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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101화 (101/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101화

동생을 보내 초대장까지 줬으면서 갑자기 오지 않아도 된다고?

레이나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받고서 꽤 기뻤는데 갑자기 날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로스틴이 쓰게 웃으며 설명했다.

“마침 같은 날 황성의 성인식이 잡혔더군.”

“황성의 성인식?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데? 황성의 성인식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자신의 성인식이 더 중요하지.

레이나가 오랜 시간 유폐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뒤늦게 설명을 보탰다.

“귀족가의 자제들은 황성의 성인식에 참석해야 비로소 한 사람의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 성인식에 참석 안 하면 두 사람의 귀족으로 인정받는 거야?”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근처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케일란이 오만상을 썼다.

레이나에게 지식을 떠벌릴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그가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인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냥 평민 취급을 받게 된다고. 그 대신 성인식에 참석하면 작위를 잇지 않아도 귀족으로서의 대우는 받을 수 있어.”

“귀족으로서의 대우? 그게 뭔데?”

작위나 영지가 없는데 귀족으로서의 대우가 뭐란 말인지. 붕어 없는 붕어빵도 아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로스틴이 설명을 덧붙였다.

“가문에서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일종의 품위 유지비라고 볼 수 있지.”

아무리 작위를 잇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귀족가의 자제가 볼품없이 사는 꼴은 보이지 않겠다는 제국의 방침이었다.

제국의 귀족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잘 먹고 잘산다는 일종의 허세와도 같았다.

“안 주면?”

“강제로 나눠 주게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돈이 없을 수도 있잖아. 레이나의 물음에 로스틴이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영지가 있는데 돈이 없을 수도 있나?”

그도 잘 모르겠다는 물음이었다. 귀족이라면 돈이 없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아하, 그렇구나. 이 세계의 귀족은 모두 영지를 가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작은 영지라도 누군가는 살고 있을 테니, 세금이 걷힐 것이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다면 사람을 부려 작물을 심거나 관광지로 개발하여 돈을 벌든지 뭐든 하겠지.

‘흐음, 그런 시스템이었군.’

이해했다는 듯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못된 루벨라이트 공작의 돈을 단 한 푼이라도 더 뺏기 위해선 성인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주는 거야?”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은 과연 공작에게서 얼마나 돈을 뜯어낼 수 있을까.

‘설마 동화 한 닢 이런 건 아니겠지.’

고작해야 그 정도 돈이라면 공작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괜한 고생이라는 말이다.

“글쎄. 가문의 재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월에 10골드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월에 10골드. 평민 평균 급여의 10배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복에 겨웠다며 풍족하게 살 금액이었지만, 귀족이라면 조금 문제가 달라진다.

귀족답게 살기 위해선 사용인을 부려야 하고, 집을 가꿀 비용이 들어갔으며, 파티라도 초대받는다면 의복을 살 돈도 필요했다.

때문에 10골드는 귀족으로 살기 위한 아주 최저 수준의 금액이었다.

물론 이는 보편적인 금액일 뿐, 부유한 가문이라면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해야 했다.

“그럼 루벨라이트 공작가는 나한테 얼마를 줘야 하는 거야?”

“공작가 체면이 있으니 최소 월에 100골드는 지급하겠지.”

100골드라면 상당한 금액이었다. 곡창 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월급으로 주면 딱 맞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루벨라이트 공작은 인성이 쓰레기이니, 돈이 없다고 우기며 안 주려고 하지 않을까?

전생에는 그런 나쁜 놈들이 꽤 많았다. 돈이 있음에도 없는 척을 하며, 이혼한 배우자와 제 자식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

사실에 기반한 가능성 농후한 질문을 하자, 그럴 리가 없다며 로스틴이 단언했다.

“귀족이 그런 창피한 짓을 할 리가 없겠지. 오히려 없는데 있는 척 과장을 한다면 모를까.”

귀족이란 참 불편하고 힘든 존재들이구나. 어쨌든 성인식에만 참석하면 루벨라이트 공작에게서 매달 100골드씩 뺏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참석해야 했다.

결심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불쑥 케일란이 대화에 다시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석해야 하니까 겸사겸사 같이 가면 되겠다. 에스코트할 사람도 없어 보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해 주면 될 것 같고.”

필요에 의해서 그리하겠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뭐야, 케일란. 너 이제 열여덟이었어?”

그러자 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몇 살일 줄 알았는데?”

“열대여섯 정도? 아냐, 미아보다 철이 덜 들어 보이니 열셋?”

“야?!”

이렇게 크고 튼튼한 남자에게 열셋은 너무하잖아?! 분노한 케일란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저런 반응을 보이니 올해 성인이 된 자신과 동갑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다행히 그의 제안을 레이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에스코트 따위 없어도 되지만, 아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확실히 마음이 든든할 테니까.

때문에 ‘그럴까.’라고 대답하려던 그녀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곧 성인식이 열릴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난 아직 초대장도 받지 못했는데.”

정작 당사자도 모르는 성인식을 로스틴이 어떻게 아는 것일까.

그래서 묻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내게도 초대장이 왔으니까.”

“응? 왜? 기존 귀족들도 참석하는 거야?”

“가족들이 동행하기는 하지만, 이미 성년이 된 귀족에게 초대장을 보내진 않는다. 아마 내가 아직 성인식에 참석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야.”

열다섯에 공작이 된 그는 성인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참변이 일어난 뒤였기에 할 일이 많아서 굳이 참석하지 않았더니, 매년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며 그가 쓰게 웃었다.

“아마 영애께도 곧 도착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쩌면 초대장이 루벨라이트 공작저로 갔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후자의 가능성이 컸다. 상황을 전부 파악한 레이나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자. 안 가면 평생 초대장이 날아올 거 아니야. 모처럼이니까 그쪽이 에스코트해 주면 되지 않겠어?”

나, 나는……?

케일란이 허망하게 레이나를 보았다.

그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제 마음을 드러내 파트너를 하자고 말했다면 모를까.

퍽 심드렁하게 말한 뒤였기에 뒤늦게 자신과 해 달라고 매달리기 애매해졌다.

“물론 바쁘지 않다면 말이야.”

레이나가 덧붙였다.

최근 들어 그는 여기저기 자주 출몰하는 마왕을 쫓느라 꽤 바쁜 상태였다. 그래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 덧붙인 것인데, 로스틴은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렇게 하지. 공녀 말대로 이대로 가다간 늙어 죽을 때까지 초대장을 받을 것 같으니까.”

그가 픽 웃었다. 그러면서 계획된 북부의 성인식은 취소해야겠다는 말도 함께 건넸다.

“아냐, 취소하지 마.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왜 취소를 해? 다른 참석자들은 어쩌고.”

“다른 참석자는 없다. 북부에서 성인이 된 귀족은 영애 하나뿐이니까.”

케일란도 올해 성인이 되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는 북부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제외되었다.

헉. 레이나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럼 지금까지 나 하나를 위해서 성인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스스로 주최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을 위한 파티라니.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날짜 얼마 안 남았던데.’

초대장에 적힌 날짜는 고작해야 열흘 뒤였다. 참석하지 않으면 귀족으로 인정도 해 주지 않는다면서, 왜 이렇게 급박하게 초대를 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제국의 귀족이라면 대부분 성인식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해 놓기 때문이었으나, 이를 알 길이 없는 레이나만이 그저 분개할 따름이었다.

“괜찮아. 참석할 테니 취소하지 마.”

레이나는 북부의 성인식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황성의 성인식을 내년에 참석할 생각은 아니었다.

“황성엔 출석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북부의 성인식을 조금 늦게 시작하자고.”

어느 쪽이 중요한지 굳이 따지면 북부였다. 루카에게서 초대장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데.

저택의 식구들 모두와 모처럼의 파티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며 들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레이나의 답변에 로스틴이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제 파티에 참석하려고 황성에서 주최한 파티에 얼굴만 비추고 말겠다니.

황족들은 물론이고, 같은 귀족들에게까지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도, 레이나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든 말든 상관이 없는 입장이었다. 사교계에서 자신을 뽐내는 취미도 없었고.

“공녀께서 그리 말씀하시다면야.”

로스틴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런 그를 따라서 레이나가 빙그레 웃었다.

그때까지 허망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케일란이 정신 승리를 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그래! 그렇게 하자! 좋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이제 어른이니까, 울면 안 되는 법이었다.

그사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떠올린 레이나가 로스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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