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35화 (135/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35화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격분한 황태자가 대신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으나, 대신관은 외려 화를 돋우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을 뿐이었다.

“미친 새끼!”

“대, 대신관님……!”

“대신관님……!”

신관들이 제발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듯 대신관을 불렀다.

“뭣들 하십니까? 마물을 저대로 둘 생각입니까? 성녀님은 어디에 있죠? 빨리 성녀님을 불러오십시오.”

하지만 대신관은 제 할 말만 할 뿐, 확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에 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누군가가 대신관에게 물었다.

“지, 지금 이 상황도 신탁에 나온 것이지요……?! 신께서 상황이 이렇게 될 걸 아시고 대신관님을 깨우신 게 맞습니까?!”

“아, 아아! 그, 그런 것이군요!”

“시, 신탁을 보셨다고 하셨으니, 그런 게 틀림없겠지요!”

“예! 맞습니다! 신께서 때를 맞춰 대신관님을 돌려보내 주신 걸 겁니다!”

다른 신관들이 동조했다. 뭐라고 대답하든 그렇게 믿겠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릇된 신앙심의 결과였다.

어디부터 썩어 버린 건지 모를 행태에 황태자가 탄식했다.

대신관에게서 대답은 없었으나, 자기들끼리 알아서 납득한 신관들이 서둘러 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아, 그리고 동부와 남부의 공작에게도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최종 준비를 하라고 연락을 넣어 주십시오.”

“예!”

신탁을 받고 깨어난 대신관 덕분에 신전이 활기를 띠었다. 그들끼리 알아서 상황을 해석한 덕분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미친 것은 자신인 줄 알았던 황태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고가 마비되는 경험을 했다.

대신관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밖에서 마물까지 포효하는 상황이라 뭘 어떻게 지적하고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황성에 처음 와 본 루카를 위해 잠시 근처를 돌아보던 로스틴은 이내 북부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럼 먼저 가 보지.”

약소하게나마 예를 차리는 로스틴의 옆에서 루카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충 눈인사를 했다.

그래도 대놓고 꺼지라고 했던 첫 만남과 비교하면 상당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쉽게 얻지 못했던 반응(?)이라서 그런가, 괜히 부끄러워진 성녀가 뺨을 붉히며 고개를 꾸벅 숙였을 때였다.

“성녀님! 신전에서 급한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상당수의 마물이 신전 근처를 뒤덮고 있으니, 속히 귀환하시라는 연락입니다!”

“마물이요?!”

이렇게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니 빨리 돌아가야 마땅했다. 알겠다며 곧장 걸음을 옮기려는 성녀에게 로스틴이 따라붙었다.

“동행하지.”

“아, 괘, 괜찮은데…….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데…….”

“성녀는 강하니 당연히 혼자서도 잘하겠지만, 나 역시 약한 편은 아니니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약한 편은커녕 검사 중 최강이었기에, 도움이 되는 걸 넘어 마물을 해치우는 시간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 확실했다.

늘 도와 달라는 말만 듣다가, 뜻밖의 인물에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은 성녀가 선뜻 부탁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게다가 제 영지도 아니고, 어쩌면 동생에게 저주를 내렸을지도 모르는 곳인데, 선뜻 도와주겠다니 진심인가 싶었다.

“루카, 북부에 돌아가서 신전에 나타난 마물을 처리하고 가겠다고 전해라. 북부에도 마물이 나타날지 모르니, 경계 태세를 단단히 갖추라고도 전해. 가능하다면 공녀에게도.”

“알겠어. 걱정하지 마.”

대답하는 루카의 눈이 퍽 진지했다. 마치 자신만 믿고 다녀오라고 자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듬직해진 제 동생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은 로스틴이 다시 성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급하다니, 어서 가지.”

“아, 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상당수의 마물이 나타났다니, 벌써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둘러 신전으로 향한 성녀와 로스틴은 뜻밖의 인물을 마주치게 되었다.

“대신관님……?!”

“……깨어난 모양이군.”

로스틴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마물의 소식만 전해 받은 성녀는 멀쩡히 두 발로 서 있는 대신관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언제 깨어나신 거예요……?!”

“방금 전에 깨어나셨습니다! 신께서 마물이 나타날 거라며 신탁을 내림과 동시에 대신관님을 깨우셨다고 합니다!”

어느새 대신관의 회복은 와전되어 신의 기적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물이 나타났는데도 신관들의 표정은 밝았고, 빨리 해치워 달라며 성녀를 닦달하기까지 했다.

“성녀님!”

“빨리 해치워 주십시오!”

평소 같았다면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곤 서둘러 마물에게로 향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성녀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왜 대신관님이 깨어나심과 동시에 마물이 나타난 거죠?”

“……심지어 마물들이 신전을 공격하고 있지도 않군.”

창문 밖을 확인한 로스틴이 말을 얹었다.

마물이라면 응당 인간이 있는 곳을 바로 공격하기 마련인데, 신전 밖 마물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포효하며 근처를 맴돌고만 있었다.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마물이 나타날 것이라며 신께서 대신관님을 깨우셨다고요!”

“맞습니다! 게다가 신의 가호를 받은 대신관님께서 계신 신전을 어떻게 한낱 마물 따위가 공격하겠습니까!”

“그쪽들 말고, 대신관님께서 직접 대답해 주세요!”

늘 그랬듯 신관들이 대신하여 변명하고 나섰기에, 성녀가 소리를 빽 질렀다.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에게 이상한 차를 마시게 한 것도 그렇고, 그가 깨어남과 동시에 마물이 나타난 것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처음 마물을 상대했던 때도 이상했다. 아무리 자신이 성녀라고는 하지만, 공격을 받아도 다치지 않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마물은 아무리 죽여도 계속 소환되었으며, 마지막에는 방치하고 신전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는데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럴 줄 알았다며 정리하고 왔다는 말만 들었어.’

대체 어떻게 알고? 며칠이나 혼자서 마물들과 싸울 때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더니, 신전에 돌아오자마자 마물들을 정리했다니 역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빨리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믿고, 의지하고, 마음을 주기까지 했던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왜 그런 걸 묻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신의 뜻을 따르면 그만인데, 성녀께선 자꾸 쓸데없는 곳에 관심을 두는군요.”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대신관은 뜻 모를 소리를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맞습니다!”

“성녀님! 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미 대신관에게 단단히 세뇌당한 신관들이 말도 안 되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게,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답이라고 생각해요……?”

성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레이나의 추측이 맞았구나. 로스틴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성녀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더는 이런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있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이곳을 떠나 도망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끼에에에엑-!

케에엑!

갑자기 창밖에서 마물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기세등등하게 포효하던 방금 전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끔찍한 적수라도 만난 듯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것에 가까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

사람들이 동시에 창문가로 달려갔다. 그러자 검은색 기운을 전신에 두른 트리버가 마물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건……! 마, 마왕……?!”

“헉!”

마물도 모자라서 마왕까지 나타나다니. 사색이 된 신관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숨을 삼켰다.

이제 곧 저 마왕이 대량의 마물들을 끌고 신전에 쳐들어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정면으로 손을 뻗은 트리버가 마물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쿠에에엑!”

그에 마물들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금 들렸던 마물들의 비명은 이 때문인 모양이었다.

“마, 마왕이 마물을 흡수하고 있다니…….”

“그, 그럼 저 마물을 소환한 게 마왕이 아니라는……?”

애써 힘을 사용해 소환해 놓고, 다시 흡수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신관들의 눈이 다시 대신관에게 향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드디어 그들도 대신관에게 해명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신관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어떻게 이리도 때를 잘 맞춰서 왔냐며 감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마물들의 비명이 세상을 울리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그때까지 대신관에게 쏠렸던 시선들이 뒤늦게 다시 트리버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마물을 흡수하여 엄청난 기세로 힘을 불린 트리버가 순식간에 몸을 날려 사람들이 모인 창문으로 뛰어올랐다.

“허, 헉!”

“허억!”

“트리버!”

대신관을 향해 붉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던 트리버가 이내 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로스틴.”

감히 자신의 소중한 레이나를 빼앗아 간 쓰레기 같은 놈. 그의 살기가 대신관에서 로스틴에게로 옮겼다.

목소리는 대신관을 비롯한 신전의 잡것들부터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트리버의 머릿속은 온통 로스틴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상태였다.

때문에 양손에 검은 힘을 잔뜩 모은 트리버가 곧장 로스틴을 공격하려던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카만 마법이 트리버의 전신을 꽁꽁 옭아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