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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8화 (8/143)

레벨 999 흑막 공녀가 되었다 8화

한숨을 내쉰 그가 조금 흐트러진 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로스틴의 푸른 눈이 루카의 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제 고작해야 10살이 된 작고 작은 자신의 동생 루카.

5년 전, 저주를 받아 보름달이 뜨는 날을 제외하곤 눈 뭉치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가여운 존재.

게다가 저주를 받은 것은 루카뿐만이 아니었다. 저주는 공작가의 모두에게 떨어졌다.

살아남기라도 한 루카는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선대 공작 부부인 로스틴의 부모는 저주로 죽음을 맞이했다.

신전에서는 이를 ‘신탁의 마왕’이 한 짓이라고 단언했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모두가 그 진위를 의심하는 신탁의 마왕이라니.

‘대체 왜, 뭘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부모를 잃고, 저주에 걸린 동생이 녹을까 봐 차마 품에 끌어안지도 못한 채 울부짖는 로스틴에게 대신관은 이렇게 말했다.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윈터스노우 공작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능력, 바로 로스틴 님께서 가지신 힘 때문입니다.”

공작가의 첫째 아이에게는 대대로 강력한 힘이 계승되었다.

한낱 평기사였던 초대 윈터스노우 공작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작위와 영토를 얻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제국을 건립할 당시, 황제는 초대 윈터스노우 공작의 능력을 높이 사, 마물이 들끓는 북부 영지를 하사하고 제국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부터 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윈터스노우 공작가는 대대로 전해지는 능력을 이용하여 북부를 굳건히 지켜 냈다.

덕분에 제국은 평화롭게 번영했다.

그 때문이었다. 마왕이 공작 일가에 저주를 내린 것은.

마왕은 강력한 전사를 배출해 내는 공작 일족을 멸한 뒤, 북부의 마물들을 부려 세상에 혼돈을 가져오려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왕의 저주는 강한 힘을 계승한 로스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꿎은 선대 공작 부부와 루카만이 끔찍한 희생자가 되었을 뿐이었다.

만난 적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정말 마왕이 실재하는지, 그가 공작가에 저주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까지 대신관의 신탁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는 것 말이다.

그는 마치 신과 연결이라도 된 듯 앞으로 일어날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불행히도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니라서, 자신들처럼 불행한 일을 당한 뒤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신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루카는 녹아 버렸을지도 모르니.’

대신관은 이미 늦어 버린 상황에 몹시도 안타까워하며 뒤늦게 알게 된 정보를 모두 공유해 주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저주를 내렸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지.

“천 년 전의 신탁대로, 마왕의 목표는 북부를 점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계속해서 북부를 지켜 주십시오.”

황제와도 필적할 권력을 가진 그가 머리까지 숙이며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순 없었다.

애초에 대대로 지켜 온 북부를 마왕에게 넘길 생각도 없었으니, 부탁받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세상을 암흑으로 물들일 신탁의 마왕, 어둠의 군주.’

아직 대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놈의 뜻대로 일이 풀리게 두진 않을 것이다.

아니,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마왕에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줘야 마땅했다.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다짐을 한 로스틴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동생의 방을 잠시 바라보며 주먹을 쥐었다 편 그는 성큼성큼 1층으로 내려갔다.

중앙 홀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로스틴을 발견하자마자 예를 갖췄다.

“준비는?”

로스틴은 하인이 가져다준 검은색 외투를 걸치며 물었다. 자세를 바로 한 기사가 즉답했다.

“끝냈습니다. 바로 출발할 수 있게 모두 병영에서 대기 중입니다.”

“이번에도 북북서 끝이라고 했었지. 마물들의 시작점이.”

마왕은 주기적으로 북북서 끝, 심연의 저택 너머에서부터 마물들을 소환해 영지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전에서 예언해 주었기에 로스틴은 마물 토벌대를 준비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영지가 혼란스러워지는 일은 없었다.

‘이번에도 모두 없애 주지.’

마물들을 털끝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없애 버릴 것이다.

다짐하며 검을 허리에 찬 로스틴이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그 뒤를 기사가 바삐 따랐다.

*

그 시각, 의문의 원망을 받게 된 레이나는 뜻밖의 생명체까지 조우하게 되었다.

“……뭐야, 이것들은?”

모처럼의 노동을 마치고 마부까지 씻긴 뒤, 한숨 자 볼까 싶어 침대에 누웠거늘.

저택을 무너뜨릴 기세로 지면이 울려 깜짝 놀라 밖에 나와 보았더니, 괴상망측하게 생긴 마물들이 포효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허, 헉! 저건 말로만 듣던 신탁의 마왕이 보낸 북부의 마물들……!”

뭔가 했는데, 다행히 함께 밖으로 달려 나온 마부가 꺽꺽대며 친히 레이나의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아아, 얘들이 바로 그건가. 신탁의 마왕이 주기적으로 보낸다고 알려졌던 마물들.’

북부를 다스리는 공작이 늘 해치우던 녀석들이었는데, 여주가 북부를 방문한 때에 마침 공작이 방심하는 바람에 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런 공작을 여주가 도와서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내용이었다.

덤으로 아픈 그의 동생에게 사랑의 마법을 사용하여 일시적이지만 안정을 찾아 주기까지.

물론 북부의 공작은 남주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스토리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북부에 존재하는 미궁에서 공작을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밑밥이었다.

북부의 마물과 공작에 관한 이야기는 게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이해했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난 저런 것들 소환한 적 없는데?’

마왕이 주기적으로 보냈다면서?

소환은커녕, 어디서 벌써 한껏 맞고 온 듯한 얼굴을 하고 인간처럼 두 발로 뛰는 무시무시한 마물은 깜짝 놀랄 정도로 초면이었다.

게다가 마왕의 수하라면서 왜 마왕 장본인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것들이 이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해.’

족히 백은 되어 보이는 마물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기에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지만.

‘이상하게 근본 없는 자신감이 넘친단 말이야.’

어째서인지 레이나는 불안감일랑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힘을 사용하라고 부추기는 목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 사용해라. 너의 힘을. 보여 줘라. 저들에게. 공포를. 신탁의 마왕이여.

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음산한 목소리의 반복되는 명령에 전신의 피가 끓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힘을 발산하여,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마물들을 소멸시키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나쁘지 않지. 먼저 죽이겠다고 달려오는데, 봐줄 필요가 있겠어? 심지어 이 세상에 하등 쓸모도 없는 마물인데.’

동조하는 레이나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몸에는 불길한 검은 안개가 넘실거렸다.

음산한 목소리가 키득키득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레이나가 다가온 마물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펼친 손가락에서부터 어둠보다 더 검은 대량의 불꽃이 힘차게 뻗어 나갔다.

“키아아아악!”

“끄아아악!”

“크어어어억-!”

새카만 암흑에 갇힌 마물들이 크게 포효했다.

하늘까지 까맣게 물들인 어둠 속에서 천지를 울리는 거친 비명이 난무했다.

그들의 절규는 심연의 저택을 넘어 북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 끔찍한 광경에 사람들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탁의 마왕이 재림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신전의 예언을 받고 심연의 저택 앞에 막 도착한 로스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둠으로 물든 세상과 북부를 향해 울부짖는 마물들.

그런 그들을 조종하듯 검은 불꽃을 흩뿌리는 한 여자.

로스틴의 눈이 새파랗게 타올랐다. 초대 대신관이 예언한 신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대, 대체 저건……!”

“신탁의 마왕?! 정말로 마물들을 부리고 있었다니!”

“마, 맙소사!”

로스틴과 함께 마물을 토벌하러 온 기사들이 기함을 토했다.

아무리 용맹한 기사들이라고 해도, 천지를 어둠으로 물들인 마왕의 재림과 거칠게 포효하는 마물들을 눈앞에 두고 태연할 수는 없었다.

마왕의 능력은 신전을 통해 익히 들어 왔지만, 막상 앞에 서니 오금이 저리다 못해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눈앞의 마왕을 막지 못한다면 북부는 물론, 제국 전체가 암흑으로 물들어 버릴 테니까.

기사들이 잘 벼려진 검을 두 손 가득 꽉 쥐었을 때였다.

레이나가 흩뿌린 어둠이 걷히고, 힘에 갇혀 있던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인지, 입고 있던 갑옷과 털이 모두 사라져 벌거벗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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