 셈이라 그 정도의 수익이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 하반기부터 대한 길드에서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히려 투자비니 건물 임대니 돈이 제법 들었지만 지금은 길드원들에게서 받는 회비만으로도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
한국 최대, 최고의 길드라 불리는 대한 길드의 규모는 어느덧 10만을 훌쩍 넘긴 상황. 10만 명의 길드원이 내는 회비는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비만 걷는 것이 아니라 10만이 넘는 인력으로 여러 경제활동을 하니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호영의 입장에서 1~2억이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나만 믿고 따라와. 센추리에 대해 제대로 알려 줄 테니.”
“뭐, 알았어. 일단 믿어는 드릴게.”
그렇게 경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차는 어느덧 목적지인 중동역 근처에 도착하였다.
“저기 병진이 보인다. 이야, 쟤는 더 잘 생겨졌네. 완전 화보다, 화보.”
경호가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자 호영도 사내를 발견하고는 주변으로 차를 몰았다.
“병진아!”
“어, 형이에요?”
무척이나 곱상한 외모를 가진 청년. 하지만 의외로 백치미를 가졌는데 호영을 발견하고도 한참 동안 눈을 끔벅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타라, 병진아.”
“이거 형 차 맞아요?”
“아니면 내가 왜 타고 있겠냐? 어서 타.”
“이야, 진짜 멋있다! 이야!”
“감탄만 하지 말고, 빨리 타.”
“알았어요, 형.”
병진을 간신히 태운 호영은 다시 강서구로 되돌아갔다.
“형들,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요?”
“말했잖아, 네 직장 동료가 될 사람들을 소개해 주러 간다고.”
“정말이었어요? 나는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부담이 되는지 주눅 든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는 김병진.
조수석에 앉은 조경호의 얼굴도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그 역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가 가도 되는 거 맞아?”
“가야지. 너희들도 이제부터 한 식구인데.”
“나는 센추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소개해 줄 것이니까.”
“형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알았어.”
여전히 편치 않은 얼굴이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였다.
그렇게 딱딱한 표정의 두 동생을 데리고 식당에 차를 댄 호영은 곧바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식당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벌떡 일어섰다.
“대왕님 오셨다! 대왕님 오셨어!”
“무슨 대왕님이야? 여기서는 사장님이지.”
“오오오! 우리의 사장님!”
잠시간 소란을 일으키던 사내들은 ‘하나, 둘’을 외치더니 동시에 꾸벅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마치 영화 속에서 자주 본 것 같은 장면이었다. 주로 조폭들이 나오는 영화에서 말이다.
“형, 이분들 혹시 어디에 몸담으신 분들 아니에요?”
“돈을 많이 버는 이유가 따로 있었네. 게임 때문이 아니었어.”
천진난만하게 묻는 병진의 목소리와 조그맣게 속닥이는 경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호영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자신의 부하라 할 수 있는 사내들이지만 이럴 때면 솔직히 창피하게 느껴졌다.
‘왜 하나같이 무식하게 생겨 가지고.’
운동에 재능 있는 친위대원들이기 때문일까? 단체로 모여 있으니 마치 조직폭력배를 보는 것 같았다.
덩치들이 하나같이 우람하고 호영을 대하는 태도 역시 지나칠 정도로 깍듯했기 때문이다.
“일단 모두 자리에 앉아. 종업원분들이 부담스러워하시잖아.”
“알겠습니다!”
호영이 지시를 내리자 깍두기들이 크게 대답하며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였다. 호영의 지시를 한두 번 따라 본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하나같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우리도 일단 식사부터 주문하자.”
“예, 형.”
“……알았어.”
두 사람은 의문으로 가득한 눈빛을 한 채 그렇게 대답하였다.
천진하기 그지없는 병진은 몰라도 경호 같은 경우는 만약 호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을 것이었다.
그렇게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니 사방에서 시선이 꽂혔다.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숫자였다.
호영은 짐짓 여유로운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식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인 그였기에 이런 분위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 2회 차에서 고생이 많았다.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고 실제로 몇 명은 죽기까지 하였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죽기까지 하였다는 호영의 말에 경호와 병진이 움찔하였지만 호영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왕국을 건설한 것도 대한 길드가 한국 최고의 길드가 된 것도 우리가 합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올 수 있겠지만 협동심과 단결심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경호와 병진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살짝 오글거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왕국을 건설한 것과 한국 최고의 길드가 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 지도 모를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호영의 말을 듣고 있는 대한 길드나 대한국에 소속된 사람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물들여지고 있었다.
센추리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것!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게임 폐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앞으로 센추리 세상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를 앞에 두고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 여기 두 사람을 소개하겠다. 이쪽은 조경호, 이쪽은 김병진이다. 둘 다 현실에서 나를 조력한 이들이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외치고 고기 먹도록 하자. 배신은!”
“죽음이다!”
“배신은!”
“죽음이다!”
호영이 자리에 앉으니 두 사람의 표정은 그야말로 아연실색이었다. 배신은 죽음이라니! 음지의 조직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이런. 너무 오버했네.’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호영은 ‘아차’ 하였다. 조폭 닮은 수하들을 부끄러워했던 자신이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센추리에서야 매일같이 했던 말들이라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데 여기가 현실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자, 먹자.”
호영은 스스로가 창피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였다. ‘우리는 조폭이 아니다.’라는 말을 꺼내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경호와 병진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주섬주섬 고기를 먹기 시작하였다. 값비싼 한우라서 그런지 두 사람도 조금씩 긴장이 풀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긴장감이 느슨해지기 무섭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님.”
“무슨 일이야?”
족히 50대는 되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사내, 그 중년 사내를 향해 호영이 하대하는 것이었다.
“푸웁!”
놀랐던 탓인지 경호가 입에 있던 물을 그대로 내뿜었다. 병진도 입을 떡 벌린 채 난감한 얼굴을 하였다.
그들로선 까마득한 연배의 사내에게 반말을 하는 호영의 태도가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때 최소 20살은 차이 나 보였으니 말이다.
‘중년까지는 아닌데 말이지.’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내의 이름은 윤원목.
다른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친위대에 소속되어 있는 유저였다.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는데, 겉보기엔 50대로 보일 정도로 노안이었다.
물론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도 호영보다 연상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30대든 40대든 그에겐 똑같은 수하였다.
수하에게 존대를 한다? 호영의 사고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이미 센추리에서 지내 왔던 시간만 수십 년이었다. 호영에게는 오히려 장유유서 같은 현실의 관념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참고로 그가 가끔씩 지나치게 오글거리거나 ‘중2병’ 같은 말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일인가?”
“예.”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진과 경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눈치가 보이는 탓인지 어깨를 들썩이며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영이 그들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여기 앉아 있어.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호영은 윤원목을 데리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 * *
밖으로 나가니 찬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추위에 약한 사람들은 아니어서 바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친위대 4기 인원들의 정신 무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지?”
“유혹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묵직함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윤원목, 그는 무척이나 과묵한 성격으로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만 꺼내는 사람이었다. 호영도 그의 진중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었다.
지금 호영을 따로 불러내 친위대원들의 ‘정신 무장’을 거론한 것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꺼낸 말이었을 것이다.
호영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배신자가 나왔다는 건가?”
호영에게 있어 배신이란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많이 당했지만 회귀 이후에도 그는 적지 않은 배신을 경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