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우리 가족의 국내 여행지였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여행이라기보다 소풍에 가까운 느낌일거다.
거제도 근처에 있는 섬에 놀러 가서 민박으로 하루 머물고 돌아온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꼬마 승주와 나에게는 여러모로 커다란 체험이었다.
배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고,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출발하자. 위치는 엄마가 알고 있지? 식당이 열었을지 모르겠네.”
엄마에게 스크롤을 쥐여주고 나는 장비 아이템 위로 얇은 코트를 걸쳤다.
게이트를 열고 던전을 나오자 엄마는 말없이 나와 승주의 손을 잡고 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여긴 똑같네.”
도착한 곳은 테트라포드가 겹겹이 쌓인 해변가였다.
승주의 말대로 여기는 정말 변한 게 거의 없었다.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짭짜름한 바닷바람을 맞고 있으니, 마치 여기에 여행 왔던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영업하는 것 같은데?”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정말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식당이 보였다.
거의 가정집에 간판만 달아둔 것처럼 생겼지만 저래 봬도 식당이다.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숨겨진 음식점이랄까.
거듭 말하지만, 정말로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낡고 어설픈 외관부터, 테이블에 앉자마자 나오는 기본 반찬들까지.
다만, 식당의 주인 할머니는 조금 더 늙으신 것 같기도 했다.
“별 피해가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이 섬은 몬스터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나 보다.
언뜻 보기에도 마을은 평화로웠다.
식당의 낡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도시의 소란이 마치 다른 세계의 일 같았다.
하긴, 인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테러가 일어나서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에는 몬스터 피해가 적었다고 했지.
은담이의 보고를 떠올리는 동안 엄마가 자연스럽게 메뉴를 주문했다.
예전에 먹었던 것과 똑같은 메뉴인 것 같았다.
“꼭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아. 그렇지.”
승주의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선선히 그 감상에 동의했다.
“그러게. 정말 그런 것 같다.”
"응. 여기 음식 맛도 옛날이랑 똑같다. 엄마, 누나 어서 먹어봐.”
승주가 권하는 대로 반찬을 먹고 있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던이 작은 가게에 두 명의 손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나도, 옆에 서 있던 서지한도 순간적으로 무척 긴장했다.
알아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모처럼의 가족 식사에 훼방꾼이 없는 편이 더 좋으니까.
“아, 배고파. 여기 백반 둘이요.”
나의 긴장이 무색하게도 손님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 했다.
잠시 이쪽을 흘끔 쳐다보긴 했지만 곧 같이 온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수다 떨기 바빴다.
“서울에 상경한 친구, 아까 드디어 연락됐어. 휴대폰 망가져서 연락을 못 받았다더라.”
“그래?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너도 한시름 덜었네.”
“그러게. 다친 데도 없나 봐. 이 와중에 회사에서 출근하라고 했다고 하더라.”
“와, 회사 정말 독하네. TV 보니까 집도 다 부서지고 길도 박살 났다더니만. 도로도 정상이 아니라고 하던데 회사까지 차가 갈 수 있나?”
"그거 몬스터 사라지자마자 하루 만에 대부분 복구됐대. 주요 도로부터 싹 정리했다더라. 무슨 사이트도 벌써 하나 생겨서 몬스터 피해 원스탑 복지서비스인가 뭔가 해준다더라고.
“그 난리 진정된 게 어제 아니냐?”
"어, 그럴 걸? 복구가 빨라서 다행이라고 했더니 일 시키려고 빨리 복구시킨 거라면서 욕하던데. 한참 웃었지 뭐야.”
“욕하는 거 들으니 그나마 좀 안심되지 않아? 크게 다쳤으면 욕도 못 할 텐데.”
“그건 그래.”
딱히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워낙 작은 가게라 다닥다닥 붙어 앉는 바람에 옆자리의 대화가 고스란히 귀에 들어왔다.
이래서야, 우리가 말하는 것도 옆 테이블에서 다 들을 판이다. 편하게 이야기하기엔 글렀군.
“걔도 여기 밥 좋아하는데.”
"다음에 같이 먹지 뭐. 아, 전복 무침도 먹고 싶은데.”
“다 못 먹어. 그냥 다음에 와서 먹자.”
“그래. 그나저나 저 하늘에 몬스터는 진짜 안전한 거 맞지?”
"응. 뉴스에서 별 거 아니래. 나 몬스터 실제로 보는 거 처음이야.”
"나도. 근데 처음에나 좀 신기했지, 이제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 그렇지?”
"그러게. 밥이나 빨리 먹고 가자.”
다음에 와서 먹는다니.
그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 사람들은 모른다.
하늘에서 이글거리는 포식자가 저렇게 선명한데 이들에게는 그저 좀 신기한 구경거리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것도 화젯거리로 잔뜩 써먹어서 이미 질려버린 구경거리.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대규모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대부분은 은폐되고 있으니까.
당장 지금도 세계 멸망하면 층간소음 일으키는 윗집부터 해치겠다는 흉흉한 댓글이 난무하고 있으니.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미래를 계획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쪽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누나, 괜찮아?”
"응."
내 표정이 많이 안 좋았는지 승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충 대답하고 나니 때마침 음식이 나왔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무척 바빴는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반쯤 마시듯 허겁지겁 먹고 자리를 떴다.
“갔네.”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생선조림을 집어 먹던 승주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곤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엄마와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누나.”
승주가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응?”
“피난 가는 게 어때?”
갑작스러운 말에 순간 머릿속이 확 굳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일부러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엄마, 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모아야. 피난 가.”
승주를 타박해줬으면 했는데, 돌아온 건 승주보다도 더 단호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둘이서 따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그 잠깐 사이 어떻게 이렇게 확고하게 결심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둘 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승주랑 엄마 두고 혼자 어떻게 피난을 가.”
“엄마는 괜찮아.”
“나도 괜찮아, 누나.”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보낸 나날들이 두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걸까.
나는 되도록 든든하게 보이길 바라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안 가도 돼. 나 엄청 강해. 내가 보스 몬스터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둘 다 봤잖아. 하늘에 저것도, 좀 걱정되긴 하지만 내가 처리할 수 있어.”
솔직히 허세다.
하지만 지금은 이 허세가 필요했다.
그간 닦아온 거짓말 실력을 발휘하며 힘껏 연기하는 나를 엄마는 다 안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모아야. 가. 정말 괜찮아.”
갑자기 확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애써 내리눌렀다.
말을 하면 볼썽사납게 질질 울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가, 심호흡했다가, 괜히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킨 후 간신히 다시 대답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눈물을 참는 데는 간신히 성공했다.
“누나. 피난 가.”
하지만 승주가 다시 권하는 순간, 소리치고 말았다.
“가면? 엄마랑 너는 죽잖아. 다른 사람들도 다 죽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하지만 누나는 살잖아.”
승주는 씩 미소 지었다.
못 본 사이 단순히 마음고생이 심해 살이 빠졌다고만 생각했던 동생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누나는, 확실하게 살잖아.”
"……."
그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대신하는 적막이 내려앉았다.
내 입술이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려고 몇 번이나 뻐끔거리고 있는 것이 남 일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가 간신히 내뱉은 것은 볼썽사나울 정도로 약한 소리였다.
“살면 뭐? 나 혼자 살아서 뭐해?”
"누나가 왜 혼자야.”
“그래. 네가 왜 혼자니? 그리고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그런 거지. 너는 잘할 거야. 엄마는 알아.”
두 사람의 시선은 아주 따듯했지만 그래서 어떤 눈길보다도 차갑게 느껴졌다.
“잘하긴 뭘 잘해. 엄마도 알잖아. 나는 겁도 많고 소심하고……."
“겁 많고 소심한 애가 혼자 서울 올라가서 살 생각을 해? 너 어릴 때부터 안 소심했어. 기억나? 옆집 아저씨 자동차 몰려고 하다가 벽 부순 거.”
생각지도 못 한 말이 엄마 입에서 튀어나왔다.
평소 같으면 ‘아, 왜 그 일을 또 들춰!’라고 티격태격 했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해묵은 실수에 대해 또 사과했다.
“그거…… 미안해, 엄마.”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몹시 충격이 컸을 텐데 그때 엄마는 나를 별로 혼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 말에 엄마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아니, 왜 사과를 해. 너 왜 차 운전했는지는 기억 안 나?”
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차가 벽에 강하게 부딪히던 충격뿐이다.
그게 너무 강렬해서 사실 앞뒤 과정은 다 잊어버렸다.
“그때, 엄마 퇴근 늦게 하는 날이 많아지니까 네가 차 몰고 태우러 오겠다고 그런 거였잖아. 옆자리에 승주까지 앉히고, 엄마 태우러 가자 이러면서. 진짜 쪼그만 게 맹랑해서……. 혼도 못 내겠더라.”
"뭐? 그런 거였어? 왜 그걸 지금까지 말 안 해줬어?”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지.”
그 화제를 시작으로 엄마와 승주는 하나둘씩 옛날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흑역사가 대부분이라 서지한에게 들려주기 싫었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가볍게 풀린 것은 좋은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참 떠들다가 호숫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이왕 거제도 근처로 왔으니 집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내 이름이 랭킹 보드 1위에 당당히 박혀 있는지라 그냥 호숫가 집으로 향했다.
돌아와서 두 사람에게 남는 방을 내어주고 침실로 들어가 좀 쉬려는데, 문득 승주가 나를 불렀다.
“누나, 근데……."
“응?”
방금까지 떠들던 여운이 남아 있어서 즐겁게 대답하는데, 문득 승주의 불안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아플까?”
“어?”
“……아냐.”
내가 다시 말을 건네기 전에 승주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복도에 남은 나는 뒤늦게 승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죽는 거 많이 아플까?
괜찮다고 했지만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애써 강한 척했지만 미처 숨기지 못한 승주의 속마음.
그 작은 목소리가 내내 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