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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41화 (41/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41화

*

루벨라이트 공작은 레이나에게 공격당한 충격으로 사흘 동안 신전 가장 깊숙한 방에서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장기간 부재를 이상하게 여긴 루벨라이트 공작 부인의 연락으로 나흘 전에 공작저로 돌아간 참이었다.

물론 정상이 된 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 레이나를 두려워했고, 공작 부인은 그를 이해할 수 없어 속만 태웠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말을 좀 해 보세요! 머리는 또 왜 그렇게 된 거고요?!”

“그, 그, 그, 그것이, 그것이 날 죽일 게야! 그 음험한 것이!”

공작은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더는 참지 못한 그의 부인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이를 열린 문틈 사이로 몰래 보고 있던 공작의 장남인 펠릭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어머니……!”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걸까. 늘 강철같이 단단했던 아버지께서 어째서 저렇게 된 걸까.

혹여나 자신이 우는 것을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봐 펠릭스는 작은 제 몸을 장식장 사이 구석에 숨겼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직 10살밖에 되지 않은 그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펑펑 눈물을 짜냈다.

‘이게 다 내가 자꾸 울어서 그런 거야……!’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 매일 울었더니 아버지께서 점점 이상해지셨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괜찮으셨는데…….’

대신관님과 함께 외출을 하고 돌아오시더니, 갑자기 이상해지셨다.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설마 나 때문은 아니겠지…….’

자신이 계속 울어서, 화가 나다 못한 아버지께서 결국 저렇게 되신 건 아니겠지.

자책하며 눈물을 마저 짜내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신관이 방문한 것이었다.

곧장 공작의 침실로 들어가려는 대신관을 부집사가 막아섰다.

“고, 공작님께선 지금 대신관님을 만날 수 없는 상태이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해 드리려고 온 거니까요.”

대신관은 공작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아버지를 치료하러 오셨다고?’

그에 뒤늦게 몹시도 송구스럽다는 듯 부집사가 대신관을 막았던 몸을 치우며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부탁드립니다.”

한결같은 표정을 유지한 대신관이 부집사를 지나 침실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안에서 공작 부인이 눈물을 훔치며 나왔다.

호기심과 걱정이 앞선 펠릭스는 작은 몸을 더 작게 웅크려서 몰래 공작의 침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고, 곧 방문이 굳게 닫혔다.

대신관은 여전히 정신이 나가 있는 공작의 뺨을 가볍게 후려쳐 깨우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공작께서 해 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 대신관님……?”

여전히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대화 정도는 가능해진 공작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성녀가 나타났음에도 신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작께서 수고를 해 줘야겠습니다. 일을 바로잡아야 하니까요.”

“제, 제가, 뭐, 뭘……!”

성녀가 나타났으면 이제 레이나를 해치우면 그만이 아닌가.

“서, 설마, 설마 저더러 신탁대로 주, 죽으라는……!”

“아닙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작의 말을 대신관이 바로 부정했다.

그제야 공작은 숨을 바로 쉬었다. 정신도 조금 더 돌아온 듯싶었다.

그는 자신이 정확히 뭘 해야 하느냐고, 뭐든 하겠다며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죽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와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나름 공작의 장녀인데, 취급이 너무하십니다.”

“그건 제 딸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죽은 그 여자가 밖에서 낳은 악마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러기로 했지요.”

공작의 정신이 다시 나갈 것만 같았는지, 대신관이 대충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장녀라면, 아파서 요양 중인 누이를 말하는 거야……? 누이를 왜 죽이겠다고 하시는 건데……?!’

몰래 숨어 이야기를 듣던 펠릭스의 입술이 떨렸다. 들어선 안 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들어 버린 뒤였다. 이제 와서 모습을 드러냈다간 큰일이 날 것이다.

펠릭스가 터질 것만 같은 숨을 애써 삼킨 채 대화에 집중했다.

대신관이 말을 이었다.

“어쨌든, 공작을 죽이고 미쳐 날뛰었어야 할 공녀가 조용히 지내고 있어서 성녀님께 할당할 임무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역할을 공작께서 대신해 줘야겠습니다.”

“……제, 제가 말입니까? 마왕의 역할을요?!”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공작이 목소리를 높였다.

“쉿.”

대신관이 그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하기 싫으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었을 시에는 우리 사이에 오갔던 여러 가지 약속들은 모두 없던 게 될 수도 있겠지요.”

대신관을 이용해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공작은 도리어 덫에 걸리고야 말았다.

거절할 수 없었다. 대신관이 시키는 대로 임무를 완수하여 신탁대로 레이나를 세상에서 지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조용히 살아가는 수밖엔.

“알아들은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첫 번째 임무를 두고 갈 테니, 부디 빠른 시일 내에 마음에 드는 결과를 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공작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퍽 못마땅한 모습이었지만, 그나마 눈빛은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였기에 대신관이 간단한 묵례와 함께 방을 떠났다.

홀로 남은 공작은 조용히 대신관의 임무 지시서를 확인했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지 그는 곧 부집사를 호출했다.

“프레드, 앞으로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잘만 해 준다면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게 해 주마.”

부집사인 프레드에게 거절할 권한은 없었다. 그가 알겠다고 대답하자, 공작은 곧장 그가 해야 할 일을 설명했다.

그때까지 어두운 방구석에 숨어서 숨을 죽인 채 대화를 듣던 펠릭스는 믿을 수 없는 짓을 꾸미는 제 아비에 대한 충격으로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소년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레이나가 있는 북부와는 멀리 떨어진 동부, 루벨라이트 공작령이었다.

스스로를 마왕의 수하라고 일컫는 무리가 검은색 일색의 옷을 입고 나타나 공작령의 여러 곳을 파괴했다.

“-라는 보고가 오늘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마왕이 따로 있었나 봅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소식을 전한 체이스에 레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 의심했었는데 말이지?”

“그렇습니, 아, 아니요! 그게, 그러니까……. 아주 조금, 아, 아닙니다! 흠, 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당황하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제법 바닥 닦기에 익숙해진 케일란이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청소하다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야, 분명 그동안 집에서 멍만 때렸던 것 같은데, 언제 부하들을 보낸 거야? 설마 너, 진짜 마왕 아니야?”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겠어? 내 꿈은 안락한 노후라고.”

사실 그런 건 이제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레이나의 하루는 먹고 자고 쉬고의 반복이었기에.

“정신 교감으로 몰래 지시한 건 아니고?”

“굳이 내가 내 집에서 몰래?”

어처구니가 없다는 레이나의 대답에, 스스로 묻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케일란이 괜히 이마를 긁었다.

그러다가 이내 더 어이없는 것이 떠올랐다는 듯 바닥을 닦던 걸레를 내던지고는 소리쳤다.

“뭐야! 그럼 나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건데!”

마왕도 아닌 여자를 공격하려다가 잡혀서 전신의 털을 다 빼앗기고(?) 인질로 붙들려 청소까지 하고 있었는데.

만약 레이나가 마왕이 아니라면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확정이 난 지금, 케일란은 자신이 아주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야 모르지. 그러게 왜 덤볐어?”

“그렇지만 대신관이……!”

큰 건이라고 하면서 이곳의 위치를 알려 주었는데.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 있다고.

대체 왜 대신관은 자신을 여기로 보낸 것인가. 의문에 다다른 케일란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답을 찾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대신관이 뭐?”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서 그는 입을 닫기로 결심했다. 그 누구보다 말이 많은 그였지만, 목숨이 오가는 ‘때’에는 입을 닫는 게 능사였다.

케일란의 기색이 평소와는 달랐기에 레이나는 그가 오해를 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의 누군지는 모를 의문의 마왕 부하님들이지만, 대신하여 오명을 가져가 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케일란의 목에 있던 불꽃 사슬을 소멸시켰다.

“……뭐, 뭐야? 왜?”

왜 갑자기 풀어 주는 건데? 뭘 할 줄 알고? 케일란이 당황했다.

“오해 풀린 것 같으니까 이만 가. 앞으로 까불지 말고.”

다시 또 까불었다간 모근까지 없애 버릴 거야. 라는 깔끔한 작별 인사를 마친 레이나가 대충 손을 흔들며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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