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76화 (76/345)

# 76

너무 솔직하니 오히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호영 역시 자신이 유저들을 상대로 가장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무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머지않은 시일에 무공을 풀어 유저들을 유혹할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다. 무공으로 호영에게 충성하는 유저 집단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기의 요구는 호영에게 해가 될 일은 없었다. 어차피 호위대를 친위대로 바꿀 때 유저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씨 일족이 무공을 익혔다는 이야기가 없는 걸로 봐선 재능은 없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 호영이 현기에게 기대하는 것은 문신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친위대에 들어온다면 현기에게 중임을 맡기는 것이 어려워질 터.

호영은 잠시 상념에 잠긴 채 현기를 친위대에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하였다.

하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친위대에 받아들이기로.

‘재능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 재능이 없다면 군사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어차피 군사로서의 재능도 출중한 걸로 알고 있으니까.’

그같은 결정을 내린 호영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친위대원들에게 스킬을 가르치기는 할 것이오. 족장이 말한 것처럼 초보자의 섬에도 없는 굉장한 스킬들을 말이오. 하지만…… 배우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육군 훈련소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훈련할 거라서. 군대처럼 위계질서도 철저할 것이고.”

“상관없습니다. 강자가 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힘차게 말하는 현기를 보며 호영은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소. 친위대에 들어오게 해 주지.”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신 줄 수 있는 직책은 십장뿐이오. 그리고…… 앞으로는 말을 놓을 것이야.”

“상관없습니다.”

호영에게 스킬을 배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런 현기의 태도에 호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되었건 이현기가 자발적으로 수하가 된 셈이었다.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고 해도 군대라는 특성상 명령을 강제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앞으로 이현기는 호영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친위대는 다음 주쯤에 창설될 예정이야. 호위대원들과 일부 유저들을 대원으로 해서 창설할 계획이지.”

“다른 유저들도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앞으로 유저들의 조력이 필요하니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지금 당장이야 필요 없겠지만 3회 차 이후를 생각하면 함께하는 유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렇군요. 확실히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섭섭해하지는 마. 족장이라는 지위에 맞는 대우를 해 줄 것이니까. 애초에 십장의 직위를 가진 유저는 너뿐이라고 생각하면 돼.”

호영은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진 현기에게 위로하듯 말하였다.

다른 유저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기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는 일.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면 위로 정도는 해 주어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십장 지위를 가진 유저가 저 혼자라면 아무도 저를 유저라고 생각하지 않겠네요?”

“……그렇겠지?”

갑작스러운 현기의 물음에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였다. 하지만 현기의 질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기는 눈을 밝게 빛내며 또다시 물음을 던졌다.

“추장님, 친위대에 소속될 NPC들에게도 똑같이 스킬을 가르칠 생각이십니까?”

“그럴 생각이긴 한데,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그렇다면 추장님, 저를 아예 NPC 취급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유저가 아닌 NPC 취급해 달라는 현기의 말에 호영 역시 눈을 빛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유저인 사실을 완전히 숨기겠다는 건가?”

“예, 웬만해서는 숨기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한 일이 너무 눈에 띄어서 모두가 유저라고 생각할 텐데?”

“그건 제가 연기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요? 추장님이 추장 되신 이후로 현리에 사건들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저 정도는 크게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저와 NPC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목적이 궁금했다. 왜 자신이 유저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것일까?

“유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숨기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을 텐데?”

“글쎄요. 저는 되도록 감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저들과 따로 관계를 가질 생각이 없기도 하고요.”

딱히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것을 보면 비밀로 하고 싶은 모양. 그러나 호영은 대충이나마 그의 의중을 예상하였다.

‘이씨 가문이 무척이나 유명했는데도 가주가 어떤 유저인지 8회 차가 되는 동안 밝혀지지 않았었지? 아무래도 신비주의 콘셉트를 가졌든가, 조심성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 같군.’

그렇다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호영도 솔직히 NPC인 척 하는 최측근 유저가 한 명쯤 있어도 나쁘지 않은 일이니.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 나도 따로 티는 안 내겠다.”

“감사합니다.”

현기가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고 집무실에서 물러섰다.

“과연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현기가 집무실에서 물러나자 원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친위대에 들어온다는 것은 앞으로 호영과 계속 함께한다는 뜻.

그렇다 보니 원재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공부터 시작하여 호영에 관련된 비밀들이 친위대에 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믿을 수는 없지. 하지만 어차피 그것은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야.”

다른 유저들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호영의 입장에서는 이씨 일족처럼 번듯한 세력을 가진 유저가 믿음직스럽다.

자신을 배신할 수는 있어도 현리를 배신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문에 호영은 2회 차가 끝나기 전, 자신을 따랐던 유저들에게 마치 중세시대 기사처럼 봉토를 하사할 생각이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유저들에 대한 회유책이었는데, 현리 내부에 땅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현리에 대한 애향심을 갖게 되고 그 애향심이 호영을 향한 충성심으로 바뀔 수 있는 까닭이었다.

#친위대의 부활

“유저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만났지?”

“모두 서른일곱 명을 만나 봤습니다. 1회 차 때 저희와 함께했던 유저들을 포함시킨 숫자입니다.”

“그중에서 친위대에 들어오겠다는 인원은?”

“다 합해서 스물 세 명입니다.”

현기와의 만남 이후 호영은 친위대 창설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호위대 내부를 감찰하여 충성이 의심스럽거나 자질이 부족한 이들을 퇴출시켰고 원재를 시켜 유저들과 접촉을 가졌다.

또한 경비대나 치안대에서 무력이 뛰어난 이들을 선발하여 친위대로 전임시키기도 하였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공식적으로 친위대 창설을 선언하는 것뿐이었다.

“스물 세 명이라……. 숫자가 생각보다 많네? 설명을 제대로 한 것은 맞겠지?”

“예, 군대와 다를 것 없고, 전쟁을 자주 겪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더욱 들어오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을 좋아하는 유저들이 많아서…….”

“확실히 마초적인 성향의 유저가 많나 보군.”

“초보자의 섬과 비교해서 좋은 점이라고는 폭력이나 강간 그리고 전쟁이 있다는 점뿐이니까요. 뭐, 노예나 농토 같은 것도 있고 말입니다.”

“아무튼 첫 기수로 스물세 명이면 딱 적당한 것 같다.”

친위대를 희망하는 유저들의 숫자는 무려 스물세 명. 현리에 지금까지 파악된 유저의 숫자가 서른일곱 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가 친위대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본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들의 정신머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의 군대보다 시설도 열악하고 훈련은 더욱 빡 셀 친위대에 굳이 입대하려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만약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친위대에 소속된 유저들은 스킬과 농지를 얻고 어쩌면 작위와 봉토까지 얻게 될 것이다.’

센추리에서만 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호영은 친위대의 유저들을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은 현실에서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즉, 호영은 친위대의 유저들을 현실에서도 대우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중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친위대의 총인원수는 백스무 명이 되는 건가?”

“유저들이 중도에 포기하거나 추장님이 떨어뜨리지만 않는다면 그럴 것입니다.”

“자질만 나쁘지 않다면 떨어뜨릴 이유는 없지.”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스물세 명 중에 얼마나 살아남을까? 현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친위대의 훈련을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시간을 로그아웃으로 보내게 될 수도 있을 터. 호영은 머지않아 악다구니를 쓰게 될 유저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웃다가 원재에게 말했다.

“내일까지 모이라고 잘 전달해.”

“드디어 친위대를 창설하시는 것입니까?”

“시간이 벌써 많이 흘렀잖아. 일족들이나 관리들도 대충 정리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힘을 길러야지.”

“알겠습니다. 스물세 명 전부 연병장으로 집합시키겠습니다.”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친위대 창설식이 시작되었다.

민건우는 2회 차가 되면서 센추리에 접속하기가 싫어졌다.

‘내가 왜 노예야!’

이유는 단순했다. 현실에서 부유한 측에 속해 있는 그가 센추리에서는 노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우는 한동안 센추리에 접속하지 않았었다. 접속해 봤자 노예처럼 생활해야 하는데 왜 접속하겠는가?

2회 차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건우는 잠깐잠깐 씩만 접속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2월 중순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추장님이 나를 해방시켜 줄 것이야!”

인터넷에서 현리에 대한 소식을 듣자 건우는 하루도 빠짐없이 센추리에 접속했다.

-추장이 바뀌었고 새로운 추장의 이름은 대왕이다!

이게 바로 그가 들은 새로운 소식이었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건우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회 차에 자신의 상관이었던 대준이라는 존재를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왕이라는 유저가 1회 차의 대준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파격적인 행보에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을 가진 유저. 여기에 우영이라는 최측근까지 더해지자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건우는 기대했다. ‘그래도 1회 차 때 함께한 사이인데, 구해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였다. 추장 정도면 자신을 구해 주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센추리 시간으로 몇 주가 지나는 동안 변하는 건 없었다. 그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강씨 일족의 족장이 젊은 족장으로 바뀌는 소동이 일어났지만 건우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변화들이었다.

그는 여전히 노예였고 추장은 자신을 찾는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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