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1화 (11/345)

# 11

지금 그가 가진 세력으로는 아무리 발전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사들과 여자들을 다 합쳐 봤자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호영으로선 외부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가장 적절한 진출 통로는 본래 대준의 부족이었던 ‘현리’라는 이름의 부족이었다.

인구만 수백이 족히 넘는 대부족. 비록 갑작스러운 거인의 등장으로 발전은커녕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반대로 거인 문제만 해결한다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부족이었다.

‘문제는 나 혼자서 거인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인이란 실로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 터무니없는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힘도 힘이지만 지성부터 시작해서 신체 회복 능력까지 모든 게 우수하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거인에게 대적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울 것이었다. 물론 호영은, 그리고 호영의 아바타인 대준은 평범한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80에 달하는 체력과 근력. 민첩 역시 60대 중반이나 되었다. 무엇보다 호영 그에게는 심법과 마력 그리고 창법이 있었다.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거인과 겨루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호영은 자신의 무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으면서도 낙관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거인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리 부족. 본래라면 대준의 편이 되어 줘야 할 그들이 같은 인간이 아닌, 5미터에 달하는 장신의 거인을 따르고 있었다.

만약에 호영이 거인을 공격한다면 현리 부족은 거인의 편에서 호영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거인의 전투력에 부담감을 느끼는 호영으로선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후우.”

힘이 있음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에 호영은 답답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거인을 진정으로 죽이고자 한다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었다.

“사냥하러 갔다 오겠다.”

부족 전사들의 시선이 단번에 호영에게로 쏠렸다. 전사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뜨거웠다. 마치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무언의 의사 표현 같았다.

하지만 호영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혼자 가겠노라고.

“엥? 추장 혼자서 간다고?”

“그리 놀랄 일은 아닐 텐데.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야.”

초강이 놀란 얼굴을 묻자 호영은 무덤덤한 어조로 그렇게 답하였다. 각종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산에서 혼자 행동한다는 것은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호영은 달랐다.

호영의 아바타인 대준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몸이었다. 제아무리 1회 차의 아바타들이 다른 회 차의 아바타보다 육체적으로 강건한 편이라고 해도 대준의 육체는 지나치게 출중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런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감히 폭군의 지배에 불응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지금처럼 부족에서 내쫓긴 처지가 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도 가고 싶다.”

“추장, 혼자만 가는 거 너무하다!”

초강을 시작으로 전사들이 철없는 아이들처럼 보채기 시작하였다. 자신들도 사냥에 데려가 달라며 말이다.

사실 초강을 제외하고 전사들의 나이가 대개 10대 중반에서 후반이었기에 아이인 것은 맞았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에서 10대 중반이면 한 명의 당당한 어른인 것도 분명한 사실.

‘어린아이들뿐이니 조금 걱정되기는 하는군. 그래도 대준의 친위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인데 말이야.’

호영은 그런 전사들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초강은 그런대로 든든하기라도 했지만 다른 전사들은 솔직히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들을 데리고 대업을 해야 할 것인데 정말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반쯤 노예 취급을 받았던 5회 차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 같았다.

5회 차에서는 그래도 능력만 있으면 세력을 불리기가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다른 유저들도 상황은 비슷할 테니, 오히려 내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어.’

특전을 세 가지나 받은 상황. 이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도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건설하지 못할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는 전사들에게 말하였다.

“나중에 같이 가기로 하고 이번에는 나 혼자 가야 한다.”

“끙. 추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알았다.”

“사냥, 나중에 꼭 같이한다!”

전사들의 대답에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단순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쨌든 이 부족의 전사들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들. 호영은 그들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그들과 함께할 생각이었다.

부족의 유일한 전력이었으니 그 실력을 미리부터 키워 놓아야 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키우는 것보단 현리를 정찰하는 것이 우선.

전사들을 동굴에 내버려 둔 호영은 혼자 동굴을 벗어났다.

저벅저벅.

호영은 산길을 걸으며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다. 무지막지한 스텟을 가지고 있는 그였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아니,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원시림을 보면 방심하고 싶어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비록 산림의 초입이라 초식동물과 고블린, 늑대 따위밖에 없겠지만 대자연 한복판에서는 언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는 호영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리를 머릿속에 담기 위해 노력하였다. 맵 기능이 존재하였지만 그 기능이 현실의 내비게이션처럼 편리한 것은 아니었다.

내비게이션보다 지도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보다 효용이 높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맵 기능조차 아바타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는데 기억력 또는 지도 관련 스킬이 존재하거나 지력이 높으면 더욱 효율이 증대하는 식이었다.

물론 호영의 아바타인 대준은 전형적인 육체파라 가장 기본적인 기능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호영은 맵 기능에 의지할 수가 없었다.

부족을 되찾더라도 언제 또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곳. 그러니 자신의 기억력을 믿고 최대한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 *

“이 무능하고 나약한 인간 놈들이!”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인간이 고함을 지르며 성을 냈다. 그러자 대지가 진동하고 거친 바람이 사방에 뿜어졌다.

이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인간들은 그저 벌벌 떤 채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인간, 즉 폭군은 그런 인간들을 보며 다시금 분노를 표한 채 발을 쾅쾅 굴렀다.

단순히 발을 굴렀을 뿐인 그 행동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부셔졌다. 인간들은 이번에도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놈을 잡지도 못한 주제에 오크를 겨우 네 마리밖에 못 잡아? 오냐. 오크를 못 잡아온다면 네놈들을 잡아먹겠다.”

폭군은 그렇게 중얼거린 채 두 명의 인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꺄악!’하는 비명과 ‘끄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있는 수백에 달하는 인간들은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 아니기를 기도하며 애꿎은 땅에 얼굴을 갖다 댈 뿐이었다.

우걱우걱!

결국 두 명의 인간은 폭군의 입으로 들어갔다. 살아나겠다고 거인의 손안에서 저항해 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들은 폭군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여 대지로 돌아갔다.

인간들이 바친 오크들의 사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폭군은 인간들로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곧바로 오크들을 자신의 입으로 집어넣었다.

다시금 역겨운 소리가 폭군의 입에서 뿜어 나왔다. 인간들이 목숨을 걸고 잡아온 오크들의 사체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래도 배가 조금은 찼군. 하지만 다음에는 두 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야. 하루에 오크 열 마리다. 명심해라, 인간들이여.”

폭군은 그렇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명령을 내리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인간들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갔다.

터덜터덜 걷는 인간들의 모습은 한없이 절망적으로 보였다.

* * *

“우어어어어어! 우어어!”

땅이 울리며 굉음이 들려왔다.

호영은 그 굉음에 표정을 굳혔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거인의 실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대준이 저항했을 정도니 나라면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본 기록에서도 대준이 폭군에게 ‘저항’했다고만 했지 동등하게 싸웠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폭군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적혀 있기에 호영으로선 나름 호각이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호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호영조차 승산을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폭군이 내뿜는 위압감은 상식을 초월하였다.

저 거인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다면 애초에 대준은 살아남지도 못했으리라.

“곤란해졌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거대한 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거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어떻게든 저 거인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것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냈는데, 이젠 그마저도 아니게 되었다.

거인에다가 수백의 전사들. 제아무리 호영이라 해도 역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글와글

그때 현리 부족 전사들이 다급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호영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들켰나?’

재빠르게 언덕 아래로 몸을 숨긴 호영은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만약 들킨 것이 맞다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 했겠지만 어차피 저들에겐 기병이라는 병과가 없었다. 이는 일단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도망쳐도 체력이 남다른 그로선 위험할 게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전사들이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저쪽은 오크들의 영역일 것인데.”

의문스러운 전사들의 행동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리는 강가 인근에서 거주하는 부족이었다.

대부분의 문명이 강에서 시작했듯이 현리 부족 또한 강을 통하여 비교적 쉽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천에 가까운 인구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을 끼고 있는 현리 부족이라고 마냥 상황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강이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지만 그 혜택은 인간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즉, 강을 원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야생동물이, 그다음에는 나약한 몬스터들이 등장하여 현리 부족을 방해하더니 최근에 와서는 ‘오크’ 종족이 강 북부에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지성을 갖추었으나 단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오크족. 하지만 그들의 전투력은 인간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조잡한 창으론 오크 거죽에 생채기조차 내기 힘들었고, 반대로 오크족은 주먹만 휘둘러도 인간을 살상할 수 있었다.

더 두려운 점은 오크의 번식력이 실로 무지막지하다는 것.

‘1회 차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은 거인족이지만 세력이 가장 큰 종족은 오크라고 했다.’

물론 그 거대한 세력조차 거인족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인구로 보나 영역으로 보나 오크족의 세력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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