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누나가 믿든 믿지 않던, 어쨌건 나는 그것으로 돈 벌었어.”
“…….”
단호한 그 말에 그녀의 표정도 이상해졌다. 호영이 허세를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 누나의 모습에 호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나는 친구 만나러 갈 테니까. 잘 쉬고.”
호영은 얼빠진 얼굴의 그녀에게 그리 말하고는 집 밖을 나섰다. 이번에 그가 만날 사람은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군대 동기나 대학 동기는 앞으로 만날 일이 없겠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은 회귀 전까지 계속해서 만났던 호영이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났기 때문인지 호영은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애들에게 욕 좀 먹겠군.’
완전히 소식 불통한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잠수 탄 것은 사실이었다. 만나자고 할 때도 언제나 이상한 핑계를 대며 만남을 피했었다.
그로서는 운동이나 공부하는 이유를 알려 줄 수가 없어 만남을 피한 것이지만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호영이 이유 없이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터.
특히 같이 사업하자며 바람 넣었던 호영이니만큼 호영의 친구들은 상당히 분노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예상대로 호영이 약속 장소에 등장하자 그의 친구들이 한 번에 달려들었다. 마치 때릴 기세로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호영은 무술을 익혔음에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게임하느라 바빴어!”
결국 호영은 그같은 변명을 해야 했다. 정말 바보 같은 변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남자들에겐 충분히 그럴듯하게 들리는 변명이었다.
그러자 호영의 친구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자식, 옛 버릇 못 고쳤네. 게임 그만두었다더니. 그 매직 앤 소드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나?”
“그래도 다행이다. 난 또, 송 노예가 어디서 과로사라도 한 줄 알았지.”
‘송 노예’는 호영의 별명이었다. 대학을 중퇴하고서 악착같이 일만 해 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지은 별명이 바로 노예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친구들의 처지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대학교 생활을 할 때야 호영만 고되게 일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승호는 왜 안 왔대?”
“몰라? 걔, 푸드 트럭 하잖아. 원래 너 때문에 하려고 했던 건데, 네가 안 한다고 해서 군 동기랑 같이한다던데.”
“다행이네.”
호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승호. 그는 본래 호영과 푸드 트럭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인물로서 호영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호영이 회귀하고서 다시 사업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고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번복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호영은 자신의 친구인 승호를 배신한 셈이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승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승호의 사업이 제법 잘 풀린다는 점이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지만 미래가 바뀐 지금도 나름 잘되는 것 같으니 호영으로선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부우웅.
그때였다. 호영의 시선이 차로로 향하였다. 우렁찬 배기음이 들리는 차로엔 배기음만큼이나 요란스러운 흰색 차가 주차되고 있었다.
“역시 강남 근처라 페라리도 보이는구나. 이야. 개 쩐다.”
“저 차, 최소 3억은 된다던데.”
“재벌 3센가 보네. 존나 부럽다.”
호영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가득 담고서 차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도로를 걸어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페라리와 페라리의 차주에 꽂혀 있었다.
차 하나만으로 알 수 있는 차주의 신분.
20대 중반에 저 정도의 차를 가질 사람은 유명 연예인이 아니고서는 재벌 3세밖에 없으리라. 물론 소수의 능력자도 있지만.
호영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차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는데 질투와 시기를 넘어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최진수!’
아름다운 여성을 끼고 클럽에 들어선 사내는 호영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호영과 악연이었으니까.
물론 고작 대학생 때의 악연으로 사내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나름 심각했을지 몰라도 지금 생각하면 고작해야 여자 하나 뺏긴 것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대학생 때의 악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악연은 또 다른 세계, 센추리에서 시작되었다.
몇 년 뒤 최진수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된다. 신라의 왕족 최진수. 정확하게 몇 회 차에 센추리를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한국에서 센추리로 급격히 유명해진 사람이었다.
본래 재벌 3세였는데, 센추리에서도 귀족이 되어 활동하였다. 참고로 센추리에서 귀족이라는 신분은 무척이나 진귀한 가치를 지녔다.
유명한 게임의 랭커들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는데,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름값이 전혀 달랐다. 8회 차쯤 되면 센추리의 귀족이 현실의 귀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최진수는 호영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마치 대학 시절 때 호영으로 하여금 중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든 것처럼 센추리에서도 절망이라는 것을 가져다주었다.
만약 그의 방해만 없었더라면 호영은 7회 차에 고작 남작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8회 차에서 남작도 되지 못한 실패자가 되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진수. 그는 호영의 숙적이자 넘어야 할 태산 같은 존재인 셈이었다.
‘네놈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센추리를 시작했는지 몰라도 너의 가문이 왕가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야.’
이를 악물며 다짐하는 송호영.
“송 노예, 뭐 해? 빨리 가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어어, 가자.”
친구들의 부름에 호영은 표정을 가다듬고 발길을 옮겼다.
* * *
한바탕 크게 놀고 다음 날이 되자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드디어 오픈하는구나.’
오늘, 센추리 1회 차가 시작된다. 클로즈 베타도 없이 곧바로 오픈된다는 것이다. 이제 센추리 세상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호영은 심호흡하며 캡슐 앞에서 10분을 기다렸다.
VR 기기들과 다르게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캡슐 형태의 가상현실 기기.
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가상현실 게임, 센추리를 구현하기 위한 기기였다.
신비롭기 그지없어야 할 기기였지만 외관적으론 지극히 평범하였다. 이 투박한 외형의 기기 내부에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정화가 담겨 있을 터.
심지어 그 오버 테크놀로지의 비밀은 2027년 말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한국이 센추리에서 뒤처진 것도 이 기기의 기술력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지.’
센추리가 북미에서 처음 오픈되고 며칠 뒤 세계 전체에 오픈되었을 때,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센추리를 부정적으로 여겼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때 보여 주었던 한국의 반응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그간 말로만 가상현실을 표방한 것들이 아닌, 진정한 가상현실 게임이 센추리였다.
게이머들에게 있어서 흥미로운 요소가 아닐 수 없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언론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저것이 안전한 것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 아닐까.
세계 모든 이들이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 때문에 최초의 가상현실치고 얼마 동안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기의 가격이 최소 수천에 달한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을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의 유저들이 조금씩 센추리를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연일 가상현실을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센추리의 유저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년 뒤. 세계는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열광하게 된다.
센추리는 가상현실 따위가 아니었다.
다른 세계, 그것도 지구보다 훨씬 거대한 또 하나의 세계였다.
산업혁명만큼 위대한 혁명이 센추리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도태되었다.
한국이 도태된 것도 다른 나라들보다 뒤늦게 센추리를 시작한 까닭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잠시 미래를 생각하던 호영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비싼 값을 하는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미래에서는 캡슐을 침대 삼아 숙면을 취하고는 하였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캡슐에 누운 이유는 센추리를 하기 위함.
캡슐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에서부터 기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다른 이에게는 낯설겠지만 호영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감각이었다.
그 감각에 자신의 몸을 내맡긴 호영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시작됐다.”
나직하게 탄성을 지르며 그렇게 중얼거린 호영.
방금까지 그가 있었던 곳은 비좁은 캡슐 안이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드넓은 초원 한복판이었다.
천장이 있어야 할 곳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고 사방은 막힘 없이 뚫려 있었다. 호영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가만히 주먹을 쥐어 보았다.
현실과 다르지 않은 자신의 주먹이 느껴졌다. 외형도 그대로였고 그 안에 느껴지는 힘도 그대로였다.
이게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토끼를 죽이십시오.
하지만 모든 게 현실 같이 생생한 이곳에서도 한 가지 비현실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하늘에 떠 있는 글자였다.
토끼를 죽이라는 살벌하면서도 무감정한 문장. 호영은 그 문장을 읽고서 고개를 내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뀨우?
마치 귀여움으로 무장한 것 같은 조그만 토끼가 그곳에 있었다.
‘회마다 튜토리얼이 달라지지만 잔인함을 강요하는 것은 어느 때든 똑같군.’
센추리의 튜토리얼은 다른 게임의 튜토리얼과 상당히 달랐다. 보통의 튜토리얼 같은 경우는 게임의 조작법을 알려 주거나 게임의 기반이 되는 스토리를 알려 주는 기능을 하였다.
본 게임에 앞서 게임에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센추리 같은 경우는 무언가를 알려 주기보단 ‘시험’한다는 느낌이 강하였다.
살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살해당한 경험을 이겨 낼 수 있는가.
대표적인 시험은 바로 이 두 가지였다.
게임이지만 센추리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수한 생명체를 제외하곤 모든 생명체의 목숨은 하나였다. 당연히 ‘생명’의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센추리는 바로 그같은 이유로 튜토리얼에서 이 두 가지를 시험한다.
눈앞의 토끼. 이 귀엽게 생긴 토끼를 죽이는 것이 바로 첫 번째 시험이었다.
“오랜만에 이 짓을 하려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호영이었지만 이내 혀를 차고는 토끼에게 다가갔다.
토끼는 경계심도 보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을 부여잡을 것이다. ‘심쿵’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을 정도로 귀엽게 생긴 토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영은 ‘센추리는 다 좋은데, 이런 건 마음에 안 들어.’라고 작게 중얼거린 채 그 귀여운 토끼의 두 귀를 우악스럽게 잡아 올렸다.
그러고선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토끼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저항하였지만 호영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