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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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추리에서 눈을 뜨니 다행히 강을 넘은 상태였다. 즉, 로그아웃 해 있는 동안 아바타는 이미 마포현에서 현리로 넘어왔다는 뜻.
아마 경비대와 치안대가 타고 온 배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반란이 일어날 것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호영은 곧바로 원재를 찾고서는 다짜고짜 물었다. 아직 자세한 정보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이버 정보 팀이 카페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현리를 타도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카페였죠. 거기서 반란을 모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확실한 정보인가?”
“어제부터 감시하기 시작한 유저들이 단체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일종에 길드를 만든 것인데, 정보원을 보내 확인하니 그들은 유저들을 상대로 감옥에 있는 유저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방진이나 제식 같은 것도 대충이나마 훈련하고 있고 말입니다. 아마 지금도 내성 북쪽에 있는 공터에서 단체로 훈련하고 있을 겁니다.”
현리의 법은 무척이나 엄격했다. NPC들에게만 엄격한 것이 아니었다. 유저들 또한 법을 어기면 봐주는 것 없이 곧장 감옥으로 끌려갔다.
워낙 엄격하게 처리하다 보니 감옥에 갇혀 있는 유저들만 해도 벌써 아흔 명이 넘었다. 게임한다는 생각으로 무법자처럼 행동하다 보니 곧바로 범죄자가 되어 버린 경우였다.
“친위대가 없고 치안대의 숫자도 백 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겠군. 더군다나 성공하기만 하면 이 거대한 도시를 차지할 수 있으니 그 유혹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고 말이야.”
“예, 길드에 소속된 유저들만 백 명에 가까우니 만약 투옥된 아흔 명의 유저를 구출해 낸다면 반란의 성공 가능성은 대폭 늘어날 겁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가 무려 이백 명이나 되는 셈이니 말입니다.”
현리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세 부대를 모두 합해도 백쉰 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마저도 전부 흩어져 있었는데 만약 원재의 말처럼 지금 같은 시기에 유저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유저들의 전투력이야 별 볼 일 없을 것이지만 치안대 역시 군대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영은 그런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조소를 지었다.
“내가 없었다면 그랬겠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고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전장에서 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났다. 솔직히 말해서 호영 혼자서도 반란군 전체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저들은 아마 추장님이 강북 지역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 겁니다. 추장님은 언제나 친위대와 함께 움직이니 말입니다.”
“그게 그들의 가장 큰 실수야.”
호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현실과 센추리 양쪽에서 반란의 조짐을 확인하였으니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어디 가십니까?”
“반란을 진압해야지.”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입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싶지는 않아서.”
반란이 일어난 이후에 진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반란의 여파로 극심해질 사회적 혼란도 혼란이지만 감금되어 있는 유저들에게 반역죄를 씌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범죄자 신분이 된 유저들이지만 호영은 그들 중 일부를 이번 회 차 끝날 무렵이나 다음 회 차가 시작될 무렵에 자신의 세력으로 회유할 생각이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어느 정도 센추리의 현실을 깨우친 자들이 있을 것이니 최대한 회유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니만큼 ‘반란죄’라는 굴레를 씌우게 하고 싶지 않았다.
* * *
“다행히 거의 다 모여 있는 것 같군.”
내성 근처의 공터. 학교 운동장만 한 공터에 수십여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저들이 바로 원재가 말했던 길드 소속의 유저들일 것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길드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웅성웅성.
호영의 등장에 유저들의 분위기가 급격히 어수선해졌다. 아무래도 반란을 모의하는 집단이다 보니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저기요! 혹시 길드 가입을 희망하는 사람입니까?”
한 사내가 호영을 향해 다가와서는 그렇게 물었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가지고 있되, 새로운 유저의 출현은 환영하는 분위기 같았다.
하기야 거대한 세력을 무너뜨리려는 집단이니 숫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회 차라서 그런가, 역적모의도 참 허술하기 그지없군. 이렇게 대놓고 활동하다니. 원재가 아니더라도 NPC 중 누군가는 보고를 했겠어.’
호영은 사내의 물음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원재가 다급하게 ‘반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라고 전화를 해서 걱정이 없지는 않았는데 막상 그 반란이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무슨 평범한 게임의 친목 단체 같지 않은가?
“이 길드는 무엇을 위한 길드지?”
“무엇이라니요. 당연히 유저들의 이익을 위한 단체죠. 인터넷에서 설명 안 보셨어요?”
“유저들의 이익이라……. 그래서 반란까지 저지르려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말투가 조금 껄끄러운데. 유저는 맞죠?”
기껏 한다는 질문이 ‘유저는 맞죠?’라니. 호영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유저는 맞다. 다만 너희들과 생각이 조금 다른 쪽이지.”
“뭐야. 추장 따까리였어? 덩치가 커서 싸움 좀 잘할 것 같더니 이거 참.”
“추장의 수하가 이곳엔 왜 왔대? 죽고 싶어서 왔나.”
호영의 한마디에 유저들의 반응은 급격히 적대적인 분위기로 팽배해졌다.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쥐며 포위하듯 사방을 막아서는 것이 말을 잘못하면 그대로 죽음일 것 같았다.
물론 호영에게는 예외였다. 이 정도의 숫자가 그에게 위협이 될 리는 없는 것.
그는 평소와 같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현리를 무너뜨리는 게 유저들한테 이익이라고 생각하나?”
“왜,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아니면 시간 벌기인가? 크크, 추장 쪽에서도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보네.”
“너희들이야말로 반란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나?”
“당연히 승산 있지. 친위대가 강북으로 간 것은 모두가 알고 있어! 솔직히 친위대만 없으면 성공하지 못할 게 뭐 있어? 치안대 몇 명이 지키는 감옥만 뚫으면 우리 숫자가 이백이 넘을 텐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자신들의 계획을 밝히는 유저들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더욱 한심하게 느껴졌다.
몇 명은 그래도 ‘아차!’ 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보안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여기에 있는 유저들 대부분은 원재에게 ‘받아들일 가치가 없음.’이라는 평가를 받은 유저들이었기에 한심한 모습을 보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무능하면서 욕심만 많은 전형적인 부류군. 게임이라는 생각에 진지하지도 않고 말이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리를 장악하면? 그 이후에는 어쩔 생각이지?”
“뭘 어째. 당연히 유저들을 위한 도시로 만들어야지. 너는 솔직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NPC 따위가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떵떵거린다는 게?”
돌도끼를 든 중년 사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기저기서 ‘맞다! 더러운 NPC들은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여기는 유저들을 위한 세상이다!’, ‘독재자는 물러가라!’를 외쳤다.
분위기만 본다면 독재 타도를 위해 투쟁하는 위대한 혁명가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유저들을 보며 호영은 딱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묻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현리를 어떻게 지켜 낼지를 묻는 거다, 나는.”
“…….”
“경비대와 치안대 병력이 백여 명에, 예백산에는 견인 전사 수백 명이 있다. 그리고 친위대도 이틀 안에 돌아올 수 있지. 너희들은 부족의 대대적인 반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고작 이 숫자로?”
침묵이 찾아왔다. 마치 호영의 말을 예상치 못했다는 듯, 아무 말도 못하는 유저들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예백산의 병력을 생각지 못했을 수가 있지? 여기는 바보들만 모인 건가.’
평범한 유저들은 정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현리 인근에 위치한 예백산. 주로 수인들이 거주하는 예백산에는 현리보다 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덕규가 이끄는 견인 전사들이 대부분인데, 주로 상행의 호위로 나서는 병력이라 예백산에 주둔하였다.
그들이 비록 평소에는 상단을 호위한다지만 반란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진압군의 역할을 맡게 된다.
지금 현리에 주둔하고 있는 숫자가 백쉰 명이 안 된다고는 해도 예백산의 병력까지 합한다면 육백이 넘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리의 부족민들도 나에게 충성하는데 고작 이백으로 현리를 장악한다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네.’
유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호영은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였다.
“너희들의 계획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 것인지를 내가 몸소 증명해 주지.”
“중2병이냐?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유저 한 명이 이죽거리며 그렇게 답하자 호영이 한마디 하였다.
“나는 이곳, 현리의 추장이다.”
호영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음성을 토해 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추장은 강북에 있는 거 아니었어?”
“헐! 어쩐지 본 것 같은 얼굴이라더니.”
“미친! 우리 그럼 망한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솔직히 재미삼아 온 거잖아. 나는 죽고 싶지는 않다고.”
혼란에 휩싸인 채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는 유저들.
자신 있게 반란을 준비했던 주제에 추장의 등장만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호영으로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진정하세요! 진정하시라고요! 저, 길드장입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이 사람이 추장이 맞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때 나무 지팡이를 든 30대 중반의 사내가 외쳤다. 스스로를 길드장이라고 밝혔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의 조직 장악력을 갖추었는지 혼란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어수선한 것은 여전하였지만 말이다.
“저 사람을 사로잡으세요! 만약 추장이 맞다면 우리의 반란은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길드장이라 밝힌 사내는 연신 호영을 가리키며 인질로 사로잡으라고 지시하였다. 마치 호영만 사로잡으면 반란에서 성공한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 현리에서 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니까.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사로잡힌다고?’
호영을 사로잡는 것이 육백 명이 넘는 병사들을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리라.
“길드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추장만 붙잡으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추장을 붙잡자! 추장을 붙잡자!”
유저들이 자신을 향해 공격 의사를 밝히기 시작할 때, 호영은 이미 길드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유저 앞에 있었다.
“뭐야? 어떻게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온 거야? 크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