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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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 추장이 영등포구 연합을 상대로 승리했다!
웹 서핑을 하던 지호는 이와 같은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현리 부족의 추장이 혼자서 영등포구 연합을 무찔렀다는 게시물이었다.
‘와, 영등포구 연합이 양천구로 진출한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본 것 같은데 그새 멸망했다고? 대왕이라는 사람 진짜 대단한가 보다.’
지호는 그 게시물을 읽고서 순수하게 감탄하였다. 혼자서 군대를 상대하다니. 뭔가 다른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게임이라기보다는 만화나 영화 같다고나 할까.
어찌 되었건 부족의 전사 A에 불과한 자신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진짜 재미있게 게임하는구나. 정말 부럽다. 부러워.”
사실 처음 현리 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대왕이라는 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자신은 조그만 부족의 일개 전사에 불과하건만, 대왕이라는 유저는 엄청난 규모의 부족을 경영하는 최고 권력자였다.
같은 유저로서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질투심은 동경심과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마치 소설을 읽어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같은 유저인 대왕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현리 부족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지호는 자신이 그저 그런 부족에서 태어난 게 너무도 아쉬웠다. 자신이 동경하는 현리 부족의 추장과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특히 현리 소속 유저들에게 가장 부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친위대’라는 군사 조직의 혜택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농토에다가 막강한 권력과 스킬까지 지급해 주는 군사 조직!
심지어 최근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면 친위대에서 가르치는 스킬들은 최소 수천만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친위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같은 혜택들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대왕은 여기까지 안 오려나? 현리가 우리 부족을 정복해 주면 좋으련만.’
지호는 속으로 그런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부족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지호가 현리 부족의 위치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드넓은 센추리 세계에서 하필 자신의 부족이 현리 부족 인근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지호였다.
“에휴, 커뮤니티를 보니 쓸데없는 생각만 하게 되네. 이럴 거면 그냥 게임이나 하자.”
지호는 부러움으로 가득 찬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그러고는 곧장 가상현실 기기에 들어가서는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이제부터 그는 안지호가 아닌 신은규였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접속하기 무섭게 들려오는 경보 소리. 은규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아는 얼굴들이 바쁜 움직임으로 이곳저곳을 쏘다니고 있었다. 저마다 나무창이나 목궁을 들고 있었는데 은규가 보기에도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이었다.
은규는 얼떨결에 그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전쟁 같은 것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족만 벗어나면 마물이며 맹수며 온갖 것들이 득실거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의 부족은 1년 내내 평화롭기만 하였다. 지원이 풍부했고 부족의 추장이 크게 욕심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안심하였었다.
지금까지 평화로웠다고 언제까지 평화로울 수는 없는 법.
특히 겨울은 약탈의 계절이었다. 식량을 비축하는 데 실패한 수인들과 마물들이 대대적으로 약탈에 나서는 시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은규의 부족을 침략한 종족은 무려 오크였다. 수인들의 연합 공세에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던 오크족의 일부가 은규의 부족을 침략한 것이었다.
취이익! 취이익!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린 은규는 애써 용기를 내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생각한 것처럼 그리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오크의 숫자는 고작해야 스무 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은규도 멀리서 봤을 때는 잠깐 안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크들이 점점 다가오자 은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현리 부족이 1회 차 때도 상대한 적이 있다는 종족이라서 별거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뭐, 장난 아니잖아! 저 괴물 같은 것들을 어떻게 이겨?’
인간의 입장에서 오크는 괴물이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외형을 가진 괴물.
하지만 외형보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오크의 가죽. 오크족의 가죽은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무창이나 조잡한 활로는 타격을 주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은규는 오크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전의를 상실했다. 아무리 방도를 찾아봐도 오크들을 이길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괴물! 그것도 한 마리당 최소 다섯 명이 붙어야 상대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괴물이었다.
숫자의 이점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부족의 전사는 고작해야 스물세 명에 불과하였다. 한데 스물세 명의 전사로 비슷한 숫자의 오크를 상대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오크족과의 전투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하였다. 처음에는 목책이 있어 그나마 버텼지만 더 이상 목책이라는 장애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오크들이 힘으로 우악스럽게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크족과의 전면전뿐이었다.
“이번에 죽으면 3회 차에서는 현리에서 태어날 수 있으려나? 하,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은데.”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오크를 보며 은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였다.
하지만 그때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있던 오크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은규가 화들짝 놀라 오크를 바라보니 오크가 피를 흘린 채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끄르륵.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의 신음이 멈추었다. 죽어 버린 것이다. 오크의 가슴에 창날이 언뜻 보였다. 누군가가 멀리서 오크에게 창을 던진 것 같았다.
휘휘휙!
은규가 시선을 돌리니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뼈창. 그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을 것 같던 오크들이 갑작스러운 투창 공격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건 또 뭔 일이래?”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연속으로 발생하자 멍청한 얼굴이 되어 버린 은규였다. 당연히 그가 멍하게 서 있는 동안에도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장의 분위기는 급변하였고 오크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마침내 오크들을 공격한 무리가 등장하였다.
수십을 넘어 수백으로 보이는 숫자. 은규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보는 대규모 무리였다.
‘견인족? 아니, 인간도 보이는데? 도대체 뭐 하는 집단이지?’
견인들이 다수 포함된 의문의 집단은 등장하기 무섭게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혼란에 휩싸인 오크들은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이 아닌, 무력하고 일방적인 모습으로 사살당하였다.
15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덧 스무 마리의 오크족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의문의 집단에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인간들은 들어라! 나는 현리 부족의 추장, 대왕이다! 이곳은 지금부터 나의 땅이다! 그러니 너희들 역시 오늘부로 현리의 부족민이다! 알아들었으면 지금부터 나의 통제에 따라라!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청천벽력 같은 거한의 외침.
소리도 놀라울 정도로 컸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었다. 거한은 무려 복속을 요구하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복속을 말이다.
평소였다면 들어 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부족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다. 누군가의 침입을 받은 적도 없었고 주변에서는 나름 강대한 전력을 가진 부족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크족의 공격으로 인해 반수 이상이 죽거나 다쳤고 나머지 절반의 전사들도 사기를 잃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전사들이 보여 준 전투력은 실로 놀라웠다. 특히 대왕이라는 자가 보여 준 무력은 혼자서 오크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그같은 전투력을 보았기에 반발하고 싶어도 반발할 수가 없었다. 부족의 전사들은 그렇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현리 부족에 복속되었다.
‘현리라니! 현리의 추장이라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은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을 걱정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현리의 추장이 자신의 부족을 정복한 것이다.
은규는 가슴이 크게 격동하는 것을 느끼며 대왕을 향해 걸어갔다.
대왕은 팔짱을 낀 채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속으로 잠시 ‘말을 걸어도 될까?’라고 생각하였지만 동경하는 대상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추장님!”
“……제법 적응이 빠른 전사로군.”
“대왕님을 이전부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은규가 용기를 내서 그렇게 외치자 대왕이 눈을 빛냈다. 이전부터 존경했다는 말은 대왕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고립되어 있던 부족이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현리에 대해, 그리고 현리의 추장에 대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은규의 정체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유저! 은규가 유저라면 현리와 대왕의 존재를 아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신은규라고 합니다.”
“파의 부족의 신씨라……. 이것참.”
“예?”
“아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워낙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서…….”
“일종의 팬이라는 거네.”
“팬요? 예,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팬이라는 단어에 은규가 어색하게 웃었다. 원시인 패션을 하고서 영어 단어를 말하니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은규를 보며 대왕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대왕 역시 은규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 * *
‘정말 많은 것을 얻었군.’
처음에는 그저 준기를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출정한 것이지만 막상 부족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처음 세웠던 계획과 완전히 다른 결과가 전개되었다.
준기를 구하고 연합 부족을 패퇴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부족민을 새로 얻은 것이었다.
이 수천 명의 부족민 중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수인족 육백 명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실로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파의 신씨 가문을 얻었다. 추후 대귀족이 되는 신씨 가문을!’
얻은 것은 부족민뿐만이 아니었다. 머지않은 시기에 여 나라를 세우게 될 봉영이라는 유저를 얻었고, 견인족의 통솔을 대신해 줄 인재, 덕규를 얻었다.
그리고 3회 차부터 명문가로 불리게 될 파의 신씨 가문을 얻게 되었다.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못한 행운의 연속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호인족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