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당연한 일이었다. 출정하는 인원만 이백 명이 넘는 상황. 자연히 부족 전체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호영은 곧장 목책 내부에 있는 연병장으로 향하였다. 목책 확장 공사와 함께 얼마 전에 완공된 연병장이었는데 출정식도 이곳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연병장에 도착하니 수백 명의 전사들, 아니 병사들이 대열을 갖춘 채 호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이백 명. 거기에다 돌창밖에 장비하지 못한 병사들인데 이상할 정도로 든든하게 느껴지는군. 오롯한 나의 병사이기 때문일까?’
회귀 전 그는 수천 명의 병사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백 명의 병사를 다루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축에도 끼지 못하였다.
오히려 돌창밖에 가지지 못한 보잘것없는 군대라고 실망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때 다루었던 병력보다 훨씬 적은 병력을 다루고 있음에도 호영은 기이할 정도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 이유는 눈앞에 있는 이백 명의 병사들이 오롯한 그의 병사 즉, 사병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 너머 미지의 땅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에 올라선 호영은 그렇게 말을 꺼내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곧추세운 채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함께 갈 것이니.”
“충!”
호영은 쓸데없이 일장 연설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자신이 친정한다는 사실만 밝혔을 따름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충’을 외친 이후로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한 친위대 병사들. 현리 부족의 추장인 그가 함께한다는 이유만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출정하라!”
함성이 절정에 달할 때, 호영이 힘차게 주먹을 들고서 출정을 외쳤다. 병사들은 ‘충!’ 하고 짧게 외친 뒤, 미리 약속된 순서대로 연병장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호영은 기운 넘치는 병사들의 제식을 잠시 바라보다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잔류 인원들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중한, 수호, 강식 그리고 해족의 노예였던 여덟 일족의 수장들. 이들이 부족에 남아 행정과 치안, 경비 등을 담당할 것이었다.
참고로 수호 같은 경우는 이번 기회에 친위대에서 치안대로 완전히 전임시킬 예정이었는데 이 또한 이사의 조언에 따른 결과였다.
친위대의 주요 간부는 초강과 봉선, 수호였다.
이사는 이 셋을 각기 친위대와 경비대, 치안대로 나누라고 하였는데 권력 분산을 위함이었다.
현자라고 불리는 자답게 호영이 무엇을 가장 신경 쓰는지 알아차리고 권력 분산에 대한 조언을 해 준 것이었다.
“너희들은 부족을 잘 지키고 있도록. 비록 같이 출전하지는 못하지만 너희들의 역할도 출정 못지않게 중요하다.”
“추장의 명에 따르겠다.”
“강식! 너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
“명심하겠다!”
마지막으로 강식이라는, 호영의 호위병이라 할 수 있는 존재에게 그같은 명령을 내리고는 호영 역시 출정에 나섰다.
* * *
강동, 즉 강 너머의 땅은 마치 원시림을 보는 것 같았다. 예백 산의 그것처럼 곳곳에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친위대는 그런 원시림의 모습에 하나같이 경계하는 눈빛을 하였다. 이런 곳에서는 언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미 예백 산에서 매일같이 사냥을 해 왔던 친위대였기에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다.
‘경계는 하되 두려워하지는 않는군.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친위대가 많이도 발전했어.’
호영은 그런 친위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든든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강동에 진출한 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앞잡이로서 선두를 정찰하던 다섯 명의 병사가 호영에게 다가와서는 이같은 보고를 하였다.
“추장, 전방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 매복하는 것 같다.”
“전방이라면 저기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다.”
병사들의 보고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복이라니. 강동에 오자마자 뜻밖의 환영 인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강동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가 파악한 강동은 수인족의 땅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수인족이 인간과 친선 관계를 맺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지저분한 일을 대신해 주는 노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모두 전투를 준비하도록.”
“충.”
호영의 명령에 친위대가 행군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하니 갑자기 짐승 특유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정면에서 일단의 무리가 등장하였다.
“크하하하! 인간 주제에 꽤나 숫자가 많구나! 네놈들은 어디서 온 것들이냐?”
매복하려고 했던 주제에 들킨 것 같으니 호탕한 척 목소리를 높이는 사내. 아니, 사내라기보다 ‘수컷’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상대였다.
개의 얼굴을 가진 인간, 견인족. 친위대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견인족의 수컷이었다.
“우리가 어디서 온 것은 중요하지 않다. 왜 왔는지가 중요할 뿐이지.”
“호오! 인간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는구나! 그래,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수인족이 노예로 삼고 있는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우두머리로 보이는 견인족은 이렇게 웃긴 이야기는 난생 처음 들어 보았다는 것처럼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리 우스운 것일까? 호영이 인상을 찡그리자 옆에 있던 이사가 조용히 말했다.
“아마 저들은 인간이 수인족을 상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우습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잘 알기는 하나 보구나! 크하하. 정말 웃긴 이야기였다!”
이사는 조그맣게 이야기했는데 그걸 또 어떻게 들었는지 견인족 우두머리는 피식 웃으며 호영에게 말했다.
그런 우두머리의 태도에 호영은 새삼 인간족의 처지를 떠올렸다. 정복 전쟁에 나선 지 몇 달이 지났다 보니 잠시 잊었던 것 같다.
1회 차에서 인간이란 한낱 가축보다 못한 처지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비록 내 자신을 위해 정복 전쟁에 나서는 것이긴 하지만 저런 놈들을 볼 때면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고 싶단 말이지. 뭐, 그게 명분이기도 하고.’
호영은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하고선 견인족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너희 견인족은 나의 동족들을 노예로 삼고 있느냐?”
“왜, 만약 그렇다면 우리를 공격이라도 할 것이냐? 크흐흐흐.”
“만약 그렇다면…… 네놈들은 멸종하겠지.”
“……뭐라?”
만면에 웃음을 머금던 우두머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황당함을 넘어 분노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살면서 보았던 인간들이란 나약하고 긍지 없는 존재였을 테니까.
호영이 보이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결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제법 재미있어서 대화 좀 나누어 주었더니 참 어처구니없는 놈이로구나. 하찮은 열등 종족 주제에, 우리를 멸종시키겠다고? 한번 할 수 있다면 해 보아라!”
그렇게 외친 견인족은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특유의 포효를 터뜨리더니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쏴라!”
두두두둥!
일종의 궁수라고 할 수 있는 서른 명의 병사들이 조잡한 목궁을 들고 일시에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수십 발의 화살이 견인족 전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깨갱! 깽!
화살에 맞은 견인족 전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머지 견인족 전사들도 제법 당황하는 얼굴이었는데 화살 공격은 처음 맞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멈칫거리는 시간은 짧았고 견인족 우두머리의 외침에 다시 친위대를 향해 무섭게 돌격하였다.
‘제법 빠르군.’
견인족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민첩하였다. 마치 봉선 휘하의 여전사들을 보는 것 같았는데, 움직임이 빠를 뿐만이 아니라 맹수 특유의 강인한 근육까지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빠르면서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호영에겐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대열에서 가장 선두에 선 호영은 힘차게 도약하며 손톱을 휘두르는 견인족 전사의 공격을 여유로운 모습으로 피해 냈다.
피하는 동시에 창을 내질렀는데, 호영을 공격하던 견인족 전사는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하고 호영의 창에 꿰뚫리고 말았다.
반사 신경이 남다른 견인족이었지만 호영의 느닷없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들어오는 변칙적인 창술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연이어 날아오는 견인족의 최후도 그와 비슷했다. 날렵한 견인족과 비교했을 때 둔하게만 느껴지는 호영의 움직임이었지만 죽는 것은 견인족뿐이었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견인족이 호영의 손에 죽었다.
“인간 놈이 제법 하는구나!”
그때 우두머리가 포효를 내지르며 호영에게 날아왔다. 분명 다른 견인족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지만 우두머리는 우두머리였는지 기백부터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우두머리의 공격에도 호영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견인족의 우두머리? 그래 봤자 초강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졌을 뿐이다. 수인족은 평균적으로 인간족보다 강인한 육체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보다 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준, 초강, 봉선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단련을 통해 발전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수인족이라고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잠재력’만큼은 인간이 월등하였다. 이미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마나까지 갖춘 호영이었기에 수인족 따위는 얼마가 덤벼도 두렵지 않았다.
푸욱!
“이, 인간 따위가 어떻게……!”
견인족의 우두머리는 싱거울 정도로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다른 견인족 전사처럼 호영에게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서걱!
“유언도 시시하기 짝이 없군.”
인간 따위가 어떻게? 호영은 견인족 우두머리의 마지막 말을 듣고 조소를 지었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죽기 전의 그에게 견인족의 미래를 알려 주고 싶었다.
수백 년, 아니 당장 100년 뒤에 견인족이 어떤 처지가 될지를 말이다. 애초에 호영은 한반도 지역에 견인족이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5회 차 이후부터는 아예 견인족이라는 종족이 존속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다른 수인족들도 비슷한 처지가 되지. 반면에 네놈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인간족은 시간이 갈수록 번성하여 지금의 거인족을 능가하는 종족이 될 것이고.’
그렇기에 견인족 우두머리의 반응이 우습기만 하였다. 머지않아 도태되고 결국엔 몰락하게 되는 주제에 감히 인간을 무시한다는 게 말이다.
호영이 잠시 감상에 젖어 있는 동안 전투는 어느덧 막바지로 치달았다. 우두머리의 죽음. 그 이후 견인족의 저항은 지극히 미약해졌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이었었다. 견인족 전사의 숫자는 고작해야 쉰 마리 정도. 그들이야 나약한 인간들만 봐 왔기에 친위대를 우습게 여겼겠지만 친위대는 잘 훈련된 군사 조직이었다.
비록 시대의 한계로 장비의 질은 열악하였지만 사기나 전투력은 무척이나 뛰어난 병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50도 안 되는 병력으로 달려든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실책이었다.
“다 죽이지는 마라. 저들에게 알아내야 할 것이 있다.”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