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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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과 준기는 전사들을 추격한 끝에 결국 영등포구 연합의 본거지를 점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단 한 명의 피해도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정말 이삭을 줍듯이 간단하네요.”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들을 상대로야, 숫자가 얼마나 되건 상대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
준기는 호영에게 감탄했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진짜 감탄해야 할 사람은 준기가 아닌 호영이었다.
‘그세 새로운 보법과 창술을 만든 것인가? 이래서 천재들이란.’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는 말인가. 추장이 된 주제에 정치는 하지 않고 수련만 했던 것일까?
호영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준기를 보며 새삼스럽게 경각심을 가졌다.
그는 현재 일종의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바타야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는 하다.
마력 수치도 계속 오르고 있었고 보법이나 마나 관련 스킬들도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연의 실력, 즉 무공의 성취도는 작년과 그대로였다.
스킬은 A급에 창을 다루는 실력이나 마나를 운용하는 능력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최선두를 달리고 있을지 몰라도 천재들의 재능을 생각하면 언제까지 최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맙다. 내가 요즘 해이해지려고 했는데 네 덕분에 현실을 깨달았다. 역시 나 같은 범재는 노력밖에 답이 없어.’
주먹을 불끈 쥔 호영은 다시금 다짐하였다. 앞으로도 절대 방심하지 말자고 말이다.
“백 명이나 1천 명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려울 것은 없지.”
“이야……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또 오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력의 한계가 있으니 아무래도 숫자가 많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형님의 마력은 저보다 훨씬 많겠지만 말입니다.”
“마력? 심법이 다르니 내가 훨씬 많기는 하겠지.”
참고로 준기가 가지고 있는 심법은 호영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심법 같은 경우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몇 년 안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가르쳐 준 것.
물론 호영이 쓰고 있는 심법과 똑같은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준기를 신뢰한다고 해도 심법의 가치가 가치인 이상 함부로 가르쳐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호영이 사용하고 있는 심법은 8회 차가 되는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완성된 심법이었다.
비록 8회 차에서 그리 인정받는 심법이 아니었다 해도 최소 6회 차까지는 축기라면 축기, 안전성이라면 안전성 등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압도할 심법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2회 차밖에 안 된 지금 이같은 심법을 풀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호영이 김성근에게 가르쳐 주었던, 병사 시절 익혔던 심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조차도 지금 시기에는 억을 주더라도 구할 수 없는 상승의 심법이었다.
‘문제는 축기보다 안정성을 강조하는 심법이라는 점이지. 아직 1분기도 안 끝났으니 지금쯤 30 정도밖에 못 모았겠네.’
준기가 인해전술을 새삼스럽게 우려하는 이유도 아마 본인의 마력 부족을 심각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력이 부족해도 숫자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어차피 기동력이 압도적이니 기동력으로 승부를 보면 되거든.”
“기동력이라……. 확실히 우리에게는 보법이 있기는 하죠.”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하건 아니면 내가 아까 보여 주었던 것처럼 극한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사용하건 기동력이 압도적이면 결국 숫자 차이도 극복할 수 있어. 뭐, 갑자기 수천 명을 상대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엔 말이야.”
고수의 존재가 두려운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워낙 속도가 빠르니 병사들로선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중 이야기지만 중국에서는 이같은 이유로 일국의 군대가 고작 수십 명의 고수들에게 패배한 적도 있었다.
병사가 아무리 많아도 치고 빠지며 암습까지 하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영등포구 연합의 수장이 최진수라고 했지? 이미 도망쳤다는 그 사람 말이야.”
“예, 항복한 유저의 말에 따르면 재벌가의 도련님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건 거짓말인 것 같고 그냥 돈 많은 유저인 것 같습니다. 프로 게이머들과 일부 유저들을 돈으로 영입했다고 하니 꽤나 부자인 것 같아요.”
“재벌가의 도련님이 맞을 거야. 내가 아는 사람이거든.”
“아는 사람요? 재벌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호영은 준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다. 문제는 악연이라는 점이지만.
“허어,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었겠는데요?”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예?”
준기가 의문 어린 표정을 하였지만 호영은 그저 쓴웃음을 짓기만 할 뿐이었다.
‘설마 영등포구 연합의 수장이 최진수일 줄이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연적이라 할 수 있는 최진수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애초에 최진수가 서울 지역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최진수가 일찍부터 센추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것은 신라의 귀족이 된 이후였으니 말이다.
‘신라의 귀족이 될 최진수가 영등포구 지역에서 활동하다니. 아니, 그것보다 최진수가 이 시기에 이만한 세력을 만들었다고? 믿기지가 않는데. 그놈은 8회 차가 될 때까지 제대로 이름을 떨친 적이 없었던 놈인데.’
호영이 기억하기로 한국 유저들이 부족을 확장시키며 세력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되는 시기는 2회 차가 시작되고 대략 반년이 지난 이후였다.
즉, 센추리 시간으로 2년이 지나고서야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행동으로 미래가 바뀔 수 있다지만 벌써부터 이같은 변수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최진수의 미래가 이렇게 바뀔 줄이야. 자신이 최진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나비효과인가 싶었다.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던 호영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잡생각을 거둬 냈다. 어차피 미래는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단지 최진수의 변화가 의외였지만 결국 그뿐이었다. 이미 수도 없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바뀔 미래를 이 이상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호영은 멀뚱히 서 있는 준기에게 물었다.
“아무튼 주변 부족은 어디에 있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족들부터 순서대로 말해 줘.”
“주변 부족은 왜요?”
“말했잖아, 이왕 이곳에 온 김에 이 일대를 모조리 평정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연합의 본거지를 점령한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연합과의 전면전을 끝낸 이후, 호영은 준기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주변 부족을 모두 정복하고 돌아가겠다고.
친위대도 없고 경비대도 없었지만, 그 혼자서도 부족 몇 개 정도는 점령할 수 있었다. 다만 부족민과 노예를 관리할 병사가 없다는 게 문제였는데, 그것은 준기가 대신해 주면 될 문제였다.
준기에게는 열 명의 전사와 서른 명의 항병이 있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잖아. 어차피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형님이 있음으로써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건데요? 형님 없으면 지금 당장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너도 강하잖아. 반란이 일어나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면서 소심하게 왜 그래? 그리고 내가 돌아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혈혈단신으로 다른 부족을 정복한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정복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물론 호영의 무력이라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족이 양천구 쪽에 있대요. 정확히는 우리 부족보다 아래에 있다는데요?”
“나머지는?”
“영등포구 동쪽이나 남부의 경우는 마물의 습격이 잦아 진출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의 경우는 이미 모두 점령해서 수인들밖에 없다고 하네요.”
“하기야 부족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긴 했지.”
영등포구 연합의 규모는 무려 1,300명. 전사 쉰 명을 모았고 이전에도 대규모 군사를 여러 번 일으킨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 엄청난 규모였다.
이 정도면 현리라는 규격 외를 제외하고는 아마 한국 유저들 중엔 최선두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몇 개월만 지나도 연합 정도의 규모를 가진 부족들이 우후죽순 등장하여 여러 왕국이 건설되겠지만 말이다.
‘프로 게이머들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지만 이 정도의 세력을 단기간에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히 위협적인 일이야. 앞으로 최진수를 조금 더 경계할 필요가 있겠어.’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한 호영은 준기에게 말했다.
“인간들이 없다면 수인들이라도 알려 줘. 그들도 일단 노예로 만들 생각이니까.”
“노예요? 하지만 전사들이라고 해 봐야 열 명밖에 안 되는데, 과연 관리할 수 있을까요? 항병들을 합쳐 봐야 마흔 명인데.”
확실히 그런 문제가 있었다. 현리에서야 수백 명의 병사가 존재하고 호영을 지지하는 수천 명의 부족민이 있어 노예 반란을 억제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는 고작 마흔 명의 전사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도 이미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고작해야 열 명밖에 안 되는 전사가 서른 명의 항병과 1,300명의 부족민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호영이 없었다면 진즉에 문제가 생기고도 남았을 일. 여기에 수인들까지 더해진다면 반란은 무조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수인들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하지만 호영은 준기의 우려에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수인들을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말이다.
“예? 그 말씀은 ‘수인들’만 데려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안 데려가고요?”
“너는 이곳을 지켜야지.”
“……형님? 저는 당연히 현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준기는 눈을 똥그랗게 뜬 채 그렇게 말했다.
그는 당연히 호영과 함께 현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호영에게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지난 통화 때 호영이 분명 준기의 조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까닭이다.
‘연합의 규모가 이렇게 크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데려왔겠지.’
호영도 사실 준기를 부족으로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애초에 연합을 견제하는 목적보다 준기를 구해 주겠다는 목적으로 움직인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준기를 구해 주고 연합의 본거지까지 점거하고 나니 도저히 준기를 불러들일 상황이 아니었다.
영등포구 연합의 규모는 무려 1,300. 만약 준기를 데려간다면 이 1,300명의 부족민 역시 데려가거나 이곳에 버려 두고 가야 하는데 솔직히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