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한반도 토착 수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이 바로 호인족이었다. 호영에게야 손쉬운 상대지만 무공이 없는 한 스킬이 아무리 높아도 무찌르기가 쉽지 않은 상대였다.
아마 오크조차도 호인족을 상대하기 위해선 아무리 못해도 동등한 숫자의 전사를 동원해야 할 것이었다.
그만큼 호인족의 전사는 대단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벌써부터 멸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인족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호인족이 멸망하는 원인은 단순했다. 번식력과 방랑벽.
본래 수인들은 오크나 마물들과 비교했을 때 번식력이 무척이나 낮은 편에 속하였다. 물론 인간보다는 높지만 어쨌든 번식력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호인족은 번식력도 낮은 주제에 방랑벽이 심했다.
특히 무슨 1회 차의 거인을 따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종족 안에서 모여 살지 않고 다른 종족의 우두머리가 되고는 했다.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 없다는 말처럼 호인족 역시 따로따로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호영의 밑에 호인족이 적은 이유는 호인족의 인구가 적어서라기보단 호인족의 반항이 거세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말이다.
그래도 호영에게 다행인 점은 묘인족을 제법 구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인족 안에서 손재주가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것이 묘인족이었다. 그런 묘인족을 이백 명이나 구했으니 호인족을 적게 구했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저곳이 현리인가요?”
“우와, 이런 대규모 농지를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
상념에 잠겨 있던 호영의 귓가로 감탄 어린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이번 원정에서 얻은 인재들인 봉영과 은규였다.
“그래, 여기서부터 현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을 보며 호영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외국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는 이 정도로 발전된 곳이 없었기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았다.
“저 인간들도 현리의 전사들인가?”
“경비대로군. 맞다. 나의 전사들이다.”
덕규의 물음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그러자 덕규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들이 다섯 명씩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 봤다. 이곳은 인간의 땅이 확실한 것 같다.”
땅이 넓어지면서 경비대의 정찰 범위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그들은 채집이나 농사를 짓는 부족민들을 보호해 주고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경비대의 정찰 활동이 계속해서 이어진 지도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난 상황.
경비대의 정찰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마물이나 수인들의 인식에서도 현리 인근은 인간의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제 굶주린 야생동물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무리도 현리 일대를 넘보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들만의 땅이 아니다. 이제 너희들도 이곳의 주인이다.”
“나는 정말 대단한 우두머리를 모시고 있는 것 같다. 우리를 지배해 주어 고맙다.”
“고맙기는. 네가 잘 따라 주어 내가 더 고맙다.”
“앞으로도 우리 견인족은 추장에게 충성을 다하겠다.”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하는 덕규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흐뭇한 얼굴을 하였다. 봉영이나 은규와 비교해도 모자랄 것이 없는 인재였다.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은 호영으로선 덕규의 존재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벌써 도착했군. 이 안부터가 진정한 현리다.”
호영이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니 새로 부족민이 된 육백 명의 수인과 백여 명의 인간들이 전부 긴장한 얼굴을 하였다.
미지의 땅으로 가는 것이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호영은 봉영과 은규, 덕규와 한 번씩 눈을 마주치고는 목재 성문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호영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수천 명의 부족민들이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었다.
“봉하가 준비를 잘해 놓았군.”
부족민들의 환호에 호영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억지로 끌려 나온 표정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환호.
육백 명에 달하는 수인들이 합류하는데도 불안감을 느끼기는커녕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었다.
‘곧바로 정복 전쟁을 해도 괜찮겠어.’
민심이 지지한다면 정복 전쟁은 보다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 호영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내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승을 감축드립니다.”
“대승을 감축드립니다!”
내성에 당도하니 치안대와 친위대를 비롯한 부족의 간부들 전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호영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김성근이 마중을 나와 있을 줄이야. 많이 바뀌긴 한 것 같네.’
간부들을 비롯하여 병사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던 도중 호영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게 보이는 병사 한 명을 발견하였다.
산만한 덩치에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병사.
그는 바로 김성근이었다.
외부 활동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을 것 같은 김성근이 호영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몸소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그야말로 의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호영은 크게 내색을 하지 않고는 계속 눈인사를 이어 갔다.
현기와 눈인사를 할 때는 살짝 찔끔하기는 하였지만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는 못하였다.
“그동안 부족을 지키느라 수고가 많았다. 내 너희의 수고를 기억하겠다.”
호영은 그들 모두를 격려해 주고는 곧바로 내성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내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치안대로 하여금 새로 부족민이 된 수인들을 안내하라고 지시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무실에 도착한 호영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보고할 것은?”
언제나 그렇듯 단도직입적인 태도였다.
그런 호영의 태도에 익숙하다는 듯, 원재가 가장 먼저 보고하였다.
“일족들이 두 차례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직도 불온 세력이 남아 있나?”
“아무래도 노예제를 폐지한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호영은 원정을 나가 있는 동안에도 현실에서 원재와 통화하며 현리에 대한 소식을 접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환영 인사가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호영이 미리 원재에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이외의 정보들도 계속 전해 주었다.
준기가 1,300명의 부족민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부터, 수인들 육백 명이 부족민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
또한 노예제를 폐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역모의 조짐은?”
“확실치는 않지만 역모를 꾸미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임을 가진 거다?”
“친목도 친목이지만 앞으로 자신들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해 자세하게 논의한 것 같습니다.”
호영은 그의 추측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족들과 관리들을 감시하고 있는 원재였다. 웬만해서는 그의 추측이 맞을 것이었다.
‘일족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하기야 이미 영향력의 태반을 잃었으니 뭘 할 수도 없겠지. 애초에 지금은 현기의 수족과도 다를 게 없는 처지고 말이야.’
원재 다음에 보고한 사람은 봉하였다. 그는 망루나 내성 같은 시설물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였고, 내년의 병력 유지 비용과 시설물 확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행정 관리들이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말해 주었는데, 유저들 덕분인지 관리들이 꽤나 성장한 것 같았다.
“앞으로 있을 정복 전쟁을 대비하여 새로운 관리를 뽑아야 하는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임명만 해 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교육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자신 있는 대답에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들만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행정관인 봉하 역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현리 부족.
내년이 되면 또 얼마나 발전할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봉하 다음에는 친위대장, 경비대장, 치안대장순으로 보고를 하였다. 호영이 그렇게 오래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특별한 보고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보고자는 왠지 모르게 무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군사 이현기였다.
‘눈빛이 무서운데.’
하기야 그럴 만도 하였다. 며칠 안에 온다고 했던 호영이 거의 3주 가까이 자리를 비웠으니까.
안 그래도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리던 현기로선 아주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호영의 업무 대부분을 그가 봐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수인족이라는 이름의 골칫거리를 무려 육백 명이나 데려왔으니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을 터.
“현재 비축된 식량으로 계산해 본 바에 따르면 내년에 받아들일 수 있는 부족민의 숫자는 최대 7천입니다.”
“7천? 내가 원정을 가기 전에는 최대 1만 명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지 않았던가.”
호영의 그같은 말에 현기가 이를 갈며 대답하였다.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
“수인들이 갑자기 육백 명이나 생겼지 않습니까? 여기에 추장님의 활약으로 복속을 청원하는 부족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흠흠, 내가 없는 동안 현리에 귀의한 부족민이 많았나 보군.”
“오백이 넘는 숫자가 합류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추장님의 ‘활약’을 전해 듣고 찾아온 부족민입니다.”
활약이라는 단어를 크게 강조하는 현기를 보며 호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새로 합류했다는 부족민들 사이에는 아마 유저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들이 부족민들을 설득하여 현리에 복속을 청원하였을 터.
‘조금 유명해졌을 뿐인데 반향이 엄청나구나. 앞으로는 주의해야겠어.’
연합과의 전투에서 무지막지한 전투력을 보여 주었던 호영은 커뮤니티에서 한참 동안 화제가 되었다.
단 두 명이서 수십 명을 상대로 이겼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호영에 대해 의구심을 갖거나 호기심을 갖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강서구에 위치한 유저들이 대거 현리에 몰리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을 한번 만나 보기 위해 현리를 찾아와 복속을 청원한 것이다.
“정복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예행연습을 하는 셈이니 나쁘지 않은 일이로구나. 이번 경험을 통해 머지않아 있을 정복 전쟁에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겠어.”
호영이 어색하게 말을 돌리자 시종일관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던 현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상의도 하지 않고서 새로운 부족민을 무더기로 데려온 것은 분명 골치 아픈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은 현기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현기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평소에는 분석적이고 냉철하게 행동하면서 가끔씩 앞뒤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단 말이지. 근데 그게 또 최상의 결과로 돌아오니 뭐라 할 수도 없군. 정말,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사람이야.’
호영과 함께할 앞으로의 나날들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현기였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