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기대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얘기처럼 정말 강했으면 좋겠구나.”
“무, 물론 추장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노예는 호영이 예 부족의 수호령이었던 미노타우로스를 어떻게 죽였는지 똑똑히 봤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였다.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짓고는 그에게 눈짓을 하였다. 다시 길을 안내하라는 의미가 담긴 눈짓이었다.
“저기가 백 부족이다.”
냇가를 따라 올라간 지 15분쯤 지났을까. 노예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나무로 지어진 산채 하나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노예가 했던 말처럼 냇가 근처에다 부락을 세웠다. 백 부족의 자신감이 어지간히 대단하거나 이 근방의 몬스터나 맹수의 세가 약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호영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도 나름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리 부족에서 살아가는 것만큼 안전하고 풍요롭지는 않을 터.
그러니 현리 부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면 호영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물론 따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노예로 만들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노예보다는 부족민을 얻고 싶은데 말이야.’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한 호영은 친위대를 이끌고서 거침없이 산채에 다가갔다. 수십 명의 전사를 이끌고 산채에 다가가니 위쪽에서 경계심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은 누구냐!”
망루에서 백 부족의 전사 하나가 그렇게 묻자 호영이 큰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나는 현리 부족의 추장이다.”
“현리 부족이 어디에 있는 부족이냐!”
당연히 백 부족은 현리 부족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지금 같은 시대에 산에서 산다는 것과 평원에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잠시 현리 부족에 대해 어찌 설명할지 고민하였다.
서로 모르던 부족들이 처음으로 마주한 상황이다.
호영이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현리 부족에 대한 선입견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입견에 따라 백 부족을 노예로 삼느냐, 부족민으로 삼느냐가 결정될 터.
잠시 고민하던 호영은 일체의 거짓 없이 진실을 밝히기로 하였다. 현리 부족 정도라면 굳이 왜곡하거나 가식을 부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산 아래에서 사는 부족이다. 산 아래, 평원에서 살고 있지.”
“말도 안 된다. 그런 곳에 인간이 어떻게 사나?”
전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산에서만 살았던 전사라 그런지 호영의 말을 쉬이 믿지 못하였다.
사실 예 부족 출신의 노예들도 처음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 엄청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마치 지옥이라도 가는 것처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만큼 산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산 아래의 평원을 두려워하였다. 물론 반대로 평원에서 사는 인간들도 산을 두려워하였지만 말이다.
“네놈이 믿든 믿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와 싸우고 싶지 않으면 어서 문을 열어라.”
“그럴 순 없다! 추장을 불러올 것이니 너희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마라!”
그렇게 외친 전사는 망루에서 내려오더니 부족 안으로 뛰어갔다. 호영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으나 이내 느긋하게 백 부족의 추장이라는 자를 기다렸다.
백 부족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두려울 것이 없는 그였기에 여유롭기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눈에 봐도 힘 좀 쓸 것 같은 외모의 사내가 망루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저자가 제법 싸움을 잘한다는 백 부족의 추장 같았다.
“산 아래에서 올라왔다고? 믿기지는 않는다만, 산 아래에서 산다는 놈들이 왜 우리 부족에 온 것이냐?”
“네놈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어 왔다.”
“제안이라? 말해 봐라!”
“우리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가자. 어떠한 위협도 존재하지 않고 풍요롭기 그지없는 땅으로 안내해 주겠다.”
상대에게는 정말 뜬금없게 느껴지는 말이겠지만 호영은 자신 있었다. 산 위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고달프겠는가?
추운 계절에는 먹을 게 부족해 쫄쫄 굶어야 하고 먹을 것이 넘치는 계절에는 온갖 맹수와 몬스터의 위협에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현리 부족이 탐날 수밖에 없었다. 안전하고 풍요롭기 때문이다. 이런 호영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백 부족의 추장이 혹한 얼굴을 하며 호영에게 물었다.
“어떤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너의 부족 근처에는 괴수나 맹수가 없다는 말이냐?”
“근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멀리 오크가 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침략을 받은 적이 없다.”
물론 오크 말고도 강 너머의 수인족이나 남쪽, 서쪽에 자잘한 몬스터들이 존재하였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호영은 친위대를 이용하여 주변 정리를 자주 하였고 원정에 나선 지금도 강씨 일족으로 하여금 부족을 지키게 하였기에 외부의 위협은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호영의 자신감을 보았기 때문일까? 백 부족의 추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거 참 마음에 드는 곳이로군!”
“어떠냐? 우리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 보겠느냐?”
그 말을 꺼낸 호영은 당연히 긍정의 대답을 받을 거라 확신하였다. 백 부족의 추장은 완벽하게 매료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호영이 확신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백 부족의 추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긍정의 대답이 아닌 하늘이 떨어갈 듯한 대소였다.
“크하하하하!”
“왜 웃는 것이지?”
호영이 정색한 채 물음을 던지자 백 부족의 추장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었다.
“한마디로 너의 부족이 되라는 말이다?”
“그래. 우리를 따라온다면 당연히 우리의 부족이 되어야겠지.”
“푸하하하하! 거창하게 말하더니 결국 그런 의도였군. 나보고 네놈을 추장으로 떠받들라는 말이 아니냐?”
추장은 살기로 가득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백 부족의 추장은 불만으로 가득해 보였다.
호영은 그러한 추장의 태도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설득을 멈추지는 않았다. 제법 강해 보이는 사내였기에 웬만하면 수하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우리의 터전으로 너희가 들어오는 것이다. 추장이 나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겠다는 거지?”
“네놈을 죽여 내가 추장이 되고, 너희 부족이 우리 부족이 되면 되는 것이다!”
터무니없을 정도의 호전성이었다. 호영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내저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설마 우리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실로 황당하였다. 불만 어린 태도에도 설득을 멈추지 않았건만, 이렇게 자신의 노력을 무위로 만들다니.
추장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호영의 말이 믿기지 않았던 것일까?
‘뭐, 어떤 이유든 상관없다. 저놈의 성격을 보니 애초에 피를 안 보기는 글러 먹은 것 같으니까.’
추장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호영은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았기에 저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야망!
백 추장의 눈에서는 야망이 보였다. 누구의 아래에도 있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야망이.
저런 자를 받아들인다면 언제고 반란을 일으키거나 내부 불화를 일으킬 터.
호영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제 자신을 위로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추장을 죽이고 백 부족을 노예로 삼으리라.
“너처럼 제정신이 아닌 놈은 나도 필요 없다. 현리 부족의 친위대여!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죽여라! 이번 전투에서 활약한 이들에게는 노예를 하사하겠다!”
“와아아아아!”
활약에 따라 노예를 하사하겠다는 호영의 말에 친위대 전사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호영 역시 선두에 선 채 산채를 향해 달려갔는데 산채까지 대략 5미터 정도 남았을 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쿵!
“현리 부족의 추장! 네놈을 죽여 현리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자의 정체는 망루에 있던 백 부족의 추장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부족의 수장이라는 작자가 적지 한복판으로 뛰어들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영악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내가 죽는다면 전사들의 사기가 꺾일 테니까.’
생긴 것은 단순 무식하게 생겼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제법 영악한 것 같았다.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만드는 방법도 알았고 또한 다른 부족을 어떻게 정복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실수가 있다면 호영의 강함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즉, 아무런 정보도 없이 호영에게 덤볐다는 것이 그의 실수였다.
“네놈 따위에게 죽을 내가 아니다.”
호영은 추장이 내지르는 불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내고는 그렇게 말했다. 추장의 무력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지만 그래 봤자 초강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아무리 쉴 새 없이 맹공을 퍼부어도 호영이 보기에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한 공격이니 두려울 게 없었다.
“이, 이놈이!”
추장이 크게 당황해서 말을 더듬을 때, 호영의 솥뚜껑만 한 손이 움직였다.
파악!
“쿨럭.”
손바닥으로 가슴팍을 쳤을 뿐이지만 추장은 치명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피를 토하였다.
용맹하고 실력도 대단하였지만 백 부족의 추장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범인에 불과하였다. 마나라도 사용할 줄 알았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의 재능까지 갖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1회 차에서 마나를 사용하는 인간은 세계적으로 따져도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저기 보이느냐, 백 부족의 모습이?”
“…….”
호영이 백 부족의 추장과 놀아 주는 동안 친위대 전사들은 목책을 뛰어넘어 백 부족의 내부를 공격하였다.
당연하겠지만 인구가 쉰 명도 안 되는 백 부족이 친위대 전사들의 공격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백 부족의 전사들은 순식간에 피를 뿌리며 죽어 갔다.
여인들은 살아남겠지만 장정들은 꽤나 죽어 나갈 것이었다. 죽지 않는다고 해도 노예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 터.
“네놈이 나에게 대항했기에 저런 일이 생겨난 것이다.”
“크윽, 더러운 놈. 어차피 내가 복종했어도 우리를 막 대했을 것이 아니냐.”
“나는 조그만 부족을 차지하고서 왕 놀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네놈이 나를 따랐다면 얼마든지 같은 부족민으로 대우해 줬을 것이다.”
추장은 호영의 말에 참담함을 느꼈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호영은 더 이상 그의 반응을 지켜보지 않았다.
서걱!
눈을 찡그리며 추장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 것이다.
‘용력이 제법 쓸 만해도, 이놈 역시 강철과 같은 이유로 살려 둘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니 이놈의 죽음을 아쉬워 할 필요는 없어.’
* * *
“끝났군.”
어느덧 백 부족과의 전투는 끝났다.
물론 이것을 과연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여든 명에 가까운 친위대 전사들이 스무 명도 안 되는 백 부족의 전사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한 전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전투는 전투. 호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위대 전사들을 치하하고선 피해를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우리 오는 사상자 없다.”
“우리는 한 명 부상 입었다.”
“우리 오는 오장이 죽었다.”
호영의 명령에 친위대 전사들 중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순서대로 피해 상황을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