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왜 말이 안 되지?”
“……그것은 족장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내가 마법사들의 개라서 안 된다는 건가?”
노골적인 그 말에 기겁하는 봉하.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니까.
“뭐, 따라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죽이는 수밖에.”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말을 내뱉는 호영.
장난 같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하였다.
그런 호영에게 봉하가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우리를 죽인다는 말씀이십니까?”
“나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살려 둘 의미가 없잖아. 애초에 네놈들은 나를 적대할 것이고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도 살기 위해 반항해야겠습니다.”
“네놈들이 나에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나?”
기세를 일으키는 호영. 안 그래도 압도적인 외모를 가졌는데 기세까지 일으키니 범인들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열두 명의 사내 중, 절반에 해당하는 여섯 명의 사내가 얼굴이 하얗게 된 채 두려움에 잠겼다. 나머지 여섯 명도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눈빛을 하였다.
호영은 분명 혼자였지만 열두 명의 사내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열두 명의 사내 중에는 봉하가 있었다.
그 역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봉하는 범인이 아니었다. 이를 악물며 기세를 버텨 내는 봉하. 그는 악에 받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대왕이라고 해도, 혼자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당신은 혼자라고!”
하지만 힘겹게 입을 연 봉하를 보며 호영은 피식 조소를 지을 뿐이었다.
“일단 때려눕힌 다음에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군.”
“……!”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호영!
그들은 저항하려고 하였지만 이미 몸이 굳어 있는 상태였다. 봉하조차도 주먹을 들어 올린 게 전부였다.
당연하겠지만 주먹을 들어 올린 것으로 호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열두 명의 사내들이 모두 나가떨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봉하는 호영의 주먹에 맞아 뒤로 크게 나뒹구는 중에 생각하였다. 자신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덤볐다고 해도 저자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대왕, 이자의 무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제 대화를 해 보자.”
호영은 자신의 말을 확실하게 지켰다. 열두 명의 사내 모두를 때려눕힌 뒤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너희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나에게 충성해 줘야겠어.”
“……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가진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거짓을 말하는군. 가진 것이 없다고? 너희가 숨겨 둔 무력이 있잖아. 나를 암살하려는 놈들. 특히 그중에 봉성이었던가? 제법 쓸 만하던데.”
“……!”
또다시 경악 어린 표정을 짓는 봉하. 오늘만 해도 여러 번 경악하는 봉하였다. 하지만 맹세코 이번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었다.
봉성! 그 역시 봉씨 일족의 기대주였다. 봉하와 달리 무력에 재능을 가진 사내. 당연하겠지만 봉성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러 봉성의 존재를 숨겼기 때문이다. 오직 봉씨 일족만 알고 있는 비밀 무기. 대왕을 죽일 때나, 마법사를 죽일 때만 사용하려던 비밀 무기였다.
“다, 당신은 지금껏 모두를, 세상을 속여 온 것입니까?”
떠듬거리며 질문을 던지는 봉하. 그로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호영을 보고 누가 단순 무식에 지랄 맞은 성정의 대왕을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랄 맞은 성정은 맞을지 몰라도 결코 단순 무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현리의 영웅
호영은 봉하의 물음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저 무뚝뚝한 얼굴로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나를 따를 것이냐? 참고로 나는 너희를 죽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봉씨 일족 전체에게 화가 미치겠지.”
침묵은 짧았다. 죽음을 각오한다? 만약 자신들이 죽고 끝나는 문제라면 봉하는 얼마든지 죽음을 자처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이곳에 온 것도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자신들만 죽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호영은 그들의 비밀은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일족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호영을 따르는 수밖에 없으리라.
“봉씨 일족은 앞으로 대왕님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봉하는 눈을 크게 떴다. 나름, 마음의 각오를 하고 복종 맹세를 한 것이었는데 호영의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태연하였다.
마치 그들이 복종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봉하는 입술을 깨물며 호영의 말을 기다렸다.
“네놈들이 내 저택에 숨어산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밀고했다. 아마 비밀 모임의 일원 중 누군가겠지. 밀고자를 찾아내라.”
호영의 말에 봉하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답하였다.
“그것이라면 대충 짐작 가는 이가 있습니다.”
“그래? 누구지?”
“죄송한데, 그를 어찌하시려는 것입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죽이려는 거다, 나를 밀고한 그놈을.”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호영이었다. 그런 호영을 보며 봉하를 비롯한 열두 명의 사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 대답이 없지? 그놈 대신 죽고 싶다는 뜻인가?”
“그자가 비록 대왕님을 밀고 하였다고는 하나 앞으로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 준다면 그들 역시…….”
“앞으로의 관계? 나를 치기 위해 마법사에게 밀고한 놈이다. 내가 왜 나를 적대하는 놈을 살려 줘야 하지? 그리고 그놈은 너희와도 별로 좋은 관계가 아닐 텐데?”
호영으로선 살려 둘 이유가 없는 존재였다. 밀고자가 반마족 혈맹의 일원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군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단호하게 처리하리라.
무엇보다 반마족 혈맹의 일원이라 해서 미래의 아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 호영이 생각하기에 반마족 혈맹의 대부분은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였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마법사들의 존재를 원치 않았다면 지금이 아니라 70년 전에 반기를 들었어야 했다.
초강의 자식이 외로운 항쟁을 할 때 그들은 무엇을 했던가? 마법사들의 화려한 마법에 기가 죽은 채 마법사들의 지배에 순응하지 않았던가.
오만하고 편협적인 유주가 추장이 되면서 일족들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니 그제야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 반마족 혈맹이라는 비밀 모임의 실체였다.
현재의 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들과의 동맹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어서 말해라. 더 이상 시간 끄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
봉하는 더 이상 침묵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봉하는 이내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고, 호영은 예상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암살 대상은 중씨 일족의 일원인가? 마법사들을 죽이기 전에 몸풀이 정도는 되겠군.’
밀고자를 암살하는 것.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호영은 앞으로 무수한 이들을 암습으로 죽일 것이었다.
100년 전이라면 암살이라는 수단을 쓸 필요가 없었겠지만 지금의 호영은 행동반경이 너무 좁았다.
마법사에게도, 반마족 혈맹에게도 견제를 받는 상황이니만큼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마리라.
“앞으로도 나에게 정보를 가져다주어라. 물론 나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감추고. 너라면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가라.”
그들을 돌려보낸 호영은 또다시 사연을 찾았다. 안채에 들어서니 사연은 죄 지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과거의 일들은 모두 잊어 주겠다.”
“……!”
갑작스러운 호영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드는 사연.
호영은 그런 사연을 보며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더 이상의 용서는 없을 것이다. 사연, 그리고 사씨 일족의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겠다.”
그것은 경고였다. 자신을 방해하거나 공격하려 든다면 그때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
당연하겠지만 사연으로선 이같은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호영의 변화에 경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희 사씨 일족이 앞으로 어찌 처신하면 될까요?”
“따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지금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라. 그러면 너희들이 어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겠어요. 제가 사씨 일족에게 대왕의 뜻을 전할게요.”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고는 이 정도면 충분할 터.
‘어떤 목적으로 혼인했든 간에 사씨 일족은 이용할 가치가 충분하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나의 세력으로 만들 수 있겠어.’
봉씨 일족에 이어 사씨 일족. 벌써 두 개의 일족을 얻은 셈이었다. 아직 현리 부족 전체를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 * *
언제나처럼 ‘치킨사냥’이라는 치킨집에서 약속을 정한 호영. 기다린 지 3분 정도가 지나자 원재가 치킨집 안으로 들어왔다.
“팀장님.”
평소처럼 음침하기 그지없는 얼굴. 그러나 호영과 인사할 때만큼은 옅은 미소를 짓는 원재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똑같지, 뭐.”
“그나저나 준기는 이번에도 안 나오는 겁니까?”
“연락을 아예 무시하는 것 같던데.”
“후우. 완전히 폐인 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찾아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겠지, 집 주소를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이따가 준기 동생에게 연락 한번 해 볼 생각이야.”
“준기에게 동생이 있었나요?”
“지영이라고, 여동생 하나 있어.”
“아하.”
잠시 동안 준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원재와 호영은 주문했던 치킨이 나오자 곧장 화제를 전환하였다.
“반마족 혈맹에서의 반응은 어때?”
“제법 소란스럽죠. 죽을 놈이 죽었다, 마법사가 죽인 것이다. 별의별 말이 다 나왔습니다.”
호영은 봉하에게서 밀고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이후, 곧바로 암살을 감행하였다. 물론 암살이라고 해 봤자 그리 거창한 수단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호영 정도의 무력이라면 요란하게 암살할 필요도 없는 법. 멀리서 창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암살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암살 이후 두 세력의 반응이었다.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중씨 일족의 일원인 만큼 두 세력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 예상하기가 힘들었다.
다행히도 원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반마족 혈맹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없었죠. 솔직히 저도 팀장님이 알려 주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내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유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음,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준기 말고 다른 유저들은 우리랑 사적으로 연락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따로 알아보기는 했는데, 그 민이라는 사람의 소재밖에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알아내서 다행이네. 그래, 그 민이라는 사람은 뭘 하고 있지?”
“노예가 되었던데요?”
“뭐? 노예가 돼?”
“자식들이 전부 수인족이어서 그런지 자기도 노예가 되었더라고요. 여기 그 사람이 올린 게시물입니다.”
원재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호영에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