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북미에서는 벌써부터 뉴스에 나올 정도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센추리였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외면받고 있었다.
그나마 반응이 조금씩이라도 나오는 것도 인터넷에서 워낙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들도 비슷하였는데, 마치 언론을 통제라도 하는 것처럼 센추리에 관련된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간혹 나오는 보도도 가상현실 게임을 했더니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있지도 않은 사고 사례를 들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잔인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고 말이다.
이것은 회귀 전의 반응과 일치하였다. 아마 한국은 세계가 센추리에 열광하는 1년 뒤, 아니 2년 뒤가 되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게 추후에 얼마만큼의 손해가 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할 터. 호영으로선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일단은 내 일에 집중하자. 어차피 아직은 다른 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호영은 곧바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 * *
대준으로 눈을 뜬 호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굴 안쪽으로 걸어간 것이었다.
그는 항상 대준의 몸으로 눈을 뜨면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심법 수련이었다. 동굴 안쪽에 도착한 그는 여느 때와 같이 책상다리를 하였다. 그러고서는 호흡에 집중하였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뱉으며 집중하고 또 집중하였다.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법이 있어도 그러하다. 애초에 심법이라고 무협지처럼 편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연마하였을 때 마력이 보통 하나 정도가 올라간다. 즉, 하루에 0.1에서 0.2 정도가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이 수치만 봤을 때 다른 능력치에 비해 쉽게 올린다고 볼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호영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호영이 하루에 심법을 연마하는 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사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1시간도 채 버티기 힘들 것이었다.
그만큼 심법이란 무지막지하게 심력을 소모시키는 행위였다.
아무튼 호영은 그 힘겨운 심법 수련을 게임 시간으로 2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하였고, 오늘 마침내 35를 찍을 수 있었다.
“마력이 35라…….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심법 수련의 영향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호영이지만 씩,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오늘이 마침 거사의 날이었다. 마력이 늘어난다고 크게 유리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달랐다.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창을 수련할 시간.
‘스킬 창.’
호영은 창을 수련하기에 앞서 스킬 창을 열어 보았다.
특기 스킬
-불굴 A+
-용맹 A
-재생력 A
-집중력 B+
-인내력 B+
-신력 B
-면역력 B
-악력 B-
-적응력 B-
-넓은 시야 C+
-단련 C+
-강골 C+
(중략)
-마나친화력 E-
일반 스킬
-대가심법 A
-대가창법 A
-투창 B-
-박투술 C+
-사냥술(멧돼지) C+
-사냥술(사슴) C
-사냥술(고블린) D+
-강타 D
-차지 D
-마나감지 E
(중략)
각인 스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던 스킬 창이 크게 세 분류로 나뉘어 있었다. 이것은 센추리에서 구분한 것이 아닌, 호영이 임의적으로 분류한 것이었는데 3회 차 이후부터는 유저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스킬을 구분하였다.
‘특기 스킬’은 이른바 재능을 뜻하였다. 대개 아바타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재능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패시브’ 스킬이라고 표현해도 좋았다.
‘일반 스킬’의 경우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스킬들이었다. 한마디로 ‘기술’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스킬들.
대가심법, 대가창법 그리고 마나감지 같은 경우는 호영이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스킬들이었고 그 이외의 것들은 대준이 본래 가지고 있던 스킬들이었다. 대준이 살아오면서 익혀 왔던 각종 경험들이 스킬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인 스킬’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흔치 않은 스킬이었다. 아마 1회 차에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각인 스킬을 얻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각인 스킬은 주로 ‘마정석’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몬스터 한두 마리 잡는 것으로 어림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호영은 게임 시간으로 한 달 가까이가 지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몬스터를 살상하였다. 더군다나 하루에 한 번씩, 고블린족이 마정석을 공물로 바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호영은 각인 스킬이 들어가 있는 마정석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리 고블린이나 짐승형의 약체로 분류되는 몬스터라 해도 수백 마리는 족히 잡았는데 말이다.
그만큼 각인 스킬은 흔하지 않았다.
물론 마정석 외에도 각인 스킬을 얻는 방식은 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1회 차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들이었으니 호영조차도 각인 스킬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각인 스킬은 분명 매력적인 힘이기는 해. 그러나 계승을 할 수 없다는 것과 등급을 높이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탐낼 필요는 없어.’
이미 호영이 가진 힘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다음 회 차에서라면 모를까, 이번 회 차에서 각인 스킬을 욕심낼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얻을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준의 스킬들은 제법 화려하단 말이지. 전투에 관련된 것도 많고. 그야말로 타고난 전사라는 것인가?"
이런 아바타를 가졌으니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으리라.
스킬 창을 모두 확인한 호영은 창을 들고서 창법 수련을 시작하였다. 솔직히 숙련도가 무려 A에 달하는 대가창법이기에 수련하는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A급이 끝이 아니었다.
호영 역시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었지만 숙련도 S 이상의 등급은 분명 존재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S 등급도 끝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호영은 A급이면서도 창법 수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괴물 같은 육체였지만 대가창법을 1시간 가까이 수련하니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호영의 본 실력은 A급에 약간 못 미쳤다.
창시자의 혜택으로 A급이 된 것이지, 호영의 본래 실력은 B급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대준보다 창을 못 다룰 수도 있겠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창술 스킬조차 없었던 대준이었는데 말이야.’
호영은 그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저밖에 모르고 있던 기술도 스킬로 명시된다면 아바타에게 공유된다.
즉, 스킬의 이점은 어떻게 보면 유저 본인보다 아바타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 플레이 시간보다 게임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니 아바타가 약하다면 문제 될 게 많았다.
유저가 아무리 게임 실력이 상당하다고 해도 로그아웃 하는 동안 아바타가 죽으면 낭패일 것이니 말이다.
사실 이같은 스킬의 특성 때문에 센추리를 방치형 게임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유저 본인이 컨트롤하는 것보다 AI가 컨트롤하는 것이 더 이득인 경우가 있으니 이것을 악용하는 것이었다.
“체력이 75라……. 거사를 앞두고 체력을 모두 소모할 수는 없지.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해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은 숨을 가다듬고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중간에 있는 길목을 지나니 익숙한 사내가 보였다.
사내의 이름은 초강. 현재 호영이 가장 신뢰하는 사내였다.
“추장 끝났나.”
호영은 피식 웃었다. 반갑게 달려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강아지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지만 말이다.
“끝났다. 고생했어.”
“딱히 고생한 거 없다. 그냥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니 고생했다는 거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도 아니까."
그는 호영이 대준의 몸으로 수련을 시작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호영의 수련을 지원해 주었다. 지원이라고 딱히 특별한 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묵묵히 다른 이의 출입을 막아 주는 것만으로도 호영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덕분에 호영은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초강의 덕이 작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추장,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나?”
갑작스러운 초강의 물음에 호영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날을 제외하고 초강이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전사들이야 호영이 혼자 사냥을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졸랐지만 초강은 달랐다. 그는 호영이 싫어할 부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언제나 호영을 위하는 전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거사가 치러질 오늘 이런 부탁을 하다니.
“안 그래도 너와 같이 갈 생각이기는 했었다.”
“그러면 같이 가는 거다, 흐흐.”
의아하게 초강을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우연’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마냥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평소 보았던 초강의 직감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에도 ‘직감’으로 거사가 치러질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초강의 아바타에는 분명 직감 스킬이 존재할 것 같군.’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전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전사들은 하나같이 기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굴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전사들의 사기가 많이 낮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리라.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결전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짐을 챙겨라.”
“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추장.”
“먹을 것과 가죽 그리고 마정석을 챙기라는 말이다.”
“추, 추장…… 설마?”
전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멀리서 호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들의 표정에도 놀람이 가득하였다.
짐을 챙기라는 호영의 명령! 아무리 단순한 전사들이라고 해도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부족으로의 귀환. 호영은 분명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호영의 입에서도 귀환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오늘 부족의 배신자들을 처단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부족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전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답답한 동굴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그저 좋았던 것이다.
초강도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였다. 나이가 20대 초반이라 다른 전사들보다 생각이 깊었지만 단순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오직 여자들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그녀들은 어느덧 이 동굴 생활에 적응한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여자들의 반응까지 신경 쓰지는 않기로 하였다. 그녀들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였지만 호영 역시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동굴에서만 생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목표는 센추리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는 것. 당연하겠지만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선 세력 확장은 필수 중의 필수였다.
그리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었다. 호영은 그렇게 결전의 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현리 부족을 향했다.
* * *
“추장, 이렇게 대놓고 있어도 되나?”
“걱정하지 마라, 곧 있으면 아군이 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