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22화 (22/345)

# 22

각각 아홉 명, 열한 명을 보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씩 하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중한과 강예가 말하기를, 두 일족은 최고의 전사들을 보내기로 했었다. 너희들이 정녕 최고의 전사들이냐?”

호영이 추궁하는 어조로 그렇게 말하니 두 일족의 전사들은 몸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추장! 내가 그 두 놈을 두드려 패겠다. 감히 이런 장난질이라니!”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초강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버럭 외쳤다. 그로서는 두 일족이 호영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실 호영도 그렇게 느꼈다. 아니라면 멀쩡한 전사들을 보냈을 것이 아닌가. 그때 두 일족의 전사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일족에서 최고의 전사들이다.”

“네놈같이 비리비리한 것들이 무슨 전사!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말했지 않나, 우리 일족에서 최고의 전사들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초강을 두려워하면서도 할 말은 끝까지 하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눈여겨본 호영은 화를 가라앉히고서 물었다.

“너희들을 보내야 할 만큼 일족의 사정이 안 좋다는 뜻인가?”

“……부끄럽지만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보낼 사람이 열한 명밖에 안 된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는데.”

“추장,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 줘라. 전사가 많이 상했다. 우리, 이제 애를 배고 있는 암컷들까지 채집에 나서야 한다.”

불쌍한 얼굴로 간곡히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호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부족 발전을 위해선 하루빨리 인구를 늘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거의 강요하듯 세 파벌에게 전사를 보내라고 한 것이고.’

그가 지금 같은 시기에 부족 경영보다 친위대 창설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군사력이 있어야만 세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내실을 다지고 부족을 발전시킨다? 만약 호영에게 여유가 있다면 분명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였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호영을 낯설어하는 부족민들이 대다수였다. 진정한 추장으로 자리 잡으려면 내부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호영에겐 시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고작 4년, 아니 이제 3년 10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현리 부족을 발전시킨다고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통치를 잘한다 해도 구백 명의 인구가 4년 만에 천 명을 넘어 수천의 인구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문물을 만든다고 해도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고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지식을 사용하기는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최우선순위는 어디까지나 ‘정복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단기간에 인구를 늘리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정복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아. 적어도 현리 부족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필요성이 있으니까. 또 생산성을 유지할 필요도 있고.’

앞으로 무수한 부족을 정복하면 출신 간의 갈등이 대두될 터. 이 또한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조정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현리 부족민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이유 외에도 생산성, 즉 식량 생산량을 끌어 올여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말이다.

“강씨도 똑같은 이유인가? 전사를 보낼 여력조차 없냐는 말이다.”

“그, 그렇다. 사냥에 나설 전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니 부디 이해해 주길 바란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모습을 보여 주던 호영이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양해해 주겠다. 다만, 너희 일족이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전사를 내줘야 한다.”

“알겠다.”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두 일족의 전사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호영은 일단 관대하게 받아 주기로 하였다. 그들의 반발을 살 필요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제대로 키워 내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복 전쟁

‘이 정도면 충분하다.’

친위대로 포함된 전사 수십을 데리고 보수공사에 나선 지 어언 나흘째였다. 아직 보수할 것이 많이 남아 있지만 호영은 더 이상 공사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공사를 제외하고서도 호영이 해야 할 일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공사에 손을 뗀 가장 큰 이유는 부족을 지키는 외벽의 설치가 완성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거창하게 중세 성벽 같은 것을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호영이 단단한 고목들로 만들어 낸 부족의 목책은 성벽처럼 단단하였다.

화공에 약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석벽과 비교해도 꿀릴 게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나머지 공사들을 다른 이들에게 맡겨 두고는 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자 하였다.

‘오늘 당장 출전해야겠어. 산에 도착하는 즉시 정복 전쟁에 나선다.’

본래 며칠을 더 부족에 남아 있을 생각을 하였었다. 아무리 내치보다 정복을 더 중요시하는 호영이라고 해도 부족에 대한 장악력만큼은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친위대를 훈련할 필요성도 있었다. 현재 그의 친위대는 이름만 전사들이지, 사냥 경험이 없는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이라는 것인데, 미래를 위해서는 친위대를 강력한 군대로 키워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최소 한 달 정도는 부족에서 친위대를 훈련시켜야 했고 말이다.

그러나 호영은 세 가지 이유로 정복을 서두르기로 하였다. 첫 번째 이유는 부족의 혼란이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건 나흘간의 노력이 어느 정도 통하기도 한 것인데, 호영은 나흘 동안 보수공사에 집중하면서 한편으로는 부족의 식량 분배를 직접 감독하였다.

부족사회에서 식량을 분배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었다. 호영 역시 이 사실을 알고서 식량 분배만큼은 확실히 책임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현리 부족에서 식량 분배를 책임지는 자의 권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제사장이 죽었을 때도, 강철이 죽었을 때도 심지어 폭군이 죽었을 때도 동요하던 몇몇 부족민들이 순식간에 진정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호영이 식량 분배를 감독함으로써 부족의 혼란이 진정되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훈련은 실전처럼’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우스운 이유였지만 호영의 전사들은 현재 ‘훈련’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호영이 시킨다면 훈련이야 하겠지만 한번 시켜 본 바로는 그리 열정적이지가 못하였다. 전사들은 오직 실전을 통해서 전사가 된다고 굳게 믿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영도 생각을 달리 먹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다른 세력을 정복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 가진 친위대라면 백 명 이하의 세력은 쉽사리 정복할 수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하겠지만 그 정도야 세력을 정복하면서 얻는 이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즉, 그는 의지가 없는 전사들을 억지로 훈련시킬 시간에 차라리 손해를 감수하면서 세력을 확장하자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열 명의 대원을 잃는다면 스무 명의 대원을 얻으면 되는 일. 그렇게 줄어들고 늘어나는 과정에서 친위대는 자연스럽게 정예화가 될 터였다.

세 번째 이유는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이유와 비슷한데 바로, ‘시간의 촉박함’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리 부족은 현재 그리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식량이나 내부 문제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 아닌 이상, 부족에 식량이 부족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내부 문제도 이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호영을 중심으로 완전히 일치단결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현리 부족에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오크족’이었다.

이미 현리 부족은 폭군의 명령으로 오크족과 적잖은 마찰을 일으킨 상태였다. 솔직한 말로, 내일 당장 침공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왜 그들이 침공해 오지 않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지금까지 침공해 오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안일함의 극치였다.

그렇기에 언젠가 있을 오크족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세력을 빠르게 키울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이유로 호영은 오늘 당장 정복 활동에 나설 생각이었다.

“중한!”

“말해라, 추장.”

“내가 바깥에 있는 동안 식량 배급은 네가 책임진다.”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살짝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중한.

호영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내에게 말했다.

“강예.”

“불렀나, 추장.”

“내가 없는 동안 네가 부족을 지켜야 한다.”

“무엇이 쳐들어와도 다 막아 내겠다.”

“그러도록. 하지만 만에 하나 오크족이 쳐들어온다면 부족민들을 데리고 도망쳐라.”

“…….”

호영의 말에 강예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알았다.’라며 수긍하였다. 그 역시 오크족에 대항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씨들은…….”

“듣고 있다, 추장.”

“우리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두 사내는 호영의 부름에 반색하며 말했다. 자신들에게도 무언가 큰일을 맡기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호영의 말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물고기를 잡아 주도록.”

평소에 하던 일을 하라.

그들로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건물도 좀 보수하고.”

“아, 알았다!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수씨들은 추장이 오기 전까지 부족의 건물을 모두 보수해 놓겠다.”

호영은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현리 부족의 세 일족은 어느덧 호영을 향해 충성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나흘 전부터 부족 전체에서 시작된 하나의 흐름이었는데 호영의 가진 무력도 무력이지만 추장으로서의 권한을 완벽하게 행세하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무력과 추장으로서의 권위 그리고 실질적인 권한 행세까지,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어우러지면서 호영은 제사장보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세 일족도 이제는 호영의 권력을 인정하고 열성적으로 따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겠군. 수비는 약간 못 미덥긴 하지만 말이야.’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한 호영은 친위대에게로 향했다. 현재 친위대는 한창 출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마다 돌창이나 조잡한 목궁 따위를 손에 들며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 삼십여 명의 어린 전사들은 등에 원시적인 지게를 메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식량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원정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친위대였다.

“준비는 다 되었나?”

“충!”

호영의 물음에 각자 볼일을 보던 친위대 전사들이 동시에 외쳤다.

‘충(忠)!’

지금 시대에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다. 당연히 친위대 전사들도 ‘충’이라는 단어를 알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호영이 시키니 따라 하는 것일 터.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충’을 외침으로써 친위대는 한결 더 단결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같은 경례가 추장의 권위를 더욱 높여 주게 될 것이었다. 호영 이후에 등장할 추장들의 권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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