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36화 (36/345)

# 36

하나같이 빼어난 능력을 가진 13인의 여전사들. 능력을 중시하는 호영으로선 친위대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기존 친위대 병사들의 반발이 걱정되었지만 호영은 그들의 반발을 수그리게 할 자신이 있었다.

봉선이 얻어 온 팔십여 명의 부족민과 40여 명의 노예.

이 중 마흔 명의 노예를 그동안 활약했던 친위대원들에게 하사하면 되는 것이었다. 친위대원 절반 이상이 노예를 받게 될 것이니 친위대원들도 봉선의 합류를 반대하지 않을 터.

하지만 호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친위대의 반발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남부 진출

쾅!

“뭐라고? 고작 너희들만 살아남았다는 말이냐?”

모든 게 순조로운 나날이었지만 방금,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소식이 호영에게 전해졌다. 남쪽으로 원정하러 갔던 친위대 병사들이 대거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호영은 서쪽으로 보냈던 정찰대를 제외한 나머지 정찰대가 모두 복귀하자 가장 먼저 남쪽으로 군사들을 파견시켰다. 인간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그나마 진출할 여건이 되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봉선의 합류로 예백 산 너머에 군사를 파견하기도 하였지만 먼저 보낸 것은 남쪽이었다.

무려 스무 명에 달하는 원정 부대. 초강처럼 딱히 대단한 무력을 가진 인물은 없었지만 잘 조직된 친위대 전사만 스무 명이나 되었기에 그리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남쪽에는 위협적인 몬스터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원정 부대는 전멸당하였고 살아 돌아온 병사의 숫자는 고작 네 명에 불과하였다.

“갑자기 기습당했다. 모두가 자는 도중에 기습당해서 어쩔 수 없었다.”

“자는 도중에 당하다니. 그게 더 무능한 일이다. 내가 그렇게 가르쳤더냐?”

“우리도 최선을 다해 대비했다. 하지만 기습한 것은 다른 부족의 전사들이다. 그놈들이 영악하게 공격했다.”

그 말에 호영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전사를 질책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전사의 입장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 시대에 누가 인간이 같은 인간을 기습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불침번이야 돌아가면서 섰겠지만 인간을 대비하는 것과 맹수의 습격을 대비하는 것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 친위대에서 내쫓지는 않겠지만 진급은 절대 시켜 줄 수 없겠어.’

본래 남쪽으로 원정하러 갔던 친위대 전사들을 모두 오장 이상의 지휘관으로 삼으려 하였다. 위험한 작전인 만큼 그에 걸맞은 보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경계의 실패로 전멸당하였으니 도저히 진급시켜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와 반대로 여전사들의 경우는 무리 없이 친위대 합류가 가능해졌다. 친위대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호영은 시선을 돌려 초강과 수호 그리고 봉선을 보았다. 이미 그들은 설욕전을 예상했는지 투기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감히 우리 친위대를 공격한 부족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복수해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 현리 부족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무리하게 복수하는 것은 반대한다, 추장. 일단 그들이 왜 우리를 공격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래서 수컷들이란! 이유 따위가 알 게 뭐야? 피를 보았으면 피로 갚아야 하는 것! 일단 공격하고 죽인 다음에 이유를 알아내도 늦지 않아!”

초강이 가장 먼저 복수 의지를 밝혔고, 수호는 유보적인 자세를 취했으며, 봉선은 초강처럼 피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호를 제외하면 호전적이기 그지없는 주장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호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초강과 봉선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아마 수호도 속으로는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신중론을 펼치는 수호지만 그 역시 친위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전사 중의 전사였다. 피를 흘리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말이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의 말이 맞다. 피를 봤으면 끝을 봐야 할 터. 물론 수호의 말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봉선의 말처럼 이유를 듣는 건 적을 제압한 이후에 할 일이다.”

호영의 이같은 말에 수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봉선의 존재 때문일까? 요즘 들어 수호는 호영에게 보다 깍듯하게 대하고 있었다.

유력한 경쟁자가 생겼으니 일종의 충성 경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출정하나?”

“출정은 내일. 친위대 여든 명을 데리고 간다.”

“여든 명이나?”

수호가 탄성을 내질렀다. 생각보다 많은 수에 놀란 것이다. 친위대의 인원은 여전사들의 합류로 백스무 명 가까이 늘어났다가 원정 부대의 전멸로 다시 백 명이 된 상태였다.

총원이 백 명인 친위대에서 여든 명을 출정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총동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초강 역시 우려되는 것이 있는지 이같은 물음을 던졌다.

“부족은 누가 지키나? 강씨 일족이 지키기에는 너무 커졌지 않나?”

친위대가 막 창설되었을 때는 강씨 일족이 부족을 수비하였었다. 강씨 일족은 일종의 사냥꾼 집단이라 무력에 있어서는 최고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씨 일족이 현리 부족의 수비를 감당하기에는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 일단 친위대에 합류한 강씨 일족의 전사들이 너무 많아졌다.

대략 서른 명에 가까운 강씨 일족의 전사들이 친위대에 합류한 것이다. 또한 현리 부족의 상황이 이전과 너무 달라졌다.

이전에는 부족민들이 외부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주로 목책 안에서만 생활하였다. 비교적 안전한 시간대에만 농지나 강가를 돌아다닐 뿐이었는데, 목책만 벗어나도 온갖 맹수들이 출몰하니 전투력이 없는 부족민들로서는 목책 바깥을 나가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리 부족은 친위대가 끊임없이 주변을 정리하였던 터라 목책 주변이 안전해진 상태였다. 그에 따라 부족민들의 외부활동도 무척 잦아졌는데 친위대가 있다면 모를까 없으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초강, 그래서 네가 부족을 지켜야 한다.”

“나는 출정하면 안 되나?”

“복수도 중요하지만 부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알았다.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역시 그 누구보다 충성적인 초강이었다. 수호 역시 봉선에게는 경쟁심을 불태우면서도 초강에게는 저자세를 취하였다.

이인자가 초강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초강은 전사들에나 간부들에게나 인정받는 전사였다.

“봉선, 수호. 너희들은 내일 출정을 준비하도록.”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흐흐, 재미있을 것 같다.”

수호와 봉선의 전혀 다른 반응에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 * *

다음 날이 되자 친위대가 아침 일찍부터 목책 앞에 모였다. 저마다 돌창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호영이 다가가자 ‘충!’을 외쳤다.

호영은 친위대 전사들 앞에 우뚝 선 채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전우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 말에 친위대 전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친위대가 창설한지 몇 달이 채 안 되었지만 친위대 전사들은 자신이 친위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호영이 그들을 통솔하는 동안 추장에 대한 충성심과 친위대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해서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위대 전사들은 동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감히 우리의 전우들을 죽인 자들을 가만둘 수 있겠는가! 모두 나가서 싸워라. 감히 우리를 공격한 적들을 응징하라.”

“충!”

모든 전사들이 결연한 얼굴로 충을 외쳤다. 새롭게 합류한 여 부족 출신의 여전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정하라!”

척, 척, 척!

출정에 나서는 친위대 전사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 보였다. 제식까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이 시대에 친위대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거인이나 마물들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같은 인간이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 * *

“이곳에서 습격받았다.”

친위대는 무려 이틀에 걸쳐 원정 부대가 기습당했던 곳에 당도했다.

사실 거리로 따지자면 반나절도 안 걸리는 거리였으나 지금 같은 시대는 1킬로미터를 걸어갈 때도 안전을 생각해야 하였다.

하물며 같은 인간의 기습 공격까지 대비해야 했으니 더욱 철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매복하기 좋은 곳이군.”

길잡이 역할을 맡은 사안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이 살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거친 땅이었다. 현리 부족의 근방은 그래도 나름 개척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처녀지였다.

‘이런 곳에서 인간의 습격이라. 그놈들의 세력은 얼마나 큰 것이지? 인간끼리 다툴 만한 땅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호영에게 갑자기 봉선이 다가와 말을 꺼냈다.

“추장, 이상한 냄새 안 나나?”

“이상한 냄새? 나는 풀 냄새밖에 안 나는데.”

“킁킁, 살짝 기분 나쁜 냄새가 맡아진다.”

봉선의 의문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수컷들 냄새를 말하는 거냐?”

호영 자신도 그렇지만 전사들 모두가 이틀 동안 목욕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대부분의 전사들은 부족에 있을 때도 목욕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응? 아니다. 나는 수컷들 냄새 좋아한다. 맡으면 안고 싶어지고. 그중에서 추장의 냄새가 가장 좋다. 이런 게 강자의 향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흠흠, 그래서 지금 나는 게 정확히 무슨 냄새라는 거지?”

야릇하게 느껴지는 봉선의 말에 호영은 헛기침하고서 물었다. 이미 몇 번이고 잠자리를 함께한 사이지만 그녀의 노골적인 말투는 아직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냥 기분 나쁜 냄새다. 사실 아까부터 맡았었다. 아까는 그냥 넘겼는데 여기에 오니까 냄새가 더 심해졌다.”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어! 냄새가 점점 진해지는 것 같은데?”

눈을 감으며 내뱉는 그녀의 말에 호영은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고는 주변을 면밀하게 훑어보았다. 엄청난 시력을 가진 호영이었지만 투시 능력이 없는 한 갈대밭 사이를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도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갈대밭과 나무 사이들을 훑어보니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 것 보니 척후들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지.”

한 가지를 의심하니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 호영은 수호를 은밀하게 불렀다. 현재 수호는 친위대의 이인자로서 육십여 명의 전사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봉선이 통솔하는 여전사들을 제외하고 모든 전사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불렀나, 추장.”

“수호, 아무래도 우리는 지금 포위당한 것 같다.”

“뭐, 뭐라 했나? 포위를 당했다고?”

“무언가가 우리를 숨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야.”

호영은 비상한 감각으로 무언가의 시선을 감지하였다. 아쉽게도 마력을 가진 존재가 없어 정확한 숫자나 정체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다수’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사들에게 알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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