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66화 (66/345)

# 66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원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호영에겐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하필 남권이 움직이다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남권이 자신에게 했던 경고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분명 지금도 자신을 경계하고 있을 터.

어쩌면 계획보다 일찍 발각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웅에게 남권에 대한 정보 좀 알아보라고 해 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생각보다 중요한 놈인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이만 들어가 볼 테니까 잘 부탁한다.”

“들어가십시오.”

남권에 대한 소식을 들었으니 더 이상 현실에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호영은 원재에게 인사하고는 곧장 집으로 향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센추리에 접속한 호영.

접속하기 무섭게 한 가지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고 남권 마법사님을 호위하라고?”

“그렇습니다. 내일부터 남권 마법사님이 성 밖에서 활동하신답니다.”

집사, 혜성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재의 말대로 되었군.’

그렇다면 남권이 성 밖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원재가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호영은 잠시 자신의 행적들을 되새겨 보았다.

배상을 죽였을 때, 관리들을 죽였을 때, 그 외에 다른 마법사들을 죽였을 때 자신이 의심받을 일들이 있었는가.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자신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증거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호영은 수혁과 범행 시간에 같이 있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물론 그 알리바이는 위조된 것이었다. 그동안 호영에게서 일대일 코치를 받았던 봉씨 일족의 봉성이 호영을 연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투창으로 죽은 것부터 용의자 없는 범행까지 모든 게 일치했기에 호영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제아무리 남권이라 해도 말이다.

“남권과의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거리낄 게 없는 호영. 다음 날이 되어 남권의 앞에 설 때도 그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난 네가 너무도 의심스럽다, 대왕. 특히 너는 요즘 따라 너무 조용했단 말이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그리도 조용했지?”

“…….”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뭐, 좋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나는 너를 계속 지켜보겠다.”

그러나 호영의 당당함과 관계없이 남권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오만하고 까칠한 성정답게 호영을 끝까지 경계하겠다는 의지였다.

‘참 피곤한 놈이야.’

어떤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호영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호영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의심은 어떻게 보면 정답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호영으로선 짜증스러울 따름이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남권에게 호영은 한마디 하였다. 아주 무덤덤한 어조로 말이다.

‘잡소리는 그만하고 명령이나 내려라.’

호영의 말은 마치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남권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더욱 무서운 눈으로 호영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명하였다.

“가문들, 아니 일족의 족장들에게 전하고 와라. 나흘 준다고.”

“나흘, 말씀이십니까?”

“범인을 잡는 데 나흘이다. 그 안에 범인을 잡아 오지 않는다면 족장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

말도 안 되는 명령. 태연함을 유지하던 호영도 이때만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압적인 것을 넘어 폭력적인 수준의 압박! 남권이 순간적으로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안 그래도 마법사들을 향한 민심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

당연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마법사들은 자중해야만 하였다. 최대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권은 자중하기는커녕 민심을 자극하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미쳤거나, 굉장한 자신감이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호영은 이내 조소를 지었다.

‘적어도 나에겐 나쁘지 않은 일이야. 비록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 있겠지만 말이야.’

양 세력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혁명을 일으키려는 호영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차라리 이참에 족장들이 처벌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예상했던 것처럼 남권의 명령을 일족들에게 알리자 현리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몇몇은 당장에 군사를 일으키자고 선동하였고, 몇몇은 마법사의 말에 따라 범인을 찾아내자고 소란을 피웠다.

순식간에 현리 모든 일족들이 자중지란에 휩싸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나흘에 불과하였다.

나흘 동안 범인을 찾는다?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 채 시간을 보냈다.

‘이럴 때 한 번 더 사건을 일으켜 줘야겠지.’

호영은 격동하기 시작하는 현리의 모습에 조소를 짓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가 향한 곳은 봉씨 일족이 숨어 있는 저택이었다.

“봉성.”

“예, 대왕님.”

거의 대왕에 근접할 정도의 장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 근력 하나만큼은 대왕에 비견될 수준의 봉성이라는 인물이었다.

“새로운 명령이다.”

“말씀하십시오.”

“호위대의 대근이라는 자를 죽여라.”

“……!”

고개를 숙이고 있던 봉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근. 그는 대씨 일족의 일원이었다. 한마디로 호영의 혈족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영과 같은 호위대의 일원이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척살의 대상이 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봉성이 당황한 것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은 대근이 자신의 혈족이자 호위대의 일원이기에 더욱더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마법사의 끄나풀이기 때문이다.

‘남권, 그자가 너무 티를 냈지. 아닌 척하지만 냉정함을 잃었던 거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남권이라고 침착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호영의 앞에서 그런 실수를 했던 것이겠지.

어찌 되었건 호영으로선 혼란을 부추길 겸 척살할 인물이 한 명 필요하였는데 마침 잘된 일이었다.

“계속해서 지켜보다 보면 대근이 연병장에서 혼자 빠져나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때를 노려라.”

“……그자는 대왕님의 혈족이지 않습니까?”

의문을 제기하는 봉성. 그런 봉성을 호영은 무표정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기세를 끌어 올리지 않았지만 봉성의 얼굴은 하얗게 변하였다.

눈빛만으로도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대근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즉각 사과를 표하며 명령을 따르는 봉성이었다.

‘내가 널 무공까지 가르치며 키워 낸 이유는 준기의 역할을 대신하길 바라서다.’

봉성. 그는 호영의 비밀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무기는 주인의 의지를 배신하지 않았다. 지금의 봉성처럼 감히 주인에게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무조건 성공해라. 이번 일에 봉씨 일족의 운명이 달려 있다.”

“충.”

암살 명령을 내린 호영은 곧장 연병장으로 향했다.

호영은 현재 남권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남권이 성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그렇기에 평소 때와 같이 호위대를 훈련시키며 일과를 보내는 것이었다.

연병장에 도착해 평소처럼 훈련을 감독한 호영.

훈련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해가 지기 무섭게 호영은 호위대를 해산시키고서는 남권에게로 향하였다.

지금이 남권을 호위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일족들은 아직도 그놈을 숨겨 주고 있는가?”

“숨겨 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수상한 자를 발견한 이도 없고?”

“그렇습니다.”

“이것들이 정녕 미쳤구나. 암살만 열 번이 벌어졌는데 수상한 자가 없었다고?”

“……그렇습니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감히 마법사를 우롱하다니.”

살기 어린 눈으로 으르렁거리는 남권.

안 그래도 일족들을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사흘 동안 범인이 잡힐 생각을 하지 않으니 더욱더 의심하는 마음이 강해진 것 같았다.

“야, 대왕. 근데 너는 뭔가 착각하는 것 같다?”

“어떤 착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 역시 일족의 수장이잖아?”

“…….”

“내일 안에 그놈을 데려오지 않으면 너도 죄를 피하긴 어려울 거야.”

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네가 나에게 죄를 묻는 날이 곧 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남권이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할 때, 호영은 병사들을 보내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아 오게 하였다.

“대근이 피습을 당했다고 합니다.”

“뭣이!”

병사의 보고에 반응한 것은 남권이었다.

그는 대근이 당했다는 보고에 순간 경악하더니 크게 화를 내고는 이렇게 외쳤다.

“뭣들 하는 것이야! 빨리 그놈을 잡아와!”

하지만 그의 말에 반응하는 병사는 없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호위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권의 말을 무시하고 호영의 눈치만 보는 병사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남권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안 그래도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대근의 죽음에 화나 있었던 상황이니 더욱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네놈들이 미친 것이냐? 감히 마법사의 명령을 어기다니!”

“어서 움직여라.”

결국 호영이 명령을 내리고서야 병사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남권의 화가 풀릴 리는 없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죽일 놈들 천지로군! 일족들만 몰살시킬 것이 아니라 호위대의 병사 놈들도 모조리 죽여야겠어!”

이를 악물며 그리 외치는 남권. 죽인다는 표현이 결코 농담 같지가 않았다. 그의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보면 무엇을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네놈도 마찬가지다, 대왕!”

“…….”

살기로 가득한 남권의 눈빛. 마치 사람을 죽일 것처럼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호영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였다.

두려움으로 인한 긴장이 아닌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하기 위한 긴장이었다.

‘이놈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란 말이지.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야.’

그가 생각하기에 남권이라는 자는 미친놈에 가까웠다. 수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미친놈.

애초에 자신을 박대하고 의심하는 것부터가 어처구니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아군을 늘리지 못할망정 적군을 늘리려고 들다니?

멍청하거나 미련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미친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호영을 공격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느덧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온 남권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에 이번에도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

“일족들 전부를 끌고 와라, 한 명도 빠짐없이.”

호영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씀은?”

“수컷이든 암컷이든 어린놈이든 늙은 놈이든 일족에 속해 있는 것들은 모조리 끌고 오란 말이다.”

역시 미친놈이었다. 이따위 명령을 내리다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족들 전부를 끌고 오라니?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도 명령을 내리는 것인가?’

일족들은 부족의 근간이었다. 관리의 절반 가까이는 일족 출신이었고 치안대, 경비대, 호위대에서도 일족 출신이 절반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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