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단 한 방. 호영을 사로잡자고 선동하던 길드장이 주먹 단 한 방에 절명하였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얼마든지 덤벼라.”
“……!”
섬뜩하기 그지없는 호영의 한마디.
그러자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처음으로 본 잔인한 광경에 몸서리치며 뒤로 물러나는 유저들과 콧김을 뿜어내며 복수심을 불태우는 유저들.
오래 끌 필요가 없었기에 호영은 곧바로 자신을 둘러싼 유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퍼퍼퍽!
열 명이 넘는 유저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며 호영의 발밑에서 꿈틀거렸다.
15초 전까지만 해도 호영을 향해 적의를 불태우던 유저들이었다. 그런데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죽음 직전으로 내몰렸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력을 보여 준 것이었다.
“도, 도망가!”
“……저는 아닙니다! 저는 진짜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으악!”
어떤 유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어떤 유저는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빌었다. 분명 그들은 유저로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신하였지만 그것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소리에 불과하였다.
호영의 압도적인 무력을 본 순간, 그들의 사기는 완전히 꺾어 버렸다. 비록 게임이라 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저벅저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치안대와 견인 전사 일부가 공터를 포위한 채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히익!”
“살려 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병사들의 모습을 본 순간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유저들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호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으니 투항을 선택한 것이었다.
‘쓸데없이 죄수들의 숫자만 많아지는군. 앞으로는 노동이라도 시켜야겠어.’
최초의 유저 중심의 반란이 싱겁게 끝나자 호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돌아오자마자 재미있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역시 추장님은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지만 말입니다.”
마포현에 갔다 다시 돌아온 현기가 호영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반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
“예상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대놓고 활동하는데. 반란은 일종에 통과의례였던 셈이죠.”
태연하게 대꾸하는 현기의 모습에 호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유저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원재가 몇 차례 보고한 적이 있었다. 호영 휘하에 있던 유저들도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불만이었는데 대부분이 법의 엄격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게임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내가 돈 주고 하는 건데 네가 뭔 참견이야?
이 게임의 장르 자체가 GTA처럼 꼴리는 대로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거다!
대체로 이같은 불만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해하지 못할 불만들은 아니었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현리의 정책은 강압적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이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나중이 되면 적응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호영은 유저들의 불만을 끝내 묵살하였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듯 유저들의 요구를 한번 들어주면 끝이 없었다.
오직 철권통치만이 유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유저들의 요구를 조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유저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까지 하였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회귀 전에 그러했듯 4회 차나 5회 차가 되면 유저들이 알아서 적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마 다음 회 차에서도 유저들은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 거야. 네가 말했듯 통과의례처럼 말이야.”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치밀하겠지요. 규모도 더욱 클 테고 말입니다.”
현기가 호영의 말에 동의하며 그렇게 답했다.
3회 차.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치열해질 것이었다. 적도 적이지만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터.
호영으로선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아군을 더욱 늘려야 해.”
“반란군들을 제법 살려 두셨더군요. 죄수들을 아군으로 만들 생각이십니까?”
“현리에서만 벌써 이백 명에 가까운 유저들이 감금되어 있어. 다른 마을들까지 합하면 삼백 명에 가깝지. 이들을 적으로 두는 것보단 아군으로 만드는 게 나아.”
“쓸모 있는 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던데요. 애초에 이 세계가 가상현실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무법자들 아닙니까?”
현기의 말에 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분명 능력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참을성 없고 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느 온라인 게임이었다면 PK나 핵 같은 악질적인 플레이만 했을 유저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영도 그들을 감옥에서 평생 썩게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범법 행위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NPC와 유저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기껏 세워 놓은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왕이 되는 것을 넘어 황제가 되려는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한국의 유저 수가 적은데 이번 회 차에서 실수했다는 이유로 완전히 내버릴 수는 없었다.
반란 진압 당시 열 명 정도만 죽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회유할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찾아보면 쓸모 있는 자들도 있겠지. 그리고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염두에 두어야 해.”
“하아, 그건 맞는 말씀이네요.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왕국의 기틀을 잡아 가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은 벌써 왕국을 세웠으니 말입니다.”
현기가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현기지만 유저들에 대해서만큼은 그 역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유저들의 행동은 그만큼 예측을 불허하는 까닭이었다.
‘역시 유저들에 관한 것은 원재에게 완전히 일임해야 되나.’
그 분야는 원재만큼의 권위자가 또 없었다. 유저들의 인적 사항까지 자세하게 조사했을 정도니 말이다.
“어쨌든 감옥에 갇힌 유저들은 원재나 내가 알아서 회유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
“부디 신중히 선택해 주십시오. 물론 추장님의 안목을 믿지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알았어. 최대한 주의해서 회유하도록 하지.”
그렇게 죄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호영은 마포현에 대해 물었다.
“새로운 마을은 어떤 것 같아? 성장 가능성이나 뭐 그런 거 말이야.”
“일단 강북 자체가 강서구에 비해 인구가 많아 보이니 도시로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또한 강북제패라는 부족이 그래도 농사를 어느 정도 지어 놔서 식량 생산도 제법 기대가 되고요.”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건가?”
“물론 문제점이 아예 없지는 않죠. 외부 위협이 많다는 점, 특히 혈맹이라는 부족의 존재가 위협이 되더군요.”
“친위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수인들이나 중소 부족들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 물론 친위대가 언제까지 주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강서구에 있는 부락들처럼 상인들을 보내 우리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면 되니까.”
현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상인들의 활약이 작지 않았다. 상인들과 교역하는 세력은 현리와 우호적인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우호적인 관계가 100년만 지속되어도 자발적으로 현리의 세력이 되고자 할 터.
그야말로 교역 하나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너의 말처럼 혈맹이라는 세력이 문제이긴 해. 멀리 있는 부족에게 정찰병을 보낼 정도면 세력이 제법 강성하다는 뜻이니까.”
“유저들도 은근히 많은 것 같습니다. 수장의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라나? 전쟁을 많이 하는 것도 인기의 이유이기도 하고요.”
호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위협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경계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혈맹의 수장이라는 자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다.
‘정신병 있는 놈들은 상대하는 게 무척이나 까다롭단 말이지.’
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그였기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꽤나 많이 보았었다. 주로 전쟁에 지친 NPC들이었는데 적이든 아군이든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괜찮을 거야. 거리가 제법 상당하니까. 그리고 설령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장훈이 어떻게든 하겠지. 장훈도 분명 능력 있는 장수니까 말이야.”
“장훈이라…….”
“왜, 친위대장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그보다는, 친위대장에게 마포현을 맡긴 것은 그에게도 봉토를 하사하겠다는 의중으로 봐도 되겠죠?”
“당연하지. 예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NPC라고 차별할 생각이 없어. 장훈뿐만이 아니라 봉하나 봉성처럼 공을 세운 NPC들 전부에게 기사 작위나 봉토를 하사할 생각이야.”
“하지만 아군을 늘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유저라는 아군을.”
“유저들을 늘리기 위해 NPC를 적대할 수는 없잖아? NPC들도 이제는 유저의 존재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어. 유저들을 편애한다면 NPC가 반발할 거야.”
그 말에 현기가 돌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말 복잡하네요. 유저의 일탈에 NPC의 반응까지 일일이 고려해야 되다니. 오늘따라 제가 평범한 천재라는 게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
“그냥 유저들 없이 저 혼자 게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패키지 게임처럼 말이죠.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텐데……. 하아. 정말 골치 아프네요.”
호영은 순간 황당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싱겁게 웃었다. 완벽하다고 여겨지던 현기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였다.
‘대단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는 건가.’
하기야 제아무리 엄청난 천재라지만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까지 완벽함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터.
현기도 결국 인간이라는 말이었다.
“아무튼 봉토는 추장님의 생각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유저들이 불만을 품을 것이라는 점만 염두에 두십시오.”
“봉영에게 방화현을 맡길 때도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그런데 수많은 공을 세운 장훈에게 봉토를 하사하는 걸로 크게 반발할까? 고작 NPC라는 이유로?”
“그녀는 미인이지 않습니까?”
“……그렇군.”
호영은 할 말이 없었다. 미녀라서 불만이 없었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물론 황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 시기의 유저들은 정말 골치 아픈 존재들이군. 뭐만 하면 불만을 제기하다니. 외부의 위협이 줄어드니 내가 만만하게 느껴지기라도 하나? 5회 차의 유저들은 노예면 노예, 평민이면 평민으로 신분제조차 완전히 순응하였는데 말이야.’
그 역시 5회 차 때 처음 센추리를 시작했으면서 병사 신분에 곧바로 적응하였다. 그때는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의 유저들도 머지않아 깨닫기는 할 것이었다. 호영에게 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행동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