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고블린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종족이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마정석이라는 수입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루에 한 개. 적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케르륵. 케륵.”
끄덕끄덕!
고블린 우두머리는 마치 호영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영은 그 모습을 보고서 그제야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도 호영을 계속 귀찮게 했을 적대 세력을 우호 세력 아니, 피지배 세력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물까지 얻게 되었다.
호영으로선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행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스킬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겠군.’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습격으로 지체되기는 하였지만 다행히 하루를 넘기지 않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킬을 만들다
“초강.”
“응? 나 불렀나, 추장.”
동굴에 도착한 호영은 곧바로 초강을 불렀다.
현재 부족의 전사들은 동굴 앞에 널려 있는 고블린 사체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초강은 호영의 부름에 따라 작업에서 잠시 제외될 수 있었다.
“내가 동굴 끝에서 할 일이 있는데 네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알았다. 말만 해라.”
호영은 ‘일단 따라와라.’라고 말하고는 동굴 끝으로 향하였다. 동굴 끝에 이르는 길목에 도착하자 호영은 초강에게 말하였다.
“네가 책임지고 다른 이들이 오지 못하게 막아. 아무에게도 방해받으면 안 되니.”
“암컷들도?”
“그래. 암컷이든 수컷이든 그 누구든 간에.”
“나 초강, 추장의 말에 따른다.”
비록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초강은 대준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호영은 그 사실을 대준이 남긴 기록에서 확인하였다.
초강이라면 곧 죽어도 호영의 명령에 따르리라. 그렇게 확신한 호영은 초강을 믿고 동굴 끝자락으로 향하였다.
‘식량도 충분하지 않고 주변에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도 많다. 또한 다시 부족으로 돌아갈 방법도 생각해야 해.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킬과 마력이다.’
마나! 센추리 세계엔 마나라는 에너지가 존재하였다. 이 마나는 강함의 척도라고 할 수 있었는데, 3회 차 이후 강자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마나라는 것을 활용하였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의 호영이 강자가 되기 위해선 마나가 꼭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호영은 고블린을 정리하기 무섭게 마나부터 얻고자 하였다.
“후우우우. 후우우우.”
책상다리를 한 채 호흡에 열중하기 시작한 호영.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마나는 레벨 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겠지만 센추리에서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마나를 느끼고 다스려야 했다.
물론 대부분의 유저들은 마나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것은 1회 차가 끝날 때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1회 차에서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유저는 세계적으로 따져도 얼마 되지 않을 터. 그 정도로 이 게임은 불친절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호영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마나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그였기에 마나를 얻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접속한 지 현실 시간으로 4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1시간 뒤에 강제 접속 종료가 진행됩니다.
현실과 센추리의 시간 배율은 무려 1:4였다. 즉, 현실의 4시간이면 센추리에서 16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5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접속이 종료된다. 호영도 앞으로 센추리 시간으로 4시간이 지나면 접속이 종료될 것이다.
하지만 호영은 시스템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마나를 느끼는 것에 집중하였다. 지금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1시간, 2시간…… 10시간. 책상다리를 한 채 마나에 집중한 시간만 무려 10시간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집중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같은 집중력의 결과는 게임상의 수치로도 드러났다. 80에 달하던 체력 수치가 70 이하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강제 접속 종료가 이루어지기 전에 아바타가 먼저 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호영은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가 회귀의 경험을 통해 마나라는 이름의, 센추리에서만 존재하는 미지의 에너지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다고 해도 아바타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사용하고 있는 아바타, 대준의 육체는 마나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느끼기에 그리 좋은 육체가 아니었다. 마나에 관련된 재능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호영은 마나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아야 했다.
벌써 마나를 느끼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12시간을 넘어섰다. 전성기 시절 즉, 7회 차의 아바타였다면 이미 마나를 감지하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마나 친화력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패널티는 감수해야지. 육체적 능력이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니 말이야.’
사기적인 육체 능력을 가진 대준이었다. 마나 친화력까지 독보적인 수준이라면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다. 나중에 대준 같은 사기적인 육체를 누군가가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될 테니까.
아무튼 호영은 잠시간 집중력을 잃었지만 결국엔 원하던 바를 이루어 내고 말았다.
마침내 감각이 열려, 마나를 감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최초로 ‘마나’를 감지하셨습니다. 계승 특전 마력 30을 드립니다!
-스킬, ‘마나 친화력 숙련도 E’가 형성되었습니다.
-스킬, ‘인내력’의 등급이 향상되었습니다.
-스킬, ‘집중력’의 등급이 향상되었습니다.
육체 외부에서 느껴지는 미지의 기운. 그 기운에 감탄하기도 전에 시스템 음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 정도를 아득히 초월한 특전에 호영은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특전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예상하였던 호영이다.
하지만 ‘계승’이라는 특전은 들어 보지도 못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계승이라니. 그 말은 다음 회 차에서도 마력 +30이 유지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30이라는 수치도 적지 않은데 계승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군.’
다른 능력치에 비해 올리기가 쉬운 편이라고는 하지만 30이라는 수치는 결코 작지 않았다.
1회 차에서 마나를 감지하는 데 성공한 유저가 존재한다 해도 그 유저는 아마 1회 차가 끝날 때까지 30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이는 1:4의 시간 비율로 센추리에서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데도 30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중이 되면 마력을 올리는 방법이 체계화되어 30은 물론 100을 넘기는 사람도 많아지게 되겠지만 센추리가 막 시작된 지금은 분명 비현실적인 수치였다.
호영은 탄성을 내지르며 ‘이래서 퍼스트 유저들이 그토록 강했던 것인가? 어떻게 이같은 특전을 숨길 수가 있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전까지 그는 퍼스트 유저의 혜택은 오직 지식과 경험 그리고 세력 계승에 국한된다고 생각했었다.
워낙에 퍼스트 유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적어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니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무려 특전이 계승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말이다. 호영은 복잡한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홰홰 저었다.
어쨌든 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할 일이라고 보는 게 맞을 터.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책상다리로 반나절 가까이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하였다. 강건한 체력으로 몸을 움직이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말이다.
“내일 아침이면 창법을 만들 수 있겠군. 아니, 이제 오늘이라고 해야 하나.”
고블린의 방해로 계획이 늦추어질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특전의 영향으로 오히려 계획이 빨라지게 되었다. 호영으로선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동굴의 입구 쪽으로 향하였다.
“계속해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거야?”
입구로 향하던 중, 초강을 만났다. 그는 입구 방향을 노려보며 우뚝 서 있었다.
“추장이 말했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고맙다.”
이미 확인했던 바지만 새삼 그의 충성심에 감탄이 나왔다. 호영은 감사 인사를 전하며 초강에게 말했다.
“배고프지? 같이 고기나 먹자.”
“나는 졸리다. 나 이제 자러 가도 되나?”
“물론이지. 자고 싶으면 자도 된다.”
“그럼 나 자러 간다.”
긴 하품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 초강.
호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사내였다.
‘네가 내 첫 번째 수하다.’
회귀 전의 호영이었다면 누군가의 충정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호영은 누군가를 믿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호영은 달랐다. 초강이 보여 주는 충정. 그 충정을 보니 이번만큼은 충정이라는 것도 한번 믿어 보고 싶었다.
꼬르륵!
그때 배 속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나를 감지하기 위해 공복 상태로 반나절 동안 있었더니 위장에서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또 맛없는 늑대 고기를 먹어야 하나? 끄응.’
센추리는 리얼리티가 엄청난 게임이었다. 사실 몇몇 게임적인 기능을 제외하면 오감부터 시작하여 NPC들의 인공지능까지, 모든 게 현실적이었다.
심지어 야생 고기 특유의 비린내까지 충실하게 구현하였는데, 웬만한 경험을 다 겪어 본 호영조차 쉽게 적응하기 힘든 맛이었다.
뜬금없는 생각이었지만, 이런 지나친 현실성 때문에 토튜리얼을 일부러 깨지 않는 유저들이 많은 것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초보자의 섬이라는 곳은 이곳과 비교했을 때 낙원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익혀 먹으면 먹을 수는 있겠지. 정 먹기 힘들다면 식사할 때마다 잠깐씩 로그아웃하는 것도 방법이겠어.’
지금까지 부족 사람들은 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었다. 불을 지피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입장에서 한가롭게 불을 지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착지를 가졌으니 날것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호영은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나뭇가지부터 찾았다.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읽으며 1회 차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들을 얻었지만 불을 지피는 것엔 그리 거창한 방법이 필요 없었다. 그저 나무만 있으면 되었다.
불을 지피는 데 가장 원시적인 방법.
그것은 나무를 문지르는 것이었다.
뱌비작뱌비작.
괴물 같은 힘으로 마찰을 가하자 순식간에 열이 나더니 불이 피어올랐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분명 원시적이었지만 효율은 나쁘지 않았다.
이곳이 센추리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를 집어넣어 불을 더욱 키운 호영은 시선을 돌려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가만히 호영을 지켜보던 여자들이 한쪽 구석에 있던 고기들을 들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 추장. 같이 먹자.”
“나도 배고프다. 나도 먹고 싶다.”
저마다 배를 부여잡으며 불쌍한 얼굴로 부탁하였다. 얼굴들을 보니 식량이 풍족한데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기야 아무리 대준의 전사들이 폭군과 맞서 싸울 정도로 정의롭고 용기 있는 사내들이라고 해도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수는 없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