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57화 (57/345)

# 57

육체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가진 종족. 거기에 무기까지 착용하고 있었기에 호영도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창술의 달인이었다. 근력이나 체력은 오크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창술의 달인으로서 수준급의 창술 실력이 있었기에 가까스로 이겨 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나오는 강적들도 연이어 격파하였다. 하나 호영에게도 한계는 존재하였다. 두 번째 난관이 바로 그것이었다.

몸의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거대 곰.

아무리 호영이 기교를 부린다 해도 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비록 1회 차 때보다는 선전하였지만 결국 호영은 두 번째 난관을 이겨 내지 못하였다.

‘체력만 충분하였다면 해 볼 만했을 텐데.’

아쉬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호영은 최선을 다하였고 다시 한다고 해도 이보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는 없을 터.

때마침 어둡기 그지없는 호영의 시야로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모든 아바타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1회 차 유저였던 그가 튜토리얼을 진행했어야 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튜토리얼의 성적에 따라 아바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호영은 대준의 몸으로 수많은 자식을 만들었다. 당연히 대준의 자식들 역시 100년이 흐르는 동안 무수한 자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호영의 예상대로 되었다면 호영이 아바타로 쓸 수 있는 계승 후보자의 숫자는 최소 오십이 넘을 터.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호영으로선 가장 좋은 능력치의 아바타를 갖고 싶었다. 2회 차의 튜토리얼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모든 아바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제한 없는 아바타 선택권. 호영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바타들의 능력치를 본 순간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신분이나 사회적 위치 같은 능력치 이외의 것은 볼 수 없었지만 능력치들이 평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준의 능력치가 워낙 우수했던 터라 후손들 역시 어느 정도는 이어받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 이놈이 가장 강력하게 이어받은 것 같네.’

이름 : 대왕

나이 : 28

근력 : 67

체력 : 61

민첩 : 55

지력 : 11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아바타. 능력치 역시 범상치 않았다.

60이 넘는 능력치가 무려 두 개나 있었고 민첩 역시 50대 중반이었다. 비록 1회 차의 아바타였던 대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수준은 아득히 뛰어넘었다.

대준의 열화판이라고나 할까?

‘무조건 이놈이다.’

솔직히 말해서 2회 차이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50이 넘는 능력치가 하나라도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왜냐하면 1회 차에 비해 2회 차부터 아바타들의 능력치가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1회 차에서 아바타의 능력치가 좋았던 것이 오히려 버프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대준의 유전자는 호영의 생각보다 우수했던 모양이었다. 대왕처럼 뛰어난 능력치의 아바타가 존재한다니. 어쨌건 호영은 망설임 없이 대왕을 선택하였다.

다른 아바타의 능력치도 모두 본 상황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 * *

새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제대로 만끽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떠오른 문구가 그의 시야를 장악하였다.

-계승 특전 ‘마력 30’을 얻었습니다

-계승 특전 ‘대가심법 A등급’을 얻었습니다.

-계승 특전 ‘대가창법 A등급’을 얻었습니다.

무려 세 개나 쏟아지는 계승 특전.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사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퍼 주기였다. 단숨에 2배 이상 강해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세 개의 특전 말고도 그가 창조했던 스킬들에 대한 혜택에 대해서도 문구가 떠올랐다. 글자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호영은 나머지 스킬들이 ‘계승’되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하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보법만은 계승되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1회 차 초반에 우연히 계승 특전을 세 개나 연달아 받았던 호영이지만 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계승 특전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계승 특전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밸런스 붕괴라고 생각 할 수준의 것이었다.

처음부터 A등급의 스킬을 가지거나 마력 30을 얻고 시작한다니. 마력이야 나중이 되면 올리기 쉬워진다지만 최초로 마력을 받아들이는 과정, 즉 0에서 1로 올리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능 있고 뛰어난 심법을 가진 유저들조차 센추리 시간으로 한 달 가까이를 투자해야 마력 30을 찍을까 말까 할 정도. 하물며 스킬 A등급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순히 스킬 이해도가 높다고 해서 숙련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노가다가 필요하였고 무엇보다 기본적인 능력치가 따라 줘야지만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어떤 스킬이든 A등급을 찍으려면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과 아바타 운이 따라 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마 전 세계 유저들 중에 계승 특전을 얻은 사람을 모두 합해도 열 명이 채 안 되지 않을까? 호영이 그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었다. 심지어 호영은 무려 세 개의 특전을 받은 사람이었으니.

‘그나저나 현리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은데?’

특전과 스킬 창을 확인하고서 호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바타의 개인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대준 때처럼 갑작스럽게 아바타로 동기화하면 상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처럼 동기화하기 이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영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은 무척이나 발달해 있었다

회귀 전, 8회 차까지 플레이하면서 수많은 아바타를 거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빠르게 아바타의 정보를 파악하였다.

가장 먼저 파악한, 아바타의 사회적 위치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호위대 대장! 왜 친위대가 아닌 호위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나의 부대를 통솔하는 부대장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호영으로서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름처럼 대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호위대 대장 정도면 진짜 ‘대왕’이 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호영의 기분이 달라진 것은 개인 정보의 기록을 모두 읽고 그 이후 세력 정보를 읽고서였다.

세력 정보를 처음 본 순간 호영은 의아하였다. 현리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을 보고서 호영은 깨달았다. 현리의 변화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거의 ‘새롭다’라고 표현해야 할 수준의 것이었다.

‘추장이 달라졌다고? 유 씨 성을 가진 마법사? 갑자기 마법사는 왜 튀어나오는 거야? 2회 차의 마법사라면 마족을 말하는 것일 텐데, 어째서 한국에 마족이 등장한 것이지?’

가장 새롭게 느껴진 것은 바로 마법사라는 존재였다.

마법사! 원래라면 2회 차 중후반에서나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일부 나라에서만. 한국에 마법사라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은 3회 차 이후의 일이었다. 당연히 ‘마족’이라는 존재가 2회 차에 있었다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미래가 달라질 것은 호영도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예상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일.

‘내가 광군을 죽였기 때문일까?’

마족 학살자라 불리던 거인, 광군.

당연하겠지만 ‘학살자’라 불린다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수의 마족을 사살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거인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수천 년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즉, 광군은 마족과의 전쟁 이후에 마족을 학살했다는 의미였다.

과연 광군은 지하에 있는 마족들을 어떻게 학살했을까?

호영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마족은 끊임없이 지상으로 진출을 시도했던 것 같았다.

광군이 마족을 학살했다는 것도 지상으로 진출하는 마족들을 상대로 학살했다는 의미 같았고 말이다.

그렇기에 현리 부족에 난데없이 마족이 등장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호영이 광군을 죽임으로써 지상으로 진출한 마족들을 견제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야.’

인상을 찌푸린 호영은 계속해서 로그들을 읽어 내려갔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호영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추장이 바뀐 것을 볼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초강의 가문은 현리에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군. 이사의 가문도 극심한 견제를 받는 것 같고 말이야.’

초강과 이사는 호영이 가장 신뢰하던 수하들이었다. 능력으로서나 충성도로서나 말이다. 그리고 센추리의 특성상 능력 있는 AI의 경우 그들의 후손 역시 범상치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한마디로 재능이 유전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호영은 초강의 일족과 이사의 일족에게 큰 기대를 하였다.

2회 차에서도 그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마족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초강의 일족은 현리에서 쫓겨났고, 이사의 일족은 사실상 대씨 가문과 적대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기적인 능력치에 이름은 대왕이면서 하는 짓은 개새끼야. 개새끼.’

호위대장이라는 직함. 과거의 친위대장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영예롭고 실권 있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호영이 생각하기에는 그저 ‘개새끼’에 불과하였다.

호위 대상이 초씨 일족을 부족에서 내쫓고 명문 일족들을 몰락시킨 마법사 일족이었던 까닭이다.

* * *

“좋지 않아.”

호영은 곧바로 센추리에서 로그아웃한 뒤에 원재와 준기를 만났다. 그리고 원재와 준기의 상황을 물었는데 그들의 상황은 호영보다 훨씬 암울하였다.

‘야인이 되었다니. 사실상 백수라는 소리 아니야?’

가장 먼저 원재의 상황을 들었는데, 원재의 아바타는 현재 공식적으로 아무런 직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이사의 일족이나 호영을 적극 지원하였던 명문 일족들처럼 중앙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농지 관리나 노예 관리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원재가 호영을 지지한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원재의 상황은 준기의 상황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준기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왜 하필 준기의 일족이 멸족을 당한 거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준기는 원재처럼 일족이 남아 있지도 않았다. 마법사들에 의해 멸족당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준기는 현리가 아닌 전혀 다른 부족의 아바타로 게임해야 했다.

호영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1회 차 때처럼 호영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준기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이었다.

센추리에 심각하게 몰입했던 결과라고나 할까? 아까 전 보았던 준기의 얼굴은 마치 혼이 빠져나가기라도 한 모습이었다. 정말 자신의 후손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준기는 더 이상 센추리를 하지 못할 수도 있겠어.”

현실에서도, 센추리에서도 가장 믿음직한 수하가 바로 홍준기였다. 그런 준기가 실의에 빠져 센추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호영으로선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의 상황이었다.

인상을 와락 찌푸린 호영은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