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퍼억! 퍼억.
느닷없는 폭행이었지만 수하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그저 몸을 웅크리며 김진우의 일방적인 폭력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대머리 수하들 역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았다.
대략 5분 정도가 지나자 김진우는 평온한 얼굴을 되찾았다. 김진우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수하에게 물었다.
“우리가 현리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길 것입니다.”
“그래?”
수하가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하니 김진우는 주먹이 아닌 자신의 무기를 들었다.
날카롭게 갈린 맹수의 이빨.
그것이 바로 김진우의 무기였다.
맹수의 이빨을 단검 쥐듯 손아귀에 그러쥔 김진우는 그대로 수하의 몸을 향해 내찔렀다.
푸욱!
한 번, 두 번, 세 번……. 총 열 번을 찔렀다.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던 수하는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하였다. 배를 부여잡고는 그대로 쓰러진 것이었다.
김진우는 가늘게 경련하는 수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거짓말했어? 뭐, 진실을 말했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우는 현리를 생각하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나도 현리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이길 수 없다면, 그들이 우리 것을 가질 수도 없게 만들어야겠지?”
자신의 세상을 무너뜨리려는 현리. 김진우는 가만히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현리를 방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마다하지 않으리라.
* * *
“집은 괜찮아?”
“예, 정말 좋습니다.”
“다행이네.”
“감사합니다, 추장님.”
준기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호영이 제공해 준 ‘숙소’가 마음에 든 것이었다.
“지영이는?”
“별로 티는 안 내는데 그래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집이 이전보다 넓어졌으니 말입니다. 다만 여전히 의아해하는 것 같습니다.”
“왜?”
“추장님이 어째서 집을 사 줬는지를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준기에게 호영은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네가 세운 공이 얼마나 큰데 그거 가지고 그래? 지영이도 제법 큰 공을 세웠고, 그리고 애초에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잖아.”
“……하하, 제가 아니라 제 동생이 그랬다는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 그래. 어차피 그 건물, 내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동생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준기와 지영을 마지막으로 호영이 매매한 빌라의 합숙 멤버가 모두 정해졌다. 숫자는 총 서른 명이었는데, 유저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일흔 명 정도였다.
친위대에 소속된 유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호영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있거나 이번 합숙을 통해 충성심을 갖게 될 유저들이었다.
‘겨울이 되면 또 한 채를 사야겠어. 아니 아예 세 채 정도를 한 번에 사는 게 좋으려나?’
돈이 조금 깨졌지만 초보자의 섬에 있는 자금을 생각하면 크게 잃은 것도 없었다. 어차피 초보자의 섬에 있는 자금을 어느 정도 현실로 옮겨야 할 필요성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올해가 가기 전에 또다시 건물을 살 생각을 하였다. 최소 백 명 이상은 받아 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친위대의 훈련은 어때? 다른 유저들도 제법 세력을 키웠다는데 문제 될 건 없겠지?”
“물론입니다. 심법이야 재능 있는 소수의 인원만 가르치고 있지만, 창술만큼은 공평하게 키워 냈습니다. 이제는 친위대원 한 명이 전사 서너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김성근은?”
“요즘 들어 제 말을 잘 따라 줘서 가르치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창술은 현재 D급이긴 한데 곧 있으면 D+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네 말을 잘 따른다고?”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곰 같은 김성근이 유하기 그지없는 준기의 말에 잘 따른다는 게 왠지 우습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준기의 무력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명실상부 현리의 이인자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친위대를 잘 키운 것 같네. 초연, 너 덕분에 올해는 서울 대부분을 정복할 수 있겠어.”
그같은 칭찬에 준기는 자신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쑥스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영은 그 변함없는 모습에 다시 기분 좋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원재를 바라보았다.
준기처럼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원재였다. 때마침 원재가 호영에게 말했다.
“추장님께서 말씀하신 유저들을 모두 포섭하였습니다.”
“전부 포섭하였다고?”
“죄수의 신분으로 오래 있다 보니 어느 정도 현실을 깨우친 것 같습니다. 나머지 유저들조차 어떻게든 추장님의 휘하에 들어오려고 악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자신이 변호사라느니 시의원이라느니 뻗대고 있는 유저도 있지만 말입니다.”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장기 복무한 죄수는 벌써 2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고, 작년에 있었던 반란에 가담했던 죄수들은 대략 10개월 정도를 감옥에서 지낸 상황이었다.
인내심이 적은 유저라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인내심이 많더라도 감옥 생활을 견디기는 쉽지 않을 터.
결국 고집을 부리던 유저들은 순차적으로 ‘항복’을 선택하였다. 호영에게 완전히 복종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좋아. 쉰 명은 이번 정복 전쟁에 동원할 수 있게 준비시켜둬. 친위대에서 쓸 것은 아니고, 병참으로 쓰면 괜찮겠지. 그리고 나머지 죄수들은…… 감찰관이 알아서 가려내 봐. 현실의 직업까지 고려해서 말이야.”
“어디에 쓸 자들을 뽑으면 되겠습니까?”
“농부.”
“예?”
“농사를 짓게 할 거라고.”
그 말에 원재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던 유저들인데, 농사를 짓게 만든다면 폭동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일으키라고 해. 다만 그들은 알아야 할 거야, 이것이 내 마지막 관용이라는 것을.”
“…….”
호영은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2분기 때와는 이미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분기 때야 호영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유저가 극도로 적었었다. 친위대조차 완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에서까지 이어진 서른 명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존재하였고, 또한 감옥에 갇혀 있던 유저 쉰 명도 호영에게 복종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나머지 죄수들의 반발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호영이 죄수들로 하여금 막다른 길로 내몰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고생한다고 해 봐야 내년까지 겨우 2년이야. 그마저도 로그인 시간을 잘 맞춘다면 별로 고생할 일도 없지. 그렇게 내년까지 버텨서 3회 차가 된다면? 그들의 후손은 자작농으로서 그리 나쁘지 않은 지위를 갖게 될 테지. 한마디로, 다음 회 차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서 시작한다는 거야.”
“아…….”
원재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호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원시림에 가까운 강북 또는 강남 지역을 개간하는 것이야 어렵기는 하겠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죄수의 입장에서는 감옥에 기약 없이 갇혀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죄수들이 자작농으로서 현리에 정착하게 된다면 결국 3회 차에서도 현리와 뜻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현리에 자신들의 토지를 두는 셈이라 외부 세력과 협력하기는 아무래도 껄끄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추장님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되도록 우리에게 유용할 직업을 가진 이들을 포섭하여 자작농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중이 되면 현실의 수많은 직업들이 센추리로 옮겨지거나 몰락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4회 차까지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만큼 호영에게 도움이 될 직업을 가진 유저들을 등용할 필요도 있었다.
‘친위대 출신 중에 부친이 대기업 임원인 유저가 있었지. 검사 출신의 유저도 있었고 말이야. 앞으로도 센추리에서 세력을 계속 넓히려면 현실의 높으신 분들과 어느 정도 인맥을 다져 놓을 필요가 있어.’
일개 병사나 지휘관에 불과하였던 회귀 전에는 현실의 인맥에 크게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지만 제국의 황제가 되려는 지금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막말로 대기업 총수나 국회의원 같은 자들이 대놓고 방해를 한다면 그의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리 소속의 유저들을 이용하여 외부의 견제를 막아 줄 단단한 성채를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근데 초보자의 섬에서 하고 있는 작업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물론 현실에서만 아군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이 아니었다. 유저의 수는 초보자의 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들 역시 잠재적인 경쟁자 내지는 협력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초보자의 섬에서도 둥지를 틀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하였다. 전장에서 죽은 친위대 소속의 유저들을 간부로 구성하고는 어마어마한 코인을 뿌려 초보자의 섬에서 거대한 길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순조롭습니다. 요즘 대기업들이 진출한다, 안 한다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그래 봤자 아직까지는 투자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10억 이상 투자하는 기업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말입니다. 반면에 우리 대한 길드는 임대료로 들어오는 수십억의 가치를 지닌 코인이 투자되고 있고 뛰어난 창술을 보유한 친위대 출신의 유저들이 있습니다. 유저들로선 창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우리 길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위대 유저들이 제법 활약을 했나 보네.”
“물론입니다. 그들의 인지도는 유저들 사이에선 거의 준 연예인 급으로 외국의 랭커들까지 찾아올 정도랍니다. 추장님이 친위대 병사들에게 가르치신 창술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친위대 병사들 덕분에 우리 대한 길드에 대한 가입 문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길드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길드 중에서는 최고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잘하고 있군.”
호영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 게임보다 유저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초보자의 섬에서 일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흡족하게 하였다.
초보자의 섬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RPG 게임과 유사하였다. 스킬을 배워 몬스터를 사냥하고 길드를 만들어 정보 교류 및 친목 도모를 하는 것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하드코어하고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본 게임보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3회 차 정도만 되도 초보자의 섬에서 최고가 되는 게 본 게임에서 최고가 되는 것보다 어려웠겠지. 현실에서 힘 꽤나 쓰는 작자들이 전부 달려들 것이니 말이야. 이런 것은 한국의 반응이 느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
현대 사회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은 돈이 된다는 의미일 수 있었다. 실제로 센추리의 매출 대부분은 초보자의 섬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스킬을 사기 위해, 책을 보기 위해, 그리고 식사나 집을 구하기 위해 현질을 하여 코인을 구매하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유저들이 늘어날수록 경제의 규모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초보자의 섬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규모는 대기업조차 군침을 흘릴 정도로 발전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