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68화 (68/345)

# 68

하지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그 사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그의 존재감은 평소 대왕을 불만스럽게 여기던 자들조차 설복시키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 마법사들을 멸절시키고 현리의 영광을 부활시킬 이 날만을! 모두 일어나 싸워라! 진정한 현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명해라!”

“와아아아아!”

“족장들은 지금 바로 일족의 노예를 모조리 이끌고 와라! 수백의 노예와 호위대 그리고 치안대, 경비대가 함께라면 마법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 한마디에 사람들은 깨달았다. 더 이상 마법사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이다.

그것은 얼마 뒤 운집하기 시작한 장정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2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내성 밖으로 운집하기 시작한 1천 명에 달하는 장정들. 대부분이 훈련은커녕 창 한번 쥐어 본 적이 없는 노예들이었다.

하지만 숫자가 무려 1천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선두에 선 삼백 명의 장정들은 현리의 정규병이었다. 바로, 호위대와 경비대 그리고 치안대 소속의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마법사의 시대는 끝났다.”

병사들의 앞에 선 대왕이 그렇게 선언하였다. 마법사의 시대는 끝났노라고. 이제 우리들의 시대가 왔노라고!

지나치게 이른 결론이었지만 이 자리에 선 그 누구도 대왕의 선언을 부정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마법사가 강하다 한들, 1천의 숫자를 어찌 이길까!

무엇보다 그들의 앞에 선 대왕이라는 사내는 이미 마법사를 네 명이나 죽인 사람이었다. 그가 있다면 마법사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의 힘으로 마법사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자, 모두 나를 따라라!”

“대왕! 대왕! 대왕! 대왕!”

당당히 내성으로 진군하는 대왕.

그런 대왕의 뒤를 1천 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대왕의 이름을 연호하며 뒤쫓았다.

혁명! 지금 이 순간 현리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대왕! 네놈이 감히 배신을 해?”

성벽 위에 올라선 추장, 유주.

그는 1천 명이라는 숫자를 보고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성벽 위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오히려 그의 기세에 단창을 든 장정들이 순간적으로 멈칫 하였다. 추장이라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유주는 그런 장정들을 보며 더욱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감히 반란을 저지르다니! 지금 당장 무릎 꿇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

순식간에 분위기가 역전되어 버린 상황.

장정들은 기가 죽은 채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사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사기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장정들을 내성까지 이끌고 온 호영. 그는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서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감히 추장의 지위를 찬탈한 마법사 주제에 말이 많구나. 마법사 유주, 네놈이야말로 지금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일족 전체가 멸절당하고 말 것이다.”

“……뭐, 뭐라?”

“어설픈 협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 봤자 통하지 않는다. 내성 안에는 고작해야 수십 명의 사병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그들의 숫자 역시 수십 명에 불과할 터. 마법사는 패배했다. 그러니 멸족을 피하고 싶으면 항복을 선택해라.”

위압감 넘치는 유주의 모습을 봤으면서도 당당하기 그지없는 호영이었다. 이런 호영의 모습에 장정들은 다시금 사기를 끌어 올렸다.

몇 명은 유주에게 욕설을 날리기까지 하였다.

“으하하하하하!”

그때 유주가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마치 호영의 당당함이 우습기 그지없다는 반응이었다.

“대왕, 네놈은 착각을 하고 있군.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하다고? 네놈들 따위는 수십 명도 과분하다! 무릎 꿇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해 주지.”

“착각이라…….”

유주의 말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착각은 과연 누가 하고 있을까?

어찌 되었건 협상은 끝난 상황. 더 이상 대치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호영은 장정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돌격해라!”

그렇게 외치고 가장 먼저 성벽으로 달려드는 호영.

그런 호영의 모습을 보고 성벽 위에 나열해 있던 마법사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주문 영창.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저마다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호영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마법사들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호영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더욱 빠르게 달려들고, 아니 날아가고 있었다.

호영이 다시 나타난 곳은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성벽 위. 한창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마법사들 사이로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유주. 네놈은 나의 실력을 착각했다. 이렇게 낮은 성벽으로는 나를 가로막을 수 없다.’

성벽이라고 해 봤자 4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이상 높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낮은 성벽으로 인해 마법사들은 호영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성벽이 높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크게 없었겠지만 말이다.

부우웅!

“으아악!”

“커헉.

창을 360도로 회전하며 사방을 공격한 호영. 그의 공격에 무려 여섯 명의 마법사가 무력화되었다. 주문을 영창하고 있던 마법사들로선 도저히 그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멀찍이서 주문을 영창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빠르게 돌진한 호영.

그의 무지막지한 모습에 주문을 영창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기함을 내질렀다. 하나 기함을 내지른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서걱, 서걱!

이번에도 순식간이었다. 창날에 베어 죽거나 찔러 죽는 마법사들. 귀족처럼 군림하던 마법사들답지 않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최후였다.

#장악

“저, 미개한 놈이 어떻게!”

유주. 1천 명의 반란군이 등장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던 그가 호영의 무력을 본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혼자서 수십 명을 압도하는 무력!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아니, 변수를 넘어 재앙 수준이었다.

벌써 죽은 마법사만 열댓 명이었다. 목숨의 가치가 남다른 마법사가 벌써 열댓 명이나 죽어 나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호영의 학살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유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머릿속으로 불안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수장으로서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여기서 포기하기엔 마법사로서의 긍지가 용납하지 않았다.

“마병들은 지금 당장 저놈을 막아라!”

아껴 두고 아껴 두었던 그만의 비밀 무기, 마병. 성외에 거주하는 호위대 따위가 아닌, 그의 진정한 호위병이 바로 마병이었다.

마병들이라면 저 무지막지한 대왕의 폭력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때 쿵! 쿵! 소리와 함께 성벽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뭐야?”

성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내 한 명이 보였다. 대왕에 근접한 체구를 가진 거한. 그 거한이 성을 부수고 있었다. 고작 통나무 하나로 말이다.

빠지직!

점점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성문이 파괴되었다. 고작 한 명의 사내가 성문을 깨부순 것이다.

“우와아아아!”

“성문이 열렸다! 들어가자!”

“대왕님을 따라 마법사를 죽여라!”

유주는 그 모습을 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성문이 부서지기 무섭게 들이닥치는 반란군들. 내성 안에는 저 반란군을 막을 만한 병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족을 지킬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마법사들이 반란군을 향해 다급히 마법을 펼쳤지만 사상자는 열댓 명 정도뿐이었다. 화려하였지만 정작 실속은 없었던 것.

“끝이다. 우리가 진 것이야.”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유주.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마법으로 일발 역전을 노린다?

만약 70년 전의 마족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때의 마족들은 실전으로 마법 실력을 단련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마법사는 다르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이었고 싸움을 모르고 살았다. 마법사의 수장을 자처하는 유주조차 실전을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실전도 못 해 본 마법사들이 이같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주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유주를 향해 호영이 다가갔다. 이미 마법사들은 성 아래에서 쏟아지는 투창 공격과 화살 공격에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의 공격은 자연히 마법사 세력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유주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압!”

“죽어라, 대왕!”

유주에게 다가가니 그의 주변을 지키고 있던 사병들이 호영에게 달려들었다. 제법 매서운 공격이었다.

‘뭐지?’

호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공격을 막아서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냥 일반 병사로 생각했는데 공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 속도부터가 남달랐는데,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변칙적으로 느껴졌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휙.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공격을 피해 낸 호영은 반격을 시도하였다. 당연하겠지만 실력의 차이가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그들이 죽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허억!”

“도망쳐! 이길 수 없어!”

선두로 달려들던 병사들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자 유주의 근처를 지키던 병사들이 모조리 도망쳤다.

제아무리 특별한 힘을 가진 병사라고 해 봤자 실전 경험도 없는 자들이다. 마법사들이 호영의 공세에 당황하여 마법도 제대로 영창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실전에 약했다.

그래도 유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예 없지는 않은지 주저앉은 유주를 억지로 끌고 가는 병사들이었다.

서걱!

하지만 호영은 그들의 도주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들의 뒤를 따라붙고서 창을 휘두르는 호영.

유주의 호위들은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가진 힘을 생각했을 때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호영에게 대항했다면 이렇게 무기력한 죽음은 피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이제 와서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하나둘 호영의 손에 죽어 가더니 결국 유주만이 홀로 남았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멸족만은 피해 줬으면 한다, 부디.”

체면을 모두 버리고 애절하게 부탁하는 유주.

자부심으로 가득한 유주도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푸욱!

호영은 무심한 얼굴로 유주의 가슴에 창을 찔러 넣었다. 창을 뽑는 순간, 유주의 몸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법사들의 수장이자 현리의 지배자였던 유주는 그렇게 죽었다. 유주를 죽인 호영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유주를 죽였다! 우리가 이겼다!”

“대왕! 대왕! 대왕! 대왕!”

창을 든 장정들이 호영을 연호하였다.

유주의 죽음. 그것은 마법사들과의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하였다.

* * *

성문을 뚫고선 내성 안으로 진입한 호영과 1천 명의 장정들. 호영은 두려움에 벌벌 떠는 마법사 일족들을 향해 외쳤다.

“항복하라! 항복하지 않는 자, 살려 두지 않겠다!”

그의 외침에 장정들도 호영을 따라 ‘항복하라!’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법사 일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투항하였다.

아무리 그들이 귀족처럼 살아온 이들이라고 해도 대세를 모르지는 않았다.

이미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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