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 센추리-1화 (프롤로그) (1/345)

# 1

#프롤로그

‘조금만 더 일찍 시작하였더라면…….’

내 인생의 가장 큰 후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1회 때부터, 아니 적어도 3회 차부터 시작했더라면 내가 이처럼 절망스러운 현실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가상현실, 센추리.

내가 이 가상현실 게임을 시작한 것은 5회 차, 즉 센추리의 서비스가 시작되고서 4년이 흐른 뒤였다.

아무리 센추리의 방식이 유별나다지만 게임에서 4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컸다. 게임 안에서의 시간은 무려 400년도 넘게 지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이미 센추리의 세상은 신분제가 공고해진 상태였다.

그나마 7회 차 때 가까스로 ‘남작’의 직위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7회 차의 끝 무렵에 간신히 얻은 직위라 따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만 봤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고작 2년 만에 남작의 직위를 얻은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였다. 귀족이란 마치 랭커처럼 극소수의 유저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같은 행운은 잠시뿐이었다. 8회 차를 시작하니 나의 ‘남작’ 직위가 박탈당한 상태. 7회 차에 귀족이 되었던 것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었다.

비록 남작의 직위를 박탈당했어도 어쨌든 나는 한 번 귀족이 되었던 몸이다. 다시 도전한다면 이번에는 자작 이상을 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하나 나는 실패했다.’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센추리에 모든 것을 걸었다. 지금 가진 빚도 귀족이 된다면 어떻게든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 세상은 나의 염원과 희망을 무참히 배신하였다. 귀족이 되기는커녕 최악의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전전하게 만든 것이다.

센추리에서의 나는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센추리의 세상은 현실보다 혹독하였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신분제가 없었으니까. 악착같이 노력해도 신분을 상승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9회 차를 노린다? 이제 그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였다. 센추리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현실에서도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나는 센추리에서 도태되었고, 그에 따라 현실에서도 도태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센추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졌다.

돈도, 가족도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삶을 이어 나갈 여력도 없어졌지.’

쓴웃음을 지었다.

자살.

비겁한 겁쟁이들만 하는 것이라 줄 곧 생각했었는데, 이제 남 욕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자살하게 되었으니까.

#센추리

“허억!”

호영은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 차라리 그런 것이었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죽음을 체험하였다. 꿈 따위가 아닌, 진짜 죽음을 말이다!

머릿속 한편에서는 ‘꿈’이라며 현실을 외면하려 노력하였지만 수년의 기억이 결코 꿈일 리가 없었다.

한동안 숨을 헐떡이던 호영은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회귀한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야.’

회귀. 만약 과거의 호영이 들었다면 피식하고 비웃었을 이야기였다. 이성적인 성격의 호영이었기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 따위는 절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까지 외면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성적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죽기 전이 2028년. 그렇다면 대략 9년을 되돌아온 것인가?”

9년! 무려 9년을 회귀하였다.

센추리가 처음 시작되는 것은 내년 초. 비록 센추리가 처음 시작되는 해로 되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준비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 센추리부터 생각하다니. 하지만 기회인 것은 사실이야. 시기가 적절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이 시기의 호영은 가정에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였지만 요식업에 종사하며 제법 돈을 모아 놓은 상태였다.

현재 호영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 모아 놓은 돈은 7천만 원이었다. 호영의 나이치고는 제법 모은 셈이었는데, 그만큼 호영은 악착같이 살아왔다.

호영은 본래 이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사업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돈이었지만 친구 몇과 함께 사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은 제법 성공하지. 문제는 그 사업 때문에 센추리를 늦게 시작한 것이지만.’

가상현실.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터넷에서는 한창 소란이 일었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했다고 말이다.

너무나 현실 같았기에 오히려 거짓처럼 느껴졌던 센추리는 모두의 우려와 달리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흥행하였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가상현실을 합법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는데, 그 때문에 한국인들 대부분이 센추리를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중에서 5회 차에 시작한 호영이 가장 늦은 편에 속하였고 말이다. 아무튼 호영은 센추리를 늦게 시작한 것을 줄 곧 후회하며 살아갔다.

당연하겠지만 과거로 돌아온 이상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자취는 그대로 하되, 사업은 포기한다. 사업할 시간에 센추리를 준비하는 게 이득이야.’

마음의 결정을 내린 호영은 문을 박차고 나섰다.

“이제 일어났니? 어서 씻어라. 누나도 곧 일어날 거야.”

“…….”

여느 때와 같은 어머니의 반응에 호영은 순간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9년 전의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지만 9년 후의 그에게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격동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다급하게 화장실로 피신한 그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

무능한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는 어머니가 멀쩡히 말을 건넸다. 그로서는 놀랍고 또 가슴 벅찬 일이었다.

‘다시는…… 다시는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독립하지 않고 지금처럼 가족이랑 같이 살아가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과거에나 느꼈던 행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취는 꼭 해야만 하였다.

한국은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 때문에 센추리가 한국에서 정식 오픈하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그렇기에 가족들은 호영이 센추리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지 않을 것이었다. 언론에서부터 가상현실의 위험성을 매일 같이 보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호영은 그같은 이유로 가족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1회 차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사할 필요성이 있었다.

‘신분이 안정화되면 그때는 언제든 가족을 볼 수 있어. 돈도 충분해질 테고.’

물론 센추리 세상에서 신분을 어떻게 해야 안정시킬 수 있는지는 호영도 아직 모른다. 실제로 7회 차의 그는 귀족이었다가 100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몰락을 겪지 않았던가.

하지만 만약 신분을 안정시키고 세력을 공고히 다지기만 한다면 그때는 현실에서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호영은 그같은 생각을 하며 눈물을 닦아 냈다. 그러고서는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는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하였다.

이제 곧 퇴직할 곳이지만 이번 주까지는 근무해야 하였다.

* * *

“정말 자취할 생각이니?”

“이미 결정 내린 거잖아. 집주인과 이미 이야기 끝냈어.”

호영이 회귀한 지 5일이 지났다. 그동안 호영은 인수인계를 마무리 짓고 정상적으로 퇴직하였으며 부동산을 찾아 월세방을 구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틀 후면 그 월세방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어차피 얘, 요리도 잘하고 빨래나 청소 같은 것도 알아서 잘하잖아. 솔직히 나는 자취 같은 것보다 그 사업이라는 것만 제발 안 했으면 좋겠는데.”

호영의 누나인 효주. 그녀는 쓸데없이 걱정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답답했는지 한마디 하였다. 물론 그녀도 아예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닌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평소에도 효주는 안전하게 적금을 하지 않고 주식이니 채권이니 위험한 투자를 궁리하는 호영을 좋게 보지 않았었다.

이번에 일을 그만두면서 사업한다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걱정하기도 하였다. 호영의 고집으로 이미 끝난 얘기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었다.

그런 누나의 태도에 호영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사업은 안 하기로 했어.”

“어? 진짜? 잘했어. 뉴스 봐 봐.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 얼마나 많아. 너라고 다를 게 없어.”

“대신 주식을 하려고.”

“뭐, 인마? 너 그러다 돈 날려!”

드센 성격의 그녀답게 쌍심지선 눈으로 호영을 나무랐다. 호영은 그녀의 태도가 익숙하면서 한편으로 낯선 기분을 느꼈다.

효주의 나이 어느덧 30세. 노처녀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기임은 분명하였다.

실제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결혼하게 된다. 아쉽게도 그녀가 결혼한 이후 서로 만날 일이 점점 사라지는데, 사회가 그만큼 각박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호영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그녀가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 익숙하다는 것에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괜찮아. 어차피 잃어도 내 돈이잖아? 그리고 오히려 나중이 되면 누나가 나한테 투자를 부탁하게 될걸.”

농담처럼 그리 말했지만 2년만 지나도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었다. 지금이야 그녀가 안전 지향주의라 주식에 대해 말을 꺼낼 수가 없었지만 2년 동안 호영은 충분히 자신의 실력에 대해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아마 그때가 되면 호영이 말하지 않아도 효주가 바라게 될 것이었다.

호영이 그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며 피식 웃음을 짓자 효주는 그런 호영을 보며 앙칼진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호영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확실하게 밝혔다. 자신은 이틀 뒤에 독립할 것이고 또한 주식도 하게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예정대로 집을 나서 자취를 시작하였다.

10평 남짓한 월세방. 작기는 하지만 홀로 생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도서관과도 가깝고 운동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자신의 방과 집 주변을 돌아본 호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 확인하고 결정한 월세방이었지만 여러모로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진지하게 플랜을 짜 봐야겠어.”

호영은 조그만 탁자 앞에 앉고선 그렇게 중얼거렸다.

회귀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째. 당연히 기본적인 계획은 어느 정도 짜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세세한 것은 아직 정하지 못하였는데, 예를 들면 계획의 1번이 ‘돈 벌기’라면, 주식을 어디다 투자해서 어떻게 벌어야 할지를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호영은 돈 벌기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자신감을 내비쳤던 것처럼 주식으로 크게 벌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생활비와 월세를 빼면 6천 정도가 남는다. 6천을 모두 투자하여 센추리가 나오기 전에 최소 2억을 만든다.’

고작해야 8개월에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1억 4천을 벌겠다는 것. 원래의 호영이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가능하였다. 그에겐 미래의 경험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당시 호영이 사업에 집중하느라 주식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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