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56화 (56/345)

# 56

몇몇 언론사에 ‘센추리의 위험성’을 흘리면 언론사들이 알아서 자극적인 기사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센추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면 굳이 언론사를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센추리는 시작부터 음성적이었고, 그 덕분에 센추리를 즐기는 유저들도 마치 비밀결사처럼 폐쇄적이었다.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센추리 홈페이지에서 ‘센추리를 숨겨야 한다.’는 여론만 형성할 수 있다면 유저들이 알아서 센추리의 폐쇄성을 지켜 줄 것이었다.

‘이후에는 세력을 만들어야겠지, 나를 정점으로 하는 거대 세력을.’

혼자보다는 세력을 갖는 것이 훨씬 유리하였다.

만약 1회 차를 할 때도 유저들이 그를 적극 지원해 주었다면?

일개 부족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족의 지도층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유명한 현리 부족의 유저처럼 거대 부족의 추장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나저나 그 현리 추장이라는 놈은 어쩌면 몇억 정도 벌었을지도 모르겠어.’

센추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최진수에게는 그저 ‘게임 조금 잘하는 놈’에 불과하였던 현리 추장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한국 최강이라 불리는 세력이 바로 현리라는 이름을 가진 세력이었다. 뭐, 그래 봤자 서울도 벗어나지 못하는 규모로서 다른 세력과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만한 규모를 가진 세력은 한국에서 현리가 유일하였다.

“유저를 영입한다면 현리 부족의 추장을 가장 먼저 영입해야 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놈과는 접촉할 방법이 없단 말이지. 파리가 꼬이기 전에 내가 먼저 접촉해야 하는데.”

앞으로 센추리의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현리 추장이라는 자와 현리라는 세력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터.

그렇기에 최진수로서는 현리라는 세력이 미치도록 탐이 났다. 만약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5억, 아니 10억도 기꺼이 줄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문제는 현리 부족의 추장이라는 자와 접촉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평범한 게임이었다면 IP를 따서든 개인 정보를 사서든 접촉할 방법이 있었겠지만 센추리는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로 캡슐 형태의 가상현실 기기로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개인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최진수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현리 부족의 추장과 접촉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대신 그는 유명 프로 게이머들과 접촉하였다.

한국의 재벌이라서 좋은 이유는 전혀 다른 계통의 인맥을 자유자재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것은 바로 한국이 E-Sport 강국이라는 것.

그가 접촉한 프로 게이머들은 한때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던 실력파들이었다. 더군다나 전략 시뮬레이션부터 RPG, 액션, 디펜스까지 장르도 전부 다르니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유용할 것이었다.

‘1회 차야 모두가 동등하게 시작했으니 현리 부족 따위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었지만 2회 차부터는 상황이 많이 다를 거야.’

최진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센추리 2회 차를 기다렸다.

#대왕

마족(魔族).

그들은 한때 세계를 지배하며 마도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들의 천하는 짧았다. 거인이라는, 갑작스러운 천적의 등장으로 마족은 어렵게 이룩한 마도 문명을 포기하고 지하로 도망쳐야 했다.

그로부터 수천 년. 마족들의 던전 생활은 수천 년이 넘게 이어졌다. 어느덧 마족은 지하에서의 삶에 완벽하게 적응하였다.

비록 과거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변치 않은 삶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여전히 마법이 있었고, 노예가 있었다. 지하에서의 삶에 적응한 마족들에게 있어 지상이란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미지의 세계에 불과하였다.

“겁쟁이 같은 놈들. 도전을 포기했기에 마족이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거다. 마족이라면, 마법사라면! 결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스물여덟 살에 불과한 젊은 마족. 그는 무기력한 동족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언제까지 이 가짜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더 이상 이런 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스물여덟 살의 마족은 평소 뜻이 맞았던 친우와 혈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지상을 거론하였는데, 모임은 열 차례 넘게 이어졌다. 모임이 이어질수록 던전 탈출에 대한 계획이 치밀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던전과 던전의 상층부를 단절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던 ‘장벽’에 빈틈이 생겨난 것이다.

“던전을 나가는 것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아. 하지만 문제는 지상에 있을 거인이야.”

“설마 거인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선조들이 지상에서 내려오신 지도 수천 년이 지났는데?”

“거인이 멸종할 이유도 없잖아? 내가 알기로 그놈들은 천적도 없다고.”

“무엇보다 그동안 던전을 빠져나갔던 마족들 중에 다시 돌아온 마족이 하나도 없잖아?”

탈출 계획은 완벽하게 세워졌다. 던전의 상층을 지키고 있는 마물들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마법 실력을 믿었다.

마물들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들을 이겨 내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문제는 지상을 지배하고 있을 거인이라는 종족이었다.

거인!

마족의 천적이라 불리는 종족이었다. 현재 마족이 던전에서 생활하는 이유도 거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거인이 지상에 남아 있다면? 그들은 제대로 된 모험을 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거인은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물론 모두가 거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아 있으면 어때! 거인들이 선조들을 이겨 냈을지는 몰라도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 거야. 과거의 마법과 현재의 마법은 전혀 다르니까.”

모임을 주최하였던 스물여덟 살의 마족. 그는 마족들의 투혼을 자극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을 실행에 옮기자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들 역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뿐, 거인들에게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가 보자고!”

자신감을 되찾은 열여덟 명의 마족들은 그날,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선조들이 마법적인 역량을 총동원하여 세웠던 장벽에 구멍을 만들고서 상층으로 진입한 것이었다.

원로원에서 눈치채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하였다. 장벽을 부수고 상층으로 진입하자 예상했던 대로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마족과 마찬가지로 거인에 의해 던전으로 쫓겨났던 마물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던전에서 생존하던 마물들이라 억세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열여덟 명의 마족들은 아무런 실력도 없이 모험을 시도한 철부지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재능이 출중하였는데, 마족에게 재능이 출중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싸움을 잘한다는 뜻이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이 찾아왔지만 마족들은 자신들의 마법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무려 열한 명의 마족이 희생당하였다. 살아남은 마족은 고작 일곱 명뿐이었다.

“그래도 결국 지상에 왔어. 우리는 틀리지 않았던 거야!”

많은 동료들이 희생당하였지만 일곱 명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처음부터 희생은 각오하였던 일이었다.

오히려 아무도 올라오지 못했다고 알려진 지상을 고작 열한 명의 희생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이제 뭘 해야 되지?”

지상에 올라와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새로움이라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하였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상. 모험심으로 가득한 마족들이라고 망설임이 없을 수는 없었다.

“뭘 하긴. 이미 계획을 세워 두었잖아.”

“탐험하자고?”

“어. 선조들이 두려워하여 도망쳤던 지상을 실컷 구경해야지.”

“탐험한 이후엔?”

“정복해야지, 이 세상을.”

환한 미소를 짓는 마족. 다른 여섯 명의 마족도 미소를 지었다.

거인이 등장하기 이전에 세계를 지배하던 것은 마족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그들에게 없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비록 싸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인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다행히 열흘이 넘도록 거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주가 지나자 거인이 아닌, 하나의 도시가 보였다. 인간족이 만든, ‘현리’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였다.

* * *

1월 17일. 마침내 센추리 2회 차가 시작되었다. 호영은 12시가 되자마자 센추리에 접속하였다.

센추리에 접속하니 초원을 배경으로 한 대기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며칠 전, 1회 차 마지막 날에 접속했을 때와 똑같은 광경이었다.

‘튜토리얼도 비슷하겠지. 나중이 되면 시험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 더 어렵고 치열해지겠지만.’

살인을 하고 죽음을 견뎌 내는 것. 2회 차까지는 비슷한 패턴이겠지만 3회 차부터는 튜토리얼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난이도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험비’라는 것도 생기게 된다. 다음 회 차부터는 튜토리얼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호영으로선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려워진다고 해도 얼마나 어렵겠는가. 8회 차의 튜토리얼까지도 통과했었던 호영인데 말이다.

그렇게 호영이 다음 회 차의 튜토리얼을 생각하는 사이, 문구 하나가 하늘에 떠올랐다.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다짜고짜 ‘토끼를 죽이십시오.’라고 했던 1회 차보다는 조금 친절한 문구. 호영은 피식 웃은 채 말문을 열었다.

“진행하겠다.”

잠깐 초보자의 섬을 구경할 수도 있겠지만 호영은 곧바로 튜토리얼을 진행하였다. 2회 차부터는 언제든지 초보자의 섬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굳이 지금 초보자의 섬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부동산을 확인하는 것?

2회 차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부동산을 확인하는 것은 훨씬 나중에 해도 될 일이었다.

호영은 그렇게 센추리에 접속하자마자 튜토리얼을 시작하였다.

-등장하는 ‘적’을 모두 죽이십시오.

여러모로 1회 차의 튜토리얼과 비슷하였다. 초원 한복판에 난데없이 무언가가 등장한다는 것과 그 무언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시작은 약간 달랐는데, 1회 차에선 토끼 같은 ‘비선공’ 몬스터 또는 AI가 처음에 등장하였다면 2회 차는 처음부터 ‘선공’ AI가 등장하였다.

‘그래 봤자 강아지네.’

선공 AI라고 해 봤자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아직 이빨도 여물지 않은 강아지였기 때문이다.

호영은 강아지의 나름 맹렬한 공격을 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내고는 다른 한 손으로 강아지의 급소를 공격하였다.

깨갱.

한 방, 두 방. 그리고 세 방. 강아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에 등장한 맹수들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창이 없어도 그는 웬만한 무술가보다 강했다. 몸을 수련한 시간이 무술가보다 많았고 무엇보다 실전으로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영에게 창이 주어지자 ‘웬만한 무술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현대에서 무명을 떨치는 무술가가 아닌 역사 속 유명한 무장들과 비교해야 될 정도였다.

‘만약 특전 혜택까지 주어졌다면 진짜 날아다녔을 텐데. 그건 조금 아쉽네.’

이렇게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동안 호영도 마침내 ‘난관’이라는 것을 만났다.

첫 번째 난관은 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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