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185/231)

185화

삐삐.

어둠 속에서 휴대폰 메시지 수신음이 짧게 울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얕게 잠든 손모아를 깨우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만약 서지한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휴대폰 알림음도 무음으로 해뒀어야 했는데!’하고 통탄했을 것이다.

“음…… 몇 시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손모아가 머리맡의 휴대폰을 더듬어 잡았다.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감기려던 눈이 단번에 확 뜨였다.

“잠깐, 시간이 벌써……. 알람 왜 안 울린 거야?”

잠들기 전 세팅해놓았던 알람이 모두 깔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본인이 잠든 사이 서지한이 3미터의 거대한 몸을 구부리고 살금살금 들어와 모든 알람을 해제해놓은 것을 모르는 손모아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원래 자려던 시간보다 한참 더 잤다는 걸 알았으니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손모아는 비척비척 이불을 걷어 침대에서 내려오며 한 손으로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음……."

몬스터 테러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의 위치를 확인했다는 소식.

무척 반가운 것이었으나, 대체 유은담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낸 것인지 신기했다.

어쨌든 기다리던 소식을 알아냈으니 이제 현재 상태를 점검할 차례다.

“마력이 생각보다 별로 안 돌아왔네.”

자는 동안 회복된 마력은 10분의 1 정도.

절반은 차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평상시 회복 속도에 비하면 무척 느린 것이 아무래도 잠들기 전 몸 상태가 워낙 안 좋았던 탓인 듯했다.

그래도 잠들기 전보다는 훨씬 가뿐하게 느껴지는 몸에 손모아는 그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은담아.”

유은담과 연결되는 소통 유과를 먹고 그를 부르자 잠시 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누나! 일어났어요?”

"응. 메시지 보낸 거 봤어. 그거외에는 특별한 일 없었어?”

"딱히 신경 쓰실 만한 건 없어요. 시키신 대로 계속 보스 몬스터 반환하고 있고요. 지금은 외곽에 있는 보스 몬스터 제보도 거의 안 들어와서 반 수색 상태로 찾아다니고 있어요.”

“그래?”

“아, 지방에서 지원하던 헌터들이 물자가 다 떨어진 것 같아요. 일단 포션은 다 써버린 것 같던데요. 저한테 포션이 좀 남아 있긴 하는데,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대로 나눠주고 있지만 아무래도 물량이 부족해서요.”

하루 내내 이어지는 긴 싸움이었으니 헌터들이 아끼고 아껴 포션을 썼다고 해도 지급해준 물자가 다 떨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은담이 돌아다니며 나눠주는 것은 시간도, 이동 스크롤 효율도 떨어졌다.

손모아는 짧게 고민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깐만.”

침대를 벗어난 손모아는 복도를 가로질러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김영길이 한창 포션을 제작하고 있는 공방이었다.

잠깐 수거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작된 포션이 잔뜩 쌓여 있었다.

S급 포션이 아니라 A급 이하의 포션들이었다.

높은 등급의 재료로 저급 포션을 제작하니 효율이 무척 높아서 한 번에 수십 개가 만들어졌다.

손모아는 그렇게 모여 있는 포션을 모두 회수해서 마켓을 열었다.

“은담아. 지금 마켓에 포션 등록할 건데, 힐링 포션이랑 마력 포션이거든? 한 사람당 5개만 살 수 있도록 할 거고 값은 거의 공짜니까 1분 뒤에 마켓 확인하라고 사람들한테 메시지 보내줘.”

“아, 그렇게 하면 일일이 나눠줄 필요 없겠네요.”

손모아는 즉시 마켓에 포션을 등록했다.

포션의 구매 대금은 대한민국의 흙 한 줌으로 설정했다.

이렇게 해두면 국내에서 싸우고 있는 헌터들만 구매할 수 있겠지.

엉뚱한 사람이 몇 개쯤 구매해갈 지도 모르지만, 뭐 그 정도는 감수할만했다.

몸이 한 개뿐이라 모든 현장에 갈 수 없으니, 곳곳에서 활동 중인 헌터들에게 이 포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유은담이 메시지를 전했는지 등록해둔 물량의 수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마켓을 닫으려던 손모아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은 마켓의 랭킹보드 항목에 멈춰 있었다.

망설이던 손이 조심스럽게 랭킹보드를 확인했다.

잠시 랭킹보드를 응시하던 손모아가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인벤토리에서 소통 유과를 꺼내 입에 던져 넣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유은담을 제외한 서지한, 반서후, 반서진 세 사람 몫의 소통 유과였다.

“다들, 지금 잠깐 대화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던진 말에 돌아온 것은 각양각색의 반응이었다.

그중 반응이 가장 격렬했던 것은 서지한이었다.

“뭐? 왜 벌써 일어났어?”

"이것도 늦게 일어난 건데, 알람이 꺼져 있더라고요. 분명 맞췄는데 이상하죠?”

손모아의 미심쩍어하는 듯한 반응에 서지한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이래저래 찔리는 구석이 많았던 탓이다.

그가 그대로 입을 다물자 손모아는 한결 편하게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방금 은담이가 몬스터 테러 배후 확인했다고 알려줬어요. 위치도 알려줬는데, 저는 지금부터 이쪽으로 가보려고 해요.”

서지한이 앓듯이 유은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손모아의 말이 그 목소리를 덮어 버렸다.

“일단 반서후 씨가 저랑 같이 가줬으면 하는데, 괜찮아요?”

"문제없다.”

손모아가 반서후를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만약 무력사태가 벌어진다면 방어계 헌터인 그와 자신의 전투 시너지 효과가 좋다는 점.

그리고 둘은 이 중에서 그가 가장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손모아는 일단 사장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서 장본인이 이 사태를 스스로 수습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 아래에는 반서후의 정치력이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고마워요. 나머지 사람들은 보스 몬스터랑 민간인 구조에 계속 힘써주세요. 그럼, 은담아, 정확한 위치……." 

그러나 다른 이들은 생각이 많이 다른 듯했다.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가 손모아의 말을 잘랐다.

“뭐? 싫어! 나도 같이 갈 거야. 내가 그놈한테 당한 게 얼마나 많은데!”

가장 먼저 반서진이 격렬하게 항거하고 나섰다. 그에 질세라 유은담도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저도요! 저 바르기스 던전에 가둔 것도 그놈이잖아요. 누나, 일부러 저 혼자 갈 수도 있었던 걸 위치 공유한 건데 저 버리는 거 아니죠?”

유은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지한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끼어들었다.

“너 혼자 간다고? 그 독사 같은 놈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절대, 절대 안 돼. 나랑 꼭 같이 가야 해. 알았지?”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반서후 씨랑 같이 가잖아요.”

“혼자 가는 거나 마찬가지지! 저놈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아예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서지한의 말에 반서후의 목소리가 작게 이어졌다.

“야, 서지한……. 하.”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곧 지친 듯한 한숨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알았어요. 그럼 다 같이 가요.”

세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 손모아는 재빨리 실랑이를 포기했다.

일일이 설득할 시간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 말대로 모두가 그 인물에게 볼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유은담이 알려준 놈의 은거지에는 꽤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모이게 되었다.

은거지는 서해에 있는 수많은 무인도. 그곳에 있는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에 지어진 새하얀 별장이었다.

“의외로 한국에 숨어 있네.”

별장 근처의 숲에 몸을 숨긴 채 반서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유은담이 네 사람을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배후는 대한 그룹 차남 김 사장. 대한 길드의 실질적인 주인인 남자예요.”

“김 사장? 길드 사장이야? 본명이 뭔데?”

"본명이 김 사장이에요. 형 이름은 김 회장이고 대한 그룹의 총수로 알려져 있어요. 그 사람은 이번 일이랑 관련 없는 것 같더라고요. 김 사장은 집안에서도 애물단지 취급받는 것 같던데요.”

질문했던 손모아는 순간 유은담이 농담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담담한 표정을 보고 얌전히 납득했다.

진짜구나.

그나저나, 자식 이름을 저런 식으로 짓다니…….

손모아가 아연해하는 동안 유은담은 담담하게 지금까지 김 사장이 해왔던 짓과 그와 결탁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 등 새로 알아낸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무슨 목적으로?”

“으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 이 정보 말해준 사람은 그냥 김 사장이 미쳤다고, 미친놈이라고 욕하던데 아마 자기들끼리도 문제가 좀 있었나 봐요.”

“이 정보 말해준 사람? 누구?”

"헌터 일보 사장이요.”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유은담의 말에 반서후가 움찔하고 반응했다.

그사이 손모아는 놀라 눈을 깜빡이며 다시 질문했다.

“헌터 일보면, 김 사장 편이고 언론조작 주도했던 사람이라며? 그걸 순순히 다 말해줬어?”

“네에. 딱히 묻지도 않은 것까지다 말해주던걸요.”

천연덕스러운 유은담을 가늘게 뜬눈으로 바라보던 반서후가 낮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헌터 일보 사장은 지금 어디 있지?”

"뭐, 그대로 잠적했어. 자기는 너무 큰 죄를 지었다면서 죽은 사람으로 지내겠다는데.”

“너……."

“아,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녹취는 다 따놨어요. 다만 중간에 잡음이 좀 많아서 손질 좀 해야 쓸 수 있겠지만.”

무언가 말하려던 반서후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년간 그를 알아온 경험으로 유은담이 헌터 일보 사장을 죽였음을 순식간에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손모아는 유은담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다.

“그래, 그래도 사람이 반성은 할 줄 아나 보네.”

사실 손모아는 이 순간에도 아주 약간, 그 김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자신이 모를 어떤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삼대 길드를 장악하는 것까지는 욕심으로 그랬다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몬스터를 도시에 풀어놓는 건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인은 미친 사람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 하는 법이었다.

“진입하자.”

내내 침묵하던 서지한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반서진이 슬쩍 따라붙었다.

“조심조심 가보자고. 기껏 찾아왔는데 도망가면 짜증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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