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A+는 되어야 일으킬 수 있다는 검강. 지금은 물론이요, 앞으로 5회 차까지는 등장할 일이 없는 것이었으니 사람들로선 놀라는 게 당연하였다.
‘뭐, 이것을 진짜 검강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호영도 진정한 검강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은 없었지만 오러 블레이드 또는 검강이라 부르는 것은 S급부터 가능한 기술이었다.
지금 그가 사용하는 것은 마나를 집중하고 또 집중시킨 ‘최상급 검기’에 불과하였다. 진정한 검강과 부딪치면 조금밖에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질 그런 검기 말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목적은 달성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개국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릎을 꿇은 채 호영을 향해 경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바로 대한의 왕이다! 대한에 내가 있는 한 앞으로 그 어떤 위험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마물들조차 나의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PR을 하고는 개국 선언식을 끝내는 호영이었다.
#현실에서의 영향력
개국을 선언한 이후, 호영에게 남은 것은 단조로운 일상뿐이었다.
정복 전쟁은 완전히 끝났고 백년대계를 위한 준비도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왕국의 대소사도 지금 당장은 현기가 주도하고 있으니 호영이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2회 차가 되고 처음으로 여유라는 것이 생기자 호영은 ‘폐관 수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공만을 집중해서 연마하기 시작했다. 하루 일과가 오직 무공 수련뿐인 단조로운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호영에게 있어 무공 수련은 어떻게 보면 대한국의 백년대계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호영은 어떤 위기가 있어도 어렵지 않게 극복하였었다. 자연재해라고 불리는 거인에게 위기를 겪었던 적도 있었고 전대미문의 마법사들에게 위기를 겪었던 적도 있었다.
호영은 두 위기에서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기는 하였지만 근본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공이 있었다.
현실에서도 센추리에서도 매일같이 익혔던 무공이 있었기에 그는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 언제까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앞으로 그를 위협할 존재들은 거인이나 마법사가 아닌 그와 같은 유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저들은 지금도 한창 무공을 만들거나 발전시키고 있었다. 당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들 중 호영이 두려워하는 진짜 ‘천재’들의 발전 속도는 어마어마하였다.
회귀자라는 이점밖에 없는 호영으로선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최강자’라는 이점을 잃게 된다면?
단번에 추락하지는 않겠지만 위기가 많아질 것은 분명하였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도 더욱 힘이 들 것이고.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무공 수련이 지금 당장의 행정 업무보다 중요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무공의 실력이 늘어나야 왕으로서의 입지가 공고해지고 앞으로 있을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무공이라는 것은 무작정 시간을 할애한다 해서 단번에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실력으로 S랭크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건가. 아무리 수련해도 진척이 없군.’
계속해서 무공 수련에 열중하였지만 발전이라는 것이 없었다. 호영은 2회 차가 끝나기까지 센추리 시간으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되자, 회귀 이후 처음으로 조바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특전을 부여받은 덕분에 처음부터 A랭크로 시작했던 호영이다. 남들이 F에서 시작할 때 창술과 심법 모두가 A랭크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특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특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호영은 A랭크에서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A+랭크에 머물러 있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랭크가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1회 차까지 포함시킨다면 무려 8년이었다.
아무리 전쟁하랴, 정치하랴, 수련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어다고 해도 이 정도나 정체했다는 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호영은 자신이 정체되고 있는 이유를 스킬에서 찾았다. 스킬의 한계가 A급이라서 자신이 여전히 A급에 머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역시 나 혼자서는 안 된다는 건가.’
호영은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자신도 회귀 전에 이름을 떨쳤던 절대 고수들처럼 스스로 무공을 만들어 내거나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에게는 뛰어난 수준의 심법과 창법이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창을 다루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듭된 실패로 S랭크 이상의 무공은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 낼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지금 가진 무공보다 뛰어난 수준의 무공은 절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혼자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1회 차 때 자신의 아바타였던 대준을 보며 실력을 키웠던 것처럼 지금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준기밖에 없겠군. 준기에게 내 창법과 심법을 가르쳐 줘야겠어.”
호영은 마침내 결심하였다. 자신의 의제인 준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가 가진 무공은 8회 차에서도 가치가 낮다고 볼 수 없는 무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돈만 주면 살 수 있을 정도로 희귀도가 낮은 무공들이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2회 차였다.
검기만 일으켜도 하늘이 선택한 제왕이니, 고금 제일 고수니 온갖 요란을 떠는 지금 같은 시대에서 진짜 검강은 아니더라도 최상급 검기를 일으킬 수 있는 그의 무공은 초절정을 넘어 ‘경’급으로 통용될 무공이었다.
3회 차나 4회 차 때쯤, 중국 거부들에게 판다면 최소 수백억은 받아 낼 수 있는 무공들이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호영은 그런 무공들을 준기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다.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준기의 재능이라면 창술이건 심법이건 간에 둘 중 하나는 S랭크로 만들 수 있을 것이야.’
1회 차 때처럼 아바타의 수련을 보고 무언가를 얻기엔 지금의 아바타가 호영보다 실력이 높다고 볼 수 없었고, 그렇다 해서 다른 고수들을 찾으러 갈 수도 없었다. 2회 차에 그보다 실력이 높은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물론 그 외의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자신의 후손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유저들이 간섭할 수 없는 100년의 공백기. 이 공백기 동안 NPC들은 자신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왕은 정치를 하며 살아갈 것이고 백성들은 농사나 사냥 따위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마법사와 무인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들을 수련하며 살아갈 것이고 말이다.
사실 회귀 전 센추리 세상에 존재했던 수만 가지의 무공들도 유저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NPC들이 스스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서 만든 것들이었다.
그러니 호영이 만든 무공들도 NPC들이 알아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줄 터.
‘하지만 내가 가진 무공을 풀기에는 시기가 너무 빨라. 그리고 대왕에게 나의 무공을 남겨 준다면 그는 분명 사고를 치고 말 거야. 너무 강한 게 오히려 독이 되는 셈이지.’
호영은 자신이 가진 대창심법과 대창창법을 대왕이나 후손들에게 물려 줄 생각이 없었다. 2회 차가 끝나기 전, 금제를 가해 대왕의 기억 속에서 없앨 생각이었다.
비록 대왕이 자신의 아바타였던 만큼 본래의 인격이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의 뜻에 따라 줄 가능성이 크다지만 변수는 가능한 한 줄이는 게 좋았다.
친위대가 사용하는 무공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의 것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렇기에 결국 호영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준기의 천재성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준기가 내 실력을 넘어선다면 위계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준기의 재능을 생각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어차피 언젠가는 준기에게 추월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어차피 개화될 재능, 조금 일찍 개화시켜 나도 덕 보는 게 훨씬 이득이야.”
만약 준기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호영은 준기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현실에서도 끈끈하게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이다.
결심을 굳힌 호영은 폐관 수련을 깨고 준기를 찾았다.
* * *
준기는 언제나처럼 연병장에서 친위대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호영은 잠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친위대가 수련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 모습을 보면 마치 영화 <삼백>이 떠오르는군. 예전에 재미있게 봤었는데 말이야.’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깐 채 창을 수련하고 있는 이백여 명의 친위대원들. 대부분이 2년 이상 몸을 단련했기 때문인지 친위대원들의 복부에는 보기 좋은 근육들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호영은 친위대의 창술 실력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재능 있는 자들만 친위대에 남겼더니……. 성장이 무척이나 빠르군.”
현재 친위대의 규모는 건국 이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축소되어 있는 상태였다. 200에 가까운 숫자가 이제는 중앙군으로 불리는 경비대로 소속이 이전된 탓인데, 오히려 전투력 자체는 이전보다 상승한 느낌이었다.
숫자는 반절로 줄었어도 남아 있는 자들의 재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내가 없어도 오크족이나 몬스터 따위에게 당할 일은 없겠어. 수인족의 반란을 억제하는데도 문제없을 것이고 말이야.’
지금까지는 주로 전장에서만 활약하던 친위대였다. 1년의 절반은 전장에서 활동하였고 나머지 절반도 다른 임무는 일절 맡지 않은 채 실력을 기르는 것에만 집중하였었다. 부족의 검 또는 창으로서 오직 정복이나 공격만을 담당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친위대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예정이었다.
왕가를 수호하는 근위대 역할이 가장 클 것이고, 일반 병사들이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임무도 맡게 될 것이었다.
그 외에 반란을 억제하거나 진압하는 역할도 할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왕가의 검이나 창보다는 방패 역할을 담당하게 될 친위대였기에 그들의 충성심이나 무공 실력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친위대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무공 실력만큼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성근을 제외하면 마나를 제대로 쓰는 이가 별로 없었지만 대부분이 E급을 넘어 D급의 창술 솜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6회 차 기준으로 일반 병사보다 조금이나마 강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물론 정예에는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대왕, 부르셨습니까!”
친위대가 수련하는 모습을 잠시 동안 지켜본 호영은 곧바로 준기를 불러냈다. 그러자 준기가 들뜬 기색으로 ‘대왕’을 외치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참고로 대왕이라는 호칭은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호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