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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194/231)

194화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에 아연해하는 것도 잠시, 나는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충왕 변이를 사용했다.

스킬의 위력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이렇게 넋을 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손발이 빠르게 가늘고 딱딱하게 변하면서 몸이 쑥쑥 줄어들었다.

작아지는 내 몸의 크기에 맞춰 영혼 상태인 서지한 또한 작게, 아주 작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작아진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지한 씨, 지금이에요.”

- 아니, 근데 역시 나는…….

시간이 없는 데 서지한은 영 내키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다 끝났건만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미적거리다니!

“빨리요!”

결국 그는 내 재촉에 못 이긴 듯 떨떠름하게 실체화하더니 누군가에게 끌려오는 사람처럼 억지로 걸어왔다.

그리고 다시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아, 뭐 해요! 빨리요!”

"진짜 괜찮아? 아무래도 이건 좀, 역시 내가……."

“빨리 타세요!”

이 짧은 순간 동안 ‘빨리’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서지한은 좁쌀보다도 작아진 몸으로 한숨을 푹 쉬더니 느릿느릿 내 등에 걸터앉았다.

“괜찮아? 안 무거워?”

“괜찮아요! 음, 이 정도면 뭐.”

점프하는 내 뒷다리에 방해되지 않게 조신한 자세로 다리를 갈무리하며 서지한이 거듭 물었다.

처음 이 방식을 제안했을 때, 서지한은 극구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등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제 옷깃 꽉 잡으세요.”

“응……."

떨떠름한 서지한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전방을 주시했다.

충왕포가 뚫어낸 공간은 아직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폭풍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보스 몬스터들은 필사적으로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만약 저기에 빨려 들었다가는 두 번째로 작렬할 충왕포에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충왕포를 또 쓸 생각이 없었다.

승리 조건은 경쟁자를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왕좌에 앉는 것이니까.

저들이 피하기 위해 아우성치는이 후폭풍.

이것이 나를 왕좌까지 데려가 줄 상승기류였다.

“갔다 올게요.”

일단 말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가 벼룩이 된 순간부터 다들 시야에서 나를 놓친 것 같았다.

그럼, 뒷일은 맡길게요!

나는 작게 줄인 몸을 바람에 실었다. 그리고 투명화 스크롤을 찢고 민첩성 포션도 마셨다.

이 바람과 일시적으로 증가한 민첩성 스킬을 이용해 왕좌까지 단숨에 도달한다.

자, 가자!

민첩성 포션은 B급으로 마셨다.

갑자기 능력치가 너무 증가해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번개 같은 속도로 돌진하는 투명 벼룩.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조심해.”

“걱정 마요. 저는 지금 빠르고 아주 센 투명 벼룩이라고요!”

"……벼룩이라는 부분은 좀 하찮지 않아?”

아, 지금 기세 딱 좋은데 서지한 씨 왜 자꾸 초 치세요.

노파심 어린 서지한의 걱정을 대충 흘려들으며 나는 뒷다리에 힘을 줬다.

솔직히 좀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일단 집중하자.

좋아, 단숨에 왕좌를 손에 넣겠어.

나는 기세 등등하게 뻥 뚫린 길을 따라 돌진했다.

이대로 쭉 달려서 왕좌에 앉기만 하면 끝날 것 같았다.

보스 몬스터들은 터무니없이 크고, 나는 터무니없이 작으니까.

흔히, 전문용어로 빈집털이라고 하는 거다.

“모아야!”

그러나 마냥 수월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돌진하는 나의 몸으로 갑자기 거대한 손아귀가 날아온 것이다.

손바닥을 피하는 모기의 심정에 십분 공감하며 나는 다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아니, 날 어떻게 본 거야? 지금 나는 투명한데?

감 진짜 좋네. 왕년에 모기 좀 잡아보셨나 봐요.

“맡길게요!”

그러나 나도 아무 대비 없이 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외침에 서지한이 사신의 낫을 꺼내 들었다.

정말 정말 작은, 사신의 낫이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재주를 발휘해서 그 작은 낫으로 뻗어온 몬스터의 손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서걱.

이것이다. 나에게 올라탈 바에는 차라리 자기가 나를 안고 뛰겠다는 서지한을 만류한 이유.

민첩성 능력치만 봐도, 몸이 날랜 정도를 따져도 서지한이 나를 이동시키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만 나는 꿋꿋이 서지한을 태우길 원했다.

공격을 받아친 서지한의 몸은 투명화가 해제되었다.

반면 나는 아직 투명한 상태. 나는 끝까지 투명화를 유지한 상태로 공격에 반격할 수 있는 작전이다.

별 것 아닌 수법이지만, 효과는 좋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손이 잘린 몬스터가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주변 몬스터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 무언가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놈들이 뒤늦게 달려들어 앞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다리 사이로 지나가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점프해서 넘기에는 몬스터들의 덩치가 너무 크다.

그러나 미리 연습한 대로, 그때까지 내 등에 타고 있던 서지한이 위치를 바꾸며 나를 그대로 집어던졌다.

“모아야, 가!”

하늘, 땅, 몬스터들의 모습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에 깜빡거리며 뒤섞인다.

나는 서지한이 던진 방향으로 다시 쏜살같이 점프했다. 나를 막아서는 몬스터는 없었다.

오히려, 투명화가 풀린 작은 서지한을 향해 돌진하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챙!

등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성과 쇳소리가 났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는다. 서지한에게 시선이 쏠린 틈을 타서 그저 달릴 뿐이다.

퓻, 톡톡!

질주한다. 질주한다. 질주한다.

쇄도하는 공격을 무시하고 눈앞의 목적만을 향해서.

퓨퓻, 톡!

누구보다 빠르게. 아무도 막아설 수 없을 만큼 날렵하게.

톡톡.

지금 이 순간, 나는 질풍이다.

톡톡.

그리고 마침내 제단 바로 앞에 도착했다.

아직 제단을 오르고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다들 서로를 방해하고, 앞서가는 자들을 붙잡고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몬스터만 없을 뿐, 위험은 존재했다.

“모아야! 조심해, 마력……."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면서도 서지한이 나에게 경고했다.

사실 그가 말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내 앞에 응집하는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마력계 헌터다.

사방을 내리누르는 무거운 압박감이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다.

콰아아아!

마치 충왕포 같은 광선이 제단 바로 앞을 관통했다.

스킬의 시전자는 마치 악령왕과 같은 누더기를 걸친 몬스터였다.

자신이 들어갈 수 없다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심보로 내쏜 것이다.

펄럭거리는 누더기 사이로 새하얀 뼈와 보라색 관절이 스산하게 반들거렸다.

이 자식이…….

펄럭거리는 옷소매가 여유작작한 것이 아주 재수 없다.

하지만.

“너무 느려.”

문제는 공격이 너무 느리다는 거다.

마력을 느낀 순간, 나는 이미 그 영역을 지나 제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제단을 향해 스킬이 시전 되었지만 애초에 투명화한 내 위치도 모르는 상태로 아무나 맞으라는 식으로 쏘는 스킬에 당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직선 궤도를 변경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이 꽤 번거로웠다.

솔직히 몇 번은 울컥하기도 했다.

그냥 뒤돌아서 나도 충왕포 한 방만 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보다 약한 것이 분명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불쾌했다.

제대로 싸우면 상대도 안 될 약한 놈들이…….

아마 이래서 처음에는 왕좌만 노리고 뛰던 몬스터들도 중간에 싸움을 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아우성치는 칼부림과 난무하는 스킬, 포효하고 발 구르는 괴수들을 뒤로한 채 나는 홀로 제단을 올랐다.

처음에는 제단을 노리고 돌진하던 몬스터들도 제단 아래에서 자신들끼리 뒤엉켜 싸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톡톡.

나의 마지막 도약이.

톡톡.

왕좌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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