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70화 (70/345)

# 70

“아, 아닙니다.”

“이번에 너의 실력을 보겠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훈을 비롯하여 세 명의 대장이 임명되었다. 군권을 장악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숙청을 미룰 필요가 없었다.

지금 바로 군사들을 움직여 변절자들을 숙청하리라.

“미리 말했지만 나는 변절자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마법사들에게 희생당했던 부족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

“그렇기에 너희들을 대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변절자들을 끌고 와야 하니까.”

모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표정들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호영의 말은 몇몇 일족들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으니까.

현리에서 일족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결코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봉성! 장훈! 대형! 지금 바로 병사들을 이끌고 변절자들을 잡아 와라. 반항하는 이가 있다면 사살해도 좋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떻건 간에 이미 명령은 떨어졌다. 그들은 결연한 얼굴로 호영의 명령을 받들고는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이제 두 일족은 몰락할 것이다. 무려 삼백 명의 병사들이 일시에 들이닥칠 것이니. 호영은 그들의 뒷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봉성과 장훈 그리고 대형이 물러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물러났는데,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아 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족들의 반발이 있을 것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두 사람 중 한 명, 봉하가 불현듯 호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미 그들에게 변절자를 숙청할 것임을 알려 주었다. 그들도 숙청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족들의 자존심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대왕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봉씨 일족이 살아남은 것도 역설적으로 그 자존심 때문입니다.”

마법사에 의해 몰락하고 만 봉씨 일족. 하지만 그들의 기반은 무너졌을지 몰라도 일족의 구성원들은 꽤나 살아남은 상태였다.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별게 없었다.

일족들이 가진 자긍심. 바로 그 자긍심이 마법사에 의해 일족이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봉씨 일족의 생존자들을 숨겨 주고 보호해 주었던 것.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변절자라 해도 일족은 일족. 호영이 일족을 멸한다는 것은 다른 일족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득권 세력이란 평소 자신들끼리 싸우면서도 자신들의 권익이 침해받으면 언제나 공동으로 대응하고는 하니까.

“특히 이씨 일족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아마 정면으로 반발할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던데?”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씨 일족은 예로부터 처세술이 뛰어났지 않습니까? 대왕님 앞에서만 찬성하는 척하며 실질적으로는 반발 세력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

그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족장이나 일족들의 성향은 호영보다 봉하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특하기까지 한 봉하이니 웬만해서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터.

‘뭐, 그렇다고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이씨 일족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봉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너의 말처럼 이씨 일족을 중심으로 반발 세력이 형성될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말입니까?”

“힘만 있다면 설령 반란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지. 그래서 너희들이 힘을 얻어야 한다. 일족들이 어떤 반발을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호위대와 경비대, 치안대에 친위 세력을 대거 포진시킨 것은 일족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친위 세력으로 일족들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호영은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삼백 명의 무력을 얻었지만 여전히 일족들의 영향력은 위협적이었다. 그들을 압도하기 위해선 친위 세력의 힘이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일족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짓누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왕께서는…… 현리의 모든 권력을 원하시는 것입니까?”

봉하의 질문은 꽤나 의미심장하였다.

현리의 모든 권력. 한마디로 독재할 것인지를 묻는 것과 다름없었다.

‘독재라……. 하긴, 내가 하고 싶은 게 독재이긴 하지.’

1회 차에서도 그랬지만 그의 정치는 독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영은 자신이 독재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독재자인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절대 권력을 꿈꾸며 독재를 원하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애초에 권력을 원해서 센추리를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모든 권력을 원한다. 그래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현리에서 언제까지 권력 다툼이나 할 생각이 없다. 대추장처럼 나는 이 현리라는 부족을 근본부터 뜯어고칠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거대하게 만들 것이다.”

엄청난 포부! 태연한 기색의 봉하조차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그저 무식하게 힘만 센 대왕이 이토록 장대하게 현리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 줄을!

한참 동안 호영의 말을 곱씹던 봉하는 이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대왕님께서 그 품으신 뜻을 다 펼치실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진정으로 충성하겠다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네가 나에게 충성하겠다니 나 역시 너를 믿어 보겠다. 앞으로 나의 옆에서 보좌하도록.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야.”

“대왕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호영은 봉하의 충성 맹세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협박에 의해 자신을 따르던 봉하였다. 결코 수하라고 부를 수 없었던 사내.

하지만 충성 맹세를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진정한 수하가 되었다. 호영으로선 뜻깊은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시작이다.’

* * *

봉하까지 물러나고 마지막으로 한 명이 남았다. 이 마지막 남은 한 명이야말로 호영의 진정한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원재, 센추리에서는 우영이라는 아바타를 쓰고 있는 사내의 말에 호영이 싱긋 웃으며 답하였다.

“이곳에서 팀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어색하네. 추장이라고 불러.”

“벌써 추장이 되신 것입니까?”

“여기가 추장의 집무실이잖아? 난 이곳의 주인이고.”

“그건 그러네요.”

원재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려웠던 싸움. 하지만 결국 그들은 승리했다. 호영은 추장이 되었고 원재는 그 추장의 오른팔이 되었다.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원재는 뜨거운 눈빛으로 호영을 바라보았다.

어떤 악조건도 이겨 내는 사람.

그야말로 ‘충성’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호영은 그런 원재의 눈빛에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수고했다. 이번에 너의 활약이 컸어.”

“추장님 역시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 번 더 서로를 격려하고는 두 사람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현실에서라면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했겠지만 이곳은 센추리였다.

혁명이 일어난 지도 불과 몇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사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배신웅이라는 유저는 어때? 살아 있기는 하나?”

“살아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멀쩡히.”

“아예 싸우지 않았던 건가?”

“그렇습니다. 전 추장, 아니 유주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합니다.”

“정말 네 말대로 게임처럼 즐기는 사람인가 보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호영도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나마 센추리상의 가족이 죽은 것에 대해 어떠한 불만이 없는 것 같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센추리에 대한 미련이 없는 사람이랄까? 솔직히 호영으로선 왜 초보자의 섬에 안 가고 이곳에 남아 있는지 의문일 정도였다.

“일단 감금하는 걸로 하자. 지금 죽이면 인터넷에다 무슨 글을 올릴지 모르니까.”

“예. 그래도 다행히 현실을 자각할 줄은 아는 것 같습니다. 유저랍시고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재는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말했다.

주먹에 약간 핏자국이 있는 것이, 그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지만 호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 현실을 자각시켰든, 실제로 눈치가 좋은 것이든 유저의 지위만 내세우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네가 관리해 줘,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알겠습니다. 어차피 다른 유저들도 관리할 겸, 같이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유저들?”

“혁명이 끝났으니 유저들도 끌어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 하나하나가 인재라고 볼 수 있는데.”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AI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재가 바로 유저들일 것이니까.

하지만 호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세력부터 안정시킬 생각이었다. 유저를 끌어모으는 것은 그 이후에 일.

“누가 유저인지 조사만 하고 접근은 하지 마. 아직은 일러.”

“음, 이릅니까? 저는 충분한 줄 알았는데.”

“지금 나에겐 충성 세력이랄 것이 없어. 이런 상황에 유저까지 끌어들이면 더 복잡해질 따름이야.”

유저라고 해서 호영의 아군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 한 명 한 명이 견제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

그렇기 때문에 기반이 불안정한 지금의 상황에서 굳이 유저들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유저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치가 안정된 이후에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조사만 해 놓고 추후에 접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도 있을 텐데 원재는 호영의 말에 금방 수긍하였다. 호영은 그런 원재가 새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너는 어떤 직책을 맡고 싶지?”

“저야, 이전처럼 정보를 다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식적인 직책은 갖고 싶지 않아?”

“딱히 그런 게 필요하겠습니까. 어차피 추장님의 최측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절 무시할 사람은 없을 텐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1회 차에서도 원재는 특별한 직책이 없었음에도 현리 전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회 차에는 공식적인 직책을 갖는 게 좋을 거야. 나중이 되면 유저들이 많아질 테니까.”

“아하, 유저들을 통제하려면 직책이 필요하기는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개혁해야 하잖아? 혁명보다 위대하다고 볼 수 있는 개혁을. 그러니 어느 정도 무게 있는 직책을 가질 필요가 있어. 개혁을 아무런 직책 없이 주도할 수는 없으니까.”

“개혁이라……. 맞는 말입니다. 혁명은 백수 신분으로 할 수 있지만 개혁은 절대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감찰 쪽은 어때?”

“감찰요? 변절자들을 숙청하는 상황에서 감찰이라. 악명이 엄청 생기겠는데요?”

“대신 권력이 그만큼 늘어나겠지.”

권력이 늘어난다는 호영의 말에 원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권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변절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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