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피해라!”
호랑이가 날아오기 직전, 전사들에게 고함을 내지른 호영이 정면으로 땅을 박차고 나섰다.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마주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호영이 비록 자신의 무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라지만 그렇다고 무리하게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면으로 부딪히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호랑이의 앞발을 피해 내고는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손해는 보지 않고 이득만 챙기는 공격이었다.
크허허헝!
창졸간의 공격에 호랑이는 미처 피하지 못하였다.
왼쪽 눈에 창을 꿰뚫리고는 비명을 내지르는 호랑이.
그런 호랑이의 모습을 보면서도 호영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맹수는 더욱 매서운 법이었다.
호영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전사의 돌창을 빼앗아 들고는 크게 외쳤다.
“모두 창을 던져라! 놈은 상처를 입었다!”
“충!”
공황에 빠져 있던 전사들이 그제야 군례를 외치며 창을 번쩍 들었다. 상처 입은 호랑이의 모습에 자신감이 생겨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호랑이는 쉽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호영이 가장 먼저 창을 날렸고 앞발을 꿰뚫었지만 치명타를 주지는 못하였다.
다른 전사들의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호랑이는 나는 듯이 빠르게 움직여서는 반 이상의 공격을 피해 내곤 멍하게 서 있던 전사를 그대로 후려쳤다.
샤아악!
상처 입은 맹수는 역시 매서웠다. 호랑이의 앞발 공격에 전사의 얼굴이 수박처럼 깨지며 하얀 뇌수가 터져 나왔다.
당연하겠지만, 즉사였다.
“죽어라!”
그 순간 호영이 움직였다. 무기 없이 주먹만으로 호랑이에게 달려들고선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는 호영!
퍼억!
전사를 죽이느라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던 호랑이는 호영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호랑이 얼굴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호랑이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수백 킬로그램의 호랑이도 날려 버리는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크르릉.
호랑이는 호영의 공격을 당하고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쓰러진 채 미약한 울음소리만 내뱉을 따름이었다.
그런 호랑이의 모습에 동정이 들 법도 하였지만 호영은 적에 한해선 누구보다 단호한 사내였다. 성큼성큼, 호랑이에게 다가가서는 더 이상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무시무시했던 호랑이의 죽음에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승리의 함성을 질러도 좋을 순간이건만 전사들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호영은 그러한 침묵 속에서 초강을 불렀다.
“초강!”
“말해라, 추장.”
“저기 도망쳤다가 되돌아오는 전사 세 놈을 모두 죽여라.”
“알았다!”
뜬금없게 느껴지는 호영의 말에 수호가 눈을 크게 떴다. 호영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순간이지 않은가? 잠시 전선에서 이탈했다고 처형시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수호도 이견을 내세우지 못하였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호영의 시선에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나를…… 으악!”
“나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끄르륵.”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일흔아홉 명, 아니 일흔여섯 명의 전사들은 침을 삼키며 호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도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도망자를 죽이는 이유, 그리고 호영의 얼굴이 딱딱한 이유. 전사들도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알고 있었다.
“미, 미안하다, 추장.”
“다음에는 전사답게 제대로 싸우겠다.”
“나도 더 이상 겁먹지 않겠다.”
호영은 자신에게 사과하는 전사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강하게 윽박지르고 싶었다.
아니, 윽박지르는 것을 넘어 몇 명 정도를 더 본보기로 처단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전사들이 보여 주었던 모습은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호영은 애써 살심을 억눌렀다. 친위대 전사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어차피 친위대는 이제 막 창설된 조직이었다. 지금은 부족할지언정 나중에는 정예화될 수밖에 없을 터. 방금 죽었던 네 명의 전사처럼 겁쟁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친위대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였다.
“두 번은 없다. 명심해라.”
“충!”
“수호, 네놈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머뭇거리던 수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렇게 대답하였다.
자신밖에 모르던 수호.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다음에도 내 명령에 항명한다면 그때는 용서치 않으리라.’
* * *
호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광경은 보기가 불편하군.’
맹수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운 호랑이 사냥이 끝나자마자 호영은 지체하지 않고 남동 방향으로 친위대를 움직였다.
걷고 또 걷고.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다. 험한 산길에 맹수들이 우글거렸지만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호영은 비상한 감각으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그 무언가는 지금껏 만났던 맹수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그 무언가를 느꼈을 때 호영은 ‘우회’를 생각했다. 어차피 무작정 남동 방향으로 향한 것이니 조금 방향이 틀어져도 상관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은 무언가를 느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 소리를 들었다. 사람, 그것도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였다.
그 비명 소리를 듣고서 호영은 결정을 내렸다, 우회를 포기하기로.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존재감이었지만 사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얼마 뒤, 호영은 비명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상대로 10세 전후로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심상치 않은 존재감의 주인공 역시 찾아냈다.
미노타우로스!
심상치 않은 존재감의 주인공은 바로 수소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였다. 신장이 3미터에 달하는 괴물 중의 괴물. 그 괴물이 어린아이와 같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몬스터 따위에게 농락당하다니.”
호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자리에 모여 있는 몬스터와 어린아이. 당연하겠지만 두 존재는 사이좋게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몬스터는 놀고 있는 것이 맞지만 어린아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유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린아이의 근처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으니까.
“준비해라. 저 괴물을 죽일 것이다.”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모두 아까처럼 겁에 질린 것은 아니겠지?”
농담처럼 물었지만 호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사들은 그런 호영의 말에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몇 명은 미노타우로스의 존재감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전투를 거부하지 않았다. 아까 있었던 호랑이와의 전투에서 많은 것을 느낀 얼굴들이었다.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하였다.
“그렇다면 싸워라.”
“충!”
“가자!”
“와아아아!”
전술도, 전략도 없었다. 그저 막무가내의 돌격만 있을 뿐. 하지만 무려 여든 명에 달하는 전사들의 돌격은 그 자체로도 위압적이었다.
상대 미노타우로스 역시 그들의 기세에 순간 움찔했을 정도였다.
쿠오오오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는 난데없이 등장한 인간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에게 있어 인간이란 장난감에 불과한 것.
처음 보는 인간들의 공격에 잠시 놀라기는 하였지만 지금 미노타우로스가 느끼는 감정은 ‘괘씸함’뿐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포악한 성질을 내뿜으며 인간들에게 장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미노타우로스에게 창 하나가 불현듯 날아왔다.
어떠한 예고도 없는 공격이었고 날아오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기에 미노타우로스는 미처 피하지 못하였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달려들던 미노타우로스가 뒷걸음질을 하였다. 날아가는 속도가 상당했던 만큼 창에 담겨 있는 파괴력도 굉장했던 것이다.
쿠, 쿠오?
미노타우로스는 당황하였는지 황소만한 눈을 껌뻑거렸지만 인간들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에 있던 전사들은 들고 있는 창을 동시에 날렸고 앞서가던 전사들은 미노타우로스를 중심으로 단단히 포위하였다.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은 고슴도치의 그것처럼 되었다. 전신에 돌창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수십 명의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명의 사내가 3미터 높이를 점프하였다.
허공을 박차고 날아오른 사내는 호영이었다. 매처럼 날아오른 호영은 창을 쥔 손을 내질렀다. 그러자 새까만 빛줄기가 쏘아지더니 그대로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뼈를 뚫고 들어가 미노타우로스의 숨통올 완전히 끊어 버렸다.
뚝.
안정적으로 착지한 호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등 뒤로 쿵, 소리와 함께 미노타우로스가 쓰러졌다.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가진 괴물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거인의 뼈는 역시 단단하군.’
엄청난 승리였지만 호영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거인족까지 쓰러뜨린 그에게 있어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호영이 이번 전투에 대한 감상은 그저 무구가 조금 좋아졌다는 점뿐이었다.
물론 전사들이 받은 느낌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또 한 번의 영웅 같은 승리에 함성을 내질렀다. 전사들에게 있어 호영이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이미 호영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하고 있었던 전사들이지만 이번 미노타우로스와의 싸움에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호영이 가진 무력은 인간을 아득하게 초월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호영을 바라보는 수호의 눈빛도 달라졌다. 그 역시 추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는 호영을 대할 때보다 더 공경하고 깍듯하게 행동할 것이었다. 인간 이상의 신위를 갖춘 절대자와 분란을 일으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뭣들 하고 있지? 전투가 끝나면 가장 먼저 해야 될 게 무엇인지 내가 가르쳐 주었을 텐데?”
호영은 달라진 전사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뇌성벽력과 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그러자 호영을 향해 존경하는 눈빛을 던지던 전사들이 찔끔, 몸을 움츠렸다.
이미 호랑이와의 전투가 끝난 이후 단단히 혼이 난 상태였다. 전사들은 이내 몸을 움츠리며 미노타우로스의 사체를 수습하였다.
전사들이 미노타우로스를 도축하며 전리품을 획득하는 동안 호영은 미노타우로스의 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호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으냐?”
“……으응.”
오물과 상처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은 지저분하였다. 그래도 볼이 포동포동한 것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불쌍하군. 어린 나이에 이런 꼴을 당하다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아이를 보며 호영은 연민이라는 것을 느꼈다.
많아 봐야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 이런 일을 겪기엔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다. 물론 어떻게 보면 고작 AI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현실보다 생생한 센추리 세계였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