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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센추리-5화 (5/345)

# 5

아직 상태 창과 스킬 창밖에 확인하지 않았던 터라 무엇 때문에 산으로 도망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이 위기일발의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풀숲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릉.

예상외로 그것들은 고블린이 아닌, 늑대들이었다. 아까 들려왔던 고블린의 웃음소리 때문에 당연히 고블린이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호영으로선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고블린이건, 늑대건 간에 위험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장한 늑대의 숫자는 무려 열여섯 마리.

그에 반해 대준을 포함한 원시인들의 숫자는 불과 열 네 명이었다. 더군다나 그중에서 여자의 숫자는 여섯이나 되었으니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의 숫자는 여덟뿐이었다.

‘대준이 비록 부상을 입었다지만 이 정도의 상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을 숨어서 관찰하고 있을 고블린이라는 존재다.’

호영의 아바타는 말도 안 되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무기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강인한 육체였는데, 이깟 늑대들 따위는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을 고블린이라는 존재였다. 안 그래도 호영의 아바타인 대준은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상황. 늑대와 싸우면 이 상처들은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그때 고블린까지 나타난다면 괴물 같은 육체를 가진 대준이라도 상황을 이겨 내지 못할 수 있었다.

대준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의 일행은 모조리 죽게 될 것이리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아바타와 동기화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단지 대준의 눈으로 관전자처럼 가만히 구경만 하였지만 아바타와 동기화함으로써 그는 직접 상황에 뛰어들게 되었다.

즉, 지금의 그는 호영이 아닌 대준인 것이었다.

“모두 내 뒤로 물러서라.”

“추장?”

“어서!”

갑작스러운 호영의 말에 전사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였다. 늑대 무리와 한창 기세 싸움을 벌이던 도중이었다.

여기서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상황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사들은 의아한 얼굴을 지었으나 호영의 명령에 불복하지는 않았다.

호영, 정확히는 호영의 아바타 대준은 그들의 추장이기 이전에 부족 최강의 전사였기 때문이다.

전사들이 뒤로 물러나 여자들을 지키기 시작하자 늑대들의 움직임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대치하고만 있던 늑대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우우우!

그런 늑대들의 돌격에 호영은 창을 부여잡았다. 모든 게 갑작스러웠지만 그는 초조해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회귀하기 전, 남들보다 뒤늦게 센추리를 시작한 호영은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잠잘 시간을 줄인 것은 물론이요, 연애와 술 같은 유흥에 포함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센추리에 전념하였다.

갑작스러운 전투? 호영이 경험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센추리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야말로 악착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즉, 그의 정신은 마치 전장 속 군인의 그것처럼 날이 서 있다는 것이다.

푹!

늑대 한 마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호영의 창에 꿰뚫렸다. 마치 늑대가 스스로 창에 찔리기 위해 달려든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언제 창이 늑대의 머리에서 빠져나왔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건만 또 한 마리의 늑대가 호영의 창에 즉사하였다.

두 마리의 늑대가 죽은 것은 그야말로 창졸간의 일이었다.

‘비록 창법 스킬은 없지만 나의 머리가 창법을 기억하고 있다!’

게임 같지 않은 게임, 센추리에서도 스킬은 존재하였다. 하지만 스킬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다면 스킬로 존재하지 않는 기술들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호영이 현실에서 익혔던 창법 역시 센추리에서 재현하는 게 가능하였다.

아니, 센추리 세계이기에 더욱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능이 현실로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80이 넘는 근력과 65에 달하는 민첩까지. 비록 그의 창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마력’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육체라면 창법의 일부를 구현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푹! 푹!

예술적으로 창을 휘두르고 내지르는 호영!

기세 좋게 달려들던 늑대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깨개갱.

마침내 일곱 마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자 나머지 늑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용맹한 늑대라도 이 일방적인 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추장, 대단하다!”

“역시, 우리의 추장이다! 존경한다, 추장!”

전사들이 호들갑을 떨며 호영에게 다가왔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전투의 승리를 순수하게 기뻐하였다. 그 누구도 자신들의 추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단순해서 다행이군. 아직 일지도 살피지 않아 의심받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말이야.’

센추리에서 괜히 아바타에 동기화하기까지 준비할 시간을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아바타에 동기화한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몸을 갖게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환생이라는 형태가 아닌 ‘빙의’라는 형태로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새로운 몸에 빙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 쉽기는커녕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아바타는 일종의 NPC라 할 수 있었지만 여느 게임들처럼 기계 같은 NPC는 아니었다. 센추리 NPC의 AI는 평범한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기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성과 감정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었다.

즉, 유저가 아바타에 적응하기 위해선 아바타가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경험들과 가지고 있는 스킬 따위를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호영 역시 원래라면 대준에게 동기화하기 전, 대준의 스킬이나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파악할 생각이었다. 스킬을 원활히 사용하고 주변인들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준이 처한 상황이 급박하였다.

만약 그가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늑대들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어도 이후에 등장할 고블린들은 막아 내지 못했을 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호영을 그 어떤 전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소보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의심할 법한데도 부족의 전사들은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의심하지 않는다면 고마운 일이지. 고블린들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겠군.’

마침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영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고블린의 웃음소리였다.

“끼릭, 끼릭.”

“케케케케.”

악당이 등장하듯 느긋하게 정면에서 등장하는 고블린 무리. 갑작스러운 고블린 무리의 등장에 전사들은 소란을 멈추고 곧바로 전투에 대비하였다.

방금까지 안일한 태도로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호영은 그런 전사들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짓기는커녕 인상을 찡그렸다.

“정면의 적은 일부다! 모두 피해라!”

호영이 그렇게 외치자 좌우의 풀숲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것은 돌멩이였다.

‘1회 차의 고블린이 그 어느 때보다 영악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군.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도 그렇지만 일부러 방심하게 만들다니.’

고블린들이 정면에서 느긋하게 등장한 것은 측면의 기습을 위한 함정이었다. 실제로 전사들은 정면의 고블린들에게 시선을 뺏겨 무방비하게 측면에서의 공격을 허용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블린들이 주로 사용하는 독침이 아닌 투석으로 공격했다는 것. 아마 눈앞의 고블린들은 독침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하아압!”

전사들을 비롯하여 여자 부족민들이 고블린의 투석 공격에 부상을 입는 모습을 보았지만 호영은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섰다.

회귀를 경험한 호영에게 있어 지금 같은 경험은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노련한 그의 감각이 말하기를, 지금은 앞으로 나서야 할 때였다.

푸욱! 서걱!

어떤 괴물의 뼈인지 무척이나 단단한 뼈창으로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며 종횡무진으로 정면을 가로지르는 호영!

그 압도적인 무용에 고블린들의 웃음소리가 멎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충격과 혼란에 빠진 얼굴들이었다.

고블린들의 기세가 줄어들자 전사들이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늑대를 상대할 때는 호영이 워낙 순식간에 늑대 무리를 전멸시켰기에 전사들이 나설 틈이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고블린들을 살상하고 있는 호영이었지만 고블린의 숫자가 무려 서른 마리에 근접한 터라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호영이 만들어 준 기회를 틈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 부족의 전사들! 전황이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키르르륵. 키리릭!”

마치, ‘지금은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것 같은 고블린의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고블린들은 다급하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영악한 고블린답게 불리한 형세를 띠자 곧바로 퇴각을 결정한 것이다. 물론 그중에서 약한 고블린들이 버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이겼다!”

“우리의 추장은 위대하다! 추장이 있는 한 우리는 지지 않는다!”

상처투성이면서도 전사들은 열렬하게 함성을 내질렀다. 승리의 함성이었다.

“그만.”

전사들처럼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는 분위기에 취하지 않았다.

비록 전사들 중엔 사망자가 없었지만 부상자가 적지 않았고, 주변에는 대량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피 냄새를 맡고 무엇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되도록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산에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약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라.”

매정하게 말한 호영은 신속하게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래 전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전투 이후의 과정도 중요한 법.

특히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선 전사들이 입은 사소한 상처로도 목숨을 잃게 될 수 있었다.

물론 1회 차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가 강건한 편이기에 이런 상처들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는 없겠지만 부상이 길어지는 것도 여러모로 손해였다.

그렇기에 호영은 본인이 직접 움직여 가며 전사들을 치료하였다.

“당분간 팔을 쓰지 마라. 쓰면 안 낫는다.”

“잠시 지압할 것이니 아파도 참아라.”

“너…… 미안하지만 살기는 힘들겠군. 남길 말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전사들을 먼저 치료한 호영은 부족의 여인들까지 치료하였다.

물론 치료라고 해 봤자 지혈해 주고 지압해 주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그 정도의 치료도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맙다, 추장.”

“별거 아니니 빨리 낫기나 해라.”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호영이었지만 전사들과 여인들은 모두 호영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정말 별것 아닌데, 지나치게 고마워하는군. 참으로 순진한 자들이야.’

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한 호영은 전사들 중 눈에 띄는 한 명을 지목하였다. 듬직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는데, 머리 위를 보니 ‘초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암컷들을 추슬러라. 하나가 죽었지만 나머지는 살려야 한다.”

“알았다!”

“나머지는 전리품을 정리하도록. 부상을 당했어도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모두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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