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6화 (6/345)

# 6

“추장의 말에 따르겠다!”

전사들과 여인들의 치료를 끝마치자 이제 남은 것은 전리품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호영은 전사들에게 전리품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그 자신 또한 고블린과 늑대의 사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원시 시대에 가까운 1회 차에서 동물이나 몬스터의 사체는 굉장히 유용한 자원이었다. 앞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호영의 뼈창 역시 몬스터의 사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기뿐만이 아니었다. 동물과 몬스터의 사체는 식량으로서 사용할 수 있었고 의복으로서도 사용이 가능하였다. 지금의 시대에선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와도 같은 것.

‘무엇보다 이게 있다.’

고블린의 심장을 가른 호영은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조그만 돌멩이처럼 생겼는데, 생긴 것과 다르게 고블린 아니 거의 모든 몬스터의 사체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마정석! 돌멩이의 이름은 바로 마정석이라 불리는 ‘마력이 담겨 있는 돌’이었다.

“많아 봤자 5마력 정도밖에 안 들어 있겠군. 하긴, 고블린의 마정석이니 당연한 건가.”

센추리에서도 마나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여느 게임에서 흔히 그러는 것처럼 센추리에서의 마나 역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기본 요소였다.

물론 마나가 없다고 스킬을 아예 못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스킬들은 대개 마나라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고 이 마정석은 바로 그 마나가 담겨 있는 물건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마나가 담겨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정석의 가치는 상당하였다. 이 세계에는 ‘아티팩트’라는 것이 존재하였고 아티팩트는 마정석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까닭이었다.

물론 지금은 마법의 부재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마정석은 유용하였다. 왜냐하면 마정석에 담겨 있는 마력이 곧 화폐의 역할을 할 예정이니 말이다.

“이제 그만 행동을 멈추고 이동을 준비해라. 그 정도 챙겼으면 충분하다.”

“알았다!”

“추장!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나?”

전리품 획득을 마무리하고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던 호영은 초강이라는 전사의 물음에 잠시 멈칫하였다.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속으로 제법 ‘당황’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모르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상황이었다는 뜻인가? 심각한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속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하기는 하였었다. 하지만 전사들의 반응을 보니 아바타가 처한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것 같았다.

하긴, 애초에 호영이 아니었다면 이 무리는 전멸했을 것이 분명하였다.

늑대 무리에 이은 고블린 무리의 습격.

아무리 대준의 육체가 무지막지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잔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영악한 고블린까지 상대하기는 중과부적이었을 것이다. 대준이 죽지는 않았겠지만 살아도 혼자만 살았을 터.

한마디로 아바타의 능력치 자체는 최강인 것이 분명하지만 당면한 상황 자체는 최악이라는 것이었다.

호영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지금은 악조건에 불평하기보단 한시라도 빨리 은신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동굴을 찾아라. 임시적으로 동굴에서 생활한다.”

그의 아바타인 대준이 어떤 장소를 은신처로 염두에 두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전 정보를 얻지 못한 호영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수였다.

“추장, 동굴이라면 아까 있었다.”

“맞다! 나도 봤다.”

동굴을 찾으라는 호영의 말에 전사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두 명이 알은척을 하였다. 체구가 작고 몸이 날랜 것을 보니 수색을 담당하는 전사들이었던 모양.

“그렇다면 바로 그곳으로 안내해라.”

“알겠다. 따라와라!”

안내를 따라 이동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그만 동굴을 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일단 나쁘지 않아 보였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확인해 보았다.

좁은 입구와는 달리 제법 속이 깊었다. 안쪽이 시원한 것이 식량을 보관하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이 없는 동굴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 생활하는 것은 힘들지 몰라도 잠깐 생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호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서 생활한다.”

한동안 부족의 본거지가 되어 줄 장소.

호영은 이곳에서 몸을 완전히 치료하고 스킬을 가다듬으며 대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생각이었다.

* * *

스르르, 캡슐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호영의 정신도 센추리에서 현실로 귀환하였다.

‘접속 제한 시간을 모두 사용하지 않고 로그아웃하다니. 이러면 스케줄 짜기가 번거로워지는데 말이야.’

호영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바타가 숙면을 요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의 일과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는 자신의 하루 일과를 센추리에 맞추기로 마음먹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으리라.

“배고프지는 않지만 그래도 식사는 해야겠지.”

짧게 중얼거린 그는 주방으로 향하였다. 그러고선 간단하게 식사를 끝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곧장 집을 나섰다.

센추리를 시작해도, 아니 센추리를 시작했으니 더욱더 줄일 수 없는 것이 운동이었다. 그는 평생토록 센추리를 할 생각이었고 센추리를 계속하기 위해선 몸을 관리하는 것은 필수였다.

1시간 정도 조깅하고 다시 돌아온 호영은 집 안에서 팔굽혀펴기와 스쾃으로 마무리 운동을 하였다. 그러자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었다.

‘시간이 애매하지만 지금이라도 잠을 자야겠군. 대준이 깰 수도 있겠지만 행동 설정을 정해 놓았으니 문제 될 것은 없겠지.’

현실과 센추리의 시간 비율은 1:4. 오후 4시에 로그아웃 하였으니 센추리에서는 8시간 정도가 흘렀을 것이다.

여기에 2시간을 더 잔다고 한다면 호영의 아바타인 대준이 깨어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호영은 대준이 중간에 깨어나는 상황을 그리 우려하지 않았다.

NPC의 인공지능이 상당하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NPC들에게나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대준은 이미 유저의 아바타가 된 NPC. 아바타가 된 NPC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호영은 이미 대준에게 행동 설정을 기입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 * *

따르르르릉!

“벌써 2시간이 지났나?”

요란한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호영은 잠시 중얼거리더니 얼굴만 씻고서 곧바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8시. 게임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호영에겐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잠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캡슐로 들어가 센추리를 시작하였다.

드르렁, 드르렁.

시야가 어두웠다. 순간 당황했던 호영이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싱겁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의 아바타인 대준이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센추리의 시간으로는 최소 반나절 이상이 지났을 텐데 아직도 잠을 자다니. 중간에 깨고서 다시 자는 건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호영은 눈을 떠서 일과를 시작하기보단 이 아바타에 대한 정보를 먼저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제만 해도 아바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곤란함을 겪지 않았던가? 그나마 전사들이 순진해서 다행이지, 여자들은 조금 의심하는 눈치였다.

어찌 되었건 정보가 없어 고역을 치르는 것은 어제 하루로 족했다. 그는 곧장 어제 확인하지 못했던 게임 기능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어떤 창을 오픈하면 대준이 지금까지 살아온 행적이 나왔고, 어떤 창을 오픈하면 대준이 기억하는 주변 지리가 지도 형식으로 나왔다.

또 어떤 창에는 대준의 주변 인물에 대한 설명들도 나왔는데 호영은 그 모든 것을 아주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로서는 대준이 왜 이런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는지 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폭군! 나는 더 이상 너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모두들 나를 따라라! 오늘, 폭군을 죽일 것이다.”

“배신이라니, 장대! 네놈은 동족을 배신했다!”

“모두 도망쳐라.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배신자들을 응징하고 폭군의 압제에서 동족을 해방시키자!”

최근 대화 기록을 읽으니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았다. 호영의 아바타 즉, 대준은 ‘폭군’이라는 자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도망치는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듯, 쿠데타는 실패하였다. 배신자도 배신자지만 ‘폭군’이라는 자가 무척이나 강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폭군’이라니. 원시 시대에 가까운 1회 차의 특성을 생각하면 왠지 어울리지 않은 단어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호영은 ‘폭군’을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하나의 이미지가 출력되었는데, ‘폭군’이라는 자의 외형이 그려진 인물도였다.

‘거인? 폭군이 거인이었던 것인가?’

외팔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외형. 그렇지만 체구를 보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려 5미터에 달하는 신장! 인간의 외형을 가졌으면서 5미터에 달하는 신장이라면 딱 하나의 종족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바로 거인족이었다.

‘대준이 누구에게 패배했다는 것인지 의아했는데 거인족이라면 이해가 가는군.’

고대의 종족 중에 최강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거인족이다. 특히 1회 차의 세계관에서 거인족이란 사실상 대륙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었다.

나중이 되면 마족과 용족 그리고 여러 이종족들이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다 결국 인간이 승리하게 되지만, 1회 차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승리자가 바로 거인족이었다.

무지막지한 신장과 산을 부실 수 있는 거력, 철벽에 가까운 방어력에 엄청난 재생력까지. 더군다나 1회 차의 거인족이라면 인간 이상의 지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절대자이자 지배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추장! 추장!”

호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한창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방해를 받아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꽤나 다급해 보였기에 호영은 지체 없이 아바타에 동기화하고서 대준의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고블린이 쳐들어왔다! 엄청나게 많다!”

전사의 말에 호영은 곧바로 뼈창을 들었다. 그러고선 혀를 찼는데 고블린의 침입이 왠지 모르게 자신의 실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어느 시점보다 영악하다고 알려진 1회 차의 고블린. 아무래도 호영은 그 고블린의 영악함을 간과했던 모양이었다.

“암컷들은 모두 동굴 안쪽으로 도망치고 전사들은 지금 당장 전투를 준비하라.”

“알았다, 추장!”

“내가 앞장서겠다.”

호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동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전사의 말처럼 동굴 앞쪽에 고블린들이 모여 있었다.

제법 상당한 숫자였는데, 족히 오십은 넘어 보였다.

‘할 게 많은데 방해가 너무 심하군.’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끼는 호영이었다. 원래라면 아바타와 동기화하자마자 스킬부터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회귀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스킬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센추리에서 그 스킬을 펼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최초’의 특전을 받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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