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호영이 로그아웃할 때 아바타 행동 설정에 ‘수련’을 집어넣은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였다.
대준은 호영과 비교했을 때 명백한 ‘강자’라고 볼 수 있었다. A급의 스킬을 가진 아바타답게 대가창법의 초식들을 완벽하게 펼쳐 내는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호영이 조금 어려워하던 ‘검기’, 아니 창기도 능숙하게 펼치는 것이 대준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준의 수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얻는 게 무척이나 많았다.
‘스승이 없는 나에게 최고의 스승이라 할 수 있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대준이 창술을 펼치는 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몇 번을 지켜봤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호영이 어색해하던 동작을 대준은 매끄럽게 풀어 냈다.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었고 그렇게 호영은 또다시 한 가지를 배웠다.
정말 지금으로선 최고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대가창법의 식이 모두 끝나자 호영은 그제야 동기화를 시도하였다.
한순간에 대준이 된 호영은 상태 창을 열어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였다. 솔직히 마력을 제외하고는 능력치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민첩의 경우는 70이 되어 총 다섯 개 올랐지만 체력이나 근력은 여전히 80대로 겨우 2~3밖에 올라가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호영의 성장치는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었다. 80대에서 능력치 하나 올리는 것은 10대, 20대에서 하나 올리는 것에 비해 100배는 더 힘든 일이니까.
마치 RPG 게임에서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레벨 올리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래도 지력이 꽤나 올랐어. 따로 지력 올리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부족의 추장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머리 쓰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로든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25에 달하는 지력 수치. 이 정도라면 대준의 머리도 제법 믿을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나 지력이 꽤나 올랐다고 해도 가장 높은 성장치를 기록한 것은 역시나 마력이었다. 지력의 10 오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장치. 마력의 능력치는 무려 157에 달하였다.
157의 마력! 3회 차라면 2갑자 반이 넘는 내력이라 했을 것이고 4회 차라면 1갑자 반에 달하는 내력이라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3회 차 기준으로나 4회 차 기준으로나 호영의 마력은 절정의 수준이라 볼 수 있으리라.
물론 호영의 기준으로는 절정은커녕 일류 무인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심법은 발전했고 그에 따라 유저들의 마력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으니까.
아무튼 157에 달하는 마력은 1회 차 기준으로는 엄청난 수치라고 볼 수 있었다. 용족이나 마족 정도 되어야 이만한 마력을 가지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마족이 ‘던전’에서나 존재하는 1회 차에선 가히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마력 수치였다.
“이만하면 거인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연병장으로 향하였다.
“충! 추장님, 오셨습니까.”
“초강, 병사들의 사기는 어떻지?”
“양호합니다. 새로 뽑은 신병들 역시 사기가 높습니다.”
부족이 크게 성장하는 동안, 부족의 주요 간부들 역시 성장을 거듭하였다. 그중에서 초강의 경우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무력이 강해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초강도 나름 수련이라는 것을 하고 있으니 제법 강해지기는 했겠지만 호영의 기준으로는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초강의 성장을 장족의 발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초강이 지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처음 호영이 초강을 보았을 때, 초강은 여느 전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무식하다면 무식하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호영이 초강을 중용했던 것도 그의 무력과 충성심 때문이었지, 전사들의 우두머리로서 다른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며 초강은 친위대의 대장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사가 되었다.
용병술도 뛰어났고, 인복도 대단했으며,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심지어 유저들조차도 초강을 단순하거나 무식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긴 것답지 않게 똑똑하다거나 차분하다고 평가할 것이었다.
“슬슬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이야. 이전까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더욱더 확실하게 훈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너만 믿는다, 초강.”
“충!”
병사들도 믿음직스럽지만 역시 병사들의 대장인 초장이 가장 믿음직스러웠다. 호영은 초강의 어깨를 두드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백 명의 신병이 생각 이상으로 잘 단련된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연병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 *
마침내 결전의 날이 왔다. 호영은 센추리에 접속하기 전, 홈페이지에 들어가 ‘민건우’의 게시물들을 확인하였다.
건우는 마치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현리 부족의 주요 소식들을 올려놓았는데, 의외로 조회 수가 제법 되었다.
그만큼 현리 부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오크족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더욱 관심이 커지겠지.’
물론 그만큼 견제와 시기도 늘어날 수밖에 없으리라.
호영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캡슐에 들어갔다.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니 우우웅, 센추리 특유의 울림이 들리다가 순식간에 센추리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순식간에 대준이 된 호영.
호영은 곧바로 동기화를 시도한 채 상체를 일으켰다.
“추장, 일어났나?”
무척이나 여성스러운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결코 여성스럽지 않은 인물이었다.
“왜 기다리고 있었지?”
“말하고 싶은 게, 아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봉선. 여성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였다.
“이미 말했지만 출전하겠다는 부탁은 절대 들어줄 수 없어. 너는 지금 홀몸이 아니야.”
호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렇게 말하였다. 오크와의 전쟁을 결정한 다음 날부터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녀가 호전적인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임신한 몸으로 전장에 나가겠다니.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매일같이 호영을 귀찮게 하였다. 출정 당일인 오늘도 왠지 호영을 귀찮게 할 것 같았다.
“알고 있다. 나도 그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대성을 데리고 가 줘라. 그 아이에게 전장을 보여 주고 싶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라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고작 세 살밖에 안 된 아이를 전장에 데려가라고? 말이 안 된다는 건 너도 알잖아?”
“왜 말이 안 되나? 나도 세 살 때부터 전장에 나갔다.”
“그거야 너의 부족이 이상했던 거고.”
“아이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대성은 재능 있는 아이다. 전장에 내보낸다면 크게 성장할 거다.”
호영은 봉선의 그같은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단호하고 고집스러운 얼굴. 3년 넘게 보았기에 이제는 너무도 잘 알았다. 저 표정을 한 이상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호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네 말처럼 재능 있는 아이라면…… 전쟁을 치르는 동안 뭐라도 좀 가르쳐야 되겠어.”
사실상 그녀의 부탁을 들어 준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봉선이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고맙다! 아,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대성을 불러야겠다.”
고작 세 살밖에 안 되는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일이 저토록 기뻐할 일인가? 호영은 그녀의 비범한 자식 사랑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튼 그녀와의 대화를 끝마친 호영은 곧바로 이사를 불러들였다. 이사가 도착하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추장께서 출정을 명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감 넘치는 이사의 발언에 호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믿음직한 사내였다. 이런 사내와 고작 1회 차에서밖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번 출정에 대성도 데려간다.”
“후계를 위해서입니까?”
“그것을 결정해야겠지, 이 전쟁이 끝나고서.”
“알겠습니다. 호위를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성까지 전장에 나설 준비를 끝마치자 호영은 곧장 연병장으로 향하였다.
연병장에는 삼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의를 불태운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영은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단 위에 올라섰다.
병사 삼백 명.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숫자였다. 현실에서야 삼백 명은커녕 3천의 병력도 작다고 느껴졌지만 인구가 희소한 센추리에서 삼백 명이라는 병력은 무척 많은 편에 속하였다.
아니, 1회 차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3회 차까지 삼백 명의 병력은 전국구 실력가라고 볼 수 있었다.
호영의 군사력은 사실상 3회 차까지 통용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크족의 병력이 최소 오백 명에 달한다는 것이지.’
현리 부족은 오크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동시에 북쪽 방면의 정찰을 크게 늘렸다. 그같은 정찰의 의도는 당연히 오크족의 허실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의도는 제법 성공적이었다. 오크족의 힘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현리 부족에서 파악한 오크족 전사들의 숫자는 대략 오백 명.
엄청난 숫자였다. 솔직히 호영으로서나 다른 이들로서나 오크족이 이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현리 부족도 경비대와 치안대의 병력까지 합치면 오백 명은 된다. 출정하는 병력만 삼백 명인 것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오크족의 전투력이었다. 보통 오크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선 네다섯 명의 전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오크족은 수컷 하나하나가 타고난 전사였고 심지어 두꺼운 가죽까지 가지고 있었다. 인간에게 철기가 있지 않는 이상, 오크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크를 상대하고자 한다면 최소 3배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야 했다. 이것은 호영에 의해 전투력이 크게 상승된 친위대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 있게 외쳤다.
“내가 함께하는 전쟁에서 패배란 없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따라라, 내가 승리를 안겨 줄 것이니.”
오만한 선언. 하지만 병사들은 그 선언에 열화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에게 있어 호영은 전설을 써 내려가는 위대한 군주였다. 광신에 가까운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병사들이었기에 패배는 생각지도 않았다.
‘이들이 있으니 질 이유가 없다.’
호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병사들이었지만 호영 역시 병사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함께한 시간만 무려 3년이 넘었다. 비록 대단한 스킬을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강도의 훈련을 매일같이 시켰었다.
친위대 병사들의 순수 능력치는 이제 수인족과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는 않을 터. 오크와 비교해서도 근력만 아니라면 크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출정하라!”
그렇기에 호영은 패배를 생각지 않았다. 오직 승리만을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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